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이 좋아 노랑 싸리꽃(애니시다)을 사 왔다. 작은 화단에 심어 놓으니 온 집안이 봄 물결이다. 작고 여린 꽃나무 하나가 기쁨을 주고 있다. 그처럼 10개월 동안의 서장 강의는 내 삶에 잔잔한 물결이었고 폐부를 찌르는 불교의 상식들을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매 회마다 4~5회씩 들었다. 많은 분들의 헌신과 수고로 이루어진 강의를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이 날아가 즐겨 들었다.
처음, '서장' 혹은 '800년 세월을 학이 되어 오시는 대혜 스님!' 이런 말을 접하면서 서장이란 무엇인가? 대혜 스님은 어떤 분일까? 선불교가 뭘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서 강의를 들었다. 염화실 회원으로 가입한 지 두어 달이 지났을 때였다.
나의 삶의 근간을 이루어 온 것은 가톨릭이었다. 사회에서 살면서 인생이란, 삶이란, 고통이란 무엇일까? 이러한 나의 사유에 해답이 없어 답답하던 참에 틱낫한 스님을 통해 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서장'은 중국 송나라 시대의 사대부들을 격려하고, 경책하는 대혜 스님의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선 어록)이었다.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제자들의 깨달음의 경지 또한 높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인간적인 대혜 스님의 일생을 엿볼 수 있었고, 제자들에게 깨달음에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따끔한 충고도 있었다. 어떤 때는 묵조선에 대한 비판을 대하면서 중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가? 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 시대적 배경을 알면 대혜 스님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처음에 서장 교재를 펼쳐 보았을 때 한숨이 나왔다. 원래 한자를 싫어했고, 고어체라 혼자 읽기에는 상당히 어려웠다. 낯선 세계였다. 가파른 산맥을 올려다 보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800년 전의 시대적인 배경과 사상을, 그 분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그렇게 듣기 시작한 강의에서 내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시간이 되었다.
큰스님의 해설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무상, 진공묘유, 중도에 대한 가르침을 알게 되었고, 내게는 가장 어려운 '화두'를 지어가는 법을 배우긴 했는데 '화두'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교재에서 배운 대로 해 보려 했으나 혼자서는 안되었다. 금새 놓쳐 버리고 '화두'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내 '화두'이다.
큰 스님께서도 '깨달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삶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인간 본래의 지고한 가치에 눈뜨면 하루하루가 축제의 연속'이라는 말씀은 내 심장 속에 깊이 새겼다. 나는 생각도 많고 번뇌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큰스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존재의 실상에 조금씩 눈뜨게 되었고, 갑갑하던 무명 그대로가 불성인 것을 배웠다. 절대 현재에, 찰나간에 생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10-2강>까지 들었는데 이런 말씀이 나왔다. '밥 한 그릇을 주는 것보다, 법 한 그릇 주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가 깨달은 것을 가슴 속에 넣어 두고 그냥 가면 안된다' 이 말씀을 듣고 간략하나마 보이지 않는 곳에서 10개월 간의 여정을 함께 나눈 소감을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를 듣는 것도 소중했지만 앞으로의 삶이 더 중요하다. 가톨릭에서 수도생활을 하면서 성인이 되는 길(이상적인 삶)을 많이 생각했었다. 예전에는 어떤 고정된 상을 가지고 그것이 되려고 안달하던 시간을 많이 보냈다. 지금도 익혀온 습관으로 달려가려고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선 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설게 하라'라는 대혜 스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반야의 공부는 익숙하지 못하다. 이제부터는 그 반대로 익숙한 것은 설게 하고 선 것은 익숙하게 하면서 삶의 이치, 지혜에 눈뜨게 된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선불교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선은 생활이다'라는 표현은 무척 쉽게 다가왔다. 일상생활을 떠나서 따로 구할 것이 없다는, 밥 먹고 잠 자고 일하고 청소하는 우리 삶의 자리가 적멸의 자리이고, 생사를 벗어난 곳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배웠다. 살 때 철저히 살고 죽을 때 철저히 죽는, 백퍼센트 현존의 삶을 살라는 말씀을 기억한다면 어영부영 살 수 없을 것 같다.
큰스님께서 <2-4강의>에서 성철 스님의 법어 '산은 산, 물은 물'을 귀에 쏙 들어오게 설명해 주셨다. 나에게 서장 강의를 듣는 시간은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였다면, 서장 강의가 끝난 후의 나의 삶은 '산은 다만 산이고, 물은 다만 물이다'의 대 긍정, 대 자유의 시간을 열심히 살아가게 될 것 같다.
큰스님께서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열 달 동안 선 동자를 잉태하는 기간'이라고 쓰신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감히 이제 '선의 아이'라고 나 자신을 말하고 싶다. 다 표현하지 못한 부족한 글이 되었다.
무비 큰스님께서 건강을 회복하셔서 새 강의의 시간을 열어 주시고 법의 비를 내려 주시기를 마음 모아 염원해 본다.
첫댓글 _()()()_
에스더님의 佛性이 화악 피어납니다. 봄꽃이 시절을 놓치지 않고 피어나듯이... 이곳 염화실에서 더욱 활짝 꽃피우시기 발원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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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삶이 중요하다' '살 때 철저히 살고 죽을 때 철저히 죽는, 백퍼센트 현존의 삶을 살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가톨릭이었는데... 조심스레 불교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생에서 진리를 공부하게 되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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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에스더님,
우리 모두 에스더님처럼 서장 강의 때마다 행복한 法雨를 맞고 돌아왔습니다. 제게도 근년에 트리님, 에스더님처럼 캐톨릭에서 불교로 방향키를 옮긴 아우가 둘이나 있어 님들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아우들은 정말 날마다 환희이고 감사함입니다. 염화실에도 살짝 들어들 와서 살림 챙겨가고 있구요. (뱀발 하나.. // 맹렬 크리스챤 친구 둘이 이년 전부터 지들 맘대로 ;; 저를 굳이 '에스더'라고 부르고 있는데.. 제가 그랬지요. '나를 에스더라 부르든 사브리나로 부르든, 부르는 건 너희들 맘이니 상관없다'고. ㅎㅎ 이 좋은 비 맞고 여름 옥수수처럼 키나 쑥쑥 자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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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삶이란 나를 제대로 볼때, 방향키를 어디로 돌리는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죠.에스더님!한송이 연꽃이 피어나는군요_()()()_
에스더님, 오늘에야 찬찬하게 다시 읽었습니다. 염화실에는 타종교인들께서도 더러 계시지만 법우님처럼 창에서 자주 뵙기는 드물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 굵고 고요하게 변화를 줄 수 있는 가르침과 받아 들이시는 분께 모두 고마울 뿐입니다. 날마다 담담하게 활기찬 시간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_()()()_
일등 제자이십니다, 공부하신 소감을 글로 올려주시니 저들은 함께하진 못했어도 함께한듯한 그 느낌이 옵니다, 모쪼록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_()_
_()()()_......에스더lee님,저도 전에 카톨릭 신자 였어요.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