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 하린 (시인)
6. 상상 테마5 - 물고기나 생선에 관한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 소재나 모티브가 갖는 특징과 상상 적용 방법
눈을 감고 물고기를 만났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많은 이미지들이 머릿속에서 헤엄쳐 다닌다. 강이나 호수, 저수지, 바닷가, 시장, 마트 등에서 만난 물고기들, 살아있거나 죽어 있는 식재료들, 수족관에 갇힌 채 선택만을 기다리는 산송장 같은 물고기들, 건어물이 되어 미라처럼 보이는 물고기들, 토막 난 채 냉동실에서 꽁꽁 얼어있는 물고기들, 꼬물꼬물 움직이는 실치들, 그렇게 물고기들은 우리의 기억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채 살고 있다.
이렇게 친숙한 물고기 이미지를 활용하여 시를 쓸 때는 보이는 요소만 가지고 써서는 안 된다. 최소한 비유적 상상력이나 동일화적인 상상력이 적용되어야 한다. A라는 사람의 처지가 꼭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 같다거나 냉동실에 얼려져 있는 생선 같다거나 심장과 내장을 다 내주고도 눈만 껌벅이는 접시 위의 생선회 같다거나 하는 비유적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또한 물고기가 A의 몸속에 들어와 산다거나 그 몸속에 알을 낳고 떠났다거나 A가 물고기 몸속에 들어가 살면서 심연을 떠돈다거나 하는 동일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부분적인 요소를 활용해 상상을 적용하는 방법도 있다. ‘일요일에게서 가시가 자꾸 자란다’ ‘기억은 지느러미도 없이 잘도 헤엄쳐 다닌다’ ‘부레가 없는 상상이 기형물고기처럼 내게 왔다’ 등과 같은 상상적 구절을 착안해서 시를 쓸 수도 있다.
필자의 시를 통해 그 소재가 어떻게 상상과 만나 펼쳐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물고기인간 / 하린
엄마 내가 전체적으로 물고기인가요? 넌 지느러미 없이도 골방을 잘도 헤엄치잖니 엄마 지겨운 까치소리 좀 꺼줄래요 신경 쓰지 마라 넌 인어(人魚)가 아니라 인조인간이란다 그럼 엄마 난 슬플 때 교미를 해야 하나요 섹스를 해야 하나요 물을 채워주마 익사한 채 흐르거라 산란도 교과서적으로 해라 짬이 나거든 어제 마감된 원고나 써라 엄마 엄마의 옆구리에서 자꾸 아가미가 빠져나와요 신기해요 만지면 버린 내가 자라날까요 난 너에게 어항을 사준 적 없잖니 싫으면 물방울로 번식하거라 그럼 엄마 생일날만이라도 미끌거리는 미역줄기를 심어주세요 얘야 물고기는 죽어서 회를 남기고 죽은 물고기는 다시 죽어서 젓갈을 남긴다 이제 그만 눈을 감았다 떠라 버릇은 바뀌고 태도는 쓸 데가 없단다 뚜껑을 닫으마 그리고 넌 전체적으로 아가미란다 ―「1초 동안의 긴 고백」, 문학수첩, 2019.
1단계 -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물고기인간」은 타인이 부여한 조건에서 순응적으로 살아가는 화자의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쓴 시이다. 극적으로 보여줄 때 직접적으로 상황을 진지하게 서술하면 시적 재미가 없기 때문에 ‘물고기+인간’이라는 상상적 코드를 적용했다. 이것은 비유적 상상력에 해당한다. 물고기의 특징을 ‘나’의 상태와 비유적으로 맞물리게 하여 화자가 처한 상황을 더욱 부각한 것이다.
「물고기인간」을 쓸 때 필자가 생각한 시의 장점은 앞에서 제시한 비유적 상상력이다.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인식하는 화자인 ‘나’가 물고기의 특성을 비유적으로 껴입게 한 것이다. ‘골방 속 화자’가 원관념이라면 ‘어항 속 물고기’가 보조관념이 된다. 또 다른 장점은 ‘엄마’와 ‘나’의 인식과 착각을 단순화시키지 않은 점이다. ‘엄마’와 ‘나’가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지점을 이야기할 때 불협이 맞물리게 했다. 화자인 ‘나’는 자신도 자신의 존재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엄마’에게 계속 묻는다. 자신이 인식한 물고기의 특성이 맞는지 물어보는 것인데 엄마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엔 “물고기는 죽어서 회를 남기고 죽은 물고기는 다시 죽어서 젓갈을 남긴다 이제 그만 눈을 감았다 떠라 버릇은 바뀌고 태도는 쓸 데가 없단다 뚜껑을 닫으마 그리고 넌 전체적으로 아가미란다”라는 엄마의 발화를 통해 처음부터 ‘엄마’가 ‘나’를 물고기 상태로만 인식하고 기계적인 삶을 계속 종용하고 있음을 제시했다. ‘나’의 지속적인 비극이 끝없이 펼쳐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 것이다.
2단계 -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의 객관적 상관물은 물고기다. 그런데 물고기 자체가 상관물이 아니라 물고기의 특징과 현상이 상관물로 적용됐다. 갇혀 사는 물고기의 다양한 특징을 ‘엄마’와 ‘나’가 서로 다르게 인식하게 되는데, 그런 불협화음적인 정신 상태에서 ‘나’는 아무런 저항과 의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수동적인 물고기와 밀폐된 어항의 특징과 속성을 관찰하듯 나열했다. 지느러미, 헤엄, 인어, 교미, 익사, 산란, 아가미, 비린내, 물방울, 미역줄기, 미끌거리다, 회, 젓갈, 뚜껑 등의 단어를 나열했는데, 나열을 할 때 어항 속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존재를 마음에 두고 단어나 이미지를 적었다. 이것처럼 정밀한 관찰 후 단어나 이미지를 적을 땐 본인이 쓰려는 시적 지점을 염두에 두고 적으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그 단어나 구절을 활용할 수 있다.
3단계 -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물고기인간」은 시 제목부터 상상적 체험의 소산이다. “나는 물고기처럼 다락방에 갇힌 채 살고 있다”라고 쓰면 읽는 맛이 밋밋할 거 같아서 처음부터 상상적 체험을 색다르게 해서 ‘물고기인간’이란 조어(造語)를 만들어냈다. 다락방이라는 어항 속에 사는 물고기인간 자체가 상상적 체험의 소산인 셈이다. 또 하나 상상적 체험을 극대화시킨 것은 화자와 ‘엄마’의 관계를 단순화시키지 않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엄마’라는 존재는 무한 사랑을 자식에게 보내는 존재다. 그런데 이 시에 나오는 ‘엄마’는 자식인 ‘나’를 자신이 설정한 환경 속에서 살게 하면서 순응적으로 지내게 만드는 비정상적인 엄마에 가깝다. 그렇게 이 시에 적용된 상상적 체험은 ‘물고기인간’이라는 결합체를 만들어 낸 것과 모성적 사랑 없이 화자를 가두고 길들이는 존재로 ‘엄마’를 설정한 것이다.
* 또 다른 예문
귀신고래 / 김산 나는 멕시코의 따뜻한 바하칼리포르니아 해안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컸던 나는 큰 바다에 몸을 눕히고 물의 출렁임을 온몸으로 읽어야만 했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 달라붙었는지 흰 따개비들과 바다벼룩이 얼굴과 등 위에서 작은 분화구처럼 열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머니! 이 여드름을 당신의 지느러미로 시원하게 짜주세요 얼마나 더 많은 상처들을 거느려야 바다와 한 몸이 될 수 있을까요 나는 크릴새우와 백상아리와 포경선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왼발이 오른발을 오른발이 왼발을 끌고 가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다 어머니는 큰 바다에 몸을 맡기면 가자는 쪽으로 그 어느 곳이든 맘껏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큰 입을 벌리고 갸우뚱거릴 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나는 왜 태어났는가 태어나자마자 긴 머리칼도 없이, 흰 소복도 없이, 유선형의 해저 귀신이 되어 유령처럼 살아야하는가 어느 날, 바깥세상이 궁금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직립을 한 적이 있었다 작은 요트 위에 탄 일가족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물 위에 떠있는 것을 보면, 모른 척 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아이가 까르륵 웃으며 손을 내뻗었기에 내 등을 내주었다 아이는 내 등에 핀 열꽃을 작은 손으로 더듬으며 어루만져 주었다 아이의 작은 손바닥에서 옅은 지문이 나의 온몸을 파고 들어왔다 언젠가 내가 살았을 따뜻한 육지의 기억이 한낮의 윤슬로 빛났다 사람들은 나를 귀신고래라고 부른다 악마의 고기라고도 부른다 흰 따개비들과 바다벼룩을 주홍글씨처럼 온몸에 붙이고 사는 나는 오늘도 잠수함처럼 바다 깊은 그곳에 숨어 바다와 함께 역사한다 이제는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가며 긴 한숨을 내뱉었을, 그 항로를 따라 세상에서 가장 납작 엎디어 큰절을 올린다 칠흑으로 어두운 밤, 측량할 수 없는 이 깊은 바다의 모든 생명들이 모래돗자리를 깔고 죽은 얼굴들을 하나둘 불러 모은다 나는, 그 옛날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며, 바다 속에 흩뿌린 슬픈 뼛가루다 태어날 때부터 검버섯이 가득한, 明明白白한 바다의 귀신이다 - 2017년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대상 작품
고래 해체사 / 박위훈 만년의 잠영을 끝낸 밍크고래가 구룡포 부둣가에 누워있다 바위판화 속 바래어가는 이름이나 부두를 들었다 놓던 칼잡이의 춤사위이거나 잊히는 일만큼 쓸쓸한 것은 없다 허연 배를 드러낸 저 바다 한 채, 숨구멍이 표적이 되었거나 날짜변경선의 시차를 오독했을지도 모를 일 고래좌에 오르지 못한 고래의 눈이 칼잡이의 퀭한 눈을 닮았다 피 맛 대신 녹으로 연명하던 칼이 주검의 피비린내를 잘게 토막 낼 때면 동해를 통째로 발라놓을 것 같았다 조문은 한 점 고깃덩이나 원할 뿐 고래의 실직이나 사인은 외면했다 주검을 주검으로만 해석했기에 버텨온 날들이 상처의 내성처럼 가뭇없다 바다가 고래의 난 자리를 소금기로 채울 동안 고래좌는 내내 환상통을 앓는다 테트라포드의 느린 시간을 낚는다 주검의 공범인 폐그물도 인연이라고 수장된 꿈과 비명 몇 숨 그물에서 떼어내자 반짝, 고래좌에 별 하나 돋는다 바다의 정수리 늙은 고래의 흐린 동공에 맺힌 달 조등이다 - 202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할머니라는 생선-김지율 그 옛날 할머니라는 생선이 있었다 지금도 살아 박스만한 얼음덩이 위에 누워 있다 뻐끔뻐끔 담배 피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할머니 지금은 목요일 저녁이고 내일 아침은 맑을 거야 이젠 나쁜 짓 안 해 할머니 맘 놓고 얼음 위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얼어버려 할머니 유효기간이 지난 생선은 반값이야 하얀 트레이 위에 배를 깔고 누운 할머니 랩으로 싱싱하게 포장을 해도 냄새가 나, 썩은 조기 냄새가 나던 할머니 생선이라면 끔벅 죽던 할머니 아들 셋을 먼저 보내고 청승맞게 말 많던 할머니 짭쪼롬하게 간을 해서 노릇노릇 구워 먹을까 비늘을 살살 벗기고 지느러미를 치고 내장까지 꺼내 소금을 뿌려 젓갈을 담글까 내 피의 반인 할머니 모질고 독한 할머니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나도 피가 거꾸로 돌아 할머니 그래 이년아 나도 그러고 싶었겠냐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겠냐, 세일 중인 조기 한 두름 뒤집혀 꼬꾸라진 할머니 오늘 저녁 우리 집엔 냄새가 날 거야 분명히 수상한 비린내가 날 거야 - 『내 이름은 구운몽』, 한국문연, 2018
- 출처 :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더푸른, 20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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