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간이란 드러나 있는 것인데 그것을 논하지 않는 추세라면
아마도 요즘은 드러난 행위에 대한 법조항이 훨씬 강력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마치 백호대살은 요즘 호랑이가 없기 때문에 취급하지 않는 것처럼요.
하.지.만...
백호대살은 괜히 백호대살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냥 호랑이도 아니고 백호이고.
白하면 쇠붙이죠...
게다가 大殺입니다.
처참한 죽음이라는 말입니다.
요즘엔 예전보다 처참한 죽음이 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교통사고, 어떤 폭발, 테러, 입에 담기조차 안쓰러운 토막살인 등...
천간충. 드러나 있는 부딪힘.
예컨대, 부모와 자식이 싸우고, 노조와 기업이 싸우고, 언니와 동생이 싸웁니다.
그 어느 쪽이 와서 부딪히든 한쪽이 더 약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부모는 부모라서 약하고, 자식은 자식이라 약하고, 노조는 노조라서 약하고, 기업은 기업이라서 약한가요?
기업도 나름 약한 면이 있죠. 역설적으로 기업이 망하면 노조도 없을테니까.
언니는 언니라서 약하고 동생은 동생이라서 약합니다.
취급하지는 않아도 그 작용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주에 백호대살이 있다면서 제왕절개로 액땜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낳을 때마다. 참 끔찍하죠. 어쩔 수 없었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보면 예전에 없던 모양새기는 하지만 무언가 다른 양상은 있는 거 같습니다.
예컨대 음식도 먹는 것은 똑같지만 메뉴는 변하듯이, 옷도 변하듯이, 집도 변했고...
그것도 변했습니다.
싸움. 혹은 다툼. 혹은 외적 갈등.
하지만 쉽게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참 답답합니다.
있는데 단순히 변했다고 아니라고 하고 없다고 하니.
어차피 사주를 증인석에 세울 것도 아니지만 그러니 더더욱 있는 건 있다고 해야죠.
밥상이 바뀌었다고 요즘은 먹을 것을 먹지 않는다고 하지 않듯이.
요즘 밥은 밥 같지 않을까요?
밥은 널렸는데 밥은 아닐까요?
가끔은 제가 왜 사주란 걸 알게 되었는지 원망스럽기도 하고, 이것저것 다 극복하고 별자리로 건너 뛰어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제 태몽도 그걸 암시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백호대살이 간혹 맞지 않는 이유라거나, 사주가 간혹 맞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사주의 단점은 극복하고 좀 더 높은 질서에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주 오행에도 태양이 있고, 바람이 있고, 물이 있고 이 넒은 땅도 있지만 그래봤자 딛고 있는 땅입니다.
별은 이 땅보다 훨씬 멀리 있습니다.
외계의 고급 정보를 받는 것 마냥 별이 고향인 사람처럼 그 별의 영향력 아래 살아갑니다.
언젠가 그 별로 돌아갈 것처럼요.
오행보다는 좀 더 복잡할지 모르는 다른 주기와 장단에 맞춰서 살게 됩니다.
그렇다고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습니다. 같지도 않지만요.
어쩌면 정말로 단점을 극복할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극복을 했는가 못했는가의 차이일겁니다.
극복을 했으면 스타가 되고, 못하면 우스개 소리로 평민으로 살아야겠죠.
다른 질서에 편입된 거라거나 혹 편입된 채로 태어났으면 또 모를까.
지금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사안까지 없다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첫댓글 1/어너 역술인왈 甲甲 잇넌사주럴 보고,,,사주가 깝깝한데,,,운에서 甲이 들어오니 디기 깝깝 하지요,,,,햇다함,,,용감한 초보선생님들이 역술계럴 선도하넌것 갇음,,
2/어너 역술인왈 요즘은 백호대살이 잘 맞지 않넌다고 하소연한다,,,그 이유가 먼가요하니,,,자기운이 조울때넌 기냥 시부리니 맞드만은 운이가니 통변 실족하니 연장 탓 하고잇다,,,,전 별려노코서 노심초사 하넌것이,,,
설익은 명리가 사람 잡넌것임,,,명리공부넌 시간이 필요한것임,,,
1번은 전혀 틀린말도 아닌데요? ㅎㅎ
저는 자유 귀문이 자유를 사랑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어요.
근데 자유를 사랑하긴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틀린 말도 아닌 거 같고... 제 멋대로래요 ㅋ
통변자체가 구체성이 없시 막연할뿐 아니라,,,,,래객들이 갑갑&답답해서 래방하넌데,,전부 갑목이 잇넌것도 아니고,,말,장난하넌것이지요,,,
혹자는 그럽니다.
자연계 현상 즉, 계절적 감각을 대표한 오행 성분을 역학에 대입한 자체가 넌센스다라고 들 합니다. 과연그럴까요? 역학의 기호는 오행에서부터 출발 합니다. 그 기호는 무궁무진한 풀이가 될 수 있는 잠재의식의 기호입니다. 넌센스라 하는 건 단순 풀이의 오류를 많이 범한 범주에서 나온 말로 대변될 수 있습니다.
그 외적 접근으로 철학의 갈래인 역학을 할 것인가, 포괄적인 철학의 심벌로 삼을 것인가는 개인적 기로인 셈입니다. 오행을 부정한 그 외적인 심벌이 있다면 니나노, 쿵덕쿵이 되겠죠.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수 있다면, 철학은 보이지 않는 뒷면을 더듬는 일의 연속인 고행의 작업입니다.
춥다 덥다의 기준도 제각각이니까요.
어쩌면 누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말해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만약 사주가 그럼에도 그럴듯하다면,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이 기초를 닦았을 것 같습니다. ㅎ
그 철학의 세계는 지극히 주관적인 게 많습니다. 그러기에 그 세계에 깊이 들거나 빠지는 건 현실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의 굴절을 의미합니다. 결국 현실적 적응이 힘들게 되고 자기만의 세계로 갇히게 되는 현상을 낳습니다.
한번 더 집약하면, 관념론의 주장이 일차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즉 해부한다면 의식적 근원이 일차적이라면, 물질은 파생적 개념이 됩니다.
이 근원과 물질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주관적 관념이고 또 하나는 객관적 관념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의 사물은 마음에 달려 있다라는 견해도 주관적 관념론입니다.
따라서 자기를 낳아 주었던 부모도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없었던 것이 됩니다. 반면 객관적 관념은 의식 정신의 산물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주관적 관념에서 객관적 관넘으로 끌어온 이라면 말이죠. 이는 의식과 정신의 산물이 됩니다.
그러나 객관적 관념을 산물로 보게된 게 아니라 초자연적 정신의 산물로 본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 혼잡을 담게 됩니다.
결론하면 세계가 나타나기 이전의 신비한 정신적 존재가 어딘가에 있어서 세계를 창조한 게 아닐까라는 창조적 주장이 일 수 있으며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결국 세계의 창조주인 神이나 하나님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 이런 관념론이 남아 있을까요?
그 이유를 두 가지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인식상의 이유며, 또 하나는 사회적인 이유입니다. 객관적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은 복잡합니다. 따라서 어떤 부분을 과대하게 확장해 이해하려는 건 관념론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사회적인 이유로 통제되는 확장성의 산물입니다.
님의 글 여러 번 보고, 명조도 봤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陽木이라고 다 陽木이 아닙니다. 옛날 이방원이가 실제 권력의 이인자이면서도 저잣거리에서 정승, 판서들 가랑이 사이를 기어다니며 술값을
구걸도 했습니다.
미래에 王권을 쥐려는 각오를 바짝 엎드린 저자세로 썼습니다. 미래를 담보할만한 충분한 가치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느 종교든 상관 없습니다. 이미 님께서 하늘에 기도가 내 삶의 열쇠라는 걸 인식했다면 다행한 일이며,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존중과 존경의 객관성을 잃지 않은 것만이 삶의 희망이 보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소 앞서 간 답글로 오해를 살 수 있겠으나,
진실한 내 삶의 방법을 찾고자 하는 이유가 전재 된다면, 존경은 아니더라도 존중의 신뢰가 쌓이면 소중한 한말씀 내려주실 분 이곳에 많이 계십니다.
더위에 잘 지내세요.
제가 역사 일화를 잘 모르는 것이 많아서 그런데 이방원은 왜 그렇게 술값을 구걸했습니까?
돈이 없었습니까? 아니면... 혹시 다른 이유라도?
"사주가 간혹 맞지 않다" 라고 하셨네요...님은 아주 고수님이십니다...
^^ 칭찬 감사드립니다. 그것은 하지만 주변의 "실례"와 또 주변(?)의 "풍문(?)" 덕분입니다.
그것을 초월해버릴 수 있고, 초월한 법칙에 "편입"한다면 맞지 않는 경우가 되겠죠.
가끔 자연도 이상 기후를 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