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열왕기상(1장~4장) 묵상
1. 열왕기상.하는 어떤 책인가?
사무엘상.하가 사울의 다스림과 다
윗 왕가의 출발을 다루는 책이라면
열왕기상.하는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과
그 후의 왕국의 분열 그리고 북 이스라엘의 멸망,
남유다의 바벨론에 의한 멸망과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여기에 그 시대의 두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구약 후반부에 배치된 대.소선지서들의
역사적 맥락이 여기에 닿아 있다.
B.C 722 년에 당시의 강대국 앗시리아에 의해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는 함락당했고
선지자들의 경고대로 그들은 포로가 되어
이방의 땅에 노예로 끌려갔다.
여세를 몰아 앗수르는 남유다까지 삼키려 했지만
이집트의 견제 세력 때문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
요시야 시대에는 이집트의 바로가
갈그미스에서 바벨론과 싸우던 앗수르를 원조하여
연합군을 형성하고 싸웠지만 두 동맹국은 바벨론에 패퇴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애굽을 의지하던 유다를 침공했다.
예루살렘에 대한 3차에 걸친 공격에서 결국 성을 함락하고
성전을 약탈한 후 불태우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고 갔다(B.C 586년)
열왕기상.하의 저자는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도 예레미야 선지자이거나 아니면
포로 시기를 경험한 무명의 유대인이었을 걸로 추측한다.
모세의 입을 통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고 타락하면
이방의 침략을 받고 남의 나라에 노예가 되어
나라 잃고 종살이 할 것을 그토록 여러 번 천명했건만
슬프게도 택한 백성 이스라엘은 불순종하여 심판을 자초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언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며 실현된 하나님의 말씀의 엄위함을
역사를 통해 철저하게 배웠다.
2. 솔로몬의 지혜 – 듣는 마음
솔로몬은 ‘지혜’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열왕기상에는 ‘지혜’라는 단어가 19번 나오는데
놋을 만드는 히람의 지혜(왕상 7:14)에 대해서 한 번,
나머지 18번은 모두 솔로몬에게 적용되고 있다.
솔로몬은 잠언 3000가지를 말하고,
노래 1005편을 짓는 등 문학적 능력도 뛰어났고,
동식물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의 지혜는 당대 다른 나라의 지혜로운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도 뛰어났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지혜를 들으러 열국에서 왔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스바 여왕이었다(왕상 10:1~13)
열왕기상 3장에는
솔로몬이 어떻게 이 지혜를 얻게 되었는지를 들려준다.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리고 난 뒤
여호와께서 꿈에 그에게 나타나셨다
. “내가 네게 무엇을 줄까?”라고 물으시는 하나님께
솔로몬은 이렇게 간구한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이 본문에서 솔로몬이 요청한 것은
정확히 말하면 ‘지혜’(히브리어로 ‘호크마’)가 아니라
‘듣는 마음’(히브리어로 ‘레브 쇼메아’)이었다.
물론 대하1:10에는 `호크마`라고 되어 있지만
열왕기상에서는 다르게 표현되어 있음을 유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말 성경은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마음’으로,
개역 성경은 ‘지혜로운 마음’으로 번역했다.
NIV 영어 성경은 `a discerning heart`라 하여
분별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했다.
솔로몬이 박학다식했기 때문에
우리는 솔로몬이 지혜(똑똑함)를 구했다고 잘못 알고 있으나
그것은 피상적인 파악이다.
솔로몬이 구한 것은 ‘듣는 마음’이었다(성경 왕상 3:9을 다시 읽어 보라).
우리가 지혜라 할 때 많은 정보를 알고
해박한 지식과 논리적 사고 그리고 명쾌하고
스마트하고 I.Q가 높은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듣는 마음’이 지혜의 핵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타인의 마음의 생각을 잘 듣고, 그 마음을 헤아릴 때
선악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솔로몬의 간구를 들은 하나님은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왕상 3:12)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듣는 마음’이 곧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석함, 똑똑함, 총명을 포함하되
그것을 넘어선 ‘듣는 마음’이다.
열왕기상 4:29에서 그 마음은 ‘넓은 마음’으로 나타난다.
왕상 10:24을 소리 내어 함께 읽어 보자.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왕상 10:24)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라고 말한다.
이처럼 솔로몬의 지혜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과 관련하여 나타남을 유념해야 한다.
지혜는 마음에 자리잡아야 한다! 듣는 마음,
넓은 마음이 없는 명석함은 ‘헛똑똑이’를 키울 뿐이다.
주변에 이런 선교사, 이런 목사, 이런 신자들이
허벌나게 많이 널려 있다.
강동 온누리교회 최원준 목사님도
이같은 마음의 지혜를 그의 설교에서 강조한 바 있다.
열왕기상 3장 후반부에 나오는 솔로몬의 그 유명한 재판이야기도
결국 `듣는 마음`을 가진 솔로몬의 지혜를 드러내는 판결이었다.
두 엄마가 서로 자기 아기라고 우길 때
솔로몬은 당장 시퍼런 칼을 가져오라 하여
즉시 아기를 둘로 베어 한 조각씩 나눠주라 명하였다.
이 때 진짜 엄마가 기겁을 하며 말렸다.
내 자식 못 가져도 좋으니 죽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가짜 엄마는 죽여 반으로 나누는데 동의했다.
`듣는 마음`을 가진 솔로몬은 즉각 누가 참 어머니 인가를 분별했다.
논리를 동원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테스트하여 범인을 색출한 것이다.
교회에 분열이 일어날 때나 선교지에서 다툼이 벌어질 때 보면
한 쪽 편은 완전 죽일 놈이다.
아예 사탄 마귀라고 몰아 부친다.
서로 손가락질하며 동일한 저주를 퍼 붓는다.
물러서지 않고 양보 없이 피 터지게 싸운다.
전도를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하면서도
싸움에는 열심이 특심이다.
그러나 누가 진짜 하나님의 편에선 사람들인지는
그들의 마음을 살펴보면 안다.
내가 어려서 중학생이었을 때 교회에서 싸움이 났다.
몇몇 교인들이 목사님 나가라고 데모하고
저녁마다 교회당에 모여 작정기도를 했다.
이름하여 담임목사님 사임을 위한 작정기도였다.
나는 분노가 일어 사택에 찾아가
목사님께 저 반란의 무리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목사님은 나를 가만이 쳐다보시더니 차분하게 타이르셨다.
“록수야. 너는 네 일이나 신경 쓰고 잘해라.
이건 내 일이다.
내 일은 내가 기도하고 알아서 하겠다.
교회에서 서로 싸우지 말고 잠잠하라.”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사택을 나왔다.
다음주 목사님은 설교시간에 눈물을 흘리시더니
조용히 교회의 화목을 위해 물러나겠다고 선포하시고
주중에 보따리 싸시고 대책 없이 아드님 댁으로 떠나셨다.
나는 어렸지만 싸움을 피하시고 교회의 화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는 귀한 믿음의 선배님의 본을 생생하게 보았다.
싸우고 큰 소리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를 죽이고 조용히 희생하는 것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처럼 참 지혜는 말 잘하는데 있지 않다.
머리 잘 돌아가는데 있지 않다.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나아가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 참 지혜임을 잊지 말자.
-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남아공 노록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