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게에서 단정하게 앉아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던 사내는 오후 6시라는 말을 듣고는 전화를 끊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이다. 동창회가 있다는 전화에 기분이 묘했다. 다들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는 평소보다 일찍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가서 거울을 보며 이 옷, 저 옷을 입어보았다. 그가 고른 것은 검정색 정장이었다. 말쑥한 차림으로 차를 몰고 도착한 곳은 '크림힐트'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었다. 시간은 아직 5시 50분이었지만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그를 알아보고 반겨주었다.
"넌 어쩜 그렇게 고등학교 때랑 똑같냐?"
"칭찬으로 들을게. 나는 다들 너무 변해서 못 알아보겠다."
"결혼은 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지난 추억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던 사내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자신이 얼마 전 겪었던 믿기지 않는 경험에 관해서 입을 열었다.
"야, 헛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너희들 혹시 흡혈귀의 존재를 믿니?"
"야, 너도 그 소리냐? 왜 몇 년 전에 여자만 골라서 죽이는 미친놈 사건 기억나? 그 때도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시체의 목에 이빨 자국이 있었다잖아. 그것 때문에 얼마나 흡혈귀 논란이 일었었는데. 근데 솔직히 요즘 세상에 흡혈귀가 말이 되냐?"
"난 실제로 봤어."
사내의 진지한 말투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장난으로 듣기엔 그의 표정이 너무 심각했던 것이다. 누군가가 '저 자식 원래 뻥카가 심해.'라며 분위기의 반전을 노렸지만 가볍게 씹혔고, 사내는 굳은 표정으로 제차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흡혈귀는 존재해. 그들은 평소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살아가고 있지.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긴 채로 말야. 옛날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요즘 흡혈귀는 햇볕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아. 나는 일주일쯤 전에 흡혈귀를 만났어. 실제로 그와 저녁 식사도 함께 했지..."
본격적으로 썰을 풀려던 사내는 우연히 레스토랑의 여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다 큰 어른이 흡혈귀 이야기를 하는 게 재미있었나 보다. 어쩌면 그녀가 흥미로운 표정이 되어 있을 때 우연히 그와 눈이 마주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여주인을 바라보았다. 매력적인 얼굴에 여전히 호기심을 가득 담은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서있던 아르바이트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시던 물을 앞자리의 친구에게 뿜어냈다.
"저... 저..."
그는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때 아르바이트생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키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리고는 바로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며 싸늘하게 웃어보였다.
"뭔데? 왜 그래 갑자기?"
"아, 아무것도 아냐... 내가 너희들 놀리려고 한 말이니까 신경 쓰지마. 아하하."
"싱거운 놈. 그럴 줄 알았다."
레스토랑 여주인은 현경이었고, 그 옆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은 은강이었다. 그녀는 은강을 한번 쳐다보더니 '어떻게 아는 사이야?'라고 말했다. 은강은 난감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그 남자의 정체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가 사실은 싸이코 살인마이고, 동성애잔데 하마터면 강간당할 뻔 했다고 얘기하자 현경은 깜짝 놀라며 그런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은강을 알아 본 후부터 상당히 겁에 질려있는 남자를 보며 현경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멀쩡하게 생겨서는"
그녀의 말에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된 은강이 은근슬쩍 말했다.
"왜요? 마음에 들어요?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던데."
"됐거든?"
"원하시면 소개시켜 줄게요."
"진짜 맞는다."
현경과 은강이 티격태격 하며 말장난을 하고 있을 때 구석에서 오므라이스를 먹던 남자가 계산대로 걸어왔다.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마냥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그는 돈을 지불하고 바로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 돈을 금고에 넣으려던 은강은 천 원짜리 지폐 사이에 메모지가 끼어 있는 것을 보았다. 뭔가 하며 꺼내 읽던 그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현경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은강은 재빨리 레스토랑을 뛰쳐나갔다.
"모야 쟤?"
생뚱맞은 표정으로 은강의 뒷모습을 보던 현경은 그가 두고 간 메모지를 들고 읽어 내려갔다. 그녀의 표정도 순간 은강의 것과 같아졌다.
첫댓글 오~ 흥미진진.......오호~~~
오 뭐라고 씌여진 걸까요 -_- 궁금;;;
워메 궁금해 죽겄네 ~!~
둘이 그새 친해졌군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