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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오행의 생(生)과 극(剋)
오행이 말하는 것은 우주는 다섯 가지 성질로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그것들끼리의 역학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생과 극이다.
이 세상의 일은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를 만남으로 해서 시작된다.
그 존재는 자연 상의 존재를 말하므로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세상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며 사람은 단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공존할 뿐이다)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를 만나면 관계(關係)가 형성되는데, 그 관계는 절대로 대등하지 않으며, 누군가가 지휘자이면 누군가는 추종자가 된다. 즉, 주종(主從)관계가 반드시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때 주인이 극(剋)을 하는 존재이며, 종은 극(剋)을 당하는 존재가 된다.
쉽게 말하면 극(剋)이란 것은 주인이 종을 부리는 능력 또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극은 <다스리다>, <좌지우지 하다>라는 의미가 된다.
극은 우주를 움직이고 변화를 일으키는 근원적인 힘이다.
주종관계에서 종이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주인하기에 딸렸다.
만약 주인이 지시를 잘 못했다든지, 어리석다면 종이 한 일도 올바르지 못하고 잘못된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반대로 주인이 현명하고 올바른 명령을 내렸다면, 종이 한 일의 결과도 좋게 나타날 것이다.
혹자는 친구끼리의 만남이나, 나라의 대통령끼리의 만남은 대등한 만남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그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둘 사이에는 반드시 이끄는 자가 있고 뒤따르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이것은 존재끼리의 관계에서 그렇다는 것인데, 그것을 확장해도 마찬가지다.
물리학적으로 A라는 물체와 B라는 물체의 질량과 속도가 같다고 해서 힘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야구에서 2루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중전안타를 맞았다.
이때 2루 주자는 홈까지 달려오는 중이고, 외야수는 홈으로 송구를 했다. 그리고 홈에서 포수가 볼을 받아 달려오는 주자와 부닥치게 되는데 부닥치는 충격은 포수가 더 크게 받는다.
물리학적으로는 속도는 상대적이어서 질량이 같으면 힘도 같아 충격이 같다고 보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내부의 진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홈으로 달려오는 주자의 내부진동이 더 크기 때문에 포수가 더 큰 충격을 받는다.
다른 예로 A라는 투수와 B라는 투수가 있는데 직구의 속도는 똑같이 시속 150킬로 다.
그런데 A라는 투수는 홈런을 잘 맞고, B라는 투수는 맞아도 공이 뻗어나가지 못해 뜬공으로 잡히는 일이 많다. 이러한 경우는 야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 경우 해설자는 ‘볼 끝이 살아있네’, ‘볼이 힘이 있네’ 식으로 말하는데 아직 왜 그런지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공의 내부진동 때문이다.
A투수가 던지는 직구는 속도가 시속 150킬로로 던져도 공의 내부진동이 약해서 배트와 맞았을 때 배트를 밀고 들어가는 힘이 약하다. 그래서 맞으면 멀리 나간다.
반대로 B투수의 공은 A투수의 공과 같은 시속 150킬로지만 공 내부의 진동이 강해 배트가 맞았을 때 배트를 밀고 들어간다. 그러면 맞아도 뻗어나가지 않으며 때로는 배트가 부러지기도 한다.
아직 B투수의 공이 왜 내부진동이 강한지는 모른다. 그가 어떻게 던지기에 그런 공을 만들어내는지도 모른다.
실지로 내부진동이 강한 투수의 공은 포수미트에 꽂히면 포수미트가 뒤로 밀린다. 이때 포수는 ‘공이 미트를 밀고 들어온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부의 전문가들은 맞아도 뻗지 않는 공의 이유를 회전력에서 찾고 있는데 공의 회전력과는 다른 문제다. 커브볼 같은 경우는 회전력이 가장 강한데 오히려 맞으면 쭉쭉 뻗어가서 홈런이 잘된다.
내부진동은 오행으로 금(金)의 성질이다. 따라서 내부진동이 큰 공은 금이 강한 공이 되는 것이다.
극관계는 두 개의 존재에 대한 관계를 말하며, 다자간의 관계에서는 극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자연의 현상이나 이치는 다자간의 관계가 되는데 그것에 관한 이론(지장간)은 따로 있으며 자연의 현상을 극관계로 풀이하면 맞지 않는다.
흔히 역술인들이 운명을 감정할 때 생극(生剋)관계로 운을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하면 맞지 않는다.
인간의 운명은 자연의 이치나 현상에 관한 이론으로 해석을 해야 하며, 그 해석은 오행의 생극관계와 매우 달라 혼란을 일으키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생(生)은 한자로 날 생자인데, 이것은 태어나다, 시작하다, 만들어지다 등의 뜻이 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저절로 태어나고, 시작하고,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
저절로 이루어지면 그것은 진리 제2법칙인 인과의 법칙을 위배하게 된다.
따라서 태어나고, 시작하고, 만들어지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생은 극을 당하면 일어나는 현상이며 절대로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어떤 현상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극을 당했다는 것이고, 그 현상을 통해 원인(剋)을 찾을 수 있다.
생은 극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오행의 극관계는 우주의 기본적인 힘의 원리이지만 그렇다고 극하는 오행이 극 당하는 오행을 항상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마치 주인보다 종의 힘이 더 강한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주인은 혼자인데 종이 수십 명이라면, 종은 위세를 부리고 오히려 주인이 종의 눈치를 보고 주눅이 든다. 종이 주인을 능멸하는 것이다. 심하면 종이 반란을 일으켜 주인을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할 수도 있다.
이것을 주종관계의 역전현상(逆轉現象)이라고 한다.
주종관계의 역전현상이라는 것은 극관계가 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극하려고 했으나 제대로 극을 못했으며 따라서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지로 결과를 예측할 때는 어느 쪽 힘이 더 강한가도 따져봐야만 한다.
때로는 극하는 쪽과 극 당하는 쪽의 힘이 대등한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늘 힘겨루기가 일어나고 마찰이 빚어지기 쉽다.
1)목극토(木剋土)
목은 토를 다스린다, 목은 토를 좌지우지(左之右之) 한다.
봄에는 농사를 시작한다.
농사는 땅을 가는 것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왜냐하면 땅을 갈아야 씨앗을 뿌리고 작물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땅을 갈지 않고 맨땅에 씨앗을 뿌리면 어떻게 될까?
씨앗은 햇볕에 말라 죽고, 농사는 결국 짓지 못하게 된다.
땅을 갈고 씨앗을 땅속에 묻는 이유는, 강한 햇볕으로부터 씨앗이 마르는 것을 보호하고 땅속의 수분으로 씨앗을 싹트게 하는 것이다.
이때 땅은 반드시 수분을 함유하고 있어야만 하며, 또한 땅은 온기가 있어야 한다.
만약 수분이 없다면 씨앗은 서서히 말라죽고 만다.
이것은 건조한 모래사막에 씨앗을 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땅이 너무 차가워도 씨앗은 발아하지 않는다. 겨울에는 땅을 파고 씨앗을 심어도 싹이 트지 않는다. 그 이유는 땅에 온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분과 온기는 씨앗이 싹트는 중요한 두 가지 조건이다.
그래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땅은 반드시 갈려야 하는 것이고, 그러한 것이 목극토인 것이다.
그리고 목(木)은 땅을 가는 도구가 된다.
혹자는 땅을 가는 쟁기나 트랙터 같은 농기구는 쇠로 만들지 않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에야 농기구가 쇠이지만, 쇠가 인류의 도구로 쓰인 것은 인류역사에서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은 금속으로 된 제품도 많고 제품의 일부가 금속인 경우도 많고, 금속 없이는 인류가 살 아 갈 수 없는 세상이지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만 해도 인간이 사용하는 생활용품의 거의 모든 것은 나무로 제작되었다.
TV방송에 골동품의 가격을 매기는 프로가 있는데 쇠로 만든 골동품이 나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지 않은가. 대부분은 나무로 만든 제품들이 나온다.
플라스틱은 더욱 최근에야 나온 것이다. 금속과 플라스틱이 없다면 아마도 인류는 원시시대로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목과 토의 관계로 알 수 있는 것은, 땅은 만물을 태어나게 하고 자라게 하는 엄마와 같은데, 땅이 그런 일을 하려면 반드시 먼저 목으로 갈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목으로 땅을 갈지 않으면 땅은 만물을 생육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목극토는 나무의 그물맥이 땅에 형성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물맥은 땅에서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물줄기가 되고, 그러한 물줄기를 통해 만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이다.
땅은 사람으로 비유하면 몸(身)이 되는데, 몸에 생기는 그물맥은 혈관이 되고 혈관을 따라 혈액과 각종 호르몬 등이 신체를 골고루 돌아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게 되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목이 토를 다스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목의 힘보다 토의 힘이 강할 때는 목은 어려움을 겪는다.
농사를 지으려고 땅을 가는데 땅이 너무 단단하면 쟁기가 부러지기도 하지 않은가.
이를테면 연애할 적에 남자가 여자를 이끄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연상연하의 커플도 있고 그러한 경우에는 여자가 리드하는 경우도 많다. 만약 어린 남자가 무리해서 리드를 하려고 하면 여자의 입장에서는 못마땅해 할 수 있는 것이다.
토생금(土生金)
토생금은 목극토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무로 땅을 파는 것이 목극토인데, 나무로 땅을 파면 땅에서 금이 나온다.
나무로 땅을 판다는 것은 씨앗을 심기위해 땅을 가는 것을 말하는데, 땅을 갈다보면 잡석이나 돌덩이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잡석이나 돌덩이들이 바로 금이다.
농부는 그것을 밖으로 건져낸다.
잡석은 작물의 뿌리가 뻗어 내리는데 방해를 하고 뿌리를 상하게 해서 결과적으로 작물을 잘 자라게 하지 못하게 한다. 잡석이 많은 황무지가 비옥한 땅보다 농사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옥토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십 년에 걸쳐 밭을 갈고 농사를 지어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무로 땅을 가는 이유는 열매를 캐는 경우에도 해당한다.
감자나 고구마 같은 열매는 땅속에서 자라는데 그런 열매를 채취하려면 땅을 파야만 한다.
나무로 땅을 팠더니 그러한 열매들이 캐어지는 현상도 토생금에 해당한다.
2)금극목(金剋木)
금은 목을 다스린다, 금은 목을 좌지우지 한다.
나무는 목이어서 가지와 뿌리가 쭉쭉 뻗어나간다.
그런데 가지에 장애물이 걸리면 쭉쭉 뻗지 못하고 구부러지게 된다.
예를 들면 분재를 만들기 위해 나뭇가지에 구리선을 감으면 가지는 직선으로 뻗지 못하고 구리선의 모양대로 휘게 되는 것이다. 이때 구리선이 금에 해당한다.
구리선을 어떻게 감느냐에 따라 나뭇가지의 모양이 달라지는 것이다.
나무의 뿌리도 마찬가지다.
나무의 뿌리도 본래를 곧게 뻗어야 한다. 그런데 땅속에는 단단한 돌맹이들이 매우 많다.
뿌리는 그런 돌맹이를 만나면 꺾이게 되어 곧은 뿌리보다 구부러진 뿌리들이 훨씬 많은 것이다.
나무는 돌맹이가 많은 땅에서는 잘 자랄 수 없다.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없으니 땅속의 양분을 섭취하기도 어렵고, 바람에도 버티기 어려워 잘 쓰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고 토질을 알 수 있다.
나무가 울창하다면 잡석이 없고 고운 흙이 많다는 것이고, 반대로 나무가 드물고 작다면 잡석이 많다는 뜻이다. 잡석은 나무의 뿌리가 깊게 내릴 수 없으니 나무가 크게 성장 할 수 없다.
나무는 수분(水分)을 머금고 있는데, 나무가 울창한 숲은 수분이 많으므로 한여름에도 선선하다.
왜냐하면 수분은 수이고 수는 화를 극하기 때문에 열기를 죽일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나무가 없으면 그곳은 건조하고 덥다.
목은 땅의 그물맥이어서 수분을 통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고도 했는데 이때 그 통로를 막을 수 있는 것이 금(金)이다. 이때의 금은 돌덩어리가 되어 통로를 막는 것을 말한다.
사람에 있어서는 그러한 현상은 혈관이 막히는 현상이 될 것이다.
어떤 이물질(金)이 혈관(木)을 흐르는 피(水)를 따라 둥둥 떠다니다 가는 혈관에서 막히는 경우가 될 것이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물을 들이부어 희석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금은 수에 의해 움직이므로 물이 많아지면 빠르게 사라진다.
사람에 있어서는 어떤 이물질에 의해 혈관이 막혔다면 수액을 공급하거나 수혈을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전통의술로는 그러한 혈류의 장애가 오면 방광경에 침이나 뜸을 써서 수기운을 강화시키면 된다)
금이 목을 다스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금의 힘보다 목의 힘이 강할 때는 금은 어려움을 겪는다.
단단한 것이 항상 부드러운 것을 이기는 것은 아니다. 또한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도 한다.
북권(北券)계열의 무술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이를테면 운동에서 유연성을 기르는 이유는 다치게 되는 경우 유연성이 좋으면 부상도 적게 당하고 운동의 수명을 연장하는데도 매우 유리하다.
목생화(木生火)
목생화는 금극목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금극목에 의해 나무가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면 땅속의 수분을 흡수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고, 결국 나무는 말라간다. 마른다는 것은 건조해 진다는 것이고 그것은 열기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목생화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나무에서 불이 난다고 하는 것은 불에 탈 수 있는 것은 나무뿐이라는 의미도 있다.
수(물), 금(돌맹이), 토(흙)는 불에 태울 수 없지 않은가.
불에 타는 것은 나무 이외에 종이, 섬유, 플라스틱, 기름 등인데 그것도 원료는 모두 나무(木)다.
그런데 나무가 아닌 것도 불에 타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동물성 기름이나 양모(羊毛)는 나무가 아니지만 불에 탄다. 심지어 석탄은 돌인데도 불에 탄다.
그런 경우는 성질을 목(木)으로 보라는 뜻이다. 불에 타기 때문에 목이 되는 것이다.
만약 어떤 물질을 오행으로는 어떤 성질인가를 알아야 할 경우에, 그 상황이 불에 태우는 상황이고 그리고 불에 탄다면 목(木)이 된다는 것이다.
3)화극금(火剋金)
화는 금을 다스린다, 화는 금을 좌지우지 한다.
금은 기본적으로는 단단한 덩어리를 말하지만, 가을에 수확하는 열매를 말하기도 한다.
열매라는 것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금은 광범위하게 식재료라고도 할 수 있다.
이때 불은 음식을 익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음식은 불로 익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소화가 잘된다.
요리를 잘한다는 것은 칼질을 잘하고, 양념을 잘 하고, 간을 잘 맞추는 데에 있지 않다.
불로 어느 정도 익히는가에 따라 음식의 진정한 맛은 결정된다.
그래서 불을 잘 다루는 요리사가 진정한 일류 요리사인 것이다.
화극금이 음식은 불로 익힌다는 것을 말하지만, 연탄불이나 가스불 등의 직접적인 화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열매가 나무에 달려 익으려면 적당한 양의 햇볕을 일정기간 받아야만 한다.
보통 그러한 것을 영근다고 말하는데, 열매가 나무에 달려서 영그는 과정도 익는 것이다.
잘 영글지 못하면 풋과일이라고 하고 그런 과일은 먹으면 배탈이 나는 이유도 충분히 익지 않았기 때문이다.
햇볕은 그 자체로도 음식을 익히는 능력이 있다.
소고기 날것을 햇볕에 말리면 육포가 되고, 생선도 햇볕에 말리기만 해도 건어물이 되어 따로 불로 익히지 않아도 먹을 수 있다. 또한 산이나 들에 나는 풀도 따서 햇볕에 말리면 나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이렇게 햇볕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익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햇볕은 그 자체로도 살균기능이 있어 세균을 제거하기도 하지만, 또한 수분을 증발시켜 수분 속에 녹아있는 세균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혹자는 생선회는 날로 먹는 음식인데 그것은 무엇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사람은 때로는 날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뱃속에서의 소화(消化)라는 과정이 불로 익히는 것과 같다.
소화액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 소화액에 문제가 일어나면 배탈이 난다.
사주에 화기운이 약한 사람이 그러한 일이 잘 일어나고 소화불량이 되어 똥이 묽은 것이 바로 그러한 경우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갓 잡은 생선회를 곧바로 먹는 것이 아니라 12시간 정도 숙성해서 먹는다고 한다.
그러면 맛이 더 좋다고 한다. 12시간 숙성하는 것이 익히는 것이다.
불은 익히는 데만 쓰지 않고 살균과 치료하는데도 쓴다.
옛날에도 칼로 수술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는 칼을 불에 달궈서 썼다. 그 이유는 칼을 소독하기 위해서다.
불은 만물을 태워 죽이고 영원히 소멸시키는데, 세균도 당연히 불에 타 죽는 것이다.
이것은 수분을 증발시켜(건조) 서서히 죽이는 것과는 다르다. 태우는 것은 즉각적인 죽음이고 소멸까지도 포함된 개념이다.
금은 화의 그러한 작용에서 살균과 치료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그러한 상황에서 금은 세균이거나 또는 병에 걸린 장기(臟器)나 환부(患部)가 된다.
금은 형태상으로 덩어리인데 이를테면 세균덩어리, 또는 암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불은 뜨거운 열도 나지만 빛도 난다.
빛도 살균과 치료의 기능을 한다.
햇볕은 빨래를 말리는데 말리는 과정에서 살균도 된다.
미국에서는 마당에 빨래를 거는 행위가 미관상 보기 안 좋다 하여 법으로 금지한 곳도 있는데, 근래에 빨래를 햇볕에 말리는 것이 소독이 되고 건강에 좋다고 하여 마당에 빨랫줄을 메고 빨래를 거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것이 불법이어서 마찰이 일어난다는 TV뉴스도 있었다.
우리도 과거에 아파트 베렌다에 이불빨래를 거는 집들이 많았다.
그런데 아파트 투기 붐이 일어나면서 베렌다에 이불빨래를 걸면 빈민가처럼 보여 아파트 값 떨어진다고 금지시킨 아파트가 많다. 그리고 요즘은 아예 빨래를 걸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미관상은 좋을지 몰라도 가족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바람직하지 않은 처사다. 자연을 활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햇볕뿐이 아니라 적외선이나 자외선을 이용한 살균도 있다.
음식점에서 식기를 소독하는 기구는 그러한 빛의 살균기능을 이용한 것이다.
의료분야에서도 적외선을 이용한 살균기구들이 있으며, 암을 치료하는 방사선 치료도 방사선이라는 빛을 이용한 살균이다.
불을 이용한 살균과 치료는 독(毒)과 약(藥)으로 다시 정의 할 수 있다.
살균을 한다는 것은 병균을 죽이는 것인데 죽이는 것은 독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병이 치료되면 약이 다.
병을 죽이는 것은 독이고, 그렇게 해서 건강을 되찾는 것이 약이니, 이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 본래가 하나인 것이다. 문제는 병을 독으로 죽여야 하는데 사람을 독으로 죽일 수 있고, 사람을 약으로 살려야 하는데 독으로 죽일 수도 있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되고, 약도 잘못 쓰면 독이 된다’는 말이 그러한 경우이고, 의술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다.
화가 금을 다스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화의 힘보다 금의 힘이 강할 때는 화는 어려움을 겪는다.
예를 들어 음식은 위장에서 소화(消化)라는 익히는 과정을 통해 몸으로 흡수가 되는 것인데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소화가 되지 않고 오히려 몸의 열을 빼앗기며 배탈이 난다.
금생수(金生水)
금생수는 화극금의 결과로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금생수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쇠로부터 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수많은 역학서에서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못하는데, 쇠로부터 물이 나온다는 것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속의 바위로부터 샘물이 나온다고 대충 얼버무리고 있다. (기존의 역학자들이 금은 쇠라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이 부분에서 바위를 금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해놓고 다시 금은 쇠라고 한다.)
그렇지만 땅속의 바위로부터 물이 나온다는 것도 여전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후라이펜에 음식을 볶으면(火剋金) 그 음식은 반드시 부피가 줄어든다.
후라이펜이 음식을 볶았는데 음식의 부피가 커졌다는 이야기를 나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열에 의해 수분이 증발했기 때문이다.
햇볕에 음식을 말려도(火剋金) 부피가 줄어든다.
강원도의 덕장에서 명태를 말리면 코다리도 되고, 북어도 되는데 코다리나 북어는 처음 말리기 시작한 명태보다 작기 마련이다. 오징어도 마찬가지다. 물오징어를 햇볕에 말리면 부피가 줄어든다.
이렇게 부피가 줄어드는 이유는 몸에 있던 수분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금생수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물체의 부피를 결정하는 것은 수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도 뚱뚱하면 수분이 많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사람은 땀도 많이 흘린다.
반대로 마른 사람은 수분이 적으며 땀도 적게 흘린다. 그런 사람은 화기운이 강한 것이다.
음식점의 쓰레기는 대부분 음식물 찌꺼기다.
그것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밖에 내놓으면 종종 쓰레기봉투가 찢어져 썩은 물이 밖으로 나와 악취가 나는 경우가 많다.
원래 쓰레기봉투에 썩은 물을 담지는 않았다. 음식물 찌꺼기를 담았을 뿐인데 썩은 물이 생겨난 것이다.
일단 물이 생겼으니 그것은 화극금이 일어나고 그 결과로서 금생수한 것이 된다.
화극금은 익혔다는 것이거나 살균, 치료를 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익히는 것이었다면 수분은 증발로서 발생하지 물로 흐르지 않는다.
따라서 쓰레기봉투의 물이 흐르는 현상은 살균 또는 치료의 결과로서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음식물을 살균 또는 치료를 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세균이 증식해서 음식물찌꺼기가 썩은 것인데 세균이 증식한 것은 세균에게 독을 쓴 것이 아니라 약을 썼다는 것이다. 화극금이 그렇게 작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금생수하니 썩은 물이 생겨난 것이다.
세균에게 반드시 독만 쓰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좋은 세균도 있다.
그래서 좋은 세균을 이용해 음식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각종 젓갈류) 그리고 그 경우에는 물이 나오지 않던가.
매실을 담글 때도 설탕이라는 약을 쓰는데 몇 달이 지나면 매실로부터 물이 나와 아주 맛이 좋은 매실 액이 된다. 각종 효소들이 그렇게 설탕이라는 약을 써서 만드는 것이다.
어떤 병은 사람의 몸에서 물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복수(腹水)도 그런 경우인데 몸의 어딘가가 세균에 의해 썩어서 물이 생긴 것이다.
가장 급한 것은 일단 물을 빼내는 것인데, 물은 토가 막고 있으니 목으로 토를 터서 물을 빼야 한다.
그 다음의 방법은 화기운으로 물을 말리는 것이다.
그리고 병의 원인을 찾아서 약을 써야 한다.
복수 외에도 몸에서 진물이 흐르는 경우가 있는데 단순히 피부의 문제라면 별것 아니지만, 몸속의 병 또는 내장의 병으로도 물이 생겨 피부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런 경우에도 역시 몸속의 어딘가가 썩은 것이니 원인을 찾아 약을 써야 한다. 진단은 양의(洋醫)가 장비가 좋으므로 비교적 빠르고 정확하다.
의술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진단이다.
아무리 치료를 해도 치료가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진단이 잘못되어서 그런 것이다.
진단이란 병의 원인을 찾는 것인데, 원인을 못 찾으면 치료도 안 되지 않겠는가.
세상에는 증상은 같은데 원인은 다른 병도 많다.
그래서 증상만으로 치료하다 치료가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그래서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다 시간만 허비하고 병은 갈수록 깊어져 결국 죽는 사람도 많다. (그것이 사주 상으로는 편인 운에 걸렸을 때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
진단은 양의가 한의보다 장비가 좋으므로 빠르고 비교적 정확하다.
MRI니, CT니, Xray니 많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다고 치료까지 양의가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세상에는 양의도 모르는 병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대학병원의 중환자실에 가면 원인이 불명확하고 그래서 치료도 안 되는 병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한의(전통의술)는 그렇지 않다.
인간도 음양오행의 원리로 작동하니 병의 증상이 음양오행의 원리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만 알면 된다.
심지어 병명은 몰라도 된다.
증상에 따라 음양오행의 원리로 분석해 어떤 장기의 문제인가를 찾아내고 그것에 맞게 약을 쓰면 된다.
단, 그런 경지의 의술을 행할 수 있으려면 음양오행에 지극히 밝아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의가(醫家)가 음양오행에 밝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4)수극화(水剋火)
수는 화를 다스린다, 수는 화를 좌지우지 한다.
물은 생명체를 유지시켜주는 근원적인 요소다.
물이 없으면 생명체는 살아갈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아직 물 없이도 살아가는 생명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 말은 물은 생명체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요소라는 것으로서, 물을 가지고 있으면 생명체이고 그렇지 않으면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테면 박테리아는 생명체가 아닌 것이다.
물을 가지고 있다고 다 생명체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물이 없다면 생명체가 아닌 것은 틀림하다.
고교시절에 생물선생님이 서울대를 나오신 분이었다.
그분이 말하시길 생물학과에서 금기하는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었다고 하셨다. 그만큼 생명이란 오묘하고 신성한 것이므로 인간이 감히 생명을 말하는 것은 신에 대한 불경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정의 할 수 있다.
물은 수기운 이므로 흐름을 의미한다.
물을 가지고 있는 개체라면 물을 이용해 물질을 A라는 곳에서 B라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그 물질은 생명체의 에너지가 되는 양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가 외부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생명체다.
‘생명활동’은 그러한 작용을 말함이다.
그렇다면 지구도 생명체인가?
지구도 강과 바다라는 물이 있고 사람은 배를 만들어 강과 바다를 돌아다니고 그 물을 통해 빙하도 떠다닌다.
지구도 외부의 작용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내부물질을 이동시키므로 생명체가 틀림없다.
다만 생명체라고 하더라도 의식은 별개의 문제다.
아메바 같은 단세포동물도 생명체임에 틀림없는데 아메바가 의식까지 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식과 소통은 또 다른 문제다.
의식이 있어도 소통방법이 다르면 의사전달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하지만 뜨거운 열기를 막는 역할도 한다.
날씨가 더울 때는 물을 많이 마시고 찬 것을 찾는 이유가 더위를 막기 위함이다.
자동차는 엔진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 위해 냉각기라는 것이 있는데 냉각수를 넣어 엔진의 과열을 막는 것도 물이다.
여름에 더울 때 나무가 울창한 숲속으로 가면 더위를 피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나무가 수분을 머금고 있어 열기를 막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은 열기를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작용이 수극화인 것이다.
수기운은 화기운을 조절할 수 있는데, 화기운이 약이 될지 또는 독이 될지는 수기운에 딸린 문제가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약 또는 독을 만드는 재료는 수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한 몸의 상태에 따라서 어떤 것이 약이 될지 또는 독이 될지를 결정된다는 것이니 이때는 몸의 상태가 수가 된다.
즉, 병은 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약을 쓸 때는 먼저 수를 살펴야 한다. 수를 잘못 파악하면 약이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화는 밝은 빛을 말하는데, 이를 테면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방법은 스크린에 빛을 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주위가 컴컴할수록 영화는 선명하게 잘 보일 것이다. 빛은 어두울수록 밝게 빛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어둠을 만드는 것이 바로 수다.
수기운은 화기운을 억누르는데 이것은 여자의 임신에도 영향을 미친다.
봄에 농사를 짓기 위해 씨앗을 뿌릴 때는 먼저 땅을 간 다음 씨앗을 땅에 심고 흙을 덮는다.
이때 씨앗을 둘러싸고 있는 흙이 너무 차가우면 씨앗이 발아되지 않고 얼어 죽는다.
겨울은 너무 추워서 씨앗을 심어도 싹이 트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키우기 위해서 흙은 따뜻한 열기를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교접은 농부가 씨앗을 심기 위해 땅을 가는 것과 같으며, 남자가 여자의 자궁에 사정하는 것은 씨앗을 땅에 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때 자궁이 차가우면 언 땅에 씨앗을 심는 것과 같아서 수태가 되지 않으며, 설령 수태가 되었다 해도 더 이상 자라지 못한다. 그러한 것을 냉증이라고 하며 여자에게 냉증이 있으면 임신이 되지 않는 것이다.
수기운이 강한 사람은 소화기능을 떨어뜨리기도 쉽다.
음식물이 위장에 들어가면 열로써 소화를 시키는데, 수기운이 너무 강하면 화기운이 약해지고 소화기능이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양분섭취 능력도 떨어지고 대변도 묽어진다.
수가 화를 다스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수의 힘보다 화의 힘이 강할 때는 수는 어려움을 겪는다.
일반적으로 더위를 식히거나 열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물을 사용하지만, 햇볕이 강한 여름에는 웅덩이의 물도 마르고 강물도 마른다. 물은 서늘함을 잃고 오히려 덥혀진다.
화생토(火生土)
화생토는 수극화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불은 물에 의해 꺼지고 나면 재가 되어 땅위에 덮이고 거름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키운다.
재는 토인 것이다.
인류는 고대로부터 들에 불을 지르고 불이 꺼지면 그곳에 씨앗을 뿌려 농사를 짓는 풍습이 있다.
그것을 화전농법(火田農法)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논밭이 귀한 강원도에서 근래까지 그렇게 농사를 지은 곳이 있다. 불에 탄 재는 좋은 거름이 되어 농작물도 잘 자란다.
화는 죽음을 의미하는데 재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것은 자원의 재활용이기도 하다.
자원의 재활용은 인간이 자원을 아끼고 자연을 보호하려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다.
원래 우주는 그렇게 물질의 변환을 통해 새로운 자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문명을 발달시킬수록 공해나 쓰레기로 인한 환경오염을 일으켜 지구를 죽인다고 하지만 그러한 공해나 쓰레기도 영원히 존재하지는 않는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변환이 되어 다른 환경에서 다시 재활용이 될 것이다. 물론 그 환경이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일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재가 되어 새로운 생명의 밑거름이 되는 것은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윤회사상과도 통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며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공중목욕탕에 가면 차가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는 이슬이 맺혀있다.
이슬이 맺히는 이유는 목욕탕은 더운데 수도꼭지가 차므로 이슬이 맺히는 것이다.
이것도 수극화의 이치다. 그리고 이슬은 수도꼭지의 표면에 덮여 있다. 그 이슬이 화생토인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더운 여름에 컵에 차가운 물을 담으면 컵에 이슬이 맺히는 것도 같은 원리다.
대기의 공기는 더운데 컵이 차가우니 거기에 이슬이 맺히는 것이다.
그렇게 뜨거운 열기가 차가운 냉기를 만나면 액(液)이 맺히는데, 그 액은 토다.
토는 재가 땅에 덮이듯, 그렇게 덮이는 성질이 있다.
장마철이 되어 비가오고 습한 날씨가 몇 며칠이 계속되면 집안의 벽지에 곰팡이가 퍼렇게 생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습한 날씨는 수분이 많다는 것이고 그래서 수극화를 한다.(극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수극화가 일어나면 화생토가 발생하므로 재가 덮이는데 그것이 벽지의 곰팡이 인 것이다.
장마가 길어지면 고추나 오이 같은 농작물에도 피해가 오는데, 그때의 피해는 고추에 얼룩이 지고 오이에도 얼룩이 진다.(탄저병) 그러한 표면의 얼룩도 화생토 현상이다.
나는 군대에서 처음 무좀을 앓았다. 그 전에는 무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무좀은 발가락에 주로 생기는데 원인은 발가락이 습하기 때문이다.
습하면 수극화를 하고 그 결과 화생토가 일어나니 발가락 표면에 얼룩이 지고 그것이 무좀이라는 병인 것이다. 표면의 얼룩짐은 무조건 화생토 현상인 것이다.
인체에는 습한 부위가 있는데 주로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다.
따라서 그곳의 병은 수극화에 의한 화생토 현상이고 표면에 피부병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습하면 통풍을 잘 시켜 수극화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바람은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수기운이다.
그러나 바람도 덥거나 시원하거나에 따라 오행의 성질이 달라질 수 있다.
‘우주는 기(氣)로 충만해 있다’고 할 때 그것은 이것은 바람과는 관계가 없다.
다만, 바람은 수기운이어서 바람이 불면 기는 흩어지고 만다.
그래서 기공(氣功)을 할 때 바람이 불면 방해를 받는 것이고, 기(氣)는 금(庚金)이라는 것이다.
5)토극수(土剋水)
토는 수를 다스린다, 토는 수를 좌지우지 한다.
옛말에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요즘에는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은 길이 시멘트, 아스팔트 도로가 많고, 집안에서도 방이며, 마루며 장판이 많아서 엎질러진 물도 잘만하면 재빠르게 다시 주워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래 ‘한번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말은, 물이 땅에 떨어지면 아주 빠르게 땅에 스며들어 사라지기 때문에 다시 담아 올릴 수 없는 것이다.
물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조그마한 틈만 있어도 빠져나가고 흘러버리는 성질 때문에 사람이 사용하려면 반드시 그릇에 담아야 한다.
우리는 당연히 물을 그릇에 담아 쓰기 때문에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지만 만약 그릇이 없다면 인간은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물을 저장하지도 못 할 것이니 늘 물가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냇물이나 강물은 그릇에 담겨 있지 않는데 사람이 농사에 쓰지 않냐 고 할 수도 있다.
또한 냇물이나 강물에 말을 끌고 가서 물을 먹이는 것도 그릇에 담지 않는 물인데 쓰지 않냐 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냇물이나 강물에는 ‘둑’이라는 것이 있다.
둑에 의해 물은 마을이나 농경지로 넘어오지 못하고 가두어져 있는 것이다.
만약 둑이 무너지면 물은 마을이나 농경지로 흘러들어와 물난리가 날것이다.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면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뚝은 물을 가두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것을 크게 보면 모든 냇물이나 강물도 가두어진 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바다도 방파제로 둘러싸인 거대한 가두어진 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물을 가두는 것이 바로 토(土)다.
따라서 물을 담는 그릇이 스텐으로 만들어졌든, 사기로 만들어 졌든, 플라스틱 용기 던 간에 모두 토인 것이다. 오행은 역할과 성질로서 구분을 하는 것이지, 화학적 성분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토가 수를 다스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토의 힘보다 수의 힘이 강할 때는 토는 어려움을 겪는다.
비가 너무 많이 오면 강물이 둑을 넘치고 심지어 둑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둑이 무너지면 강물이 대지를 휩쓸게 되니 땅의 모든 것은 사라지게 되고 땅은 다시 황폐해진다.
수생목(水生木)
수생목은 토극수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토극수는 흐르는 물을 가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인물이 되는데, 고인물은 썩는다.
이를 테면 비가 많이 와서 웅덩이에 물이 차 들어온 경우, 날씨가 맑아지면 그 물은 고인물이 되고 이내 썩게 된다. 썩는다는 것은 그 물에 장구벌레도 생기고, 퍼렇게 이끼가 끼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장구벌레나 이끼는 새로운 생명체다.
즉, 썩은 물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수생목은 그러한 현상을 말하는 것이고 이때, 목은 새로운 생명체를 말하는 것이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때, 여름에 무척 더웠고 거의 모든 강에 녹조현상이 일어났다.
녹조현상은 강물이 초록색으로 변하는 것인데, 그 원인은 물속에 이끼류의 녹조식물이 급격히 번식해서 강물이 초록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그 원인을 두고 환경단체는 4대강 공사 때문에 강에 보를 만들어 유속이 느려져서 생긴 것이라고 했고, 정부는 여름에 더워서 수온이 올라가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환경단체는 해결방법으로 강바닥에 설치된 보를 철거해서 유속을 빠르게 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에 정부는 가을이 되면 날씨가 선선해지고 수온이 내려가면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토극수와 수생목을 이해한다면 녹조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해결방법도 알 수 있다.
강에 보를 만들어 유속을 느리게 하는 것은 물을 가두는 것이다. 즉, 토극수에 해당한다.
그리고 유속이 느려지면 고인물이 되고 그 물은 썩어 수생목 현상이 일어나니 녹조가 창궐한 것이다.
물이 오염이 됐을 경우에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희석이다.
더 많은 양의 깨끗한 물을 들이부어 농도를 낮추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물에 들어 있는 덩어리는 금(金)이다. 그리고 금이 많을수록 농도가 짙은 물이 된다.
그리고 금은 수에 의해 움직일 수 있는데, 수가 많을수록 금은 빠르게 움직여 빠져나갈 수 있다.
금이 빠르게 움직여 빠져나간다는 것은 정화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염된 물은 희석이 가장 좋은 해결방법인 것이다.
녹조문제뿐만 아니라, 가끔 TV에 유독물질이 상수원으로 흘러들어가 식수를 오염시키는 뉴스도 나오는데 이때도 마찬가지로 빨리 맑은 물로 희석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결론적으로 4대강 공사는 강물의 유속을 느리게 해서 결과적으로 물을 가둔 것이니, 여름만 되면 녹조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해결방법은 보를 없애서 유속을 빠르게 하는 것뿐이다.
한편으로, 여름의 더운 날씨는 녹조를 일으키는 조건이어서 정부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따뜻한 열기는 생명을 일으키는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흐르는 물은 절대로 이끼가 끼지 않는다. 고인 물(癸水)에서만 이끼가 낀다.
흐르는 물(壬水)은 생명을 일으키지 않는다.
참고로 여름에 장마가 길어져 비가 많이 오면 모기가 적다.
그 이유를 TV뉴스에서 어떤 전문가는 비가 많이 오면 모기의 알이 빗물에 유실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지로 그래서 모기가 적은지는 확인된 바는 없지만, 비가 많이 오면 흐르는 물이 많아지는데 그것은 임수(壬水)이고 그러면 생명체가 일어날 수 없으니 모기가 덜 생긴다고 해도 맞는 말이다.
첫댓글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런글은 근본을 궁구하지않으면 나올수 없는 것인데 제 안목을 넓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두고두고 읽어보겠습니다.... 궁구하신 더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합충형파나 천간지지 ... 좀 염치가 없을려나요 ㅋ. 아울러 밑에 쓰신 육친론에 대한 글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꾸벅
제가 쓴 글을 검색해보면 어딘가에 전체내용이 있으니 읽어 보세요.
공부 잘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