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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찬송가 384장 (구 434장) / 창세기 39 : 1 - 23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384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창세기 39장 1절 – 23절 말씀입니다.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아멘!
요셉은 꿈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아버지께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것과, 꿈을 꾸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시련은 바로 그 꿈 때문에 시작됩니다. 꿈을 꾸는 자는 꿈 때문에 시련을 당합니다. 이 꿈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당하고, 형들이 팔아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고,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그를 잊어서 감옥에서 오래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한점의 오점도 없습니다. 그의 삶은 진로에서 벗어남도 없습니다. 그의 가는 길에 막힘도 없습니다. 형통했습니다. 그의 형통은 노예로 있었지만 주인인 보디발이 인정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간수가 인정합니다. 그의 형통은 공인된 하나님의 형통이었습니다.
그는 억울하게 팔려가 종살이, 옥살이, 힘든 일을 당하였지만 그의 걸음을 성경은 말합니다. 시편 105편 7절입니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요셉은 팔려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후에 그의 아버지와 70명의 식구들이 애굽에 이주하게 됩니다. 종살이, 옥살이가 그의 삶이 아니라 애굽의 총리의 삶이 그의 삶입니다.
형통이란? 고통의 면제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고난 후에 영광이 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8절, 9절에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라고 합니다. 이것이 형통입니다. 형통은 고통 가운데서 더 잘 된 이야기입니다. 형통이란 번성하고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훗날 그의 형들을 만나 말했습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이것이 요셉이 형통한 이유입니다.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합니다. 로리 베스 존스라는 분이 ‘주식회사 예수’ 라는 책에서“예수님의 성공에 대한 정의는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 이었다.” 고 말합니다. 번성과 성공하는 형통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형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요셉 이상의 시련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굽은 것 같지만 이것이 참 길입니다. 흔들리는 것 같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첫째로, 요셉이 형통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3절에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요셉의 형통은 철저하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형통함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스스로, 우리의 힘으로 형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형통한 자가 되어” 라고 합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형통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대로 형통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삭과 함께 하십니다. “네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떨어진 것을 다시 붙여주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성공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없는 번성이 있습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성공, 번성이란 말은 하나님의 단어입니다. 인간이 성취할 수 없는 단어들입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형통했습니다. 요셉은 문자 그대로 ‘미스터 형통’ 입니다. 사실은 요셉이 형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통이 요셉을 따라 다닌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의 복입니다.
잭 하일스라는 분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치게 되는 이유는, 예수님과 함께 일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세요. 이런 성도가 요셉처럼 형통하게 됩니다.
둘째로, 요셉의 형통의 범위는 범사였습니다. 형통하는 사람은 범사가 잘 됩니다. 범사가 아니면 형통이 아닙니다. 부분적으로 형통하면 형통이 아닙니다. 그것은 “반통” 입니다. 반통은 형통이 아닙니다. 신명기의 주제는 “여호와께서 너의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복을 주시고, 어떤 것은 화를 주시고, 어떤 것은 형통하게 하시고, 어떤 것은 불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확실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의 형통을 보세요. 그의 복음 전도자의 삶은 꼬이고 복잡한 삶이었지만, 하나님은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고통 가운데서 더 잘 되는 것이 형통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그래서 그는 형통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내웠노라.” 아멘! 바울의 형통은 모든 일에 형통입니다. 사실은 가는 곳마다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잘 되는 곳에 갑니다.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잘될 일을 합니다. 형통한 자는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삽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삽니다. 그래서 잘되고 형통합니다.
그러나 사람과 하나님의 위치가 바뀌면 만사불통입니다. 이것이 바로 되면 만사형통입니다. 이 세상의 만사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범사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 빼면 형통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일은 잘 안 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잘 됩니다. 우선은 어긋나 보이지만 바르게 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롬 8:28). 찬송가 384장은 부를수록 힘이 납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만사형통합니다.
셋째로, 요셉의 형통함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형통이었습니다. 요셉이 종살이하던 집의 주인도 요셉이 형통한 것을 인정합니다. 요셉의 근면, 정직, 성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형통하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형통을 보는 것은 성실함을 통해서 봅니다. 성실한 사람의 형통을 사람들은 인정합니다. 하나님은 성실하면 성공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형통입니다. 성실을 모든 사람이 보게 하는 것이 인정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형통입니다.
“궁인지사번역파비(窮人之事飜亦破鼻)” - 안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입니다. 어떤 책에 보니 “잘되는 분은 넘어져도 산삼뿌리 앞에 넘어지고, 안되는 분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는 말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 형통한 사람이 되고, 우리 모두가 성실하고 인정받는 사람, 그래서 날마다 풍성한 은혜 가운데서 모든 일이 주 안에서 잘되고 형통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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