“ 한 송이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불탑이 중국에서 도입하여 우리의 탑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보면 석공들은 한국의 미를 찾아서 끊임없이 정열을 불태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결정판이 바로 불국사 석가탑이다. 그 과정은 마치 한송이 국화꽃을 피위기 위한 것과 같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탑을 꼽으라면 석가탑과 다보탑을 꼽는다. 두 탑을 비교하여 일반적인 미의 개념을 살펴보자. 다보탑은 많은 장식과 기공을 함으로 화려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석가탑은 외부의 장식 효과에서가 아니고, 탑 자체의 형태미가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다보탑이 시각적인 자극에 의한 외피적인 것이라면, 석가탑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정신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석가탑에는 우아함과 교양미와 품위가 느껴진다.
어쨌거나 탑파의 발전사를 보면 석가탑을 정점으로 이후에는 석가탑을 모방만 되풀이하는 메너리즘에 빠진다.
2층 기단과 3층 탑신으로 되어 있다. 기단, 탑신부, 옥개석이 단순한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도 크기가 규칙적으로 비례감있게 줄어들므로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준다. 1충, 2충, 3층의 탑신석이 4 : 2 : 1의 체감비 비례이다. 위쪽으로 올려다보는 사람의 시선을 치밀하게 계산한 비례이다.
지붕의 네 귀퉁이는 끄트머리를 날렵하게 반전하도록 처리하였다. 자세히 보면 낙수면은 직선으로 뻗어내려오지만 추녀부위를 밑에서 위로 깎아 올리므로 반전을 일으키는 느낌을 주게 하였다.
기단의 탱주가 2-2양식이다. 2-3양식에서 단순화 되었지만 아직은 초기 양식이다.
탑의 상층부는 보기에 따라서 탑신과 균형의 비례가 맞지 않아서 조금 무겁게 보인다.이것은 상륜부가 없어졌으므로 최근에 복원할 때 100년 뒤에 건립한 실상사 삼층 석탑의 상륜부를 본땄기 때문이다.
기단석은 별개의 돌로 만들었지만 탑신석과 옥개석은 한 개의 돌로 만들어서 안정감을 준다.
찰주공은 3층 옥개석까지 뚫여 있고, 사리공은 2층 탑신에 있었다. 사리와 함께 다라니가 발견되어 세계 최고의 목판본이라고 하여 지금까지 논란이 많다. 주목해야 할 일은 사리함에 사리와 다라니가 같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석가의 말씀인 불경도 석가의 몸인 사리와 동일시하였다는 것이다. 이 후로는 다라니가 봉안되는 일이 많다. 그러나 다라니는 주술적인 신비신앙의 상징이므로, 기복불교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이 탑은 전설에 의하면 무영탑이라고 한다. 잘 아는 전설이므로 생략한다. 그러나 법당의 축담 위에 서서 탑을 바라보면 회랑의 지붕 너머로 멀리 영지가 보인다.
*1966년 8월 29일 아침에 일어나니 탑이 6도 가량 기울어져 있었다. 지진이 있었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굴군을 붙잡았다. 이 도굴군은 잭키로 탑을 들어올려서 도굴하였다. 나원리 탑, 황룡사 초석, 남산사탑, 통도사 부도 등 13곳의 사찰 문화재를 훼손하였다.
탑의 수리 과정에 떨어트려서 3층 탑신을 부순 사건도 있었다.
첫댓글 네~도굴의 흔적은 맘을 몹시 아프게 합니다.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