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368장 (구 486장) / 창세기 40 : 9 - 23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368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창세기 40장 9절 – 23절 말씀입니다.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18.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19.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20.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아멘!
오늘 본문에서 보면, 요셉이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두 관원장은 꿈을 꾸고 그 내용은 선명히 알았지만, 그 뜻을 알 수가 없어서 불안해했습니다. 당시 애굽에는 신적인 계시나 꿈 해석 등을 전문으로 하는 박사와 술객 등이 있었으나, 두 관원장은 지금 옥에 갇힌 몸이라 그들에게 물을 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꿈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이 재현되는 꿈도 있구요, 간절한 소원이 표현되는 꿈, 스트레스 받은 것이 꿈으로 나타나는 경우, 그리고 사탄이 주는 꿈 , 단순한 개꿈 등이 있습니다. 요셉은 꿈을 꾸고 안절부절 하는 두 관원장의 말을 듣고 "이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으니, 내게 고하소서." 하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나온 꿈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라는 확신이 요셉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꿈을 해석할 때 하나님의 계시인지 아닌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꿈에 대한 계시의 방법이, 신구약이 다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꿈이나 음성, 환상 같은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뒤에는 이 신구약 성경 66권 보다 더 확실한 다른 하나님의 계시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우리의 묶인 문제, 얽히고 설킨 우리 문제를 푸시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꿈의 해석은 하나님에게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꿈의 해석도, 성경의 해석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믿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꿈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해석도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지난 밤에 꾼 꿈으로 인해 근심하는 두 관원장에게 요셉은 문제의 해결책이 바로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모르는 일들, 얼굴을 근심으로 뒤덮게 만드는 일들이 항상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요셉처럼 하나님께는 항상 대답이 있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문제의 열쇠는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부모에게도, 남편에게도, 아내나 친구에게도 문제를 푸는 대답은 전혀 없습니다. 오직 내 인생의 모든 해답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신앙이었고,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모본입니다. 언제나 요셉의 자신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자신감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확신에서 오는 자신감이었습니다. 비록 옥살이 하고 있어도 이 하나님께 대한 자신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이런 자신감이 있습니까?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데서 나오는 당당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힘들 때에도 하나님이 나에게 해결책을 보여 주실 것이라는 이 당당함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오늘 본문 9절부터 11절까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듣고 나서 요셉이 어떻게 합니까? 즉시 해석이 나옵니다. 어떻게 머뭇거림도 없이 즉시 해몽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도 내 생각대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성령님께서 성경의 저자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의 인도대로 해석을 해야 하는 겁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좋은 해석을 듣자, 옆에 있던 떡 굽는 관원장도 나도 해석해 달라고 합니다. 그 꿈 얘기를 듣고 요셉이 해석을 해줍니다. 별로 좋은 해석이 아니었습니다만, 요셉은 솔직하고 단호하게 말해줍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람의 방법입니다. 그 꿈이 하나님의 계시였기에 요셉은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 뜻을 있는 그대로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라 하시면 축복하고, 저주하라 하시면 저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요셉이 그들의 꿈을 해석해 준대로, 바로의 생일날에 술 맡은 관원장은 특별사면을 받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3절에서 다소 의외의 말씀을 보게 됩니다. 요셉이 꿈을 해석해 준대로 복직이 된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이 그토록 부탁을 했는데도 전혀 기억하지 않고 잊었더라고 했습니다. 꿈이 길조로 풀이되었을 때, 술 관원장은 기쁜 마음으로 요셉의 부탁을 반드시 들어주겠노라고 거듭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편이 좋아지자 요셉의 부탁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요셉은 이 사건 이후, 만 2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 동안 요셉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이제 모든 희망은 다 사라져 버리고, 자신은 이 감옥에서 영영히 벗어날 길이 없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사람의 기억 속에선 사라졌을지라도 하나님의 기억 속에는 뚜렷이 남아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버리셨기 때문에 그렇게 감옥에 방치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가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이때 사면 출옥시켜 주었으면 요셉은 즉시 아버지 야곱의 집으로 갔을 거예요. 당시의 교통이나 지리적 조건으로 보아서 바로는 다시 요셉을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요셉은 결코 애굽의 총리가 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감옥에서 내보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정확한 때를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때 요셉을 감옥에서 풀려나게 하시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 때문에 석방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일 술 맡은 관원장이 풀려나자마자 요셉을 기억하고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로 요셉이 풀려났다면, 요셉은 자기가 풀려나게 된 것이 하나님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이제 요셉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만 달려 있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데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는 나이를 채우기 위해 2년이란 세월을 더 기다리게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41장 46절 말씀에 보면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30세라." 고 했습니다. 30세란 것은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공적연령입니다. 민수기 4장 3절 말씀에 보면 "곧 30세에서 50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구약시대에 성전에서 봉사하려는 자도 30세부터 가능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무엘하 5장 4절 말씀에서도 보면, 다윗도 왕위에 나아갈 때에 그 나이 30세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공생애에 들어가신 것도 30세입니다. 그래서 목사 안수 받는 연령도 30세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총리가 되려면 최소한 30세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때까지 요셉을 2년간이나 더 감옥에 머물러두게 하기 위해서 관원장이 그를 잊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기묘합니까? 비록 그 동기가 선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가 될 때까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꿈도, 우리의 모든 문제도 풀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문제를 내맡길 때 풀으시는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당한 경주를 인내로 이겨나가고, 때가 이르면 모든 문제를 가장 잘 되도록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바라보면서, 오직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