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색목록; 이리篇
이용헌
머리를 아무리 갸우뚱거려도 알 수 없는 무리가 많아요.
머리를 아무리 조아려도 용서할 수 없는 무리가 많아요.
다리를 질질 끌며 달이 지고
달이 달아난 곳에 흥건하게 고이던 어둠
어둠에 머리를 처박고 우리는 본 적도 없는 이리 떼마냥 울부짖었죠.
이리가 그토록 혈족 같을 줄 우리는 알 리 없었지만
암, 알 리가 없고 말고요.
그때까지 우리는 사람인 줄 알았으니까요.
사람 옷을 입고 사람 신발을 신고 있었으니까요.
머리를 쳐드는 순간 총소리가 울렸죠.
총소리는 사냥꾼을 농락하던 이리 왕 로보도
로보의 반려자 브랑카도 당할 수 없었다고
시튼의 동물기에 나오죠.
그렇다고 우리가 이리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실인즉 우리는 다리가 넷이었어야 했어요.
거리를 가로질러 군홧발이 달려가고
달이 머물던 자리엔 칠흑 같은 침묵.
침묵과 침묵 사이에 우리는 웅크려 앉았고
머리를 쳐드는 순간 개머리판이 춤을 췄죠.
목덜미에 피가 흐르는 순간 우리는 이리가 된 걸 알았어요.
이리의 이야기는 이야기 속에서만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이야기도 이야기 속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이리인지 이리가 우리인지
그땐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다만 다리가 둘이라서 미안했어요.
어쩌면 우리는 이리의 후손인 줄도 몰라요.
왜냐고 묻지 말아요.
덫에 걸린 브랑카처럼 질질 끌리어간 그날을
알면서도 모른 척 조상을 탓하거나 역사를 탓하는 무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알 리 없겠지만
암, 알 리 없고 말고요.
우리는 다리에 다리를 묶고 어깨동무를 하고
그림자를 절뚝이면서도 그리로 가죠.
거기 지금은 사라진 거리에서 머리에 머리를 맞대고
무리와 무리를 향해 노래를 부르죠.
무리는 여전히 우리를 노려보고 있어요.
무리는 여전히 개머리판을 숨기고 있어요.
그러다 다시 탕, 총소리가 울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다 탕, 탕, 탕,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웹진 『시인광장』 2023년 4월호 발표
이용헌 시인
2007년 《내일을여는작가》로 등단. 시집으로 『점자로 기록한 천문서』가 있음. 현재 만해학회 웹진 《님Nim》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