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억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 계승
일제강점기 때 남궁억 선생은 지금의 한서중학교가 위치한 홍청군 모곡리 일대에서 모곡학당을 설립하고, 무궁화보급사업과 교육운동을 벌인 독립운동가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모곡학당은 폐교되고 말았지만, 광복이후 남궁억 선생의 제자들이 그 뜻을 이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설립했다. 이들 학교의 이름도 마을 이름이 아닌 한서 남궁억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을 이어 세계에 빛나는 인재를 길러내자는 뜻에서 선생의 호를 따 이름을 지었다.
남궁억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이 살아있는 고장답게 이 마을은 선생의 기념관이 위치해 있고, 1년 내내 태극기가 내려지지 않는 마을이기도 하다. 한서중 학생들도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남궁억 기념관을 통해 독립운동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을 갖거나 남궁억 선생 묘소 정화 봉사활동이나 마을 봉사활동을 진행하기도 한다.
매년 국토의 동서남북을 한곳씩 방문하는 나라사랑 체험활동을 비롯해, 지난 중국 상해 체험활동에서도 임시정부의 활동을 떠올릴 수 있는 일정을 배치하는 등 학교는 나라사랑 정신을 학교생활과 다양한 체험활동 속에서 녹여내고 있다.
교육과정 내실화·교과융합체험활동
지난 2011년 부임한 신승희 교장은 교육과정의 내실화와 지속가능성에 특히 주목했다. 그래서 화려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거나, 많은 예산이 필요한 사업을 벌이기 보다는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육효과를 줄 수 있는 교육과정을 고민했다.
그런 고민 끝에 한서중학교에서 이뤄지는 수업과 특별활동, 체험활동 등은 단순 흥미나 화려함보다는 교과나 인·적성 개발과 연결해 실효성 있게 짜여지게 됐다.
지난해 여름 서울에서 1박2일 체험활동을 한 학생들은 난타공연과 야구관람, 수학체험관, 시립미술관 등을 체험하면서 수학과 미술, 체육, 영어 수업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진행했다. 이른바 ‘교과융합체험학습’이다. 학생들은 야구장에서 미리 제공된 체험학습지를 통해 퀴즈를 풀면서 야구경기에 보다 집중하고, 야구의 룰을 익히고, 야구경기와 경기장의 원리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배워간다. 또 타율과 출루율을 계산하고, 반탄력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 거리를 감안해 지하철의 평균 이동속도를 유추하는 퀴즈를 풀면서 스포츠와 일상 생활 속에서 수학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도 생각해보도록 했다. 난타 공연과 미술관 관람한 내용을 바탕으로 영어 퀴즈를 풀다보면 새로운 단어를 익히고, 지식도 늘어가기도 한다.
다른 여러 학교들의 체험활동과 비교해서 한서중학교 프로그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지난 9월에 다녀온 영월 체험활동은 지난해 보다 좀 더 업그레이드됐다. 도덕과 수학, 과학, 한문, 기술·가정, 사회, 영어 등 거의 모든 교과목 수업이 병행돼 운영됐다. 김삿갓의 삶을 통해 도덕 교과의 한 부분을 학습하고, 조선시대 역사와 그 시대 의복, 생활양식 등을 배우고, 체육수업과 연계한 등산 활동이 이뤄졌다. 영월 곳곳의 지명과 김삿갓이 남긴 글월을 통해 한문 학습을 하고, 동굴과 천문대에서 과학수업과 수학수업이 여러 가지 응용된 형태로 이뤄졌다.
관광이나 단순 견학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체험학습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딱딱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교사들이 미리 제작한 학습지를 학생들은 수시로 확인하면서 하나하나 미션을 해결해 나가듯이 과제를 풀어간다.
이 모든 수업은 교사들의 철저한 사전준비와 상상력에서 비롯한다. 체험활동 지역 선정부터 동선 등에 대해서 면밀히 고민해서 선택하고, 해당 체험활동과 연계할 수 있는 교과 내용을 체험활동에 흥미있게 접목시키기 위해서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 이런 노력으로 준비되는 교과융합체험활동은 학생들도 아주 만족하고 있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과제를 풀고, 옆 친구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서로 협력해서 과제를 풀기도 한다.
체험활동을 주관해온 주영희 교사는 “준비는 아주 힘들기도 하지만 이런 학습을 통해 아이들의 자세도 달라지고 ‘뭔가 쓸모 있는 걸 배우는 구나’하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서 아주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교과융합체험활동은 매년 학년별로 진행되는 해외수학여행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교과과정과 나라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는 수학여행은 학창시절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는 신 교장이 학생들에게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깨고 꿈을 심어주자는 차원에서 제안해 이뤄지게 됐다. 남궁억 선생의 나라사랑의 얼을 계승하고, 글로벌인재로 성장하는데 해외 여행의 경험이 큰 교훈을 줄 것이라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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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매일 20분씩 필리핀 현지 영어강사들과 1:1 화상영어 수업을 진행한다. |
실용영어로 글로벌 꿈 두드림 (Do Dream)
한서중학교의 글로벌 인재육성을 위한 교육은 해외 수학여행뿐 아니라, 회화·표현 위주의 영어교육과 토요 방과 후 수업으로 진행되는 중국어 교실 등을 통해 이뤄진다.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매일 점심시간 20~30분 동안 필리핀 현지 영어강사들과 1:1 화상영어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얼굴만 빨개질 뿐 말도 잘 못했던 학생들이 이제는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을 강사에게 설명하느라 영어교실은 늘 소란스럽다.
현지 강사가 점심식사로 뭘 먹었냐는 질문에 닭계장과 도토리묵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2학년 한규진양은 “처음 화면을 통해 영어강사와 수업을 할 때는 어색하기도 하고, 영어 표현에 서툴러 아는 말도 잘 표현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자신감도 생기고 단어도 많이 알게 돼 화상영어 수업이 재밌고, 즐겁다”고 말했다.
또 이제는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3학년 김예진양은 “얼마전 빼빼로 데이(11월 11일)때 후배에게 선물 받은 이야기를 현지 강사에게 설명하는데, ‘2학년과 3학년은 친구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설명하면서 서로의 문화적 차이도 경험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수업”이라고 화상영어 수업을 평가하기도 했다.
이처럼 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인 화상영어 수업은 춘천에 본사를 두고 있는 더존 IT그룹의 교육기부로 운영되고 있어,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학생들이 부담 없이 영어회화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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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감자를 캐고 기뻐하는 모습 |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로
신 교장은 지난 4년간 한서중에 재직하면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교육과정을 정상운영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큰 변화들을 만들어왔다. 처음 부임할 당시만 하더라도 한서중학교는 적은 학생수 덕에 공부 잘하는 학교로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너무나 조용하고, 침체된 분위기였다고 한다. 신 교장은 학생들의 걱정거리들을 덜어주고, 밝고 활기찬 모숩을 되찾아 줘야 겠다는 생각으로 학교분위기를 바꿔 나갔다. 외관과 교실 환경을 조금씩 개선해나갔고, 인사말도 ‘사랑합니다’로 바꾸고, 두발자유화를 비롯해 학생들이 자신을 스스럼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또 경제적인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복을 지원하고, 우유와 간식도 제공했다. ‘꿈드림 통장’도 개설해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방과후 학교 역시 아이들이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내용으로 재편됐다. 학생들이 어려워 하는 수학, 영어, 과학 등을 재미있는 활동을 통해 새롭게 배우는 수업을 비롯해, 쿠키만들기, 드럼, 동영상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진다.
그 과정에서 자연히 학생수도 24명에서 33명까지 늘었다. 이전에는 인근 초등학교에서 졸업한 학생들 절반 가까이가 홍천이나 가평, 춘천으로 진학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한서중학교로 진학하고 있다.
신 교장은 “교직생활을 해오면서 꿈꿔왔던 것들을 지난 4년간 실험해볼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으로 내용을 채워주고, 각자의 위치에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애써준 교직원들 덕분이었다”며 교직원들의 협력과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작은학교 희망만들기 사업 담당 주영희 교사는 앞으로 “나라사랑과 접목한 교육활동과 교과융합체험학습 등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면서 음악을 비롯한 예능 교육을 강화해 학생들의 재능을 발굴하고, 정서적 안정도 도모할 수 있도록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3학년 정인서양은 “학교가 작다고, 보고 배우는 것도 작지는 않다”며 “우리는 한서중학교에서 훨씬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자세히 잘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무엇보다 가족 같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있어 학교 생활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