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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종기와 사투를 벌이다』는 한의학자 방성혜 박사의 저서로, 한의학의 역사를 공부하다 조선 사람들의 삶을 뒤흔들었던 ‘종기’의 역사를 살펴본다. 이 책은《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중심으로, 《부방편람(附方便覽)》《의휘(宜彙)》《주촌신방(舟村新方)》 등 민간 의서와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한고관외사(寒皐觀外史)》《호산외사(壺山外史)》 등 조선의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서 찾아낸, 조선 역사의 의학 드라마를 되살려냈다.
저자 : 방성혜
저자 방성혜는 현직 한의사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사람의 몸과 마음의 치유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에 끌려 다시 수능시험을 치렀다. 경희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한의학의 역사를 연구하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의사로서 환자들을 진료하는 한편, 경희대 대학원 의사학교실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한의학(韓醫學)의 역사를 돌이켜볼수록 그 속에 사람의 생로병사가 모두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역사를 다른 사람들과 널리 공유하고 싶어 책을 쓸 마음을 먹었다. 과거 우리 민족을 가장 괴롭혔던 질병인 종기와, 그 종기와 사투를 벌인 사람들을 주제로 인생의 첫 책을 썼다. <한국 한의서에 수록된 피부과 치료법 연구> <외치법의 현대적 응용을 위한 고대 외과서 고찰> <한국 한의학 문헌에 나타난 봉합수술에 관한 소고> <針과 刀를 이용한 수술법에 대한 문헌 조사> <탕화상 의안 연구>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주요 외용제에 대한 고찰> <인현왕후의 발병에서 사망까지 「승정원일기」의 기록 연구> <피부질환에 사용된 발효한약에 관한 문헌고찰> 등 한의학사 연구 논문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시작하는 글
역사의 숨은 폭군, 종기를 만나다
1부 구중궁궐 왕실의 종기 스캔들
종기가 조선의 역사를 바꾸었다
구중궁궐 왕실이라는 곳│종기가 일으킨 정치 스캔들│의학적 사실에 가장 가까운 상상의 나래를 펴다
문종의 종기, 세조의 피바람을 부르다
예견된 불행의 시작│회복 직후의 재발│병에 걸린 몸으로 아버지 세종의 장례를 치르다│빈전에 나가지 마소서│39세 나이에 종기로 훙하다│문종의 죽음이 불러온 세조의 피바람
성종의 배꼽 아래 종기와 대장암
여름부터 시작된 점액 변│그해 겨울, 점점 야위어가다│배꼽 아래 작은 덩어리가 만져지다│종기 전문가를 부르다│손쓸 틈도 없이 승하하다│대장암이 의심된다│성종의 발자취
꽃미남 외모를 망친 연산군의 얼굴 부스럼
호리호리한 체격의 연산군│하얀 얼굴의 귀공자│세자의 얼굴을 뒤덮은 부스럼│중국에서 가져온 신약을 시험해보다│연산군 면창의 정체│평소에도 허약했던 체질
신하들에 눌려 살았던 중종의 연쇄적 종기
얼마나 답답했을까?│여기저기 나는 종기들│분노의 화가 종기를 부르다│국산 신약을 시험해보다│임종까지 함께한 의녀 대장금
광해군의 화병과 얼굴 종기
비운의 왕│화병과 눈병으로 장기간 고통 받다│뺨에 생긴 종기│광해군의 화병은 왜 생겼을까?│쓸쓸하게 여생을 보내다
아들의 병을 걱정하다 자신의 종기를 놓친 효종
아들의 병을 돌보느라 자신의 병 치료를 놓치다│효종에게는 소갈병도 있었다 │왕이 위독하다│병을 알린 지 7일 만에 승하하다│소갈이 오래되면 필히 옹저가 생긴다
병을 달고 살았던 현종
재위 초기부터 앓은 눈병│역시 재위 초기부터 생긴 습창│목 주위에 줄줄이 생긴 멍울│경부 결핵성 림프절염이 강력히 의심된다│사랑하는 딸과 어머니와 이별한 후 곧 사망하다
간이 나빴던 숙종의 하복부 종기
재발하는 격한 통증│간에도 문제가 있었다│숙종의 하복부는 지저분했다│백내장이 생기다│다혈질인 군주│간경화로 사망하다
고통 속에 살다 고통 속에 죽은 인현 왕후
파란만장했던 인생│고관절에서 시작된 통증│경련이 생기다│고관절에 종기가 생기다│가슴이 답답한 것이 제일 괴롭다│빨리 죽는 것이 소원이로다│사인(死因)은 종기의 독이 입심(入心)한 것
마음이 더 병들었던 경종
어머니의 죽음을 직접 목도하다│이상한 병이 생긴 지 오래되었다 │상소를 듣고 심기가 폭발하다│종기에는 분노를 경계해야 합니다
조선의 역사를 바꿔버린 정조의 종기
얼굴에 종기가 곧잘 생기다│이번에는 등에 종기가 생기다│종기가 생긴 지 24일 만에 사망하다│갑자기 찾아온 혼수상태│정말 인삼이 정조를 죽였을까?│안타깝고 안타깝고 또 안타깝도다
2부 조선 의학이 종기와 싸워 승리한 순간
종기와 싸워 승리하다
종기 치료의 기승전결│종기 치료는 디톡스 이론과도 통한다│종기 치료는 뛰어난 독주가 합쳐진 오케스트라│종기를 고쳐내다
쓸개가 정조의 수명을 연장해주었다
머리에 난 종기가 얼굴까지 퍼지다│곰의 쓸개로 고약을 만들어 치료하다│순조의 다리에 생긴 종기│개의 쓸개즙으로 약을 만들어 바르다│한의학에서 보는 쓸개의 효능
중종의 피고름을 빨아 먹은 거머리
종기가 난 곳의 살가죽이 딱딱하다│거머리로 하여금 종기 부위를 빨게 하다│문종의 허리 아래 종기에 거머리를 붙이다│한의학에서 보는 거머리의 효능
효종의 손바닥 종기를 고친 두꺼비
손바닥에 종기가 나다│구워 말린 두꺼비 가루를 사용하다│두꺼비의 진액은 오직 내의원에만 있는 것│한의학에서 보는 두꺼비의 효능
혜경궁 홍씨의 종기를 치료한 검은 소의 분변
혜경궁 홍씨의 손등에 종기가 나다│우분고를 발라 치료하다│우분이 무엇이길래?│한의학에서 보는 우분의 효능
현종의 허벅지 종기를 치료한 누룩
현종의 왼쪽 허벅지에 종기가 생기다│촉농고로 치료하다│촉농고의 주재료는 바로 누룩│한의학에서 보는 누룩의 효능
현종의 나력에 추천한 발효 한약
뒷목에 멍울이 생기다│현삼주가 자못 효과가 있다│항아리에 넣고 익히는 한약│한의학에서 보는 발효 한약의 효능
현종의 서혜부 종기를 치료한 대황과 용담초
서혜부에 종기가 나다│간경의 습열 때문이니 용담사간탕을 써야 한다│아들인 숙종도 같은 부위에 종기가 났다│한의학에서 보는 대황과 용담초의 효능
왕실의 공인 소염제였던 인동차와 우황
왕세자의 뺨에 종기가 나다│인동차와 우황을 올리다│경종의 팔뚝에 종기가 나다│한의학에서 보는 우황의 효능
민간의 종기 치료
침으로 치료하다│뜸으로 치료하다│외치법으로 치료하다│하법(下法)으로 치료하다│동물성 약으로 치료하다│광물성 약으로 치료하다│이름 있는 약으로 치료하다
3부 치열하게 살다 간 이 땅의 종기 전문의
시대가 종기 전문의를 필요로 하다
의사의 종류│실력 있는 의사에게 궁궐은 열린 공간이었다│치종의는 지금의 외과의사와 같다
김순몽, 천민에서 실력파 의료인의 전형이 되다
노비 출신이 당대 최고 유의의 눈에 띄다│오를 수 없는 계단에 오르다│끊임없는 양반들의 질시│병에 걸리면 너도나도 김순몽을 찾다
임언국, 한국의 편작 한국의 파레
어머니의 종기가 그를 의사의 길로 인도하다│서울로 진출했지만│국립종기전문치료센터를 세우게 하다│동시대 동아시아에 없던 독창적 침법│의료인 한 사람의 천문학적인 가치│후대까지 드리워진 그의 영향
윤후익, 신하들의 질시와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다
인조 때 등용되다│임금의 종기와 습창을 치료하여 당상관에 오르다│신하들의 끊임없는 탄핵│임금의 끊이지 않는 총애│임금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상
백광현, 마의에서 신의로
그는 시장 통의 비렁뱅이 소년이었다│마의(馬醫)가 인의(人醫)가 되다│인의(人醫)가 신의(神醫)가 되다│삶과 죽음을 정확히 예언하다│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왕대비의 뒷목을 과감히 절개하다│환자의 귀천보다 병의 경중을 먼저 따지다│왕도 울고 백성도 울다
문맹자 피재길, 최고의 고약을 만들다
아버지의 유산│정조 임금을 만나다│내의가 고치지 못한 병을 고치다│정조 임금과의 이별│고대의 현자가 환생하여 비밀리에 전한 신비로운 처방
이동,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것을 약재로 이용하다
마부의 의술이 집주인의 의술보다 더 뛰어나다│그만의 독특한 약재 철학│기침 소리만으로 폐농양을 진단해내다│정조 임금의 치질을 치료하다│의사는 뜻을 얻어야 한다
조광일, 오직 가난한 자들만 치료하다
태안에 은둔한 침의 달인│주머니 속의 침으로 사람을 살리다│가난한 자, 힘없는 자들의 편에 서다│나만은 고관 현작들의 병을 치료하지 않으리라│이승에서 환자 만 명을 고치리라
4부 조선의학이 종기와 싸운 방법
종기 치료에 꼭 필요한 무기
종기의 일생│항생제가 필요할 텐데?│소염제도 필요할 텐데?│조선시대 항생법과 소염법
각종 약물을 이용한 뜸 소염법
700℃의 마법│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얼음을 데워서 녹이듯이│최단 시간에 최소량을 써서 최장 깊이로 약재 성분을 투입하라
가장 가까운 출구로 내보내는 배설 소염법
염증에는 반드시 찌꺼기가 생긴다│찌꺼기가 다 나가야 소염이 된다│윗몸의 병은 토법으로 배출해야│아랫몸의 병은 하법으로 배출해야│피부의 병은 피부로 배출해야
부항으로 뽑아내는 소염법
염증의 찌꺼기를 뽑아내라│균의 서식처를 없애면 균이 살지 못한다│대나무 부항법│단지 부항법│거머리 석션법
찜질로 하는 온열 소염법
염증에는 온열 찜질인가, 한랭 찜질인가?│성종 임금에게 추천한 뜨거운 기와 찜질법│치루에는 뜨거운 벽돌 찜질법│아물지 않는 환부에는 뜨거운 콜라겐 찜질법
쓸개를 이용한 분해 소염법
쓸개를 둘러싼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쓸개가 창질에 좋다│쓸개의 성분이 무엇이길래?│약용했던 동물의 쓸개
금색과 은색이 함께 어우러진 꽃이 약이다
금은화에 얽힌 전설│전설이 말해주는 효능│금은화술을 마시면 종기가 낫는다│금은화가 주인공이다│신종플루와 금은화
조선시대 프로바이오틱스
21세기 새로운 약의 형태│한약에 미생물을 입히다│한약에 세월을 입히다│감염 질환에 쓰이다
가장 더러운 것이 가장 더러운 것을 치료한다
프로바이오틱스의 원료│또 한 가지 조선시대 프로바이오틱스│가장 더럽고 원시적으로 보이지만│분변 여과액의 용도
조선시대 프로폴리스
천연 항생제인 프로폴리스의 유행│벌집에서 채취하는 황랍│벌집이 만들어주는 천연 항생제│말벌의 집 노봉방│돼지머리로 감사 표시를 하다│노봉방의 여러 용도│벌이 집을 지키듯 인간을 각종 감염에서 지키다
생물의 독을 항생제로 이용하다
독으로 살균한다│두꺼비의 분비샘에는 독이 있다│두꺼비를 기와에 담아 불에 구워라│살에 닿으면 물집이 생기는 곤충
썩어가는 종기, 얼어버린 종기 소염법
따뜻한 피가 가지 못하면 검게 썩는다│충수에 생긴 종기가 검게 썩어가다│뼈에 생긴 종기가 검게 썩어가다│종기가 얼어버려 염증이 그치질 않는다│동상으로 살이 얼어버렸다
만성 종기, 허약자의 종기 소염법
질질 끄는 종기, 극도 허약자의 종기│황기에 얽힌 일화│환부가 아물지를 않는다│탁리(托裏)가 무엇이길래
마치는 글
병이란 무엇인가?│왕들의 종기는 왜 이리도 안 나았나?│21세기에는 왜 종기가 잘 안 생기나?
참고 자료
《실록》과 《승정원일기》에서 찾아낸 조선 의학 드라마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의 역대 군왕 27명 중에서 12명이 종기를 앓았다. 문종과 성종, 정조는 종기 때문에 갑작스레 죽음을 맞았고, 이로 인해 역사의 물길이 크게 요동치며 굽이돌았다.
우리가 아는 종기는 고약을 붙이면 쉽게 낫는 피부병인데, 그나마 요즘에는 잘 걸리지도 않는 병인데, 과거의 종기는 죽음을 부를 수도 있는 무서운 병이었다니, 이것은 과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종기와 같은 병인가?
종기(腫氣)란 어딘가 ‘부어 있는 기’가 보인다는 것이다. 요새 병원에서 쓰는 말로 하면 염증이 생겼다는 것이다. 붓고 열나고 아프고 붉어지는 염증이 생겼다가 곪을 때 이를 종기라고 한다. 종기는 피부에도, 근육과 혈관에도, 뼈와 오장육부에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종기란 요즘 말로 하면 관절에 고름이 가득 차는 관절염도 되고, 뼈가 썩는 골수염도 되고, 또 때로는 오장육부가 썩는 암도 된다.
종기를 치료하려면 때로는 살갗을 가르고 때로는 뼈를 깎아내면서 환부 깊숙이 차 있는 고름을 빼내야 했다. 그래서 종기 치료는 절대 쉽지 않았고 때로는 죽을 수도 있었기에, 선조들은 종기가 생기면 명산대천에 가서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과거에 ‘종기에 걸렸다’는 것은 마치 현대에 ‘암(癌)에 걸렸다’는 것과 같은 정도로 인식되었다.
조선의 의료 역사는 종기와 맞선 처절한 싸움이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종기 때문에 임금도 고생하고, 왕비도 고생하고, 신하들도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흔하게 등장한다. 조선시대의 외과의라 할 수 있는 치종의(治腫醫│종기를 다스리는 의사)들은 피침(메스처럼 생긴 넓적한 침), 뜸, 갖가지 약을 무기로 치열하게 싸웠다. 조선 의학은 때로는 승리했고, 때로는 패배했다.
한의학자 방성혜 박사는 한의학의 역사를 공부하다 조선 사람들의 삶을 뒤흔들었던 ‘종기’라는 존재를 만났고, 종기와 사투를 벌였던 조선 사람들의 땀내 나는 역사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중심으로, 《부방편람(附方便覽)》《의휘(宜彙)》《주촌신방(舟村新方)》 등 민간 의서와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한고관외사(寒皐觀外史)》《호산외사(壺山外史)》 등 조선의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서 찾아낸, 조선 역사의 의학 드라마를 되살려냈다.
한의학자의 역사 읽기─조선의 임금들은 아팠고, 조선 의학은 치열했다
문종은 병약하지 않았다
조선의 5대 임금 문종은 본래 병약했다는 통념과 달리, 그의 나이 서른여섯 살 때(세종 31년) 등에 큰 종기가 나기 전에는 별다른 병을 앓았다는 기록이 없다. 문종은 세자 시절인 스물아홉 살 때부터, 병이 많았던 아버지 세종 임금을 도와 나라 안팎의 일을 직접 처리했고,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사냥 행사를 이끌기도 했다. 그는 8년 동안 실질적으로 나라를 이끌어왔으나, 다만 세종이 사망하기 넉 달쯤 전 지독한 등창(등에 난 종기)에 걸리고 말았고, 결국 완치하지 못하고는 즉위 2년여 만에 죽음에 이르렀다. (1부 27쪽)
광해군은 재위 기간 내내 병고에 시달렸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의 고통을 직접 체험한 끝에 어렵게 왕위에 올랐고, 친형인 임해군과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의 죽음을 지켜보았으며, 계모인 인목대비를 친히 폐서인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 때문인지 광해군은 즉위 초부터 화병을 앓았고, 화병은 끈질긴 눈병, 치통, 두통으로 나타났다. 재위 6년, 뺨에 종기가 생긴 뒤로는 임금이 병의 고통을 호소하며 긴급한 정사 외에는 재결을 미루거나, 아예 결재를 올리지 말도록 지시한 기록이 실록 여기저기 보인다. 만약 광해군이 병으로 정사를 놓지 않았다면, 그토록 무력하게 반정을 당했을까? (1부 69쪽)
정조는 종기 때문에 죽었다
정조는 즉위 초부터 크고 작은 종기를 자주 앓았는데, 특히 여름에 발열, 오한, 통증 등 그 증상이 심했다. 정조 24년 음력 6월, 푹푹 찌는 무더운 날씨에 정조는 등의 종기에서 피고름을 쏟아내고 있었다. 며칠 동안 대량으로 고름이 쏟아지자, 의관들은 반드시 인삼이 들어간 보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정조는 자신이 인삼을 먹으면 안 되는 체질이라고 반대했지만 결국 사흘에 걸쳐 인삼을 다량 섭취했고, 끝내 혼수상태에 빠져 사망하고 만다. 정조를 죽인 것은 종기일까? 인삼일까?
(1부 134쪽)
조선시대 뛰어난 여의사는 대장금 한 사람뿐이 아니었다
성종 25년 12월 24일, 임금은 이미 늙어 은퇴한 여의를 찾는다. 사망 직전의 위독한 순간이었다. 그녀의 의술이 얼마나 뛰어났기에, 이미 은퇴했는데도 다시 불러올릴 생각을 했을까? 성종 23년에는 치통과 종기를 잘 고쳤던 제주 출신 의녀 장덕이 죽은 뒤, 그녀의 제자이자 노비인 귀금을 면천해주고, 의녀 두 명으로 하여금 귀금에게 의술을 배우게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실력 있는 의사에게 궁궐은 문을 열었다, 여의사에게도. (3부 218쪽)
한국 외과학의 걸출한 선조 임언국
명종 때(1545~1567) 활동한 의사 임언국(任彦國)은 본래 어머니의 종기 때문에 의술에 입문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종기를 앓자 온갖 약을 다 써보았으나 모두 효과가 없었는데, 정읍 내장산 영은사에 머물던 한 노승에게서 전수받은 침법을 시술했더니 어머니의 종기가 나았다. 임언국은 이 침법을 더욱 연마하여 많은 이들을 고쳤다. 하루는 이웃집에 초상이 난 것을 보고 들어가서, 숨을 거두었다는 환자를 자세히 살펴보다 조심스럽게 침을 놓았는데, 죽은 줄 알았던 환자가 다시 깨어났다. 이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한양의 조정까지 알려졌고, 조정에서는 역마를 보내 임언국을 불러올렸다. 임언국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처음에는 특별한 관직도 없이 얼마 안 되는 급료와 겨울옷을 받았을 뿐이다. 나중에 혜민서의 작은 벼슬을 맡아, 여러 환자를 고쳐 의술을 검증받는다. 임언국이 백성들뿐 아니라 사대부와 부인들의 여러 난치병을 치료해내자, 조정에서는 국립 종기 전문 치료센터라 할 수 있는 ‘치종청(治腫廳)’을 설립해 임언국을 치종청의 의학교수로 임명했다.
임언국은 동시대 중국에서도 시행된 적이 없었던 독창적인 침법을 구사했다. 피침으로 환부를 가로 세로 길게, 종기의 뿌리까지 깊숙이 째서 썩은 피를 뽑아내는 십(十) 자형 절개법이었다. 그에 대해 동시대 사람 안위(安瑋, 1491~1563, 조선 전기의 문신)는 ‘조선의 편작(扁鵲│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명의)’이라 할 만하다고 칭송했고, 일본의 의학사가인 미키 사카에(三木榮, 1903~1992)는 서양의 파레(Ambroise Pare)와 견줄 만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파레는 16세기 프랑스의 의사로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3부 231쪽)
이 책은 크게 4부로 이루어진다.
1부 ‘구중궁궐 왕실의 종기 스캔들’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담긴 조선 왕실의 종기 투병기다. 누가 왜 어떻게 종기를 앓았는지, 그 역사적 파장은 어떠했는지 풀어놓았다. 그리고 기록된 증상과 병의 진행 과정을 바탕으로,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병명과 병의 원인을 추론해보았다.
예를 들어 숙종은 장 희빈에게 사약을 내리고 인현 왕후와 사별하기(숙종 27년) 전후인 재위 26~32년에, 때때로 갑작스레 명치를 엄습하는 통증에 시달렸다. 실록에 기록된 ‘숨이 막힐 듯한 통증’ ‘가슴과 배 사이를 끌어당기는 듯한 아픈 증세’는 담석(쓸갯돌)이 담도(쓸갯길)를 막아서 생기는 담도산통의 특징이다. 그런데 숙종은 간에도 문제가 있었다. 숙종은 재위 35년부터 38년까지 집중적으로 식욕 부진 증세를 보인다.
“종기 자리가 곪아 터지므로 달포나 지나도록 수라를 들기 싫던 끝에…….”(숙종 35년 12월 10일)
“수라를 들지 못하는 임금의 환후가 오히려 나아짐이 없고 오한, 신열의 증세가 때로 다시 일어나는데…….”(숙종 36년 1월 15일)
“수라를 싫어하고 꺼림이 올여름과 같은 적이 없었으며, 어제와 오늘은 겸하여 메스꺼움과 설사의 증후가 있어 침수도 편안하지 못하다.”(숙종 37년 6월 5일)
“어제저녁부터 기운이 몹시 평온치 못하여 처음에는 추웠다 더웠다 하는 학질 기운 같았는데, 입맛이 없어 수라를 들기 싫어하고, 현기증이 어제에 비해 더했다.”(숙종 37년 12월 3일)
“임금께서 입맛이 떨어져 수라를 들기 싫어하는 증세가 있으므로…….”(숙종 38년 10월 24일)
실록에 기록된 식욕 부진, 오한, 발열, 메슥거림, 설사, 뱃속이 편치 않은 증상을 미루어 보았을 때 숙종은 간농양(세균이나 기생충이 간에서 증식해 고름이 고인 병)을 앓았을 가능성이 있다. 담석으로 담관이 막히면 담즙(쓸개즙)이 흐르지 못하고 여기서 세균이 증식해 곪으면 간농양으로 이어진다. 간농양을 한의학에서는 간옹(肝癰)이라 한다. 곧 간에 생긴 화농성 종기라는 뜻이다.
숙종은 엉덩이, 항문 주위, 서혜부에도 종기를 앓았는데, 이것도 숙종의 간에 쌓인 문제가 대장의 끝인 항문에서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간이 병들면 대장을 치료하여 잘 통하게 하고 대장이 병들었을 때에는 간을 치료하여 고르게 하라”고 했다. 간의 경락은 발가락에서 시작하여 다리 안쪽을 타고 흐르다 생식기와 서혜부를 거쳐 복부로 올라가 간까지 연결된다. 곧 간과 생식기와 서혜부는 경락으로 이어져 있다.
2부 ‘조선 의학이 종기와 싸워 승리한 순간’은 종기 치료 성공담이다. 실제로 왕실의 인물들이 종기를 앓았을 때 누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치료했는지, 그리고 치료 도구로 쓰인 약들에 어떤 효과가 있었는가 하는 이야기다. 일부 의서에 기록되어 전해지는 민간의 치료 사례도 알아보았다.
3부 ‘치열하게 살다 간 이 땅의 종기 전문의’는 살이 썩고 뼈가 썩으며 오장육부가 썩는 종기를 치료하고자 치열하게 살다 간 이 땅의 의사들 이야기다. 어떤 이는 궁궐 안에서, 또 어떤 이는 궁궐 밖의 백성들 사이에서 종기와 싸움을 벌였다. 그들의 치열했던 삶이 더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4부 ‘조선 의학이 종기와 싸운 방법’에서는 조선의 치종의들이 어떤 원리에 따라,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써서 종기를 치료할 수 있었는지 짚어보았다. 종기와 싸우려면 약도 필요하고 침도 필요하다. 뜸도 필요하고 적절한 타이밍도 필요하다. 한의학 전공자가 아닌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전통 의학에 관한 기본 지식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첫댓글 방성혜 지음 / 출판사 시대의창 | 2012.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