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강둑을 걸어
올해 장마에는 예전과 다른 수식어가 붙는 모양이다. 전에는 장맛비가 국지성을 띠고 여기저기 옮겨 집중 호우를 뿌리면 게릴라장마라 했다. 이번에는 기상 전문 기자도 일기도에서 강수대를 형성하는 비구름을 추적하기 힘들 정도 들쭉날쭉해 ‘도깨비’나 ‘홍길동’ 장마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거기에다 일부 지역 재난 문자에는 ‘극한호우’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한단다.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장마가 한창인 칠월 중순 수요일이다. 장마가 지속되다 보니 야외 활동에 제약이 따라 시간과 공간 활용을 적절하게 배분하려니 쉽지 않다. 차라리 비가 밤에만 내려준다면 낮에는 산행이나 산책을 다녀오겠으나 그럴 여건이 아니다. 어제는 강수대 시간을 종잡을 수가 없어 하루를 도서관에서 보냈더니 오전은 잠잠하다가 오후에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더랬다.
칠월 둘째 수요일은 새벽까지 내리던 빗줄기는 날이 밝아오면서 점차 잦아들었다. 낮에는 강수 현상이 어떻게 돌변할까 예측이 어려워 산행을 나서기는 머뭇거려졌다. 그렇다고 이틀 연달아 도서관으로 나가 책을 펼침은 대자연을 누벼야 하는 내 성미와도 맞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책이야 새벽에도 펼쳐 보았다. 아침을 든 식후 빗방울이 잦아들기 기다려 현관을 나섰다.
이웃 동 아파트단지 뜰로 가니 꽃대감은 우산을 받쳐 쓴 채 꽃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는 지형적으로는 아주 열악한 여건임에도 아파트단지에 화단을 조성해 꽃을 잘 가꾸었다. 토질이 척박함은 물론이고 아파트 높은 건물로 가려진 부족한 일조량에도 이를 극복하고 여러 가지 화초를 심어 꽃을 피웠다. 대부분 식물은 장일성이라 햇볕이 드러나는 쪽을 향해 크려는 성향이다.
친구와 환담을 나누다가 나는 나대로 일정 수행을 위해 길을 나섰다. 빗방울은 그쳐 우산은 접어 손에 든 채 아파트단지를 벗어났다. 버스 정류소로 나가 213번 버스를 타고 창원역 앞으로 갔다. 창원역 앞에서는 북면 온천장은 물론 동읍 일대로 가는 몇 개 노선의 마을버스를 탈 수 있다. 대산정수장 근처 강변 신전으로 가는 1번보다 동읍 자여로 가는 7번이 더 잦은 횟수로 다녔다.
나는 낙동강 강가 유등으로 가려고 마음을 정하고 2번 마을버스를 타려니 운행 시간이 맞질 않았다. 그보다 드물게 다니는 36번 마을버스도 노선이 좀 복잡하긴 해도 유등 강가로 가기에 시간을 지켜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버스는 주남저수지를 비켜 산남 일대 들녘 마을을 구석구석 들러 대산면 소재지 가술에서 우암 들판으로 들어서 동부마을을 지날 때 내렸다.
지난해 여름 어느 방송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배경으로 나와 유명해진 팽나무가 선 마을이다. 넓은 들판 비닐하우스에 기른 당근을 수확한 논에는 모를 내어 활착되어 자랐다. 일부 구역은 여름에도 비닐하우스에 철을 늦춰 따낼 오이나 고추의 모종을 심어 가꾸었다. 벼논 가장자리는 달맞이꽃이 피어나고 연근 농사를 짓는 논에는 연잎은 무성해도 꽃은 피질 않았다.
들길을 걸어 유청삼거리로 가니 도로변 한 집에서는 할머니가 김을 메주는 꽃밭에 수국과 개미취가 피어 있었다. 몇 차례 들린 뷔페로 차려내는 삼거리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유등 배수장으로 나가니 낙동강 물길이 드러났는데 불어난 강물이 너울너울 흘렀다. 드넓은 평원과 같은 둔치를 바라보면서 느티나무 가로수가 선 유등 강둑을 따라 걸어 가동을 지나 한림 술뫼를 향해 갔다.
한때 동호인들로 붐볐던 술뫼 파크골프장은 국가하천 시설 인가 여부로 논란이 일어 휴장 상태였고 둑에는 생태교란 식물로 낙인찍힌 가시박이 무성히 자랐다. 둔치 길섶에서 개망초와 기생초가 피운 꽃도 봤다. 술뫼 농막에서 전원생활을 누리는 지인은 부재중이라 들녘을 지름길로 걸어 한림정역으로 갔다. 부전으로 가는 열차가 멈추고 떠난 뒤 창원중앙역으로 가는 열차가 왔다. 23.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