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천도에 관해서 많은 의견들을 가지고 계시더군요.저도 댓글을 달려고 했으나
댓글로는 제 생각을 제대로 알릴수 없다고 생각되서 이렇게 글을을 올립니다.
고구려의 평양성 천도... 여기에 나타난 결과들은 시대적 흐름이 아니었을까 하는것입니다...
이미 평양은 오래전부터 고구려에 중요시되던 곳으로 장수왕대의 천도를 굳이 이상하게 볼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광개토 대왕도 백제와 신라,가야,왜를 견제하기 위해서 생전에 평양에서 엄청 많이 머물렀던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동천왕대에 평양천도했다는 말도 있구요. 그만큼 중요시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고구려가 천도 했다고 해서 백제와 신라가 굳이 놀라고 같이 손잡을 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왜 백제와 신라가 놀라서 같이 동맹까지 해버렸던것일까요? 그건 시대적인 흐름입니다. 백제는 이전 대인 광개토대왕때 수많은 땅을 빼앗김니다. 여기서 더이상 고구려에게 땅을 빼앗긴다면은 이제 백제는 수도를 내주어야 할지도 모를 상황까지 몰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해버렸습니다. 평양과 한성은 지척(국내성과 비교했을시). 고구려는 평양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 전쟁을 벌일테죠. 즉 백제는 수도안보가 비상이 걸린 상태입니다. 혼자의 국력으로는 이 상황을 헤쳐나갈수 없는 백제. 당연히 신라에게 손을 내밀죠. 또 백제는 더 이상 영토를 빼앗긴다면은 왕권이 약화될수도 있죠.(확장으로 강화한 영토는 영토감소로 약화 될수도 있는거기 때문에) 더 이상 영토를 빼앗겨서는 안되고 이상황을 반전 시켜볼만한 카드가 바로 신라와의 동맹과 북위와의 외교죠.
그리고 신라. 광개토대왕 때부터 장수왕초기까지 다스림을 받아 어언 20년을 넘거나 그정도가 됬을것입니다. 그동안 고구려로 부터 배운 선진기술. 문화등으로 힘을 축적한 신라. 그리고 내부에서 고구려로 부터 벗어나자는 중론(?), 그래서 조금씩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가졌을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혼자의 힘으로는 안된다는걸 깨닫는것 시간문제겠죠...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사이 백제의 손이 도착합니다. 둘의 이해관계가 일치되는데 지체할일이 과연 뭐가 있을까요?? 바로 동맹을 맺습니다 이름하여 나제동맹.
이 동맹은 한나라가 침략을 받았을시 다른 나라에서 원군을 보내주거나 옆을 친다겟죠? 이렇게 됨으로써 백제는 한성안보를 확보하게 됬고, 신라는 고구려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고구려는 나제동맹의 파헤법으로 첩자전을 동반한 백제수도공략을 선택하게되고 백제는 여기에 걸려 무너집니다. 그리고 백제는 힘을 쓸수 없어 몇년감 잠잠해지죠. 이때 신라를 공략해서 남방을 안정 시켜버립니다. 즉 고구려는 남방이 불안해진것이 아니라 더욱더 확고해졌다는 것이죠. 하지만 더이상 북방으로 많은 진출을 하지 않기에 많은 분들이 고구려의 평양천도로 인해 남방이 불안정해져 북방으로 진출 안했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평양천도후 잠시 일어난 국지적인 부분에 중점을 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지게됬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고구려(뿐만아니라 원조선)의 세계관을 제대 생각지 못한 발생이라고 생각되는군요.
마지막으로 한가지더. 초기나제동맹은 공격적이 아니라 방어적이었다는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가 신라를 치면 백제가 구원병을 보내거나 고구려의 남쪽을 공략한다. 백제가 공격받음 역시 신라도 마찬가지. 즉 방어적인 일이 목적이지 고구려를 연합해서 공격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지는 않다는겁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구려가 마음놓고 북으로 올라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거죠(한예로 문자명왕때 동부여의 잔여세력을 합병시킵니다. 물론 잔여세력이라서 그렇게 많은 힘을 쏟을 필요가 없겠지만요) 물론 고구려가 이 의도를 몰랐을수도 있습니다만 고구려는 이 의도를 알필요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왜?? 조금더 생각해보죠. 고구려는 이미 북방안보라인 및 필요 영토는 거의 점령해서 이제 더이상 북으로 갈 필요성을 못 느꼈다면요? 광개토대왕시절 중국으로 갈수 있었으나 고구려는 가지 않았습니다. 즉 중국영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는것이지요.<고구려국력의 부족을 이유로 들수도 있으나 거란, 여진(특히 여진은 명을 점령하기도 합니다.)은 고구려보다 국력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중국으로 갑니다.> 이런 면을 볼때 고구려는 자신의 안보를 확보하고 중계무역을 통한 부의 획득. 그리고 다물의 완성을 이룬상태에서 더이상 북으로갈 필요성을 못느꼈고 평양성으로 천도가 그 결과로 나타난것이 아닐까 한것입니다.
즉 평양천도의 결과는 시대적흐름이 었다. 는 것입니다. 이전부터 진행되어오던 일들이 겹치고 겹쳐져 평양천도로 인해 폭발(?)되고 이 폭발을 잠재우는 과정에서 더 잠잠해져버리는...그런 일들이 일어난게 아닐까요?
이상 허접한 글이 었습니다.. 마지막 마무리밑 완결성과 통일성에서 좀 미숙한것 같지만... 계속해서 고쳐나가서 나중에 좀더 완벽한 글로 찾아 뵜겠습니다. 그럼 끝까지 읽고 이 글의 내용에 대해 생각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전 이만...
첫댓글 짧은 소견입니다만 북으로 갈 필요성을 느꼈다지 못했다라고 보기보다는 이미 고구려 서북방에는 유연이라는 강대한 유목제국 서남방에는 북위라는 강대한 국가가 있었기 때문에 북방으로 영토 확장을 하려고 해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장수왕의 현실적인 외교로 굳이 유연이나 북위와의 싸움을 하지 않고도 강국으로써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요
글쎄요. 장수왕대에 고구려는 지두우분할 을 하면서 북방개척에 힘을 쏟았습니다. 유연과 북위라는 강대국이 있긴 하였지만 고구려로서는 더이상 영토확장은 필요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런 zard님 말씀대로 주위에 강대국들이 있는것 작용하지만 그것이 두려워서 전쟁을 안한것은 아니죠. 당시 고구려의 영토는 500만이상인 고구려인구가 살기에는 넓은 땅이었습니다. 요동만과 평양, 한성지역을 점령함으로써 고구려는 동방의 대규모 무역로를 장악했으며, 한강유역, 대동강유역, 요하유역등 동방의 대규모 생산지대를 얻었으며, 지두우분할을 하면서 고구려는 좋은말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밖으로 나갈 필요가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