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정점에서
“북부리 팽나무가 저 멀리 바라보인 / 드넓은 충적토는 뒷그루 농사 잘돼 / 겨울철 비닐을 덮어 특용작물 키웠다 // 한때는 수박농사 주야로 땀 흘리다 / 요새는 당근 심어 시세만 살펴보다 / 하우스 철거한 들녘 벼포기가 자란다” 내가 아침이면 초등 친구들과 몇몇 지기의 카톡으로 날려 보내는 자작 시조 ‘우암리 여름 풍경’ 전문이다. 우암리는 창원 대산면 들녘 마을이다.
며칠 전 장맛비 틈새 잠시 날이 개어 무작정 길을 나섰다. 창원역 앞으로 나가 36번 마을버스를 탔더니 동읍 주남저수지를 둘러 대산 들녘 마을을 지나다 내린 곳이 우암리였다. 겨울철 비닐하우스에서 당근이나 수박과 같은 특용작물을 가꾼 논에는 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산골 마을과 사뭇 다른 농촌 풍경이라도 들녘을 걸으면서 고향이 떠올랐다.
계묘년 장마가 극점에 달하는 칠월 중순 일요일이다. 밤새 중부 이남 폭우가 쏟아져 곳곳이 물에 잠기고 산사태로 다수의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휴대폰에는 당국에서 보낸 재난 문자가 쉴새 없이 날아들었다. 서울에 사는 아들 녀석으로부터 아비가 외출을 자제하십사는 연락이 연이어 닿았다. 아내도 법회로 절집을 나가는 사이 내가 집에 있기를 바랐다.
날씨가 갠 날이면 산행을 나서 여름 숲속에서 영지버섯을 찾아내거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몸을 담그고 나올 수 있다. 비가 오면 행동반경에 제약이 따라 고작 집 근처 창원천 천변이나 용지 호숫가를 산책하는 정도다. 좀 더 정적 시간 활용은 도서관에서 엉덩이 무겁게 하루 내내 지내다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오면 된다. 몇 가지 경우의 수는 그때그때 상황 따라 달리 쓴다.
아내와 아들네 당부가 아닐지라도 이번 일요일은 강수 상황이라면 집에서 보낼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가 다니는 도심 도량에서는 제목을 달리하는 일요 법회가 오전에 이어 오후에도 열려 집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좋은 기회였다. 이런 정도면 굳이 책을 열람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 집에는 빌려다 둔 책도 몇 권 쌓여 있었다.
칠월 셋째 일요일 날이 밝아와도 구름이 낀 하늘에 강수는 계속되어 내가 보낼 일정에서 변경이 있을 리 없었다. 아내가 절집 나들이 치장을 하는 사이 나는 생활 속 남기는 시조를 엮어 카톡으로 넘겼다. 이후에는 내일모레 보낼 작품까지 미리 써 준비해 놓고 인터넷 날씨를 검색해 봤다. 오늘과 내일 날씨 상황을 시간대별로 살폈더니 호우 경보는 아니라도 강수 예보는 여전했다.
아내가 법회로 나간 이후 내가 머문 공간이 영혼을 안식과 침잠으로 들게 하는 절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일전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남도 젊은 시인이 펴낸 시조집을 읽고 경북 대구의 여성 한들댁이 조근조근 가사체로 집필해 들려주는 ‘내방가사 이야기’를 읽어내렸다. 실내는 적요에 쌓였고 베란다로는 빗방울이 튕겨와 창문을 닫아야 해 선풍기를 켜 더위와 습기를 날려 보냈다.
점심때가 되어 지난번 끓여 먹다 남겨둔 수산국수 다발을 꺼내 면을 삶았다. 국수 맛국물은 별도로 끓이질 않고 일전 외감 들녘에서 채집해 담근 돌나물 물김치로 대체했더니 알맞게 삭아 맞이 들어 한 끼 때울 만했다. 식후에는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았음에도 습관적으로 막대 커피를 한 잔 저어 마셨다. 상차림이 소박했기에 설거지는 간단해 물도 절약되고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창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침대에 몸을 눕혀 낮잠을 청해 봤더니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선지 잠이 오지 않아 책상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휴대폰을 펼쳐 갤러리에 담아둔 최근 풍광 사진을 펼쳐 시구를 구상하다 열어둔 노트북 인터넷으로 뉴스와 날씨를 검색해 봤다. 비가 그치면 찾아갈 몇몇 산자락을 물색해 놓았는데 영지버섯을 찾아내고 알탕으로 더위를 식힐 수 있으려나. 23.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