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열심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다윗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궤를 기럇여아림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에 동의하자 본격적으로 언약궤 운반을 위한 준비를 하였습니다.
우선 그는 남으로는 애굽 시내부터 북으로는 하맛 어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집하였습니다. 사무엘서의 병행되는 부분을 보면, 이때 다윗이 언약궤 운반을 위하여 공식적으로 동원한 인원만도 만 명이었습니다(삼하 6:1). 또 본장 7절을 보면 다윗은 각종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궤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뛰놀았습니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는 일에 얼마나 큰 열심을 보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로 다윗은 하나님께 큰 열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그의 열심이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과정에 그대로 투영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처럼 하나님에 대하여 큰 열심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즉 언약궤를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던 웃사가 재앙을 당하여 죽고, 그로 말미암아 언약궤 운반이 중단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려는 다윗의 계획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을 향한 큰 열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약궤 운반 시도가 웃사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중단된 것은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율법은 언약궤를 운반할 때에는 반드시 레위인 중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출 25:14.15;민3:30. 31). 그런데 다윗은 고핫 자손의 어깨가 아닌 수레에 실어 언약궤를 옮기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약궤를 실은 수레를 끄는 소가 날뛰자 언약궤 운반 책임자인 웃사가 언약궤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언약궤를 붙잡음으로써, 그 누구도 성물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한 율법을 어겨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에도 불구하고 언약궤 운반 시도는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열심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해가 될 뿐이라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에 대한 열심히 특심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것이 아니면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만 자초할 뿐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전 그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얼마나 컸습니까?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처단하는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 로 알고 그 누구보다도 그 일에 열심으로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의 그러한 열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말씀에 근거 하지 않은 열심은 칭찬보다는 책망을, 축복보다는 저주를 불러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외형적인 열심이나 감정에만 치우쳐 행할 것이 아니라 그 일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부분은 없는지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살핀 다음에 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때, 열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그 열심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들에게도 그것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고 해가 될 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을 내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냄으로써,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 그 열심이 하나님의 크신 축복으로 돌아오게 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