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뒤에 쓰는 소설
이동민
갑자기 내가 200년 뒤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오늘의 이야기를 역사 소설로 재미있게 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는 등장하는 인물과, 인물의 성격이 중요한 요소이다. 오늘의 인물들 중에 소설에 등장시키고 싶은 인물들이 생각나서이다.
200년 뒤라면 2220년이다. 그때가 되면 200년 전인 2020년이 어떻게 비춰질까? 지금부터 200년 전이라면 1820년이다. 이때는 순조가 통치했고, 조금 전에 홍경래가 난을 일으켰다. 안동 김씨의 세도가 하늘을 찔렀고, 추사 김정희도 이름을 날리던 시절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멀어 보이지 않는다. 2220년에서 보는 2020년의 인물도 그렇게 낯설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소설의 얼개를 짜 맞추려면 선한 주인공이 있어야 하고, 선한 주인공을 못살게 괴롭히는 악역을 맡는 인물도 있어야 한다. 두 인물이 엎치락 뒤치락 거리며 갈등 구도를 만들면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 간다. 그리고는 선한 주인공이 승리하는 것이 소설의 일반적인 얽어짜기 이다. 두 사람의 다툼을 더 재미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2020년도의 실존 인물들에서 소설에 등장할만한 인물성격을 가진 인간들이 한, 둘 인가. 역사 소설을 쓰기에 딱 좋은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멋진 작품이 만들어질 것 같다.
웬지 악한 역을 맡을 인물을 구하기가 훨신 더 쉽다. 조무법씨다. 권력 놀음에 취해서 법의 가치는 서푼어치도 안 된다고 믿는 자이다. 신나는 나날들을 살고 있는 무법씨에게 작은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방금 검찰총장이 된 윤정의라는 자가 깐죽거린다. 권력으로 따진다면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자인데도 정의를 앞세우고 깐죽대는 품세가 영 기분 나쁘다.
조무법씨는 아내 정위조의 전화를 받았다. 심사가 몹시 불편한지 화난 목소리였다.
“내참,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아. 그 새로 검찰총장으로 온 작자 있잖아. 우리 딸이 대학 들어갈 때 스팩으로 낸 서류가 위조라면서 조사를 한다네요”
“위조도 실력인 줄 모르는가 봐. 생기기는 곰탱이 같이 생겨가지고. 이거 온전히 촌놈이잖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영 깜깜이잖아. ”
“당신이 모시는 지존에게 부탁 좀 해 봐. 까불지 말게 제갈을 물려달라고 해 봐. 사람 스트레스 받게 하네.”
“그렇지 않아도 법무부 장관을 시켜 준다고 귀뜸을 해주더라. 장관이 되면 그 깐 녀석을 깔아 뭉게는 건 식은 죽 먹기야.”
“그래, 자기야, 자기만 믿어”
정위조의 목소리가 한결 맑아지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 후에 지존도 한 말씀을 했다. 윤정의가 뭘 믿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너무 나댄다면서 조무법을 편들었다. 뿐만아니라 조무법을 정말 법무부 장관에 앉혔다. 장관이 된 조무법이 한 짓거리를 보면 윤정의를 까부수라는 암묵적인 지시가 있은 듯 하였다. 유한패는 정위조가 만든 서류가 위조라고 말한 대학총장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왜 내편을 건드리느냐며 협박했다. 총장이 유한패가 전화를 했다고 발표하자 개인방송을 하는 기자로서 취재차 전화했다고 정위조의 한 패거리답게 말도 위조했다.
정의의 사나이 윤정의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쓸려고 하였는데, 어쨌거나 2020년에 살았던 역사적 인물들의 성격 유형을 나타내다보니 악역을 맡은 인물이 너무 강하여, 윤정의는 뒤로 밀려 배경 역할이나 한다. 조무법과 정위조의 행동이 너무 튀는 탓이다. 그들 패거리가 저지르는 행위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소설의 제목은 어떻게 할까? 200여 년 전에 이윤택이라는 연출가가 연산군을 무대에 올리면서 제목을 ‘문제적 인간 연산’이리고 하였다. 그렇다면 제목을 ‘문제적 패거리’라고 할까.
소설 ‘문제적 패거리’가 발표되자 평론가라는 자들도 한 자리 끼어들려고 숟가락을 걸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인물분석을 통해 시대를 진단한다고 야단이다. 그래도 이런 평은 맞는 것 같다.
"산업자본사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모두들 돈맛에 중독되었습니다. 쉽게, 많이 벌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인간들이 양산되었습니다. 조무법과 정위조가 대표적입니다.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고 나니 자신들은 신라 왕실의 진골처럼 용의 종자라는 착각에 빠져서, 자신들의 패거리가 아니면 가재나 미꾸라지처럼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된장과 똥도 구분 못하는 인간들이 득시글거린 200년 전의 그때는 분명히 미성숙 사회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그렇게 살아서는 패가망신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