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8월호에 김인식 감독 인터뷰가 실렸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기사는 아직 못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구단 홈피에 한 유저분께서 내용을 올려주셨네요. 이 글은 홈페이지에 박XX 유저님의 글을 다시 퍼왔습니다.
**꼴찌 후보를‘시즌 4위’ 반석 위에**
김인식 야구가 프로야구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올 초만 해도 한화는 공히 ‘꼴찌 1순위’였다. 2004년 7위로 주저앉은 한화이글스에는 다른 구단에서 버린 선수, 아픈 선수, 슬럼프에 빠진 선수로 가득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이정도면 충분해요. 잘하면 4강도 할 수 있겠는데….” 1년 전인 지난해 10월 말 프로야구단 한화이글스 사장실. 유승안 감독의 후임으로 발탁돼 이경재 사장과 마주 앉은 김인식 감독은 예상 밖의 말을 했다.
2004년 한화의 성적은 8개 구단 중 7위. 실수로 나온 성적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실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임하는 감독들은 대개 “한 1, 2년 분위기 좀 다지고…”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 감독은 구단 관계자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인사권을 쥔 사장을 '배려' 하는 의도적인 발언이었을까. 2005년에도 한화는 스타급 선수를 데려올 만한 사정이 아니었고 계획도 없었다.
구단 관계자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일은 계속됐다. 사장을 만난 뒤 가진 선수들과의 첫 대면. 그는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야구로 스트레스 받지 말자. 야구선수를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재미있게 해. 그래야 스트레스 덜 받거든. 나도 이제 나이 먹을 만큼 먹었으니 마지막으로 몇 년만 더 할 거야. 그렇게 하자.” 보통 신임 감독들은 ‘군기’부터 잡는다. 선수들이 긴가민가하기 시작했다.
부임하자마자 떠난 일본 나가사키 전지훈련에서도 김 감독의 행동은 예상을 벗어났다. 훈련 프로그램까지 코치들에게 맡긴 그는 운동장 벤치에 앉아 조는 듯 마는 듯 하는 나날을 보냈다. 가끔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다가가 농담 한마디를 툭 던진 뒤 뒷짐을 지고 운동장 한 바퀴 도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일부 선수와 구단 관계자들이 ‘심한’ 농담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저러고서도 월급 받을까?”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훈련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해 12월 6일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입원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 누적이었다. 입원한 그는 반신마비로 식사조차 하지 못했다.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를 이경재 사장이 다시 붙잡았다. 하루 6시간씩의 피나는 재활훈련-. 그는 한 달 만에 휠체어에서 일어났고 20일간 통원치료를 받은 뒤 절룩거리며 일본 나가사키 스프링캠프로 떠났다. “병원에서 기적이라고 하대. 그래서 나도 희망을 가졌지.” 그는 남의 일이었던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후반기가 시작된 8월 말 현재 안팎이 인정한 ‘1순위 꼴찌 후보’였던 한화는 4위에 랭크돼 있다. 턱걸이하듯 매달려 있는 게 아니다. 2위인 SK와 2게임, 3위 두산과는 1게임 차이고 5위 롯데와는 6게임 차가 난다. 팀에 새로운 선수가 합류하지도 않았다. 그가 부임했을 때와 다름없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다른 점이 하나 있기는 있다. ‘나물’과 ‘밥’의 품질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해까지 죽을 쑤던 ‘나물’과 ‘밥’들이 펄펄 날고 있다. 이 또한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어떻게 ‘죽은 조직’을 살렸을까.
야구계에서 김인식이라는 이름 석 자는‘덕장’으로 통용된다. 덕으로 선수들을 이끈다는 의미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하루하루가 전쟁터. 전쟁터에서는 이겨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생존을 책임지는 감독의 목숨은 파리 목숨보다 못하다. 아무리 인간적이라 해도 실적이 나쁘면 가차없이 내동댕이쳐지는 곳이 이곳이다. 신경을 너무 쓰는 바람에 애간장이 녹아버렸거나 타버렸다는 우스개까지 있을 정도다.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인데 비결이 있을까. 그는 전매특허인 “모르겠다”로 대답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는 없을 텐데.
덕장인 그는 선수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내버려 둔다”. “내가 뭐 어떻게 한 건 없어요. ‘잘해 봐. 기회는 항상 있는 거야’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자기들이 알아서 잘하니까 이기는 거죠.”
더 이상 물으면 그의 대답은 “음~”으로 시작하는데 사실은 그게 끝이다. 눌변인지 묵묵부답인지 모를 정도다. 굳게 닫힌 입에서는 그 흔한 욕설도 나오지 않는다. 연타석 삼진으로 물러난 타자에게 한마디 던진다는 게 “사람이 던지는 공인데 그걸 못 쳐?”였다. 본인은 “팀워크를 깨뜨리는 선수는 불러다 혼을 낸다”고 분명하게 말했지만 그걸 본 사람은 없다.
무관심한 걸까. 아니다. 믿고 맡기는 것이다. 그는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다. 간혹 채찍이 필요할 때 나서는 것은 코치들이지 김 감독이 아니다. 김 감독은 그저 곁에서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라운드 내에서는 잘해도 못해도 똑같아요. 역전 홈런이나 끝내기를 쳤을 때 ‘좋아’ ‘잘했어’라고 할 뿐 말씀을 안 하십니다. 그래서 못할 때는 미안하기 짝이 없죠. 더 열심히 할 수밖에요.”
한 선수의 말이다. 그는 한마디로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어슬렁 뒷짐’도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그만의 배려다. 대화에서도 그는 주로 듣는 쪽이다. 70%는 듣고 나머지 30%만 말한다. 그는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는다. 선수들에게는 말이 없지만 사실 그는 달변가다. 물론 친한 사이에서만 그렇다. 특히 그에게는 대화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
“야구는 마인드 게임이다. 90% 이상이 마인드고 나머지 10%만이 실력과 체력”이라는 뉴욕 양키스 요기 베라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까지 구단 운영부장을 지낸 주철범 한화그룹 PR팀장은 “미국 구단에는 심리상담사가 있어 경기 전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한 시간이 따로 마련돼 있는데 그 역할을 김 감독이 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두산 감독 시절이던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축하연에서 김 감독은 한가지 질문을 받았다. “1995년 OB(두산의 전신) 우승 후에 다른 선수들은 제쳐놓고 백업 포수였던 박현영을 꼭 집어 칭찬한 이유가 있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 감독이 답했다.
“1군에 있는 25명(당시는 1군 엔트리가 25명이었다) 중 앞의 10명과 뒤의 10명은 별문제가 없다. 문제는 중간의 5명인데 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팀 분위기를 좌우한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의미는 컸다. 95년 당시 박현영은 김태형(현 두산 배터리 코치)과 주전 자리를 다투었다. 실력 면에서 그다지 밀릴 게 없었지만 번번이 김태형에게 밀려 벤치 신세를 져야 했고 이 때문에 늘 불만이 많았다. 김 감독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김 감독은 이런 점을 헤아려 우승 후 “박현영이 제일 고생했다”고 말한 것이다. 김 감독은 2001년 우승 후에도 주축 선수보다 능력은 있지만 경쟁에서 밀려 소외된 백업 선수들을 우선 칭찬했다. 그는 꾸짖음보다 칭찬하고, 질책하더라도 선수에게 상처를 주는 말보다는 에둘러 표현한다.
그는 이런 태도를 경기까지 그대로 가져간다. 그는 복잡한 작전을 쓰지 않는다. “작전다운 작전을 쓰지 않는다는 평이 많다”고 말하자 그는 대뜸 “작전답지 않은 게 작전”이라고 강하게 받아쳤다. 예상 밖이었다.
“기자들이 거기밖에 모르는 겁니다. 작전을 내면 공이 나쁘게 와도 타자들은 억지로 공을 칩니다. 작전을 걸었으면 한 베이스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그러죠. ‘마음껏 쳐라. 나쁜 볼은 절대 치지 마라’ 지금 우리가 팀 홈런 1위예요. 희생번트는 아마 가장 적을 걸요.”
김 감독의 이런 생각은 경기에서 강공책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올 시즌 한화는 8월 25일 현재(이하 동일) 희생번트 수 28개로 비슷한 스타일의 SK(120개)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덕분에 병살타 1위(103개)라는 불명예가 씌워졌지만 선수들은 기 죽지 않고 방망이를 휘두른다. 김 감독도 두 번이나 “우리가 홈런 1위”라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다른 감독님들은 무사 1루가 되면 짧게 밀어치거나 팀배팅을 해서 주자를 진루시키라고 주문해요. 하지만 감독님은 더블당하면 안 되니까 멀리만 쳐서 혼자 죽든지 삼진을 당하라고 말씀하시죠. 괜히 팀배팅에 신경 쓰다 보면 타격이 엉망이 되는데 감독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자신 있게 방망이가 나갑니다.”
올 시즌 김감독의 야구를 처음 경험하고 있는 한화 내야수 이범호는 자신의 시즌 최다 홈런과 같은 수(23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다. 과감성이 선수들의 승리욕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의 이런 특성은 죽은 선수를 살려내는 특효약이기도 하다. 두산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한화에 와서도 그는 ‘재활용품 공장장’이라는 ‘직책’을 유감없이 해내고 있다. 한화는 지금 다른 구단에서 버리다시피 한 선수들은 물론 전직 빵집 사장에서 고교 감독까지 다양한 ‘출신’으로 가득하다. 조계현이 그렇고 김인철이 그렇다. 5월 5일 입단한 풍운아 조성민은 물론 대전고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던 지연규까지 불러들여 마무리로 앉혔다.
이뿐인가. 자기 입으로 “투수도 아니었다”고 고백한 지난해 0승 투수 정민철(9승)을 재기시켰고 김해님(6승) 최영필(7승)도 이미 자신의 시즌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15패(4승) 투수 문동환도 올해는 정민철과 더불어 팀 내 최다승(8승) 투수로 거듭났다. 8월 15일 조성민도 1승을 올렸다. 바로 여기에 그의 진면목이 있다. 하지만 궁금증도 생긴다. 그는 왜 ‘재활용’에 집착할까. 모두 스타급 선수로 싸우려고 하는데 말이다.
“두산에 9년 동안 있었는데 3년에 한 번씩 한국시리즈에 나가 두 번 우승하고 한 번 준우승했습니다. 성적이 좋았죠. 그런데 구단 사정 때문에 아홉 명의 선수를 팔아야 했어요. 구단으로서는 50억원에 가까운 돈을 벌었지만 전력은 형편없이 떨어졌습니다. 그렇다고 그만한 선수를 데려올 수도 없었어요. 그때 버린 선수라도…, 뭐 이렇게 한 거죠.”
그렇다고 마냥 사람이 좋은 건 아니다. 5월 18일 한화는 기대 이하의 스미스를 전격 퇴출 통보하는 동시에 SK와 삼성에서 뛰었던 브리또를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얼마 후에는 SK와의 '경기 도중' SK 외야수 조원우와 한화 투수 조영민을 맞트레이드했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준다. 마음 편하게 해주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한다. 웬만한 잘못은 못 본 척 넘어간다. 하지만 팀의 인화를 깨트리거나 노력하지 않은 선수에게는 ‘칼을 숨긴 덕장’이 된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단칼에 승부를 낸다. 실수가 쌓이는데도 반성하지 않으면 냉혹하게 판단한다. 김 감독의 또 다른 모습, 승부사적 기질이다.
실제로 김 감독은 프로야구계의 소문난 ‘타짜’다. 포커나 고스톱 실력을 당해낼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포커 페이스’. 하일성 KBS 위원은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지만 승부사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승부사는 아무에게나 무조건 덕을 베풀지 않는다. 그는 사람을 읽는다.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운동장을 걸어도 눈은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 있다.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아, 저 선수는 이것만 챙겨주면 될 것 같다, 이런 거 말입니다.”
조성민에 대해 묻자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더 두고 봐야죠. 스타였지만 지금은 걸음마를 하는 상황이거든요. 자꾸 부정적으로 보는데 장점을 봐야 해요. 나도 감독이지만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제가 제일 자랑스러운 것은 우리가 홈런 1위라는 거예요. 홈런은 야구의 꽃이잖아요.”
또 홈런 얘기다. 어쨌든 그는 잘하는 선수보다 잘할 수 있는 선수를 고른다. 겉으로는 ‘의뭉’하듯 보여도 눈은 밝다. 한눈에 알아보고 기회가 오면 낚아챈다. 좋은 선수와 필요한 선수를 구별할 줄 아는 그는 골라낸 재목을 낚아챌 줄 알고 사용할 줄 안다. 낚아챈 선수들에게 그는 급하게 다가가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두고 가슴으로 다가간다. 한두 번 실수해도 야단치지 않는다.
그는 노련한 사냥꾼처럼 온 산을 헤집고 다니기보다 길목에 앉아 기다린다. 잘할 때까지 기다린다. 알면서 기다리고 먼저 가서 기다린다. 선수들이 다치면 다 나을 때까지 기다려 준다.
한화가 9연승을 달리고 있던 6월 15일 광주전 때의 일이다. 1승만 더하면 한화는 두 자릿수 연승을 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2회 타석에 들어섰던 4번 타자 김태균이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그리 큰 부상이 아니라 경기 출전에는 문제가 없었다. 김태균도 “뛸 수는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김태균을 4회 교체시켰고 한화는 이날 기아에 패해 9연승을 마감했다. 후에 김태균은 “그날 경기를 뛰었다면 허리가 악화돼 3∼4경기는 뛰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다른 감독님 같았으면 10연승을 앞에 둔 상황에서 주전 선수를 교체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슴으로 다스리려면 일단 선수들이 승복해야 한다. 쉬운 게 아니다. 일단 쉽게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힘으로 누르는 건 쉽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가슴을 움직이는 건 그 자체도 힘들지만 알아주는 선수도 많지 않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한 번 움직여 놓으면 자동이다. 사후 관리가 필요하지 않다.
한국 생활 6년째로 최장수 용병인 제이 데이비스. 그는 컨트롤하기 힘든 선수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순둥이’가 됐고 팀의 3번을 맡고 있는 ‘핵심 인재’가 됐다. 선수들도 몇 게임 치러 보면 감독을 안다. 데이비스는 자신이 먼저 다가가 김 감독에게 친한 척해 화제가 됐다. 그래서 덕장은 최고의 장수로 불린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해야 하고, 가슴으로 껴안아야 한다. 더러 '머리 없는' 덕장도 있지만 그는 두뇌회전도 빠르다. 하지만 그는 두뇌를 함부로 쓰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눌변이다. 그는 말을 아끼고 웬만하면 침묵한다. 하지만 입만 열지 않았지 그는 항상 말한다. 침묵은 교묘한 또 하나의 언어다. 그는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잘 아는 것 같다. 그는 선수들과 밥은 같이 먹지만 가능하면 술자리를 하지는 않는다. 코치들과는 자주 소주잔도 기울이지만 선수들과는 몇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할 정도다.
도통 말이 없다. 말이 없기 때문에 그의 말은 더 가치가 있다. 두산에서 김 감독과 7년을 지낸 후 은퇴해 사업을 하고 있는 박철순씨는 “짧게 한마디씩 조용하게 말하는 게 때리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며 “가식이 아니라 인간적인 성품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에 꼼짝할 수 없다”고 말했다.
“1년에 몇 번 없는 일이긴 한데 문득 오늘 경기를 그르친 선수 생각이 나 (선수에게) 방 전화를 하죠. ‘잊어라. 내일 다시 해보자’. 직접 보지는 않지만 이럴 땐 멍하겠죠. 된통 혼날 줄 알았는데 ‘내일도 (경기에) 나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인간적인 작전’을 곧잘 쓴다. 4월 말 청주구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즌 초기 이도형은 슬럼프에 빠져 2할대의 저조한 타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도형도 지레짐작에 더그아웃 뒤쪽에 늘어져 있었다. 보아하니 내보내지 않을 게 뻔했다.
“이도형! 장인·장모님이 오셨다면서? 너 오늘 4번 해라.”
그날 이도형은 4타수 3안타 6타점을 올려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날만이 아니었다. 물이 오른 이도형은 지금까지 펄펄 날며 핵심 주전으로 뛰고 있다.
다들 말은 하지 않지만 선수들은 이 모든 과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본다. 그리고 마음에 새긴다. 감독의 마음 씀씀이가 언젠가 자신들에게도 향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믿음은 감동과 눈물을 먹고 자란다. 누가 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덕분에 그는 “모든 것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인간 기획력이 뛰어난 감독”이라는 수식어도 있다. 노련한 사냥꾼답게 타이밍도 기가 막힌다.
올 전반기 시즌에서 4위에 오른 한화는 후반기를 9연전으로 시작했다. 2위와의 차이는 두 게임. 9연전은 후반기 상승과 추락의 갈림길이었다. 경기를 앞둔 어느 날 김 감독의 전체 호출이 떨어졌다. 직접 선수들을 불러 모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의아한 선수들 앞에 별것 아니라는 듯한 감독의 몇 마디가 툭툭 떨어졌다.
“다 알지만 야구라는 게 절반 이기기가 힘들잖아. 다섯 게임 이기라고 안 해. 네 게임만 이기자. 투수들도 던질 만큼만 던지고 못 던지겠으면 얘기해.”
아무리 못해도 5~6게임은 이겨야 하는데 9게임 중 4게임만 이기라고 하는 감독. 결과는 어땠을까. 인터뷰가 있던 23일까지 한화는 5연승을 달렸다. 플레이오프를 눈앞에 둔 선수들의 열정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열정을 강조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은 덕장 김인식의 면모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4강을 생각했는데 이제 보입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조성민도 그래서 데려온 겁니다. 사실 처음부터 계획적이었어요. 조성민의 역할이 점점 커질 겁니다.”
송규수 한화 단장은 “김인식 감독은 선수들이 자신의 능력 이상을 발휘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면서 “믿음과 절제된 자율을 잘 섞어 선수들의 승리욕을 묘하게 이끌어낸다”고 분석했다.
“감독은 야구장에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합니다. 선수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감독은 보이는 그 자체만으로 선수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거든요. 운동장에서 (선수들이) 실수하는 것은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선수가) 오기를 갖지 않고, 실수에 화내지 않을 때는 매몰차게 다그쳐야죠. 그게 감독이 할 일입니다.”
그는 또 포기도 잘하고 잊기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선수 때문에 졌다고 해도 잊어야죠. 뭐라고 한들 게임이 다시 옵니까. 누구나 실수는 있는 겁니다. 빨리 잊고 내일 또 나서야죠. 저도 과거에는 ‘너, 말이야’ 하곤 했지만 그게 아니더군요. 다독여주는 게 더 효과가 커요. 머리로 하면 안 됩니다. 끝까지 인간적이어야 해요. 물론 코치들이 역할을 해줘야 하긴 하지만…. 미움이 강해지면 단점만 보여요.”
이쯤 되면 선수 심리에 관한 한 박사급이다. 어떻게 해야 이 정도가 될까? 대답은 간단했다. “수련을 많이 하면 된다”는 것이다. 수련의 의미를 짐작할 수 없어 “후배 코치나 감독에게 해줄 말이 있느냐”고 질문을 바꿨다.
“선수가 안될 때 (감독은) 자기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선수가) 못한 것을 책망하지 말고 선수가 (플레이를) 못하면 (자신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요.”
김인식 감독은 ‘믿음의 야구’라는 이름으로 경영학의 화두인 ‘인간경영’을 초록 그라운드에서 펼치고 있었다.
첫댓글 김인식 감독님 첫 부임하던 날 아침 신문 가판대를 보고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아직 선합니다..^^
음... 이코노미스트 편집국에 한표드려야겠네... 부분부분 봤었는데 전문을 보니... 회사 어르신들께 메일로 뿌려버리고 싶은 심정임다... 김인식감독님 한화이글스와 오래오래 함께 해주셔요
홈런 1위 강조하시는거에서 감동 먹었습니다..ㅠ.ㅠ
이런분이 한화이글스 현 감독님 이시라니......행복할 따름입니다..앞으로도 쭈~~욱^^
아 한화팬이라는게 너무 행복합니다. ㅠ
우승뒤 몇년 간의 좌절과 절망...불안불안 했던2005년의 시작에서...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강팀'이 되버렸습니다. 고맙습니다. 감독님&코칭스텝&1군과 2군에 뛰는 선수들 모두
우와 최고최고 -_-b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진짜 멋진 말이네요. +ㅁ+
감동입니다.. ㅜ.ㅜ
이러다가 한화사장 되는거 아닌가 모르겄네여.ㅋ 암튼 자랑스럽습니다.. 김인식 감독님!!
와우.. 그냥 김인식 감독님이 덕장이라는 것만 알았지,, 솔직히 이 정도까지 올줄은 몰랐어여.. 감동...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런글은...축협...게시판에..올려야..합니다.... 김인식 감독님을...복제해...축협에...건의 하고 싶네요...정말...대단한..덕장 이십니다.....
대통령도 이랬으면~~~
야구이야기 하는 게시판에 왜 뜬금없이 대통령 이야기가;;;;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