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 세 봉우리의 삼각점 중앙에 자리 잡은 백운산장(白雲山莊).
백운산장은 이해문씨가 1924년에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1호 산장이다.
한국전쟁 때 소실됐지만 1959년 서울산악회 회원들이 나서서 1960년 11월 새로 지었다.
이후 1992년 화재로 내부가 불에 타자 산악인들이 건축자재들을 직접 산으로 실어 날라 지금의 대피소를 만들었다.
또 1983년 경찰산악구조대가 출범하기 전까지 산악사고를 전담 처리하는 역할도 했다.
현재 백운산장은 3대 이영구(84세)·김금자(74세)씨 부부와 4대 아들 이건(51세)씨가 매점과 산악인들의 잠자리를 제공하는 산장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백운암 아래의 작은 오두막에 불과하던 산장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산악인들이 힘을 모아 돌들을 틈틈이 쌓아 올려 1960년 재건축했다.
이후 1992년 불의의 화재로 숙소로 사용되던 공간이 전소되자, 통나무를 이용해 2층을 증축시켜 대피소를 만들고 지붕을 새로 만들어 1997년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백운산장의 현판. 한자로 백운산장이라고 적인 현판 아래에는 익숙한 이름이 적혀있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고도 고개를 들지 못했던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수,
백운산장의 현판은 그가 써넣은 것이다.
백운산장과 인연을 맺은 손기정 선생은 90년대 중반에 직접 현판을 써 제자들에게 전달을 부탁했다
.
일제강점기부터 산장에 등산객들이 몰리기 시작하면 김금자 할머니의 손길이 바빠진다.
아침부터 푹 고아낸 육수에 호박, 당근, 양파를 넣고 삶은 면을 덜어 넣는다.
함께 나오는 김치와 함께 먹으면 금상첨화다.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회사에서 단체로 올라온 이들도, 나 홀로 배낭을 짊고 오른 등산객도 국수 삶는 냄새에 산장 안으로 모여든다.
어떤 이들은 '이 국수를 먹으려고 일부러 북한산을 찾는다'라고 말한다.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단돈 4,000원으로 산중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이만한 진수성찬이 또 어디 있으랴.
산장 내부의 물품은 대부분 산악인들이 기증하거나 그들의 도움을 받은 것들이다.
누구나 앉아서 쉬다가는 나무 테이블은 1992년 화재 이후,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회장(당시 한국대학산악연맹회장)이 설치해준 것이다.
밖에 있던 야외 테이블은 눈과 비를 맞아 썩고 등산객들의 아이젠에 의해 닳게 되자 주말마다 백운산장을 찾았던 홍성국 전 대우증권 사장의 도움으로 약 5년 전에 설치되었다.
이밖에도 산장내부의 그림이나 사진, 가전제품 등 산악인들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백운산장 대피소의 침상. 이곳을 찾는 주손님은 인수봉을 오르려는 어느 등반가들. 침상 바닥을 만져도 반들반들 한 것이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았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한국산악회 안전대책위원회 조난구조대에서 백운산장 출입문 왼편에 설치한 동판.
1976년 4월 18일 한국산악회의 부설기구로 설치된 조난구조대는 김길남 초대 위원장 등 27명의 회원이 활동하며 1980년까지 북한산에서 발생하는 각종 등반사고에 대한 구조활동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동판이 F86 전투기의 동체라는 것인데, 당시 한국산악회 안전대책위원회 회원이었던 신우균씨가 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장 밖에는 ‘백운의 혼’이라 적힌 현충묘가 있다.
이 비는 한국전쟁 때 스스로 자결한 두 국군장병을 기리는 것으로 김금자 할머니는 아직도 그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 자결했던 양반이 이북사람인데 공부하다가 우리나라에서 군인이 됐어. 전쟁 때 이쪽을 지키고 있다가 수도가 포위됐다는 말을 듣고 이북사람들한테 죽으면 자신의 명예가 떨어진다해서 당신 총으로 당신을 쐈지. 그때 아버님과 우리 아저씨가 그 사람 시신을 묻어줬고.'
그러다 1995년, 자결한 군인의 형제 되는 사람이 자기 혈족이 이곳에 묻힌 사실을 알고 찾아와 우이동에 묻힌 묘를 파내어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안치했다. 그 후 ‘백운의 혼’은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일과가 끝난 후, TV로 야구중계를 보며 노고를 푸는 이영구 선생. 3대째 내려오는 백운산장지기인 그는 15살 때인 1946년부터 물건 나르는 일을 시작으로 산장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산장에 전기가 들어온 지는 불과 3년 전, 이전에는 발전기를 돌리고 밤에는 촛불을 켜며 살았다고. 아랫 세상에 비하면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 크지만 노부부에게 산장은 더없이 안락한 공간이다.
돈암동에서부터 걸어 올라와 인수봉 오르려고 하룻밤 자고 가던 사람들이 기억나. 우리 아저씨가 나무로 만든 당카로 부상자를 옮기고 사고를 수습했던 것도. 그 사람들이 나중에 다시 찾아와 ‘그때 실례 많으셨습니다’라고 한마디 해주는 것이 큰 보람이지.'
산장에도 어김없이 밤은 찾아온다. 꽃처럼 푸르던 청춘마저 묻어버린 산속에서의 세월, 이 정도의 고독은 이제 견딜만하다. 그간 백운산장을 찾았던 이들은 얼마나 될까. 이곳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던 얼마만큼의 꿈을, 산장은 간직하고 있을까.
출처 ... 월간 마운틴
조윤식 기자 사진 신희수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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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붙인 글 .....
북한산사무소, 철거계획 아직 모른다…
산악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주장도 나와
북한산 백운산장이 3년 후에 국유 재산으로 귀속될 예정이다.
현재 백운산장 건물은 산장을 운영하는 이영구씨, 땅은 국가 소유로 되어 있다.
북한산사무소 탐방시설과 김준석 팀장은 “오는 2017년 상반기쯤 산장 건물은 환경부에 귀속돼 국유 재산으로 등록된다”면서 “귀속 근거는 이영구 선생이 과거 국고 기부 체납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수용(한국산서회 고문)국유 재산으로 귀속된 이후 백운산장의 활용 방안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김 팀장은 “20년 이상 지난 건물이라 안전진단을 받은 후 개보수를 할 것인지, 기존 범위 안에서 활용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면서 “건물 철거는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백운산장 위치는 하산이 1시간 안팎으로 가능한 지점이라 산장의 기능과 역할이 예전보다 많이 축소되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산장 역사와 인수봉 구조 활동시 거점 역할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산악인들의 우려를 전하자 김 팀장은 “백운산장은 중장기적으로는 대피소 역할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2016년에 일부 시설물을 보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 7월에는 인수야영장을 폐쇄하고 야영객들은 백운산장 2층의 숙박 공간으로 유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덧붙였다.
한편, 산악계 일각에선 백운산장은 산악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산서회 이수용 고문(전 우이령보존회 회장)은 “백운산장은 문화재 가치뿐만 아니라 산악인들의 정신적 고향”이라면서 “우이산장, 인수산장, 보문산장 등 유서 깊은 산장들이 다 철거되고 사라져 안타깝다. 북한산에서 유일하게 남은 백운산장은 산악인과 산악단체들이 나서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4대째 산장지기를 해오고 있는 이영구씨는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아도 될 만한 인물”이라면서 “올해가 백운산장 설립 90주년이 되는 해인데, 여러 문화행사를 하고 싶지만 혼자서 하기엔 벅차다”고 아쉬워했다.
한편 산악인들은 존폐의 갈림길에 놓인 백운산장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한 산악인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환경오염, 안전문제를 명목으로 내세워 기존 산장들을 철거한 후 여론이 잠잠해지면 나중에 자기들이 그 자리에 건물을 크게 지어 장사하는 행태를 보여왔다”면서 “백운산장의 운명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아웃도어 뉴스 박성용 부장 bombom@outdoornews.co.kr
용악회 발췌함..
...
첫댓글 즐독입니다^^
20일 인수봉 구조대길에 다녀오면서 목을 축이고 잠시 추억을 상기보았습니다.
산악인의 땀과 의리가 묻어있는 백운산장의 영원을 기원합니다.
혼자갔냐...?
혼자 간게 아니고 글을 퍼왔습니다 ~^*
@검정고무신 산에 못가니 별짓 다한다...그래도 평가하마...12월 송년산행이나하자...
@케빈/춘비니 네 ~^*
@검정고무신 ㅎㅎㅎㅎ
당장 다음달부터 여러단체에서 행사를 하는걸로 알고있습니다...많은 관심과 호응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잘 읽고 갑니다.^^
ㅎ
나름핵교때6주간그곳에서머물던때가그립네요화장실옆야경이참좋았던기억이~~잘보고갑니다
좋은 정보 잘읽고 갑니다^^ 백운산장.. 인수야영장.. 모두모두 보존 되었으면 하는 바랍입니다^^
마지막 글귀가 그들의 실체를 낮낮이 보여 주는겅 같습니다
지리산 치밭목도 그들의 이익에 만 급급 하다보니 국공으로 귀속 되어서
개인적으로 아쉽네요
국수맛이 일품이었는데 이제 국수맛보는것도 어려워진건가요
이글을 읽으니 보문산장 지기이신
고 배용복 님이 떠오름니다
국공파의보문산장 강제 철거ㅡㅡ
철거당일엔 전경 수십명이동원되엇고
그날 헬기로 배 산장지기님을 강제 하산시킨 국공 임니다ㅡ
그 화병으로 배 산장지기님은 수개월후 운명하셧음니다
거기다 산악인들이 즐겨마시던 보문산장 앞
샘 도 메꿔버린 행패를 생각함 한탄스럽슴니다 ㅡ
무심히 지나치고 아니면 사진한장 찍어보았던 이 산장에 근 백년의 세월이 담겨있음을 이제
알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젠장할,,, 백운산장도 이제 국립공원파괴공단으로 넘어가는군~
젊은 날에는 자주가던 백운산장 당연히 보존되어야한다는생각 공감합니다
설악산 케이블카설치따위 그만두고 이런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것을 보존해야지요 ! .
아....백운산장은 어떠한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합니다..
젠장할 썩을넘의 국공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래 덧붙인 글 말씀하시나요 .
http://m.cafe.daum.net/yongak/QAVD/338?q=%EB%B6%81%ED%95%9C%EC%82%B0+%EB%B0%B1%EC%9A%B4%EC%82%B0%EC%9E%A5%EC%9D%98+%EC%97%AD%EC%82%AC&re=1
국립공원공단이 이제 없어져야할 시점입니다.
정치적으로 생겨났기에 없애버리고 순기능을 할수있는 새로운 국민관리가 생겨나야지요....아휴 생각 같아선 이러고 싶슴다...ㅎㅎ
백운산장.... 님 덕분에 잠시 추억속에 빠졌네여....
이수용님이 제 친 형님인디 ~~^^
~~ 지금은 동강 지킴이 ~~
비선대산장 사라지고 북한산산장 사라지고 이땅의 산악 역사도 사라지고...국공해체 . 이제 산악인이 나서서 서명운동을 시작할때가 아닌가요...
국수먹고샆다 부칭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