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이 잘 식별되지 먼발치에서도 가방을 들고 두리번거리는 모습만으로 기다리던 맹난자 선생 일행 인줄 한 눈에 알 수가 있다. 달려가 가방을 받아 들자 작년 세미나에 갈 때도 차로 모셨던 이귀순 선생이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데 김대원 선생이 옆에서 통쾌하게 웃는다. 이영민 선생이 누군가 했는데 이제 보니 잘 아는 사람일세. 하하~ 허순애 선생은 첨 보는데 불쑥 악수를 청한다. 여자의 악수를 거부할 내가 아니지! 키키~
짐을 받아 싣고 시동을 걸자 네비 아가씨가 입을 연다. 안전운전 하라 이거지! 내가 지금 긴장하고 있는 줄 네가 어떻게 알았니? 맹난자 선생님은 문학회 큰 행사 때만 근엄한 표정으로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모습만 우러러 바라보기만 했거든. 암만, 안전운전으로 잘 모셔야지. 아무튼 고마워!
고속도로로 방향을 잡고 큰길로 접어든다. 이런, 차량행렬이 장난이 아니다.
지금이 남쪽의 단풍이 최고 절정이라네요, 그러니 누구라도 집안에 있고 싶겠어요, 차창 앞으로 펼쳐진 답답한 광경과는 달리 선생들이 쏟아내는 말은 유쾌했다. 등달아 차도 느긋하게 움직인다.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려 시외로 빠져 나오자 어느 정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흠, 이제부터 슬슬 베스트 드라이버의 실력을 발휘해 볼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맹난자 선생께서 입을 연다.
“천년약속에서는 어떻게 공부를 해요?”
뭐라고 하긴 했는데 도대체 현문에 우답 같고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그 뒤로 몇 번의 질문이 계속됐지만 나는 계속 버벅거렸다.
선생님 지금 제 입술 바싹 타들어가는 것 안 보이세요? 제가 원래 글만 잘 쓰지!ㅋ~ 말은 잘 못하거든요. 그리고 원로며 대선배작가님들인데 잘 모셔야 한다고 편집장님과 김종길 회장님께서 번갈아 가며 신신당부 할 때 이미 얼반 주눅이 들어버렸거든요.
“ 음악 없어요? 음악이나 들읍시다.”
아무래도 내 속을 꿰뚫어보았음이리라.
“음악..아, 네..... 씨디도 읎고 뭐, 라디오라도....”
나는 재빨리 자동 스캔 단추를 눌렸다. 이런, 이럴 때 되지 않는 소리만 한결같이 씨부렁거리고 있다니.... 라디오 프로들이 죄다 짰단 말인가? 등에서 진땀이 나려고 한다. 1FM, 2FM 샅샅이 몇 바퀴나 돌았을까. 순간 많이 듣던 팝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파수를 고정하는 순간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 끝부터 짜릿한 뭔가가 펴져오고 그 달콤한 선율에 눈물마저 찔끔 날 것 같다. what a wonderful world ♬ ♪~~~~
어느 듯 허밍 멜로디가 차안에 울려 퍼지고 있다.
“봐라 창밖, 저 물든 산과 들, 정말 왓 어 원더풀 데이야!”
맹난자 선생은 음악에 취해서인지 차창에 펼쳐진 경치 때문인지 모를 감탄사를 연신 토해낸다. 그러는 사이 휴게소에 도착했다. 볼일을 보고 차로 돌아 온 허순애 선생이 뭔가를 내민다. 보답을 하고 싶어서라며 내 손에다가 꼭 쥐어 준다. 김종길 회장께서 차량제반 경비를 회비적립금에서 실비로 처리를 하라 했다고 이미 말해버렸으므로 돈을 건네기는 틀어져 버린 것을 알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산 선물이었으리라. 두 장짜리 씨디가 든 케이스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대충 제목을 살펴본다. 앗, 가슴이 요동쳤다. 그 속에 왓 어 원더풀 월드라는 제목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출발하기 위해 다시 시동을 걸고 곧 바로 씨디를 넣은 후 몇 트랙 넘겨서 바로 왓 어 원더풀 월드부터 듣는다. <유민 에브리 씽 투 미>를 지나고 <투영> <미스터 론리> <온리 유> <아이 언더 스텐> 등, 수도 없이 들었던 노래를 따라 허밍이 되기도 하고 때로, 따라 부르기도 하는 허순애 선생과 맹난자 선생의 흥얼거림도 웬만큼 듣기 좋은 게 아니다. 핸들을 조작하는 내 손길이 아까와는 달리 훨씬 부드러워진다. 자동차도 유순한 소리를 낸다.
선암사 입구에 들어서자 차창 밖으로 절정의 단풍이 붉고 노란 경치를 그려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듯 했다. 일제히 탄성이 터진다. 약속 장소인 한식당에 도착하자 광주 등지의 지역 작가들이 벌써 상을 벌이고 반긴다. 주고받는 인사만으로도 행복한데 꽉 찬 남도상차림에 눈은 그저 즐겁다. 흡족한 식사에 막걸리도 한잔 했겠다. 그 기분을 계속 이어서 추적거리는 빗속을 뚫고 우리 일행은 절집을 향해 고고~
속속 작가들이 도착을 하자 인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느라 세미나장은 금세 활기가 넘친다. 입구에 책상 하나가 배치되고 그 자리에 앉자마자 류영하 샘은 징수본능에 불타는 눈매로 급변신, 볼펜을 날카로운 칼처럼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무대 한쪽 사회자 마이크는 어느새 편집장께서 떡하니 차지했다. 아니, 저 양반들 이제는 자기들끼리 다 해먹겠다는 것인가?
등단 전부터 행사에 참석 했으니 나도 어느새 삼년차로 신입딱지는 땠다. 그게 아니라고? 여기 명백한 증거가 있다. 가만있어도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작가들이 수두룩하지 않던가. 그건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안 믿긴다고? 그럼 선생에서 영민씨로 변한 호칭은 어떻고 ‘영민성’이라고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를 귀가 없어서 듣지 못했다는 것인가? ㅋㅋㅋ
연간집 출판기념식과 헌정식에 이어서 <조드> 의 작가 김형수 선생의 강의를 끝으로 공식행사가 막을 내렸다. 이어서 문학회 이사회가 열렸고 조광현 현회장을 재추대했다. 지역 부회장과 총무는 거수와 박수로써 선출했다. 그 과정이 일사천리라 수필작가들은 빠르기가 제트기요 화끈하기도 불같더라.
역시 2부가 제일 재미 졌다. 적게 공부하고 많이 노는 것이 세미나라고 누가 말했던가. 권신자 선생 부부께서 준비한 푸짐한 생선회가 잔치 분위기를 고조 시켰고 불참의 미안함을 소주며 맥주 찬조로써 표현한 선생님들 음덕에 흥은 저절로 일었다. 조광현 회장님의 뒤를 이어 장편수필을 연재하기로 결정한 김석권 교수께서 시중 가 수 십 마눤의 와인으로 목과 혀를 크게 놀라게 하자 종팔성께서 질세라 수건을 빠짐없이 나누어 주었다. 잠정작품중단으로 희미해진 자신의 존재를 되새기게 만드는 아이디어라는데 그것 언젠가 나도 써 먹을까 싶다. 커다랗게 내 이름 석 자 새긴, 가벼운 손수건 한 장씩으로다가......ㅋㅋㅋ
이어진 공연, 기타를 이제 배우기 시작해서 형편없고 제발 기대를 거두어 달라는 멘트를 되풀이하여 시작 전부터 가슴 조리게 만들더니 갈수록 화음이 나아지고 연주도 좋아져 그런대로 귀는 즐겁더라. 이어서 가는데 까지 가보자 식 노래 자랑이 시작되고... 지금 생각해도 실실 웃음이 나온다. 노래를 지독하게 못하는 샘들도 어쩜 그렇게 잘 흔드는지 몸짓만큼은 인간문화재급이더라. 특히 사회자 지영성의 지랄 발광춤이 가히 국보급! ㅋㅋ 새 타령에 한 마리 새처럼 즉석 스카프 춤을 살포시 추는데 그 또한 일품이다. 빨간 블라우스 차림에 샐룩 샐룩 엉덩이를 흔들며 댄서의 순정을 부르는데 그 요염함에 모두 자지러졌고 모든 남자들 눈은 순간 게슴츠레했다. 마지막엔 역시 발행인이 <세노야>를 불렀고 어느 사이에 선생의 등 뒤로 작가들이 하나 둘 둘러싸기 시작하자 노래는 끈적끈적한 합창으로 변했다. 그 때 미쳐 무대 쪽으로 못 나간 선생들은 한 쪽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돌고 또 돌았다. 그 모습이 마치 환희에 차서 원만화합을 노래하는 것 같더라. 대경도엔 깊은 밤까지 우리들의 노래 소리만 가득 울려 펴졌다.
다음날 아침 식사는 장어탕, 오동도 관광과 순천만 정원 박람회 관람을 마치고 식당으로 이동하여 점심은 장뚱어탕, 보라! 뭔가 불쑥 뻗칠 것 같은 메뉴가 아닌가? 나도 은근히 기대를 했건만 아직 글쎄다. 아마도 더는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고 창작을 관장하는 머리, 어느 부위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푸흠! 차라리 그게 낫겠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순천만에서 대단한 추억거리를 만들고 돌아가는 길, 아쉬움 때문인지 작별인사는 더디기만 했다.
돌아오는 내 차에 김종길, 안귀순, 이경한 선생을 모셨다. 일시에 몰린 차량들로 고속도로는 이미 기어웨이로 변했고 김종길, 안귀순 두 분의 줄곧 이어진 문학담론이 없었다면 졸음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무려 다섯 시간 반을 넘겨서 부산에 도착 했고 김종길 선생은 차에서 내리며 서울행 버스를 염려했다. 허참! 장시간 운전하느라 애 쓴 나부터 격려할 일이지.ㅋㅋ 이윽고 짐을 다 내리고 혼자 울산으로 향하려는데 안귀순 선생께서 차문을 불쑥 열었다. 조수석 좌석 틈새에 뭔가를 끼워 놓고는 급하게 문을 닫고 물러서서 손을 흔든다.
“작은 돈이요. 가다가 음료라도 사 드세요. 조심운전하고 잘 가요.”
이미 제반경비 실비처리를 선언 하듯 말했으므로 그러고 싶어도 기름 값을 보태겠다고 돈을 건네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담스럽지 않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헤아리자 가슴이 갑자기 훈훈해졌다. 이윽고 차를 몰아 울산으로 향하는데 맹난자 선생의 목소리가 귓가에 계속해서 맴돈다.
왓 어 원더풀 데이!
첫댓글 와! 이젠 후기담당도 부산으로 가네. ㅎㅎㅎ 수고하셨습니다. 사진에 후기에 팔방미인 영민샘~~
사진은 형님 꺼
증말 멋져요.
나는 그저 사람이나 찍을래요. 특히 여자들 사진이나 찍고 싶어요. 난 그게 좋더라고요.
내 손으로 성형과 분칠도 해 드리고. ㅋㅋㅋㅋㅋ
이영민 선생님 수고 많이 하셨어요. 그 중 초고추장 사다주신 것 제일 고마웠어요. 그리고 길고 긴 후기까지 써 주셔서 밤을 잊게 하시다니요. 참참 선생님하고 구원에 대해 얘기하다가 그쳤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헐레벌떡 지하로 뛰어 가서 세븐일레븐 편의점 문을 왈칵 열며 다짜고짜 소리쳤죠.
여기 초장 있어요. 읎으면 큰일 난다고요! 아라바이트생 인 것 같은 아가씨가 가르키는 진열대 앞으로 갔더니 빨갛고 통통한 프라스틱병 세 개가 달랑 놓여 있는데 어찌나 예쁘고 반갑던지요.
계산대 앞에서 그걸 가슴에 싸안고 어루만지고 있으니 아가씨가 피식 웃더라고요. 그래서 그랬죠.
이걸 몬 가져 갔으면 난 아마 난 맞아 죽을지도 몰라!
그리곤 돌아와서 의기양양하게 편집장님에게 외쳤지요. "초장값 칠천원 내 놔요!" 내가 생각해도 대견해서 자랑하고 싶었거든요.
그걸 알아주는 안민희 갑장 알라 뷰~ 앞으로 세븐일레븐만 이용 하셈.
영민이동생 없으면 큰일납니다. 에세이스트의 감초, 보물, 마당쇠,머슴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형, 사실 한 살 차이에 깍듯이 대하니까 서로 좀 불편 했지요.
앞으론 그냥 지영성이라고 불러야 할까봐요.
회는 있는데 초고추장은 안보이고, 과일은 있는데 깎을 칼도 안 보이고.. 이영민 샘, 날렵하게 해결하시는 모습에 감탄했슴다^^ 그리고 또 이렇게 멋진 후기로 읽을거리 푸짐하게 해 주시니 이또한 감탄할 일입니다~~^^
ㅋㅋㅋㅋ 순간 둘러보니 내가 만만하게 심부름 시킬 샘이 안 보여서....급하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왓 어 원더풀 데이!
영민샘!!!
안동 세미나때부터 알아 봤습니다.
마당쇠라 하면 실례이겠고, 저두 팔방미인 영민샘이라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래뵈도 제가 제법 인기가 있습니다.
목표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알아보는 사람이 되는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펄떡이는 활어 같은 생방송이군요. 갑장이 한 분 더 계셔서 반갑습니다.
형 못 본지 오랠세.
객지 생활 그래, 이제 몸에 좀 붙었는가?
벌써 반 년 넘었네. 자네 인기가 좋아 질투나네. 하하.
총무님! 겸손하고 헌신적이며 사진 잘 찍는 분이라 여겼는데 글도 아주 잘 쓰시네요.
에세이스트 보물입니다. 멋집니다. 댕큐!
잘 들어가셨군요. 감사합니다.
이번 여행은 선생님 덕에 어려움 없이 잘 넘긴 듯 합니다.
진찰결과 좋게 나오기를 바랍니다.
난 진즉부터 영민 샘 열혈팬이었어요. 진짜 여자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내가 모델이 되어줄게요. 요샌
뚱뚱한 사람을 그리든지 찍어야 작가로 성공할 수 있어요.
뚱뚱하시지도 않으면서 어찌 모델이 돼 주신다는지 모르겠습니다. 영민님이 좀 여자를 밝히긴 하지요. ㅎ
참 재미지네요!
감사합니다.
웃기게 쓸려고 했는데 ...ㅋ 재미있다 하시니 기분 좋습니다.
@이영민(東蘭) 이번에 조정은 선생님 작품중 신촌걸객에 이어 형이상학적 인간이 곧 나온답니다. 이영민선생님 ! 기대하세요 ㅋㅋㅋ
못 간 사람들 염장지르고 있습니다, 시방. ㅎㅎ 그러니 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위로 말씀 한마디 추가해주세요.
넵 『 위로말씀 』 이제 됐는지요? ㅋㅋㅋ
선생님 안부를 물었더니 "당분간 활동중지" 라고 누군가가 말씀 하시기에 제가 그랬지요.
"혹시 장기출가를 하신 건 아닐테지요?" 아무튼 궁금했는데 이렇게 댓글 단 걸로 봐서 출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휴학 신청을 했습니다. 좀 놀고 싶어서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