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택배가 왔다.
짭짤하고 맛깔스런 젓갈 몇 종류를 인터넷 주문 한 것이 도착 한 것이다.
명란, 창란, 오징어 젓갈들 중 내가 제일 먼저 개봉하여
정신없이 맛 본 것이 가자미 식해이다.
난 곰삭은 가자미 식해의 그 쌉쌀한 맛을 정말 좋아한다.
꼬들 꼬들한 좁쌀밥과 함께 뼈까지 아작아작 씹히는 가자미의 숙성된 맛은
정말 환상적이다. 거기다 걸쭉한 막걸리 한잔 곁들이면
신선의 술자리가 바로 이 자리다.. 싶을 정도다.
가자미 식해는 잘 아시다시피 함경도 음식이다.
가자미를 뼈째 삭힌 후 조밥과 무를 첨가하여 만드는 발효식품이며
이북식 홍어회로 불리기도 하는 북한에선 최고급 음식으로 분류 된단다.
동의보감에서는 동해의 가자미를 ‘접어’라 칭하면서,
성질이 평안하고, 맛이 달고 독이 없고, 허약 한 것을 보강하고
기력을 세게 하며, 많이 먹으면 양기를 움직이게 한다고 해서
그 가치를 높게 산다는데 ...
부산 바닷바람에 커온 나로선 가자미 식해라는
함경도 음식을 초등학교 졸업 할때 까지는 먹어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어릴 적 부터 기장 멸치 젓갈에 익숙했고
김치 속의 곰삭은 갈치나 생태를 골라 먹던 경상도식 김치를 못 먹어 본지가
몇 십년이 넘었다. '찐쌀'이나 '고구마 빼때기'가 그 당시 우리들의 어린 시절 간식이었는데
아마 이 단어가 무슨 말인지 이 수다를 읽는 경상도 분들은 아시리라..
아구창 아프게 고구마 빼때기나 찐쌀을 씹으면서 만화책을 줄창 보았던 것이
내 어린시절의 추억 중 상당부분 많이 차지 했었다.
난 초등학교 6학년 2학기때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상경했다.
중학생이 되면 전학 하기가 힘들다고 하시면서
어머니는 부산 집 정리도 되기전에 큰 언니와 나를 무조건 보냈다.
고등학교 2년생이던 작은언니가 졸업할 때까지 일 년간
서울 육촌 친척 집에 우선 더부살이를 시킨 것이다.
큰 언니는 그때 인서울 중에서도 어머니의 로망인 대학 입학으로 당연히 와야 했고
모든걸 낯설어하는 겨우 초딩 6학년인 나와는 놀아줘야하는 의무 자체를 인식하지도 않았다.
대학 초년생으로 엄청 바빴던 갸는 ..나와 친척집 더부살이의 차원이 원래부터 틀렸었다.
물설고 낯선 서울에서 난 친구도 없이 맨날 혼자였다. 나의 심한 경상도 사투리에
같은 반 친구들은, 전학온 애가 HR시간에 똑~부러지는 발표라도 할라치면
발표 내용보다는 내 사투리를 따라 하면서 책상을 치며 웃곤 했다.
(그러면 승질나서 난 속으로 혼자 욕했지. 문디가튼 가시나 머시마들..
서울래기 다마네기 양파같은 거뜰 뺀질대기만 하는거뜰... 하며 ㅠ.ㅠ)
그렇게 초등 졸업 한학기 서울생활 어색하게 마치고 ..중학교엘 갔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아무도 내가 경상도 가시나인줄 몰랐다면 과장이 심한걸까?
겨울방학동안 서울 말을 피나게 연습(?) 했던 것이다.
단지 사투리 때문에 또 서울래기들 한테 같잖은 놀림을 받고 싶지 않았었다.
중학교 한창 사춘기..그때 같은 반 짝꿍 민주를 만났다.
그리고 가자미 식해도 만났다.
내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원조 함경도 가자미 식해 맛을...
민주 엄마는 생활력 강하고 억쎄디 억쎈 함경도 여자였다.
바닷바람에 단련된 부산사투리들도 만만치 않지만
난 처음 맞닥뜨린 민주엄마의 억쎈 함경도 사투리에 놀래서 가슴이 할딱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민주엄마는 정말로 정말로 무서운 호랭이 아줌마였다.
" 이 간나들이.. 낼 시험 본다고 밤샌다 하더니만 아니나 달러 잠만 디비자고 있지 않으이??
이 종간나들이.. 시험 어찌 볼라고 이리 디비자지비!!
도요 저 간나.. 착실하다 믿었드니 민주하고 똑같지 안으이.."
하면서 아침이면 빗자루로 방문을 팡팡~ 두드리셨다.
하긴..우리는 시험공부는 대충 하다말다하고 수다로 날밤을 새며
이소룡 크라크 케이블 아랑드롱 율브린너..
그런 사진 주고 받으며 누가 더 멋있네.. 하고 열변 토했고
배 고프다면서.. 민주 어머니가 주신 이런저런 간식을 먹고난 후
영락없이 잠들어 버렸지만....
정성들여 만년필로 필기한 노트에 침 흘리고 자서 얼룩진거도 속상한데
아침에 민주 어머니까지 빗자루 들고 설치면 시험 날 아침엔 정말 혼비 백산!
그렇게 우리들을 혼내고 아침 상을 차려주시는데
윤기 자르르르~ 흐르는 흰 밥에 시뻘건 가자미 식해를 상에다 올려 놓으시며
" 도요,,이 간나..저 아래 지방에서 올라와서 이런거 몬먹어 봤지비..
이거이 가자미 식해라는기이다.. 함 맛보라우.." 하시지만 아직도 무서운 얼굴 ㅠ.ㅠ
그때 민주네 집에서 가자미 식해라는거 처음 먹어 보았고..
민주네 집에 자주 가다 보니.. 난 이런 질문도 하게 되었다.
"민주 아줌마 ..이리 맛잇는 이거는 어떻게 만드는 거야요??"
함경도 분이신 민주 엄니가 가르쳐 주신 원조 가자미 식해 그 비법(?)을
난 이미 중학교 때 그렇게 전수 받았던 것이다.
호랭이 민주엄니셨지만 그때만큼은
아주 자상하게.. 좁쌀은 어떻게 하고.. 하며... 어린 나에게 조근조근
설명해 주시며.. 도요.. 이 간나야.. 니가 언제 커서 이걸 만들어 보겠냐며
설핏 웃으셨다. (호랭이 민주엄니는 별로 잘 웃지도 않으셨는데 말이다)
그리고 뒤늦게 상경한 울 엄니께는 시험 때 마다 이리 말하셨다.
" 걱정 말라요. 우리 민주 하고 아주 친한거 가트니께리..내가 많이 좋소.
시험때 마다 밤샌다고 하는데.. 저 종간나들이 공부는 별로 안하지 싶으오.
내 알아서 끼니 잘 챙기 맥일낀께 .. 걱정 팍 노시라요.."
그때 어려서 감지는 잘 못했지만.. 민주네는 부모님의 불화로 인해 항상 집안에 감도는
암울한 분위기. 참으로 어둡고 안타까운 기운이 많이 돌았었던것 같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가 어떠하던지.. 민주와 나는 나름대로의
싹트는 우정으로 우리들의 행복만을 찾고 있었고..
우정..영원히 변치 말자고 그야말로 새끼 손가락 많이 걸었었다.
민주 아부지는 억센 함경도여자 싫다는 핑게를 바람끼의 이유로 대셨다.
평생을 나긋나긋한 여자들 찾아 헤매이셨고 ,민주엄마가 홧병에 당뇨병까지 겹쳐 드러 누우시고
호랑이 성질도 다 죽어 버렸을때.. 그제야 병든 몸으로 돌아 오셨다.
두 부부는 남은 여생을 으르렁 거리며 싸우셨다고 한다,
그럴 때 마다 민주는 내게 뛰어 왔고.. 펑펑펑~ 울며..힘들어 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두 병든 부모님이 싸우는걸 듣다 보다 못해 민주는 펑펑펑~ 울며..힘들어 하곤 했다.
지지배.... 맏이라고 지 속상한거 꾹 참고 엄마 아부지
병수발 하며, 자긴 돈벌어얀다고 공부포기하고 직장생활을 어린 나이에 시작 했다.
민주 아부지 장례식날.
생전의 민주 아부지 표현을 빌리자면 그 억쎈 함경도 여자.호랭이 같은 여자가
싫어서 평생을 바람같이 여러 여자와 살았다지만...
하지만 이젠 가랑잎 보다 가볍고 바스러 질듯이 메말라 버리신 민주 엄니만
남편 장례 치르더만.,.
그 민주 어머니가 고스란히 흘리는 눈물을 바라 보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 한의 눈물을 평생 흘리시던 민주 어머니도 얼마 전에 하늘로 가셨다.
하지만 그 독특한 함경도 사투리...
.도요.. 너.. 이 쬐끄만 간나가
가자미 식해 만드는거 들어 제대로 알겟음둥? 하시며.. 설핏 웃으시던 ..
민주어머니의 그 억센 함경도 사투리가 언제부턴가 내겐 전혀 억쎄지 않았고
웬지.. 이렇게 문득문득 되살아나는 추억이다,
첫댓글 이 쬐끄만 간나가 가자미 식해 만드는거 들어 제대로 알겟음둥..
가자미 식해보다 맛깔난 글은 어찌 이리 잘씀메? 아침부터 침고이게 하고 있구만 흠흠~!!
그 쬐끄만 간나가 이제는 53세라고 하던데요?
가자미식혜 ~! 입맛에 군침이 새꼼한 느낌이 입가에 ~! 가득하네
식해와 식혜는 발음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음식 입니다만^^ 충현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금은 하늘에 계신 나의 큰엄마들이 화투치며 뱉어내던 함경도 사투리가 들리는 듯..
울아버지 좋아하던 도루묵식혜.. 가자미식혜..
^^ 도루묵 식해는 아직도 난 못먹어 봤어.. 아마도 역시 기막힌 맛일듯..
울 엄마, 평안도 아버지는 함경도 두분이 말 다툼이라도 하시는 날이면... 이북 사투리가 힛~~! 어릴때 부산 부둣가에서 배때기 훔쳐먹던 생각이...^^
성님 ..이 노래 아시지요? 고무줄 놀이할때 ,, 고구마 빼때기! 고구마 빼때기! 말랐다 말랐다 너무 말랐다!
얼마전에 가자미식해, 도루묵식햬, 담는모임을 갔었는데...
정성이 듬뿍 들어가는 요리더구먼......
기회되면 한번 담가봤야겠어,,
솜씨라면 누구나 부러워 하는 이짱이 만든 가자미 식해맛이라면.. 아마도 분명 짱일거야 ^^
서울내기 다마내기가 그거였군....
그리고 가아끔 도요가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이유도 그거였고....
가자미식혜만큼이나 솔깃하고 재밋는 이야길쎄~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좋은 고래고기.. 카는 짤막한 노래가 아랫지방에 있었단다 ^^
어릴때보다 모든것 풍부 한데 불구하고...침 샘 책임지이소마^^사람 냄새가 나는구료....
풍요속의 빈곤이라지요 ..때론 이러한 .. ^^
도요의 맛깔나는 글 식혜와 비슷하다 할까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항상건강하세요....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일산 오일장 풍경은 역시 변함 없더군요. 뻔데기, 추억의 쫀드기 등등 ^^
장날..시간 되시면 한번 오세요~
오늘 점심때 일식집에 갔었는데 가자미식혜와 밥볶은거에 김말아먹으라고 주던데 이주 맛있었어요^^
오이시~ 보다는 ...그냥.. 그저.. 나름대로 함경도 가자미 식해에 얽힌 추억...
모니카님 새해 복 듬뿍 받으시고.. ^^
맛깔스러운 글,, 잘 보았고,,
꼭 가자미식혜가 아니더라도,,
언제쯤이면 도요하고 같이,,
막걸리잔 함 기울일 수 있을라나??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길 바라며... ^^
호연아...막걸리 한잔도 좋지만 ..올 여름에도 동막골에서 다이빙 대결로 다시 붙어보자 ㅎㅎ
도요새님~ 저도 빼떼기 알아요...진짜 어릴 때 많이 먹었던 기억이...ㅎㅎㅎ
같은 공간에서 자라서 더 많이 공감합니다..^^
새해에는 계속되는 좋은 글 기대합니다...건강도 함께...ㅎ
희운님 지금은 멀리 계시지만..우리 동갑내기 고향 친구 맞죠? ^^
가자미식혜와 얽힌 글을 읽노라니 웬지 마음이 찡하네..
동해가 친정인 친구가 친정엄마가 보내준거라며 겨울마다 건네주던 가자미식혜,,참 묘하면서도 땡기는 맛이었어.
해마다 겨울이면 건네주던 그 음식이 어느 해부터 기다려졌는데,
그 친정엄마가 이제는 연로하셔서 음식하시기가 버거우시데...요즘도 친구랑 가자미식혜먹고싶다 이야기하는데...
혜영씨~ 저도 가자미 식해..하면 웬지 이렇게 ..맘이 가끔 찡~ 해져요.
지난달 친구들과 설악갔다가
중앙시장 들러서리
명란, 어리굴젓, 낙지, 가자미식해 사가지고 와선 아직 아껴 먹고 있지비^^*
글읽곤 야심한시각에
갑자기 가자미식해랑 밥먹고 싶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