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다해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요한 세례자’라는 교회>
복음: 요한 1,29-34
말콤 글래드웰의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비결을 파헤친 ‘아웃라이어’에 두 천재의 대비되는 사례가 나옵니다. 우선 그는 머리가 좋은 것과 성공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근거로 IQ가 높은 천재 730명을 어렸을 때부터 성장할 때까지 추적 조사한 터먼의 연구결과를 소개합니다. 아무리 천재라 해도 ‘성공한 사람(150명) – 보통사람(430명) – 사회부적응자(150명)’로 나뉩니다. 이는 천재가 아닌 사람을 조사했어도 그랬을 것입니다. 터먼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연구로 평생을 바쳤지만 결과는 황망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을 성공과 실패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요? 예상하셨겠지만 역시 ‘가정환경’입니다. 여기에 두 엄청난 천재, 크리스 랭건과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대비되어 등장합니다.
크리스토퍼 랭건은 미국 퀴즈쇼 ‘1 대 100’에 참여하여 한 치의 오류도 없이 25만 달러를 상금으로 챙겼습니다. 물론 돈이 필요했는지 그것을 걸고 100만 달러까지 갈 수 있는 문제는 포기했습니다. 크리스의 아이큐는 195입니다. 평균 아이큐가 100정도이고 아인슈타인이 150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50대가 넘어 한 시골 농장주로 살고 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수많은 논문과 어려운 책들을 읽으며 지식을 늘려가고 있지만 그가 낸 책이나 논문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대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평생 건축현장에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하기는 하였지만 어머니의 무관심으로 그것도 물 건너갔습니다. 크리스는 4형제 중의 장남인데 4형제의 아버지가 다 다릅니다. 그리고 옷을 빨면 갈아입을 옷이 없어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 극빈자로 살았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그 머리를 받쳐줄 환경이 따라주지 못하면 그런 삶에 만족해해야만 합니다.
반면 오펜하이머는 성격이 괴팍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인정해줘서 원자폭탄을 만들어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그도 어렸을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고 학교에서 적응을 잘 못할 때마다 부모가 찾아가 중재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린 나이에 인정을 받아 원자폭탄을 만드는 연구에 받아들여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하면 가정환경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끝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펜하이머는 우울증 환자였습니다. 머리는 좋았고 세상에 이름을 드러낼 업적도 내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사회부적응자였습니다. 대학교 때 그는 약물을 이용해 교수를 살해하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학처분이 다였습니다. 왜냐하면 집안도 좋았고 천재였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에게도 이런 환경이 주어졌다면 그의 삶은 달랐을 것입니다.
요한 세례자는 왜 필요한 걸까요? 인간이 부모에게 온전한 교육을 받지 못하면 사회를 편안하게 만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세상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요한은 외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이 역할을 지금은 교회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의 회개를 위한 세례 없이 그리스도께서 주시려는 성령의 세례를 받을 수 없는 것처럼, 교회 없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습니다. 물론 교회가 들어가지 못한 곳에서도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 사람들에게도 성령의 도우심과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도우심이 있다고 보아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모님만으로도 교회입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성모님이 아니셨다면 포도주가 사람들에게 올 수 없었던 것처럼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려면 누군가의 중개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가 사회부적응자이면 자녀도 그렇게 되기 싶고, 부모가 세상적인 성공을 좋아하면 자녀 또한 그리 되기 쉽습니다. 자녀들은 자신들이 환경에서 받는 도움만큼만 성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하게 키우고 싶다면 하느님과 만나게 해 주는 현대의 세례자 요한, 곧 교회라는 환경에 자녀들을 넣어놓아야 합니다. 물론 이태석 신부님처럼 의사가 되어서 선교를 나가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극히 드문 일입니다. 우리가 누구와 이어주는 중개자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자녀들의 운명이 바뀝니다. 물론 나의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전삼용신부)
1986년입니다. 군에서 자대배치를 받았고, 저는 곧 제대할 선임병과 함께 지냈습니다. 선임병은 제게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알려 주었습니다. 때로는 엄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부드럽기도 하였습니다. 같은 종교를 믿었고, 제가 신학생이었기에 특별히 잘 해 주었습니다. 선임병은 저와 1달 정도 같이 있다가 제대하였습니다. 선임병과 함께 있을 때는 편하였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답답하였습니다. 선임병 없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선임병의 자리는 너무나 컸습니다. 업무처리는 미숙했고, 내부반의 생활도 힘들었습니다. 함께 있을 때 좀 더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함께 있던 신부님이 오늘 피정과 휴가를 갔습니다. 앞으로 한 달은 제가 이곳 성당에서 지내야 합니다. 미사를 봉헌하고, 혹시 모를 일이 생기면 해결해야 합니다. 꼼꼼한 동창 신부님은 성당 가는 길, 마트 가는 길, 식사 준비하는 것을 알려 주었는데 막상 혼자서 하려니 조금 걱정이 됩니다. 군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수녀님과 봉사자들이 계시기에 큰 걱정 없이 지낼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길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에게 높은 자리를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겸손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저도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본당 신부님 대신에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주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은 듣지만 그것을 판단하거나,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 저를 믿고 피정을 간 신부님이 돌아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손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해가 뜨면 밤하늘의 별들은 모두 태양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별들은 밤하늘을 지키는 것으로 자신이 몫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성인, 성녀들은 모두 오늘 세례자 요한처럼 예수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우리가 잡은 핸들이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듯이, 사람의 몸은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누군가를 위한 삶을, 본인의 영적인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깊이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미워했던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면 좋겠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고 불평하기보다는 멈추면 비로소 볼 수 있는 것들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영광과 찬미는 하느님께 돌리면 좋겠습니다. 수고와 노력은 나의 몫으로 알면 좋겠습니다. 오늘 나의 말과 행동이 이웃에게 따뜻한 위로와 기쁨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조재형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