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17~19 / 더 큰 일을 하시는 하나님
(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요 5:18, 개정)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 5:19, 개정)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 5:20, 개정)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본문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후 유대인들의 거센 비난을 받으십니다. 그들은 “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느냐”라고 공격했지만,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아들에게 보이시고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요 5:20)
오늘 새벽에는 “더 큰 일을 보이시는 하나님”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거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는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지금도 생명을 붙드시고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지금도 무너진 사람을 회복시키시고 지금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일하고 계실까?” “왜 내 상황은 변하지 않을까?” “왜 기도 응답이 늦어질까?”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멈추신 것이 아닙니다. 침묵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가장 깊은 곳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19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예수님의 사역은 독단적인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늘 아버지의 뜻을 보고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 능력의 비밀은 “아버지와의 연합”이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꾸 내 생각과 경험으로 움직이려 합니다. 그러나 참된 능력은 하나님과의 동행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볼 줄 아는 사람, 하나님이 멈추시면 멈출 줄 아는 사람, 하나님이 가라 하시면 순종하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입니다.
새벽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시간입니다. “주님, 제가 오늘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더 큰 일”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십니다.
장차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영혼을 구원하시고,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재만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큰 그림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 여전히 아픈 관계, 변하지 않는 환경, 답답한 상황, 하지만 하나님은 여기서 끝내지 않으십니다. “더 큰 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지금의 눈물은 더 큰 은혜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기다림은 더 큰 사명의 준비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신 분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아버지의 뜻을 보고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아직 끝나지 않은 더 큰 일을 준비하십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 가운데 “더 큰 일”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살아계셔서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보이지 않아도 역사하시는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내 생각과 뜻보다 아버지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시고, 예수님처럼 순종하게 하옵소서. 지금의 작은 현실에 갇히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더 큰 일을 바라보는 믿음을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 삶 속에 일하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