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보낸 하루
칠월 중순 금요일은 한밤중 잠을 깨 생활 속 글을 남겼다. 전날 점심나절 장맛비 틈새 용추계곡 탐방 내용을 문학 동인 카페에 올리고 지기들 메일로 보냈다. 유튜브 꽃대감 TV를 운영하는 초등 친구도 포함된다. 친구는 내 글을 받으면 구글 프로그램에서 기계음으로 변환시켜 자작나무 TV로 내보내는데 근래 녹음이 저장되질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는데 나는 그 사정을 잘 모른다.
새벽 두 시에 글쓰기를 마치고 거실로 나가니 내가 할 일거리가 있어 다행이었다. 건너편 아파트는 적요에 쌓여 불빛이 새어 나오는 세대가 드물었다. 바람과 함께 빗줄기가 세차게 내려 열어둔 베란다 창은 닫아야 했다. 거실과 베란다의 경계에 보자기를 펴고 시골에서 보내온 강낭콩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큰형님 내외분이 농사지은 강낭콩에서 고향 흙내를 느끼며 꼬투리를 깠다.
비바람은 계속되어도 시간이 흘러가니 어둠은 걷혀 새벽이 왔다. 날이 밝아와 초등 친구들의 카톡 단체방을 비롯해 평소 교류가 있는 몇몇 지기들에게 아침마다 보내는 자작 시조를 준비했다. 오늘 시조는 보름 전 고향을 방문했을 때 큰형님이 키운 콩을 소재로 삼았다. 이와 함께 내일모레 보낼 작품도 미리 써 놓았다. 엊그제 대산 강변을 거닐면서 봤던 풍광을 운율로 다듬었다.
아침 식후에 친구와 지기들에게 사진과 함께 ‘운강 콩농사’ 시조를 넘기고 날씨가 궁금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바깥을 내다보길 거듭했다. 아무래도 웃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릴 듯해 바깥에서 보낼 시간 운용은 선택지에서 빼야 했다. 그러면 집에서 지내든가 도서관으로 가야 하는데 도서관을 오가기도 비바람이 세차 만만하지 않을 듯해 마음을 비우고 집에서 머물기로 작정했다.
전날 고향에서 보내져 온 강낭콩과 함께 통마늘이 있어 까면 소일거리가 될 듯했다. 강낭콩을 깠던 자리에서 그 일을 계속했다. 마늘은 양이 제법 되는지라 시간이 상당히 걸려도 인내심을 발휘해 까야 했다. 작은 칼로 마늘의 잔뿌리 부분을 자른 뒤 껍질을 벗겨내는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일이었다. 위생장갑을 끼면 거추장스러워 맨손으로 깠더니 시간이 지나자 손톱 밑이 아려왔다.
점심 식후도 아침나절 이어 남은 마늘을 마저 까 뒷마무리를 지었다. 종일 내리는 비는 그칠 기미가 없어 우산을 챙겨 현관 밖으로 길을 나섰다. 손에 든 종량제봉투와 음식쓰레기는 지정된 투입구에 두고 아파트단지를 벗어나니 인근 중학교의 학생들 하교와 겹쳤다. 학생들이 빠져가길 기다려 보도를 따라 퇴촌삼거리로 나가 창원천과 나란한 반송공원 수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진례산성에서 발원해 용추계곡과 창원대학 앞을 거쳐온 창원천은 낮에도 계속된 강수에 냇물이 불어 넘쳐흘렀다. 냇바닥에 자라던 꽃창포와 노랑어리연은 물살에 휩쓸리고 헝클어져 갔다. 냇가 가장자리에 자라던 갯버들과 여뀌도 물살에 할퀴어 상처를 입었는데 장맛비가 그쳐 수량이 줄어들면 원상으로 돌아가지 싶다. 징검다리는 냇물이 넘쳐 통행을 제한하는 띠를 걸쳐 놓았다.
천변 산책로는 당국에서 이번 여름 예초 작업 이후 새로이 돋은 풀도 계속되는 장맛비에 무성해져 싱그러웠다. 여러해살이인 금계국은 움이 새로 돋은 잎줄기에서 노란 꽃을 피웠고, 한해살이 망초도 예초기에 멱이 잘렸다가 남겨진 뿌리에서 새로 난 순이 자라 하얀 꽃을 피웠다. 불어난 냇물에서 먹이를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 왜가리 한 마리는 징검다리에서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반지동 아파트단지 근처까지 내려갔다가 발길을 돌렸다. 아까 집을 나설 때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쳐가니 인근 주택에서 산책을 나온 이들이 간간이 지났다. 창원천 건너편 창이대로는 빗길에도 오가는 차량이 더러 보였다. 퇴촌삼거리에서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어 아파트단지로 들어서니 이웃 동 사는 꽃대감은 빙상장에서 스케이트로 건강을 다지고 돌아와 차를 세우는 중이었다. 23.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