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445장 (구 502장) / 창세기 41 : 1 - 16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445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창세기 41장 1절 – 16절 말씀입니다.
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2.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3.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4.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6.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7.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10.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11.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12.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13.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14.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아멘!
41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옥중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준지도 2년이 지났습니다. 요셉은 그렇게 2년이라는 세월 동안 더 억울한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후에 바로 왕이 꿈을 꿨는데 누구도 해석하질 못했습니다. 이 때 감옥에서 요셉을 만났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이 생각났습니다. 그의 소개로 바로 왕 앞에 선 요셉은 그의 꿈을 알아 맞혔을 뿐 아니라, 해석하고 대응책까지 말합니다. 이 꿈을 해석하고 대응책을 말함으로 바로의 마음에 들었고 기어이 애굽이 총리대신이 됩니다. 요셉은 총리대신이 된 이후 애굽은 물론 이스라엘까지 구원하는 힘을 발휘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요셉이 총리대신이 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말해줍니다. 바로의 꿈과 그 꿈으로 인하여 번민하는 바로 앞에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하는 장면, 이 때에야 비로소 요셉을 기억해내는 술 맡은 관원장, 바로 앞에 불려와 바로의 꿈을 알아맞히고 해석하는 요셉의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오늘 말씀이 주는 교훈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에 섰는데” - 관원장들의 꿈을 해석해 준지도 2년이 지났습니다. 성경은 아주 짧게 말하고 있지만, 요셉에게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요셉을 쓰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 기간이었습니다. “만 이 년 후” 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적절한 때입니다. 요셉에겐 긴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 때를 정하셨습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때” 는 “에트” 라 하는데 ‘하나님이 정한 적절한 때’ 를 말합니다. 사람은 길고 지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적절한 때가 있음을 알고 기다려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13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그의 어머니는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예수님께 알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사역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때에 대하여 잘 알고 준비하는 신앙인이 슬기로운 신앙인입니다.
전도서 3장 2절 - 8절에서 이 때에 대해서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 이처럼 모든 일에 때가 있습니다.
요셉이 만 2년 후, 바로가 꿈을 꿨습니다. 바로의 꿈과 요셉이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인생의 대전환점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지금도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 같은 일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먹이기 위해 어떤 농부가 열심히 땀을 흘립니다. 나를 입히기 위해 어떤 직공이 열심히 실을 빚습니다. 이런 섭리를 안다면 항상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나를 위한 하나님의 준비에는 작은 준비도 있지만, 큰 준비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가 그 때, 하나님께서 정한 그 시간에 살진 암소 일곱과 마른 암소 일곱, 충실한 일곱 이삭과 마른 이삭 일곱의 꿈을 꿉니다. 꿈의 뜻을 모르는 바로는 불안해서 번민합니다. 모르면 불안하고 알면 대비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이미 아는 자들로서 대비하고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가 불안하여 찾은 것이 술객과 박사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없는 자들의 한결같은 생각입니다. 무엇인가 의지합니다. 그런데 계속 마음은 공허합니다.
바로의 꿈을 아무도 알아내지 못할 그 때에, 비로소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의 모습니다. 다른 사람이 네게 베푼 은혜를 잊고 살지나 않았는지 이 새벽에 생각해 보시고,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도 술 맡은 관원장이 이때에야 말하게 된 것도 실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때, 2년 후에 바로는 꿈을 꾸고 술 맡은 관원장은 그제야 요셉을 생각함으로 요셉의 대 사명에 일조를 감당합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사람을 선택하여 자신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요셉이 높임을 받고, 그를 통해 이루시기를 원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바로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여, 요셉을 돕는 자가 되게 합니다. 바로와 요셉이 만날 것 같지 않지만, 하나님은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만나게 합니다. 술 맡은 관원장도 유효적절한 시기에 요셉을 바로에게 소개함으로 요셉의 사명에 일조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누구를 사용하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나를 돕는 자를 달라고 기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가 꾼 꿈은 하나님의 계시를 꿈에 담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의 사람인 바로는 물론 술객이든 박사든 그 누구도 영의 사람이 아니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다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16절 말씀입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요셉은 자신에게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바로에게 분명히 선을 긋습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사는 때가 있습니다. 안 이루어졌다고 실망하지 말고 기다리며 열심히 심으십시오. 말씀으로 심고, 기도로 심고, 물질로 심고 사역으로 열심히 심으십시오. 갈라디아서 6장 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정한 사람들을 동원시켜 저와 여러분들을 도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하나님과 함께 있기만 하면 됩니다. 늘 하나님과 함께 있어 하나님 안에서 늘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