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화가친
본디 등화(燈火)는 ‘등불’, 가친(可親)은 ‘가까이 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들 둘이 하나로 합쳐져 등화가친(燈火可親)이 되면 ‘등불을 가까이 할만하다’는 뜻이 된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을 지나 덥지도 춥지도 않아 서늘한 가을밤엔 독서에 맞춤한 환경임을 빗댄 표현이다. 그러므로 등화가친은 등불을 가까이 하며 책을 읽기에 안성맞춤인 계절인 가을을 일컫는 성어이다.
특히 우리의 가을은 유난히 드높은 에메랄드빛 파란 하늘과 산야를 뒤덮는 만산홍엽의 단풍과 풍성한 결실이 어우러져 빼어난 장관이 펼쳐진다. 이런 계절적인 특징 때문에 예로부터 가을을 노래할 때 천고마비(天高馬肥)*나 정안홍엽(征雁紅葉) 혹은 등화가친을 비롯해서 국오수벽(菊傲水碧) 같은 수식어를 동원하여 찬미했을 게다. 어찌되었던 사계절을 가진 나라에서 가을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고대 중국에서도 등화가친이라 하여 가을엔 책을 읽고 학문에 정진하는데 으뜸의 계절로 꼽았다는 전언이다.
오래전 중국의 문헌에 등화가친에 연관되는 내용들이 많이 눈에 띈다는 학자들의 귀띔이다. 예를 들면 진(晉)나라 역사서인 《진서(晉書)》에 가을이면 날씨가 서늘해져서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기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내용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이를 미루어 생각할 때 그 당시 가을은 책을 읽고 학문에 정진하는데 최적의 계절로 여겼다는 반증이 된다. 또한 송(宋)나라 시절엔 유학(儒學)을 중심으로 학문이 크게 발전하면서 가을철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한편 등화가친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명청(明靑) 시절엔 입신양명을 꾀하는 사대부가 많아 학문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등화가친이 단순한 계절적인 묘사가 아니라 학문을 중요시하는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상과 같이 일찍이 고대 중국에서 등화가친이라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널리 쓰이었다.
그러나 문헌상 제대로 전해지는 고사(故事)는 당(唐)나라 시절 당송8대가(唐宋八大家)*로 알려진 한유(韓愈)가 자기 아들인 창(昶)의 독서를 독려하기 위해 지은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부(符)’는 그의 ‘아들 창의 어린 시절에 부르던 이름’이고, ‘성남(城南)’은 한유가 ‘자식 공부를 위해 성(城)밖의 남쪽에 마련해 두었던 집’이라는 얘기다.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는 모두 52 구절(句節)로 지어진 시(詩)이다. 이 시가 시작되는 1~2 번째를 비롯하여 45~48번째 구절은 다음과 같다. 아래 내용 중에 “등화초가친(燈火稍可親)”에서 고사성어 ‘등화가친’이 비롯되었다. 한편 넓은 뜻에서 유사어로는 천고마비, 신량등화(新涼燈火), 추고마비(秋高馬肥), 한우충동(汗牛充棟), 수불석권(手不釋卷), 개권유익(開卷有益), 위편삼절(韋編三絶), 독서삼도(讀書三到), 풍송명월(風松明月), 독서삼매(讀書三昧), 세한삼우(歲寒三友), 주경야독(晝耕夜讀) 따위를 열거할 수 있겠다.
/ 나무가 둥글거나 모나게 깎이는 것은(木之就規矩* : 목지취규구) / 목수(匠)가 바퀴(輪)나 가마(輿)를 만드는데 (달려)있다(在梓匠輪輿 : 재재장윤여) / ... .... / 철(계절)은 가을이라 장마가 가시고(時秋積雨霽 : 시추적우제) / 서늘한 바람(기운)이 마을에 가득하니(덮으니)(新凉入郊墟 : 신량입교허) / 등불을 점점 가까이 할 수 있으며(燈火稍可親 : 등화초가친) / 책 펼쳐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뇨(簡編可卷舒 : 간편가권서) / ... /
덥거나 춥지 않고 삽상한 가을은 밤까지 길어져 등불 앞에 조신하게 앉아서 책을 읽거나 학문에 정진하기 안성맞춤인 환경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옛날에도 등화가친에 어울리게 독서삼매에 빠졌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람의 터무니없는 욕심 때문이었는지 책을 읽거나 학문을 하기는 싫어도 출세하고픈 마음에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첩경(捷徑)이나 왕도(王道)를 찾으려는 허황된 욕심이 흔했던가 보다. 그런 대표적인 예이다.
후한(後漢)의 효헌황제(孝獻皇帝) 시절에 동우(董遇)라는 매우 출중한 학자가 있었다. 그를 흠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학문 즉 공부를 잘 하는 비법을 전수해 달라고 집요하게 매달렸다. 그럴 때마다 나를 찾아올 일이 아니라 집에 가서 ‘(책을) 읽고 또 읽으면(백번) 자연스럽게 그 뜻을 깨우치게 된다’는 뜻의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篇自義見)을 강조했다.
동우의 말을 듣고 있던 어떤 이가 “먹고 살기 바빠 책을 읽을 겨를이 없는데요(苦渴無日 : 고갈무일)”라고 퉁명스럽게 내되받아쳤다. 그 말에 동우가 “세 가지 여가만 있으면 충분하답니다(當以三餘 : 당이삼여)”라면서 ‘독서삼여(讀書三餘)’를 강조하자 곧바로 그게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그에 동우가 답했다.
‘삼여(三餘)’란 첫째로 ‘겨울(冬)’, 둘째로 ‘밤(夜)’, 셋째로 ‘비 내릴 때(陰雨)’를 이르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겨울’은 한 해의 나머지(餘)(冬者歲之餘 : 동자세지여)이고, ‘밤(夜)’은 하루의 나머지(夜者日之餘 : 야자일지여)이며, ‘비 올 때’는 맑을 때의 나머지(陰雨者時之餘 : 음우자시지여)라고 설명했다. 대략 이런 내용을 《삼국지(三國志) 권십삼(卷十三)》 〈위지(魏志) 왕랑전(王郎傳)〉에 부기(付記)되어 있는 〈왕숙전(王肅傳〉에서 전하고 있다.
한편 책을 읽겠다고 펼쳐 놓고 쓸데없는 망상이나 분심(分心)이 생겨 제대로 몰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을 매구같이 짚어 경고한 이가 바로 고대 중국의 송(宋)나라 주희(朱熹)이다. 그가 천명한 소위 ‘독서삼도(讀書三到)’를 《훈학재규(訓學齋規)》*라는 책에서 이렇게 전해지고 있다.
/ ... / 독서에는 삼도(三到)가 있나니(讀書有三到 : 독서유삼도) / (그것은) 심도(心到)와 안도(眼到)를 비롯해 구도(口到)를 이른다(謂心到眼到口到 : 위심도안도구도) / ... / 삼도 중에서도(三到之中 : 삼도지중) / 심도(心到)가 가장 급하다(心到最急 : 심도최급) / ... /
여기서 삼도(三到)는 독서하는 데 지켜야 할 세 가지 법도임을 밝히고 있다. 첫째로 구도(口到)는 입으로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 애오라지 책의 내용만을 담아야 한다. 둘째로 안도(眼到)란 책을 읽으며 주위의 잡다한 것에 정신이 팔려 눈을 흘끔거리지 말고 책만을 집중해 봐야 한다. 셋째로 심도(心到)는 책을 펼쳐놓고 잡생각이나 분심에 흔들리지 않고 정신을 가다듬고 오로지 책에만 몰두하라는 의미이다. 결국 독서삼도는 책을 읽으려 할 경우 모든 감각을 읽기에 쏟아함을 일깨우려는 가르침인 동시에 경고이다.
등화가친이란 고사성어를 대하는 순간 불현듯 요즘 버스나 전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대부분의 승객들은 휴대폰 화면에 푹 빠져 있는 상황이 떠올랐다. 이에 비해 책을 읽는 모습은 씨가 말랐을 지경이다. 그들의 손에 책을 쥐고 독서삼매경을 펼치는 문화로 바뀐다면 독자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수많은 문인들이 어렵사리 펴낸 책들이 빛을 봐 초판(初版)이 곧바로 절판(絶版)으로 이어지는 참담한 비극은 사라질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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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마비(天高馬肥) : 중국에서 생겨난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라는 말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원래의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에서 ‘새(塞)’를 빼고, ‘추(秋)’를 ‘천(天)’으로 바꿔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풍요로운 가을’이라는 뜻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어(造語)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우리사회로 시나브로 스며들어 오늘날처럼 친숙하게 쓰이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중국에서 비롯된 추고새마비가 일본에 전해지면서 천고마비로 바뀐 것을 우리가 그대로 사용하는 셈이다.
*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 때의 고문(古文)의 대가 여덟 명을 말한다. 곧 당(唐)나라의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을 위시하여 송(宋)나라의 구양수(歐陽脩), 왕안석(王安石), 증공(曾鞏),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 등을 이른다.
* 규구(規矩) : 나무를 네모나 둥글게 만드는 공구
* 《훈학재규(訓學齋規)》 : 《동몽수지(童蒙須知)》는 성리학(性理學)의 집대성자인 남송(南宋) 주희(朱熹)가 저술했다. 이는 소학(小學)에 입학하기 이전 가정에서 생활하는 아동에게 올바른 습관과 예절을 교육하기 위한 교육교재로서 《훈학재규(訓學齋規)》라고도 불렀다.
수필과비평, 2026년 9월호(통권 299), 2026년 9월 1일
(2026년 1월 17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