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오나다는 배가 고팠다. 탱고 오나다는 땀을 흘렸다. 배가 고파서 흘린 것은 아니다. 배가 고프다고 땀 흘리지는 않는 것이다. 온도계가 섭씨 35도까지 올라가는 더운 날이었다. 이미 더위에 익숙해진 8월의 무더위보다, 장마가 끝나고 막 찾아오는 첫 번째 더위가 훨씬 더 덥게 느껴진다. 남부 지방 어디에서는 아스팔트에 계란을 깨서 후라이를 해 먹었다며, 디카 폐인들을 양산시킨 인터넷 사이트에 증거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누리꾼들은 합성이다 아니다로 긴 댓글을 달며 공방전을 펼치고 있는 7월 셋째 주 금요일 오후 5시 7분이었다. 아침방송 기상 캐스터는 열사병을 주의하라고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을 했다. 풍문으로만 떠돌던 백년만의 무더위가 드디어 찾아온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수군거렸지만 기상청에서는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부인되고 비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탱고 오나다는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당연히 탱고 오나다는 냉면이나 냉모밀 혹은 냉콩국수처럼 앞에 [냉]자가 들어 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지하실 문을 밀고 나와 계단을 올라가면서, 탱고 오나다는 숨을 멈춘다. 이 계단에는 담배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탱고 바 안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에 춤을 추다가 한 호흡 쉬고 싶은 땅게로스들은 이 계단에 나와 담배를 피운다. 탱고 오나다 계단에는 수많은 땅게로스들의 기쁨과 회한의 담배연기들이 배어 있다. 탱고는 남녀의 몸이 부딪치는 춤이다.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미묘한 긴장과 충돌, 혹은 절묘한 호흡의 일치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나 절망에 가까운 절규들이 탱고의 스텝 하나 하나에는 배어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극단적인 감정을 경험한 땅게로스들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처음 오는 사람들은 탱고 오나다의 계단이 결코 반가울 수가 없다. 나무나 천으로 된 것도 아닌데, 돌계단과 시멘트벽에 어떻게 이렇게 짙은 담배연기가 배일 수 있을까 과학적 호기심이 들 정도였다. 탱고 오나다는 청소대행 업체에 의뢰해서 담배연기를 제거할까 상담을 해 본 적도 있다. 전화를 받은 용역업체 여직원은 그런 의뢰는 처음이라면서 사장님께 여쭤보겠다고 말했고 탱고 오나다는 그 순간, 지금 자신이 큰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전화를 끊었다. 담배 연기가 없는 탱고 오나다의 계단은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담배 계단을 지나 밖으로 나와 숨을 들이쉬던 탱고 오나다는 깜짝 놀라 다시 숨을 멈춰야만 했다.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가 들이쉬는 순간, 불덩이가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거리는 전자렌지 속처럼 뜨거웠다. 아스팔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존 트라볼타가 이쪽저쪽 허공을 번갈아 가며 찌르며 춤을 추던 토요일 밤의 열기를 [약] 2500배 능가하는 것이었다. 탱고 오나다는 정확한 것을 좋아한다. [약]이란 어림수를 동원할 수밖에 없는 그 자신이 한없이 미웠지만, 아스팔트의 열기를 측정하는 것은, 탱고 오나다를 수학 앞에서 무릎 꿇게 한 결정적 계기 된, 리만의 가설보다도 어려운, 매우 난이도 높은 문제 중 하나였다.
[리만의 가설]로 들어갔다 나오기
200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클레이 수학연구소에서는 21세기 최고의 수학문제 7개를 공표하면서 누구든지 문제 하나씩 풀 때마다 백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공표하였다. 그 7 문제중 하나가 [리만의 가설]이다.
리만이라는 사람의 원래 이름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베르나르드 리만(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으로서, 1과 2,3,5,7.11처럼, 그 수 자신으로만 나누어떨어지는 소수들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리만의 가설]을 제기했다. 1859년 리만에 의해 발표된 8쪽의 짧은 논문으로 된 이 가설은, 제타함수의 중요한 성질들에 대해서 기술하면서 당시 최대의 미해결 문제였던 소수 정리의 증명방법을 제시하였다. 리만이 제기한 제타함수에 대한 주장들은 이후 30여년 동안 모두 증명되었고, 다만 제타함수의 영점의 위치에 대한 것만 증명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것을 [리만의 가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1866년 자신이 죽을 때 자신이 제기한 이 가설의 증거들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리만은 리만의 제타함수를 정의하면서 제타함수의 값이 0이 되는 복소수의 실수부가 모두 1/2일지 모른다는 가정을 한 것이다.
'ζ(s)는 s=x+iy에 대해서 생각할 때 x>1/2로 0은 없다
이것을 풀기 위해 지난 150년 동안 많은 수학자가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매사추세츠주의 클레이 수학연구소에서는 백만 달러의 상금을 내건 것이다. 그런데 2004년 미국 퍼듀 대학교 브랑게 교수가 리만의 가설을 풀었다면서 23페이지로 된 논문을 인터넷 게시판에 개재하였다.
프랑스 출신인 브랑게 교수가 백만 달러의 상금을 클레이 수학 연구소 측으로부터 받았는지 탱고 오나다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리만의 가설]이 우리에게 환기시켜 주는 것은 0도 잘게 쪼개어 보면 완벽한 0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0속에는 0이 아닌 0에 가까운,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같은 숫자들의 흔적이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
리만의 가설을 이용할 필요도 없이,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7월 셋째 주 금요일 오후 5시 7분의 온도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아스팔트가 깨진 홈 사이에 체온계를 끼워 놓고 온도를 측정하는 체온측정법이 있었지만, 그 경우 반드시 국가기관에서 인정한 의사자격증 소지자가 체온을 측정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아시다시피 탱고 오나다는 의사자격증이 없다.
또, 계란을 아스팔트에 깨서 몇 분 만에 익나 시간을 측정하며 지열을 재는 계란측정법이 있었지만 이것 역시 환경오염을 유발할 우려가 있었다. 탱고 오나다는 환경단체에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탱고 오나다는 계란 후라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다음 사우나를 이용한 비교체험측정법이란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알몸으로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아스팔트에 드러눕는 방법이었다. 사우나에 가면 업소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냉탕 온탕 열탕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탕에는 현재 온도가 디지털 온도계에 표시되어 있다. 만약 42도의 열탕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곧바로 아스팔트에 눕는다면, 어느 쪽이 더 뜨거운 것인지 쉽게 비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알몸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탱고 오나다는 임신 8개월....까지는 아니지만 4개월 정도로 불룩 튀어나온 아랫배를 만져 보았다. 그래서 아스팔트의 온도를 알아봐야겠다는 탱고 오나다의 생각은 생각으로 그쳤다.
공작새의 왕관 깃털들
[냉]이란 글자만 봐도 더위는 조금 수그러들 것 같았다. 그런데 [냉]면 집도, [냉]콩국수 집도, [냉]모밀 집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영업을 하던 그 식당들은 모두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식당들이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공작들이 한 마리씩, 두 눈을 껌벅거리며 거닐고 있었다. 공작들은 모두 화려한 날개를 펴고 있었는데 머리에는 왕관이 빛나고 있었고 입에는 딸기를 물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딸기가 아니라 딸기 색으로 되어 있는 봉투였다.
탱고 오나다는 오늘 아침, 벨이 울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지하실이었고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계를 봐야만 했다. 그러나 1부터 12까지 둥그렇게 박혀 있는 시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가령, 탱고 오나다가 눈을 떠서 시계를 봤는데 4시 26분이었다면 그것이 새벽 4시 26분인지 오후 4시 26분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전 오후를 구분해주는 디지털 장치가 있는 시계를 보거나, 아니면 밖으로 나와 보는 수밖에 없었다.
탱고 오나다는 벨이 울리자 습관대로 시계를 보았는데 11시 17분이었다. 분명히 아침이었다. 왜냐하면 탱고 오나다가 밤 11시 17분에 잠자리에 누워 있었던 적은 없었다. 탱고 오나다가 문을 닫는 월요일 저녁이라고 해도 그 시간에는 바쁘기 때문이다. 밤 11시 17분에 탱고 오나다가 잠을 자거나 혼자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탱고 오나다는 벗어 놓은 잠옷을 찾아 입고 현관으로 나가서 문을 열었다. 우체부 아저씨가 밖에 서 있었다. 대부분 우편물은 1층 엘리베이터 벽에 있는 우편함에 넣기 때문에 우체부 아저씨가 직접 벨을 눌렀다는 것은 등기나 소포 같은 특별 우편물이 있다는 뜻이다.
[탱고 오나다씨죠?]
[네]
[사인하세요]
우편배달부는 탱고 오나다에게 PDA처럼 생긴 물건을 내밀었다. 그리고 탱고 오나다의 손에 전자펜을 쥐어주었다. 탱고 오나다는 LCD 창에 전자펜으로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썼다.
탕고 오나다
[본인 이름 맞습니까?]
[녜]
우편배달부 아저씨는 지구가 자전하는 축만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제서야 탱고 오나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잠깐만요]
탱고 오나다는 우편배달부의 손에서 전자펜을 빼앗아 탕 옆에 줄을 하나 더 그었다. [탱고 오나다]라고 쓰인 글씨를 보고 우편배달부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맞구만]
그리고 그는 가방 속에서 빨간 딸기 봉투 하나를 꺼내 탱고 오나다의 손에 쥐어주었다. 탱고 오나다는 자신의 손에 든 봉투를 한 번 보고 다시 우편배달부의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볼 수가 없었다. 벌써 오토바이의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고 우편배달부는 사라져버렸다.
오토바이 소리가 모두 사라진 뒤 탕고, 아니 탱고 오나다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딸기 색 봉투를 바라보았다. 봉투 앞면에는 [탱고 오나다] 그렇게 쓰여 있었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뒷면을 돌려 보았지만 아무 것도 적혀져 있지 않았다.
탱고 오나다는 봉투를 열기 전,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자신에게 배달된 편지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에게 이런 딸기 색 봉투를 보낼 사람은 없었다. 요즘은 전부 이메일이다. 이렇게 휘황찬란한 딸기 색 봉투에 뭘 써서 우체통에 넣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배달하는 우편물들은 대부분 자동차 과태료 통지서나 세금 통지서 혹은 선거철마다 늘어나는 후보들의 홍보유인물이었다. 개인적인 편지를 배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당신을 초대합니다]
꾹꾹 볼펜이나 만년필로 눌러쓴 편지는 아니었다. 그것은 초대장이었다. 생일 파티 초대장. 탱고 오나다를 자신의 생일 파티에 초대한다는 내용이 금박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장소는 탱고 바 오나다였다. 그러니까 탱고 오나다는 탱고 오나다에서 개최되는 생일파티에 초대된 것이다. 초대한 사람은 탱고 오나다의 마님이었다.
탱고 오나다의 마님
AP 통신에 따르면, 미얀마의 수도 양곤 부근의 밀림지대에 있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들어가서 공작새 2마리를 몰래 잡아 요리해 먹은 남자 2명이 징역 3년형에 처해졌다. 공작새는 예로부터 귀족들이나 왕족들의 식탁에 오르는 아주 귀한 길조였는데, 윈 나잉과 모에 힛케라는 두 명의 남자들은 겁도 없이 미얀마 당국이 보호하고 있는 흘라와가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침입해서 공작새 2 마리를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미얀마산 공작새는 세계적인 보호새다. 만일 밀렵하다가 적발되면 징역형 이외에도 벌금 833달러를 내야 한다. 미얀마 환율을 생각하면 아주 큰 돈이다. 더구나 미얀마 군부독재정권과 투쟁하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 여사의 별명이, [싸우는 공작새]다. 그래서 공작새를 잡아먹는 행위는 미얀마의 일반 대중들로부터도 커다란 비난을 받는 행위인 것이다.
탱고 오나다는 뒷골목에 있는 돈까스 집에 가서 식사를 하다가 테이블 위에 구겨져 있는 며칠 지난 신문에서 위와 같은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공작새는 잠잘 때 한쪽 눈만 감고 잔다는 데, 공작새를 잡아먹은 그 남자들이 한쪽 눈만 뜨고 잠자는 공작새를 덮친 것은 아닐까 탱고 오나다는 생각했다. 공작새의 다른 한쪽 눈은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공작새는 부와 명예의 상징이다. 공작새는 인도의 나라 새이기도 하고 그리스의 헤라 여신도 공작새와 관련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25살이 지나 뇌세포가 하루에도 2345개씩 죽어가는 탱고 오나다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초대장 한 가운데는 타원형의 사진이 박혀 있었는데 그 속에서 탱고 오나다의 마님은 공작새처럼 우아한 깃털왕관을 쓰고 있었다. 그렇다, 마님의 머리에는 마땅히 공작왕관이 올라가 있어야만 어울렸다. 손에는 마님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금색 봉을 들고 있었는데, 탱고 오나다는 탱고 오나다의 마님이 손에 들고 있는 금색 봉을 보면서 반드시 오늘 밤 쓸 케익을 사가지고 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봉의 둥근 부분이 자신의 머리를 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탱고 오나다는 배가 고파서 밖으로 나오기도 했지만 사실은 탱고 오나다 마님의 생일파티에 필요한 케익을 사려는 생각이 먼저였다.
탱고 오나다가 좋아하는 케익은 베스킨 라빈스에서 파는 얼음케익이다. 하지만 우아한 공작새는 얼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탱고 오나다가 자주 가는 케익 집이 길 건너편에 있었다. 한때 탱고 오나다는 탱고빵 오나다로 불릴 정도로 빵을 좋아했다. 아침은 모닝 샌드위치, 점심은 사각 토스트에 따뜻한 크림을 얹은 것으로, 그리고 저녁은 베이글에 치즈를 발라 먹기도 했다. 서울 시내 맛있는 케익 집을 모두 순례하는 것이 가장 즐거웠었다.
그런데 날은 너무 더웠다. 가슴에는 벌써 불이 가득 차 있었다. 탱고 오나다는 계획을 수정했다. 오늘 같은 날은 마님도 얼음 케익을 좋아할 거야. 혼자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정말 마님이 맛있게 케익을 먹는 모습이 떠올랐다. 차가운 얼음 케익이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자 불더위는 사라지고 온몸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면서 머리에서는 온도 차이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탱고 오나다는 탱고 오나다의 마님으로부터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칭찬을 받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탱고 오나다는 베스킨 라빈스에 들어갔다. 드류 베리모어가 광고에 등장하는 베스킨 라빈스, 난 당신의 아이스크림이 되고 싶어, 이런 간지러운 멘트를 푹푹 날리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탱고 오나다는 TV에서 처음 그 광고를 봤을 때 15초동안 넋을 잃고, 정말 이 표현이 딱 맞다, 넋을 잃고 바라보았었다. CF 속의 드류 베리모어오는 [E.T]의 어린 아이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매우 유혹적이었다. 그렇다고 탱고 오나다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가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콘은 얼마나 맛있게 보였는지 탱고 오나다가 베스킨 라빈스로 향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 광고 때문이었으며 그렇다면 드류 베리모어를 비싼 광고료를 지불하고 데려온 베스킨 라빈스 홍보팀의 작전은 적중했다는 뜻이다.
오리엔탈 그린티, 아이 엠 셈, 파스타치오 아몬드, 시나몬 번스윌, 쿠키 앤 크림, 파파야 파인애플 등등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조금씩 변화는 있지만 총 31개의 아이스크림 이름을 탱고 오나다는 줄줄줄 15초 안에 외울 자신이 있다. 탱고 오나다의 최고 기록은 12초 2였다. 신제품 이름이 월넛, 카니발, 아몬드 봉봉처럼 짧고 발음하기 좋았을 경우였다. 자모카 아몬드 훠지, 혹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발음하기 힘들거나 제목이 긴 제품들이 출시되면 15초가 되어야 겨우 마칠 수 있는 것이다. 베리베리 스트로베리나 망고탱고처럼 리듬감 있는 이름들이 더 많이 있다면 기록이 단축될 가능성도 있었다. 아직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는 아니였지만, [베스킨 라빈스 31개 제품 최단기간 말하기 국제 대회]가 있다면 탱고 오나다는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
아이스크림 집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밖의 더위와는 이별한 듯 했다. 탱고 오나다는 평소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들과 눈이 맞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것이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 마음 꾹 눌러 참고 케익을 골랐다. 베스킨 라빈스 20주년 기념 사은행사 기간이었다. 맹세코, 탱고 오나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케익을 사기 위해 베스킨 라빈스를 찾은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탱고 오나다 마님의 생일인데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베스킨 라빈스에서는 사각형으로 된 스퀘어 케이크가 특별행사 중이었다. 9,900원이면 좋은 가격이었다. 두 가지 스퀘어 케익 중에서 탱고 오나다는 붉은 체리 4개가 사각형으로 박혀 있는 것을 골랐다. 그리고 6시간정도 버틸 분량의 아이스를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오늘 밤 생일 파티는 밤 11시에 개최될 예정이었다. 정확히 초대장을 받은 지 6시간 2분이 지난 5시 19분이었다. 물론 오후다. 5시간 41분이 지나면 탱고 오나다 마님의 생일파티가 개최될 것이다.
탱고 오나다의 생일파티
탱고 오나다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항상 7시 30분에 문을 연다. 바가 공식적으로 문을 열지 않는 월요일에도 사실 탱고 오나다는 열려 있다. 고수 땅게로 상록수가 주최하는 탱고 클리닉이 개최되기 때문이다. 탱고를 더 잘 추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찬 땅게로스들은 월요일 저녁에도 탱고 오나다의 지하계단을 내려간다.
그러나 오늘은 금요일, 밀롱가 마루바닥이 한 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차는 토요일에 비하면 한가한 날이지만 그래도 주5일제 시행 이후 금요일의 탱고 오나다는 토요일이나 화요일 다음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매주 화요일은 탱고 오나다의 마님이 사발통문을 돌려 정기 모임을 소집하는 날이다. 그런데 오늘은 생일파티가 있는 금요일이다. 그것도 탱고 오나다 마님의.
탱고 오나다는 긴장한다. 파티가 있거나 행사가 있는 날은 그렇지 않은 날보다 땅게로스들도 많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탱고 오나다에는 술이 없다. 바에는 게토레이같은 스포츠 음료들과 비타민이 함유된 음료들이 직사각형의 기다린 냉장고에 들어 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음료수들을 주문할 생각이었다.
매일 탱고 오나다의 지하 계단을 처음 내려오는 손님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탱고 오나다는 그날의 분위기를 느낀다. 평상시보다 20% 상승된 공기가 담배계단을 감싸고 있다. 그곳을 통과한 땅게로스들은 다른 날과는 다른 기운으로 탱고 오나다의 문을 연다. 땅게로스들이 한 명씩 입장할 때마다 탱고 오나다는 슬쩍 그들을 바라본다. 땅게라들은 공작새처럼 황홀한 빛깔의 옷들로 정장을 하고 있고 얼굴에는 다른 날보다 훨씬 색조 화장을 강조한 모습이다.
탱고 오나다의 7월 셋째 주 금요일은 다른 금요일보다 훨씬 붐볐다. 성장한 땅게라들의 옷차림과 화장은 바 내부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만들었다. 그녀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향수 냄새는 다른 날보다 훨씬 진했다. 그 날이 무슨 날인지 모르고 탱고 오나다를 찾은 사람들은 이 미묘한 설레임으로 가득 차 있는 홀 내부의 기운을 감지하고 전율했다. 무엇인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11시가 되었다. 그 이전, 9시가 조금 넘자 탱고 오나다 마님이 입장을 했다. 그 이전, 7시 30분부터 탱고 오나다의 주방에는 탱고 오나다 마님의 후배 땅게라들이 생일파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일빵을 먹이자는 말도 흘러나왔지만 금방 들어가 버렸다. 마님의 품위를 생각하면 저자거리의 저급한 행동을 모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수 땅게로들은 정중하게 탱고 오나다 마님 앞에서 춤을 청했다. 마님은 우아하게 춤을 추었다. 히로를 할 때는 행복한 파도가 둥글게 주위로 퍼져나갔고, 땅게로의 다리 사이로 간초를 할 때는 새 울음소리가 맑게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11시가 되었다. 탱고 음악이 끝나고 더 이상 스피커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춤을 추던 땅게로스들은 제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불이 꺼지고 1825개의 촛불을 켠 케익이 홀의 중앙으로 걸어 들어왔다. 케익의 온몸에 촛불이 박혀 빈 틈이 없었다.
[우와, 은하수가 걸어들어오는 것 같아]
땅게라 한 명이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탱고 오나다는 정확하게 32초동안 정적이었고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고 믿었던 그 땅게라는 자신의 말을 모든 사람이 알아 듣자 얼굴이 딸기처럼 빨개졌다.
[벌써 1825살이 된거야?]
[탱고 오나다의 마님이 탱고 오나다에서 그동안 1825곡의 춤을 추었다는군.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것이니까, 1825개의 촛불이 켜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번에는 어느 땅게로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해설을 했다. 작은소리엿지만 다시 또 모든 사람의 고개가 끄덕였다. 어떤 사람은 1825곡의 탱고가 흘러나왔을 탱고 오나다의 마루를 바라보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 마루 위에서 각각 다른 느낌으로 1825곡의 춤을 추었을 탱고 오나다의 마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없었다.
그 자리에, 왕관을 쓴 공작새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깃털을 펴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땅게로들도, 다른 땅게라들도 자신의 꼬리에 숨겨둔 깃털을 펴기 시작했다. 땅게로의 깃털이 땅게라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화려했다. 1미터가 넘는 공작새의 깃털이 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어떤 땅게로의 깃털은 2미터가 가까운 것들도 있었다. 그 깃털들 속에는 매우 작은 눈이 달려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아니라, 얼굴에 있는 눈, 수많은 작은 눈들이 깃털 속에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탱고 오나다 마님의 생일파티가 열린 탱고 오나다의 금요일 밤 11시, 탱고는 멈춰 있었고 탱고 오나다에는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나왔으며 천정까지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로 가득 차 있었다.
[리만의 가설]에 의하면, 탱고를, 오직 탱고로만 쪼개어질 수 있는 절대수로 봤을 때, 땅게로와 땅게라로 분리되는 탱고는 더 이상 탱고가 아니며, 땅게로스들마다 무수히 변형 가능한 자유스러운 리베르 탱고 누에보 탱고도, 그러나 그것들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일정한 본질적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탱고 오나다의 위치는 탱고의 심장에 있는 게 아니라 심장에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사실은 그 근처에 잠복해 있는 어떤 기운에 존재하는 지도 몰랐다. 심장 근처의 근처의 근처의 근처, 심장의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심장과 하나가 되려는 안타까운 노력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며 사실은 심장 의 아주 미세한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존재하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 무엇,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는 어떤 기운은 사실은 절대적인 것의 절반의 에너지만을 갖고 있을 뿐이며 나머지 절반은 그 근처에 있는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하지만 확인할 수는 없는 어떤, 것에 스며 있는지도 모른다. 무더운 7월 셋째 주 금요일 밤 11시, 탱고 오나다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첫댓글 윗글의 장르는 픽션, 그리고 본문 내용은 특정 공간, 특정 인물, 특정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곧 탱고관련소설이 나올듯.......어제 뒷풀이 즐거웠습니다^^
오나다 가야 되는데... 지금 다 읽기엔, 시간이 없네요. 밤에 쭈~욱 읽어볼게요.^^
멋진 글, 스크랩 합니다 ^^
정말 멋지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