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인 맹순(53세, 가명)을 만나 골치 아픈 가정사를 이야기 들은 홍북성(37세, 가명) 검사는 불쌍한 맹순에게 알아서 하라고 맡겨놓고 있기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였다. 일단 공국(56세, 가명)을 만나보기로 했다. 홍 검사가 공국에게 연락해서 한 번 만나 식사라도 하자고 하니 공국도 선뜻 응했다. 맹순이 홍 검사에게 가정 문제를 이야기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현직 검사로 있는 친척이니까 만나자는 데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공국은 늘 마음속으로 친척이 검사로 있으니까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조그만 일이라도 생기면 제일 먼저 홍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어드바이스를 받고 지내던 사이였다.
“바쁜 검사님께서 어떻게 시간을 내주셨나? 반가워요.”
“생각보다 검사 일은 바쁘고 힘드네요. 어떤 때는 일에 대한 회의도 들고요.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고, 그런 사람들을 잡아넣어야 하는데, 구속되는 사람들은 망하는 거니까, 잡아넣는 검사를 얼마나 원망하겠어요. 그런 업보가 계속 쌓이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게 될 거예요. 하지만 검사가 된 이상 그런 거 두려워하지 말고, 나쁜 사람은 철저하게 수사해서 징역을 보내야 해요. 그게 정의니까요.”
“그래도 억울한 사람 생기지 않도록 해요. 말 들어보면 감방에 가 있는 사람들 절반은 억울하고, 돈이 없어 징역 산다고 해요. 그 놈의 유전무죄는 일제시대부터 생긴 것이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고 아직도 판을 치고 있다고 하니까 홍 검사는 절대로 그러지 말아요.”
“예.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홍 검사는 공국의 이런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여전히 사회는 유전무죄라는 아주 잘못된 풍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돈 있는 사람이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은 일제시대부터가 아니라 조선시대까지 소급해 올라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아주머니께서 아저씨 여자 문제로 이혼하겠다고 그러는데, 좋게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요? 걱정이 되어서 제가 좀 뵙자고 했어요.”
홍 검사가 이 말을 꺼내자, 공국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무척 당황했다. 마시고 있던 소주를 여섯잔 연거푸 들이켰다. 그러나 남자들은 술에 취하면 본심이 나온다.
“글세, 물론 내가 잘못했어. 지금 상황은 이혼까지 할 정도는 아니야. 식구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여서 그렇지. 시간이 가면 잘 해결될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알아서 잘 할 거니까.”
“아니예요. 그렇지 않아요. 아주머니는 좋게 해결이 되지 않으면 이혼소송을 한 대요. 그러면 아이가 불쌍하잖아요. 법에서는 이런 문제를 아주 간단히, 단순하게 처리해 버리니까 가정만 깨지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잘못이지만, 집사람과는 아무런 애정이 없어. 그건 집사람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오랫동안 그냥 동거인으로 살아왔어. 그런데 이런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집사람이 나를 원수처럼 생각하고, 자꾸 싸움만 걸어오면 이런 생활을 계속한다는 것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그래도 아이를 낳고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잘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여자를 만나 가정에 소홀하게 되면, 이혼하자고 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 여자를 끊을 수는 없나요?”
“홍 검사. 그건 안 돼. 그 여자도 사람이야. 비록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지만, 내가 좋아했고, 그래서 정이 들었어. 지금은 그 여자도 나만 믿고 나를 좋아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려고 해. 그런데 지금 집에서 난리 친다고 나 혼자 잘 살겠다고 그 여자 버리고 와이프에게만 충실한다고 하면, 그 여자는 어떻게 돼? 아주 비참하게 될 거야. 잘못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어.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 그 여자가 홍 검사 누나라고 생각하면, 홍 검사는 그 여자의 애인에게 가정을 생각해서 그 여자 끊고 집으로 돌아가 집에만 전념하고, 부인만 사랑하라고 말할 수 있겠어? 그건 너무 극단적인 이기주의며, 한 인간을 짓밟고 죽이는 거야? 이왕 이렇게 되었으면 세 사람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어떻게 한 사람은 죽이고, 집사람만 잘 살려고 하는 거야. 내가 가정을 버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생활비를 주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야. 그 여자와 두 집 살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야.”
홍 검사는 공국이 흥분해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으니, 그 말도 맞는 말 같았다. ‘세 사람이 같이 잘 사는 방법’이 무엇일까? 과연 그런 방법이 있기나 한 것일까?
“아저씨 말대로 두 여자가 공존할 수 있을까요? 아저씨가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두 여자를 다 만족시켜 줄 수 있어요? 아주머니가 받는 정신적 고통, 마음의 상처, 질투심과 박탈감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어요? 양쪽 다 똑 같이 잘 해줄 수는 없는 거 아니에요? 옛날 왕들이야 수십명의 후궁들을 두어도 유지관리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다르잖아요. 요새는 재벌들도 내놓고 첩을 두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 않아요. 70년대까지만 해도 돈 있는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첩을 두고, 자식들도 여러 배에서 많이 낳기도 했지요. 그래도 다 재벌 2세, 3세 4세로 잘 살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했다가는 언론에서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재벌 부인도 이제는 그렇게 더러운 꼴 보고 참고 살지 않아요. 변호사 사서 재산분할을 몇백억원 받아내고 마음에 드는 남자 만나 사업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길을 찾는 거에요. 아저씨가 치킨집을 해서 돈을 얼마나 번다고 두집 살림을 하시겠다는 거예요? 아주머니와는 각방을 쓴다면서요?”
“글쎄, 내가 두집 살림한다는 것도 아니고, 집사람과 각방 쓴지도 오래되었지만, 그것도 내 탓이 아니야. 집사람이 나이 들고 원래 그걸 싫어해서 그렇게 된 거야. 지금 여자 문제도 그런 이유가 아니고, 집사람은 내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그 자체를 싫어하고 참지 못하는 거야.”
두 사람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홍 검사의 머릿속만 복잡해졌다. 홍 검사는 그래도 두 분이 잘 상의해서 가정이 깨지지 않도록 하라고 부탁을 하면서 헤어졌다. 홍 검사는 공국을 만나서 서로 나눈 이야기를 맹순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다.
“아저씨는 이혼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 여자와 두집 살림 한다는 것도 아니래요. 단지 그 여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어쩌지 못한다고 해요. 아주머니 생활비도 잘 줄 거라고 하고요. 그러니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중에 이혼을 하든 어떻게 하든 결정을 보류하는 게 어떨까요?”
맹순은 갑자기 울음을 떠뜨렸다.
“아니, 내가 그 인간이 그럴 줄 알았어. 내가 만나서 박살낼 거야.”
며칠 후 맹순은 인경(45세, 가명)을 만났다. 인경은 백화점에서 산 것처럼 보이는 명품 옷을 입고 나왔다. 맹순은 그것도 공국이 사준 것으로 확신했다. 핸드백도 명품이었다. 맹순의 속은 뒤집어졌다.
“인경 씨. 이제는 헤어져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두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왜 유부남과 붙어서 그래요? 혼자 사는 싱글이 천지에 널려있는데.”
“맹순 씨. 왜 나한테 그래요. 모든 건 공국 씨가 결정할 문제예요. 공국 씨가 가정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돌려보낼 게요. 그런데 공국 씨는 지금 맹순 씨와 더 이상 부부로 살 수 없다고 해요. 그러니까 차라리 공국 씨를 놓아주세요. 그게 인간적이잖아요. 싫다는 사람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나도 이혼했어요. 더러운 인간 아무 미련 없이 깨끗이 포기하고 보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때 더 빨리 이혼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워요.”
맹순은 이 뻔뻔스러운 인경의 말에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옆에 놓아두었던 핸드백을 인경의 얼굴에 던졌다. 인경은 핸드백에 얼굴을 맞았지만 참고 그대로 일어나 가려고 했다. 맹순이 인경에게 달라들어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인경도 가만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 커피숍에 있는 젊은 남자들이 두 사람을 떼어 말렸다. 맹순은 인경의 머리카락을 한 웅쿰 뽑아냈다. 작은 전투에서 얻은 큰 성과였다. 인경의 얼굴에 손톱자국도 내놓았다.
그에 비해 인경은 맹순의 머리채를 잡고 빠져나오려만 했지, 큰 데미지는 가하지 못했다. 인간적인 양심이 있었다. 아무래도 인경은 사랑의 가해자고, 맹순은 사랑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폭행이나 상해와 같은 범죄행위에 있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하게 구별된다. 때린 사람이 가해자고, 맞은 사람이 피해자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어떨까? 사랑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사랑은 공국과 인경 사이에 존재한다. 반면에 공국과 맹순 사이에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랑의 가해와 피해는 그 개념이 애매모해진다.
사랑에 있어서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별 짓는 기준과 지표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맹순을 사랑의 피해자로 보고, 인경과 공국을 사랑의 가해자로 보는 것이 아닐까?
인경은 맹순과 헤어지고 난 다음 집으로 돌아와 한없이 울었다.
“도대체 내 인생이 왜 이럴까? 유부남을 사랑한 것도 잘못이고, 더군다나 그 마누라가 저렇게 독한 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물러섰을 것인데, 왜 공국 씨는 그런 사실을 숨겼을까? 그런데 지금 와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도 들었고, 지금은 공국 씨에 대해 의지하는 마음이 크게 생겨 혼자 사는 것도 힘들다. 그렇다고 이런 더러운 꼴을 계속해서 감수하는 것도 할 일이 아니다.”
인경은 공국의 전화를 차단해 놓고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맹순에게 뜯겨진 머리카락이 푹 빠져있고, 얼굴에도 긁힌 자국이 몇 군데 있어 창피해서 밖에 돌아다닐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맹순은 인경과 싸우고 나서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평소 아는 법무사를 찾아가서 상담을 했다. 법무사는 맹순에게 남편과 바람핀 여자에게 다소 폭행을 했어도 큰 상처만 나지 않았으면 별 문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무사는 여자 둘이 머리채를 잡고 싸웠던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여자 둘이서 술집에서 크게 싸웠다. 같은 술집에서 일을 하는 종업원들인데, 어떤 돈 많은 단골손님을 놓고 사랑싸움을 한 것이다. 한 종업원이 먼저 그 돈 많은 사장과 잠을 자고, 팁을 두둑히 받았다. 몇 번을 그렇게 해서 재미를 보고 있는데, 새로 들어온 더 나이 어린 여자 종업원이 자세한 내막도 모르고, 그 사장 술시중을 들다가 이어서 잠자리시중까지 들었다.
그날 마침 원래 관계를 가지고 있던 종업원이 몸이 아파 며칠 동안 출근을 못할 때였기 때문에 사장은 그런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고, 새로 온 여종업원을 돈으로 매수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술집 주인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워낙 돈 많은 단골손님이 원하는 일이라 반대하기도 곤란했다. 새로 온 여종업원도 미모가 뒷받침되고 있어 놓치기도 곤란해서 돈을 벌게 해주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만일 돈 많은 단골은 강패 기질이 있고, 감방에도 몇 차례 갔다온 건달이어서 술집 사장이 괜히 성질을 건드렸다가는 술집을 완전히 뒤집어놓을 위험도 있었다.
그렇게 재미를 본 단골 사장은 그 후에는 처음 재미를 본 종업원을 멀리 하고, 새로 온 나이 어린 종업원을 끼고 놀았다. 단골 사장은 그전에는 밖에 2차로 데리고 나가면 그에 상응하는 돈만 주었는데, 새로 온 종업원에게는 돈도 더 많이 주고, 가방도 사주고, 신발도 사주는 것이었다. 마침내 두 종업원끼리 싸움이 일어났다. 술집 문을 닫을 시간에 두 사람만이 남아서 술집을 정리하고 나가려고 하다가 싸움이 시작되었다.
“왜 내 손님을 가로챘느냐?”
“언니 손님인 줄 모르고 있었어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술집에서 무슨 임자가 따로 있어요? 그냥 하루 밤 자는 건데.”
언니 뻘 되는 여자는 술김에 확 돌아서 동생 뻘 되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러자 본능적으로 동생뻘 여자도 언니뻘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주변에 말리는 사람이 없어, 싸움은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언니는 동생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다가 작전을 바꾸어 동생의 얼굴을 긴 손톱으로 모두 파버렸다. 얼굴이 여러 군데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파졌다. 반면에 동생은 순진하게 언니 머리카락만 붙잡고 잡아당기고, 흔들고, 발로 언니의 배나 다리, 무릎만을 차고 있었다.
나중에 병원에 가서 두 사람은 모두 전치 2주의 상해진단서를 끊었다. 하지만 실제 피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두 사람은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각 벌금만 선고받고 말았다. 법은 이렇게 엉터리로 끝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