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백성 입장에서 8·15 해방은 최고의 불행 北, 말로는 철저한 항일(抗日)이지만 행동은 철저한 親日. 이민복(대북 풍선단장)
이제는 거의 다 돌아가셨지만 일제 때 산 북한 분들은 그때가 더 좋았다고 은근히 말한다. 치안과 위생 방역도 양호했다. 일제 패망 말기를 내놓고는 식량 사정도 좋았다고 한다. 말의 자유, 이주의 자유도 훨씬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만주와 연해주로 대거 이주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철도 시간도 거의 정확했다고 한다. 몇 분 정도가 아니라 하루 단위까지 늦는 북한 철도 시간이다. 해방 후 무질서와 방역 마비로 인하여 치안 불안과 전염병으로 많은 백성이 죽었다고 한다. 해방 만세!만 보이고 이런 뒤편은 애써 안 보고 있다. 해방은 정치가에게나 좋고, 언론가들이 말하기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백성의 행복 지수로서는 제로였다. 해방 후 좀 안정되는가 했는데 민족상잔의 6·25가 터졌다. 대동아 전쟁 때도 이렇게 수백만 죽거나 잿더미 된 적이 없다. 전후에도 그 고생은 쌍으로 몰려왔다. 사상 투쟁의 도가니와 물질 궁핍인 것이다. 일제 때 아무리 그래도 말 한 마디로 죽는 경우는 없었다. 또 온 나라가 거대한 감옥처럼 꼼짝도 못한 적은 없었다. 한편 경제적 궁핍의 심화는 마침내 그 어떤 전쟁의 난에도 없었던 수백만 아사로 나타날 정도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불행이었다. 만약 일제가 이렇게 했다면 아마도 두고두고 욕먹기에 식민지 조선을 이렇게 두진 절대 않았을 것이다. 8·15 해방과 공산 혁명! 모두 잘 살자고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최종 목적으로 볼 때 해방처럼 비극은 없어 보인다. 1987년 대홍단을 가느라 백암에서 빽빽이(협궤열차) 타고 연사군으로 갔다. 연사군에서 백두산 밑 고원인 대홍단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한여름 더위를 피해 신작로 옆의 큰 나무 밑 농민들 옆에서 나도 땀을 드렸다. 새까만 벤츠 승용차 한 대가 로켓처럼 먼지를 날리며 지나간다.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도 모두 일어나 꾸뻑 인사할 정도로 착했다. 승용차 타는 간부는 무조건 큰 간부이기에 인사하는 것이다. 또 내가 과학원 연구원이라니 이 산골에서 과학자를 처음 본다며 이런 말 저런 말 나누기를 좋아했다. 그 중 또렷히 기억나는 것은 전주대(전봇대)를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그게 일제 때 만들어진 것인데 아직도 멀쩡하다고 한다. 바로 옆의 공화국에서 만든 전주대는 썩어져 당장 넘어갈 듯했다. 수년 간 말린 전주 목을 기름 속에 끓여 속까지 배게 한 것과 수분이 있든 말든 슬쩍 기름 속에 담갔다가 꺼낸 전주대의 차이였다. 8·15 해방 전부터 계산해보면 대략 50년 전의 일제 때 전주와 불과 10년 되는 전주의 상태였다. 중학교를 다닐 때인 1970~74년까지도 일제 때의 재봉기, 벽시계를 공화국 것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 우리 집에 공화국 제품의 재봉기를 사는 계기로 잘 느낀 것이다. 30여년 전 일제 때 제품의 질이 더 좋았다. 1979~1981년, 남포농대 연구소에 있을 때이다. 대학 건물이 모자라 4층 건물을 지을 때이다. 기초를 위해 땅을 파니 일제 때의 기초 콘크리트가 나온다. 6·25 전쟁의 폭격에 건물은 날아갔지만 기초는 그대로 있었다. 이 기초를 함마로 쳐보니 탱탱 소리가 날 만큼 탄탄하였다. 이에 비해 구멍이 숭숭 있는 어설픈 기초 콘크리트를 치면서 와! 일본 놈들 참 대단하다! 이는 인테리 대학 교직원들의 일치한 평가였다. 통일 되면 북한 건축물들은 다 철거하고 재건축해야 할 것이다. 1985년 충성하기 위해 자진 김정숙군(신파군)에 파견되었을 때이다. 김일성의 첫째 부인이자 김정일의 엄마 명칭을 딴 곳이기에 읍내 가정마다 당시도 지금도 최고 부의 상징인 TV를 무상 분배하였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처음 있는 대 경사였다. 무상 분배 전 제품 선택을 해야 했다. 소련제 <포톤>과 일제 히다치 <소나무> TV가 있었는데 읍 주민 모두 소련제를 가지겠다고 하여 그렇게 되었다. 그 후 모두 통탄하였다. 차후 일제와 너무나 비교가 되어서이다. 물론 분배 전에 제품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일제는 소련제보다 고장이 안 난다. 하지만 고장 나면 부속이 없지만 소련제는 있다. 북한에서 제품 고장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당연히 고장나기에 고쳐 써야 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었다. 그런데 당연히 고장나는 소련제에 비해 일제는 고장 자체가 거의 없다. 만에 하나 고장나면 고치는 것이 아니라 새 것으로 바꾸어 준다. 세계 최고 과학기술의 나라로 믿는 소련제를 훨씬 능가함은 10년 지내 보고서야 깨달은 것이다. 남한의 반일에 비해 북한은 항일일 만큼 지독하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랬다. 말은 철저한 항일이지만 행동은 철저한 친일이다. 1980년대 주체 조선의 심장 평양시의 차량 80%가 일제였다. 전국 <외화벌이운동>으로 산으로, 바다로, 땅 밑으로 총동원된다. 이는 경제 대국 일본을 위해서였다(수출). 가장 좋은 버섯과 농산물, 가장 좋은 해산물, 가장 비싼 지하 자원은 일본을 위해서 복무하는 눈앞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철저한 친일분자들이라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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