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 하린 (시인)
7. 상상 테마6 - 음식 관련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 소재나 모티브가 갖는 특징과 상상 적용 방법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생존 수단이 바로 의식주다. 이 세 가지는 사람들에게 가장 밀착된 상태로 놓여 감각과 감정, 생활방식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 이번에 살펴볼 대상은 ‘식(食)’에 해당하는 음식이다. 음식은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밥이나 국 등 따위의 대상을 의미한다. 이런 음식과 관련된 이미지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된다.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고 엄마가 섭취하는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음식 이미지를 저장한다. 태어나서는 무언가를 질근질근 씹고 싶어서 잇몸과 이빨이 간지럽고 젖을 떼고 나선 세상의 모든 음식을 먹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다. 그 이후에는 각자의 삶 속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음식과 관계를 맺고 생존의 순간순간을 보낸다.
나이를 점점 더 먹게 되면 과거에 먹었던 음식을 추억하는 태도도 생긴다. 그럴 때 회상은 음식 자체만을 떠올리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그날 그 순간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의 이미지, 분위기나 정서를 환기시키는 능력을 갖는다. 그것처럼 음식 이미지는 우리들의 정서를 감각적으로 부추기는 역할을 수행한다.
음식에 대한 상상력을 동원할 때 작고 단순한 음식 이미지가 훨씬 매력적인 단초를 제공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작고 단순한 것이 훨씬 더 본질성과 근원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은 레시피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예상치 못한 것을 조리하고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요리해야 한다. 발효의 경우 여러분은 무엇을 발효시킬 수 있겠는가?
봄을 발효시키거나 고독이나 슬픔, 외로움, 비난을 발효시키거나 아버지의 뒷모습을 발효시키거나 눈물이나 비웃음을 발효시키거나 하는 상상을 펼쳐야 한다. 조림의 경우엔 무엇을 조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울이나 권태를 조리는 건 어떨까. 어둠이나 상상을 타기 직전까지 조리는 건 어떨까. 다짐이나 거짓말, 선언을 조리는 건 어떨까. 또한 요리하는 방법도 기발한 상상으로 설정해야 한다. ‘맛있는 슬픔을 요리하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100일 넘게 발효시킨 어둠이다’ ‘신은 집요하게 비참을 잘 요리한다’ ‘봄을 요리할 때 태양으로만 맛을 내는 것이 아니다’와 같은 상상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음식 이미지가 예상치 못한 것과 만난 때 나만의 지점을 품은 시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의 시를 통해 그 소재가 어떻게 상상과 만나 펼쳐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레시피 / 하린
오늘 태양의 요리는 볶음
주제료인 아버지는 철근을 엮으며 비실비실
숙취와 불면으로 알맞게 저며져서 최적의 상태
심장의 잔소리 한 모금 마시고
잔뜩 발효된 상태에서 흐물흐물 지하로부터 멀어지니
요리의 완성은 시간 문제
1:1:1의 비율로 섞인 것은 엄마 새엄마 고지서
고열로 치닫는 30층 공사장에 던져 놓으니
질긴 정신줄 끊어 놓기 좋게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시멘트 냄새가 적당하게 간을 맞추고
요리를 거절할 신은 하나도 없으니
공중에서 새 한 마리 더 추가할 뿐이니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재빨리 뛰어내릴 수밖에
아, 태양의 레시피는 얼마나 간단한가?
아, 이 요리의 가격은 얼마인가? ― 「1초 동안의 긴 고백」, 문학수첩, 2019.
1단계 -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레시피」는 3중고(엄마, 새엄마, 고지서) 때문에 궁지에 몰린 가장의 존재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집필한 작품이다. 사람이 오랫동안 궁지에 몰리게 되면 보통 떠올리게 되는 것이 자살이다. 그 자살 심리를 조리법을 뜻하는 레시피에 빗대어 상상한 후 신선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레시피」의 장점은 비유적 상상력을 통해 궁핍한 상황에 놓인 ‘아버지’를 조리 현상과 비유해서 표현한 것이다. 땡볕 아래 건설 노동자로 겨우 생계를 꾸리고 있는 ‘아버지’를 신이 요리한다는 상상력을 통해 발상의 새로움을 전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시 속의 신은 인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화자가 개입한다고 상상으로 느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국을 향해 움직이는 비극적 시선은 오로지 화자 본인의 것이다.
2단계 -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의 객관적 현상은 레시피이다. 조리법의 여러 요소들을 활용해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상황을 비유했다. 시인들이나 시인 지망생들은 늘 냉철한 현실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냉철한 현실 인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평범한 자질이다. 그러니 냉철함을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최소한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비유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시에서는 건설노동자인 ‘아버지’와 객관적 상관 현상인 레시피가 맞물려 있기에 두 축과 관련된 단어나 이미지를 메모했다. 태양의 요리, 볶음, 주재료, 숙취, 불면, 최적의 상태, 잔소리, 발효, 비율, 새엄마, 고지서, 간을 맞추다, 시멘트 냄새, 신선도 등이 거기에 해당하는 단어들이다.
3단계 -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레시피」에서 상상적 체험은 궁지에 몰린 가장의 심리적 상황을 극대화시키려는 의도에 의해 이루어졌다. 궁지에 몰린 원인이 단순히 가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1:1:1의 비율로 섞인 것은 엄마 새엄마 고지서”라는 표현을 썼다. 이혼한 엄마와의 문제, 새엄마와의 문제. 돈을 제 때 내지 않아서 쌓이는 고지서의 문제를 안고 있는 ‘아버지’를 창조해 낸 것이다. 이런 ‘아버지’에겐 “요리를 거절할 신은 하나도” 없다. 도와줄 대상이 하나도 없기에 ‘아버지’의 희망은 제로에 가깝다. 따라서 「레시피」에 동원된 극적인 체험은 ‘아버지’를 3중고에 시달리도록 만든 것과 신이 철저하게 그 상황을 방치하도록 만든 것이다.
* 또 다른 예문
도넛 구멍 속의 잠 / 이혜미
당신 그 꿈 얘기 좀 해 봐요 초콜릿이 흘러넘치는 도넛 상자를 들고 설탕 사막을 찾아가던 꿈 고운 모래들이 은빛으로 반짝였고 목구멍을 한껏 열어 바람 냄새를 맡으면 달콤한 입자들이 기도까지 흘러들어왔어요 도넛들과 함께 설탕모래 위를 구르며 이번 생을 자축했어요 이렇게 달콤한 잠이라니 최고다 예상 못한 선물이야 도넛이 많아질수록 새로 생긴 동그라미들이 늘어서고 그들의 중력이 흰사막을 빨아들이기 시작하고 세상이 구멍과 구멍 아닌 것으로 나뉠 때 고대에서 온 인간처럼 거대한 도넛의 주위를 맴돌았어요 설탕 범벅이 된 채 동그랗게 모여드는 하늘을 바라보다 뒤늦은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우린 아주 긴 구멍을 가진 도넛들이었군요 이대로 마음을 시작할 수 있겠어요? 당신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낡은 자루에서 설탕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짙어지는 수면으로 고르게 내려앉는 단잠의 소리 코 골 때의 당신은 꼭 웃다가 우는 것 같지 잠든 자의 벌린 입 속으로 흘러들어가 검게 절여진 구멍을 구해올 수 있겠어요? 세 마디로 이루어진 행성이 있어서 우린 생의 대부분을 그 주위를 맴돌며 보낸다고요 매일 새로운 궤도의 웃음을 개발하려 우리가 떠나온 세계에는 더 이상 지어낼 입술이 없군요 깨어나면 서, 단것으로 얼룩진 잠을 털어내면서, 구멍이 도넛을 존재하게 하듯 어리석음은 매번 꿈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해내는군요 기억해요 만약 어젯밤 꿈속에 두고 온 영혼이 있다면 수상하고 달콤한 도넛 속에 웅크려 당신을 기다린다는 거 - 《시인광장》 2020년 12월호
기타와 바게트 / 리호
네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찾아 그러면 스스로 나는 법을 깨닫게 될 거야 나는 조나단, 더 이상 빵부스러기에 연연하지 않는 적도의 펭귄 5
흔해빠진 스트라이프 팬티는 사양할래 더 이상 그녀의 젖가슴이 떠오르지 않거든 쇄골과 골반 안쪽에는 맹수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검은 눈동자 문신을 그려놓았어
유명한 빵집 앞에서 22분을 기다려 바게트를 샀지 비스듬히 칼집 넣은 중간 중간에 오후를 채워 넣었어 빠삐용의 죄수복에도 붉은 칼집이 들어간 것을 아나? 찢긴 나비의 날개 조각들이 채워져 있던 걸로 기억해
낯선 이들의 침입을 막으려 부적처럼 세워놓은 검은색 기타 옆에 바게트빵을 기대놓았어 여섯 개의 현에 매달린 그녀가 가는 잠에서 깨어나 한입 물었지 후두둑 오후가 쏟아져 내리더니 이내 나비가 된 그녀가 웃고 있네
더 이상 스테레오타입의 섹스는 사양할래 가슴에 노란 빠삐용 문신을 새긴 그녀의 심장은 오른쪽에 있거든 ― 제3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작 크루아상 / 윤달 잠이 오지 않아서 밤을 접고, 접고, 또 접어요 아홉 겹의 어둠이 완성되면 잠시 슬퍼질 차례입니다 보이지 않는 서쪽의 지평선을 당겨서 깔고 슬퍼질 대로 슬퍼진 어둠을 눕여요 잠시 숨죽일 시간입니다 납작해진 슬픔을 조각조각 잘라서 돌돌 말아 볼까요 나는 지금 초승달을 만드는 중이에요 초승달이 뜨면 뱀파이어가 되는 당신을 위해 내 슬픔의 신선도를 지키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 두기로 해요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당신과 다르게 아침은 어떻게든 제 시간에 찾아오니까 바람맞을 걱정 따윈 안하기로 해요 아침이 오면 밤새 숨 죽여준 비밀을 꺼내 볼 시간 이제는 발설해도 괜찮은 악몽 조금은 부풀려도 괜찮은 슬픔 오븐에 넣기 전에 주문을 외워야 해요 타지 마라, 타지 마라, 타지 말아라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오지 마라, 오지 마라, 오지 말아라 나의 혈관 깊숙이 파고 들어올 당신의 송곳니 앞에 달큰하게 달아오른 나를 눕혀요 어때요, 당신이 보기에도 내가 영락없는 초승달인가요? - 《열린시학》 2020년 여름호
- 출처 :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더푸른, 20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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