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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여행을 떠난 자’와 ‘떠나지 않은 자’, 두 부류의 사람이 있어.” |
First step이라고 적힌 곳에 있는 글이 괜찮아 보여 옮겨본다.
매일 같이 꿈을 꿨던, 생각만 했지 영원히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이날, 마침내 현실이 되고 말았다. 2년 동안 머릿속으로 끝없이 상상만 했던 여행이기에 실제로 떠난다는 것이 전혀 실감 나지 않았다. 여행의 흥분으로 들뜬 승객들 앞에서 비상 시 행동 요령을 시범 보이는 승무원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현실감 없는 이야기였다. |
여행이란 낯선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과정이다. ‘멕시코로 가는 비행기’에서 나눈 글에 공감이 간다.
학교에서 스페인어 계절 수업 한 달을 청강하고, 손바닥 만한 문법책 조금 읽어본 게 전부인 나의 스페인어 실력, 용기를 내여 옆자리에 앉은 멕시코인 아저씨에게 써 보기로 했다. (중략) 서울 내 방에 앉아 테이프를 듣거나 단어만 외웠던 말을 이 멕시코인 아저씨가 정말로 알아들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중략) 스페인어 중에서 가장 간단한 인사말을 준비하면서도 나는 자신이 없었다. 속으로 몇 번이고 연습을 해보고 난 후에야 아저씨에게 말을 건넸다. 너무나도 뜻깊고 역사적인 ‘내 인생에 첫 스페인어’였지만 아저씨는 30년을 같이 살아온 아내에게 얘기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
신기했을 것이다. 처음 통할 때의 그 기분, 그 느낌은 찌릿하다 못해 벅찰 것이다. 책이 실제로 통한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할까, 안 봐도 보인다.
이 책『The way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는 법』은 내용이 알차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에, 사진은 그 나라의 특징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고, 글 또한 감칠맛이 난다. 그러고 보니「정준수」란 저자의 글과 사진에는 매력이 있다. 다른 책은 없나 하고 검색을 해봤다. 딱 한 권이 나와 있다. 『The way² - 기억의 시작』이 바로 이 책이다. 2017년에 출간한 책이 18,000원이다. 새 책을 한권 사서 보고 있는 중이다. 끝. 2020.9.17.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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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옆집에 이사 온 분이 열린 문으로 힐끔 들여다보면서, “이사 갑니까?” 하고 인사를 했다. ‘아니, 이사는 뭔 이사?’ 하면서 둘러보니, 내 눈엔 익숙해서 모르고 지내왔는데, 옆집 사람 눈에는 온통 제 세상 만난 듯이 퍼질러 있는 책들과 박스채로 놓여 있는 책들이 꼭 이사 가는 형국으로 보였지 싶다.
이런 소리를 들어가며 그냥 있어선 안 되겠다 싶었다. 마누라님이 누누이 강조할 땐 귀 막고 살았는데, 옆집 사람이 내 가슴에 소금을 뿌리니 무슨 수라도 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 이참에 정리 좀 하자. 그런 마음이 들면서도, 맨날 마누라님의 눈치를 보면서 사 모았던 책들을 어떻게 정리하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책을 처리한 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저걸 얼마나 애먹고 구한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 땐 손이 떨리는 듯 했다. 하지만 뭐든 때가 있는 법이다.
우선 기준을 세우기로 했다. 그래야 책한테 공정하고 덜 미안하지 싶었다.
첫째, 나와 같이 죽자고 맹세한 책은 살려 둔다.
둘째, 내가 외로울 때 내 마음을 잡아준 책은 버리지 않는다.
셋째, 다 본 책이나 보지 않을 책은 다른 이의 일용할 양식이 되게 한다.
이 정도로 하려하지만, 내 가슴은 쓰리고 아프다.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쌓아 놓았던 책들은 뽀얀 먼지를 덮어쓰고 내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감개가 무량했다. 인내하고 기다려준 책들을 한 권 한 권 닦아가면서, ‘아이고 이쁜 녀석들!’을 연발 했다.
책이라고 하면 질겁을 하며 책보기를 돌같이 하던 마누라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 갖다 버린다니까 야호하면서 만세까지 불렀다. 하기야 방이란 방에 모셔둔 책들이 원망스럽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 몰래 갖다 버린 책만 해도 몇 박스는 될 것 같았다. 찾으면 없고, 없으면 답답하고, 마누라님은 아군이 아니었다.
이 일을 보름 전부터 시작했지만, 아직도 하고 있다. 모두 꺼내놓고 보니 난장판이다. 내가 좋아하는 RAW나 넷 지오 동물이나 총질하는 서부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널브러져 있는 책을 보면서, 이참에 중고 서점 사장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털고 닦고 내용별로 분류하는 작업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시작은 용기 있게 했는데 하면 할수록 일거리가 줄지 않고 진도가 영 나가질 않는다. 새로 산 3개의 작은 책장에 배열 하면서, 책상 가까이에 둘 책들과 좌우 사방에 둘 책들, 새 책장에 꽂아 둘 책들, 읽었거나 읽지 않을 책들을 일일이 확인해가며 박스에 넣은 일도 시간이 꽤 걸렸다.
책들이 보기보다 참 무거웠다. 좁은 방과 거실까지 확장해서 서점을 만들자니 혹시나 박시나 방이 꺼질까봐 걱정이 된다. 며칠을 하다보니까, 새롭게 선별하는 기준이 서기도 했다. 버리기로 한 책부터 골라내었다.
간단했다. 다 본 책이나, 안 볼 책, 이래 보면 잠이 올 책, 무거워서 방이 꺼져 버릴까봐 겁나는 책, 잘못 산 책, 표지만 봐도 머리 아픈 책 등이 그 책들이다. 골라내놓고 보니 몇 박스가 나왔다. 이 책들을 점촌역 대합실 책 서가에 가져다 놓을 작정을 하고 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데는 책밖에 없을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는 중고서점 사장이 되어야 마땅했다. 책을 닦고, 먼지를 털어주고, 풀칠을 하고, 책과 노닐면 즐거운 인생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이란 나를 말없이 아껴주는 친구였고, 길을 열어주는 스승이었고, 힘들고 외로울 때 안아주는 애인 같은 존재였다. 내 마음을 풍요롭게 했던 책을 생각하면 즐겁다. 정리하면서도 이런 생각들이 절로 떠오르곤 했다.
그 동안 나의 싱거운 글을 읽어주신 동기님들이 고맙다. 나의 욕심이 지나쳐 오래 올린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 틈이 나면 상산 카페에 자주 들락거리면서 참여해야 할 것 같다. 끝. 2020.9.17.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