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143장 (구 141장) / 창세기 42 : 18 - 38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143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창세기 42장 18절 – 38절 말씀입니다.
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23.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24.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25.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26.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 곳을 떠났더니,
27.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지라.
28.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29.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되,
30.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엄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우리를 그 땅에 대한 정탐꾼으로 여기기로,
31. 우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확실한 자들이요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32. 우리는 한 아버지의 아들 열두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막내는 오늘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하였더니,
33.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확실한 자들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 중의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34.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 오라 그러면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요.
확실한 자들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35.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36.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38.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아멘!
요셉은 자기의 신분을 숨긴 채로 형들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다 베풉니다. 돈을 몰래 다시 자루에 넣어 주었어요. 뿐만 아니라 길양식까지 주었습니다. 이렇게 길양식을 따로 준 이유는 아마도 곡식 자루를 풀어보면 돈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할까 봐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곡식 자루를 풀어보지 못하게 양식을 따로 준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일로 볼 때, 요셉은 형들을 마음으로는 이미 용서해준 것입니다.
이런 요셉의 은밀한 호의 속에서 형들은 길을 떠났습니다. 곡식을 구했으니 당장 우리 모든 식구들은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도 있었겠지요. 그리고 돌아가서 인질로 잡혀있는 시므온의 아내나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하는 착잡한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어느덧 하룻길을 가서 밤이 되었어요. 그래서 객점 - 여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형들 중 한명이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곡식 자루 중 하나를 푼 것입니다.
그런데 돈이 자루 아구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겁을 해서 형제들에게 말을 합니다.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안 그래도 정탐꾼으로 의심을 받아 혼이 났는데 이제 엎친데 덥친 격으로 돈까지 훔쳐온 꼴이 되었으니 목숨이 위험한 겁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일을 행하셨는고 하고" - 이 말은 언뜻 들으면 굉장히 신앙적인 말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면 돈을 돌려주었어야지요. 그런데 돈을 돌려주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거든요? 그런걸 보면 이 말은 이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께 원망을 한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어쩌자고 일을 이렇게 꼬이게 하시나 말이야." 부정적인 해석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호의를 오히려 함정이 아닌가? 나쁜 뜻으로 도적 누명을 씌워 우리를 해치려는 속셈이 아닌가 하고 오해를 했던 것입니다. 참 재미있지요? 요셉의 선한 행위가 오히려 두려움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석했겠습니까? 세상에는 늘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늘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살다가 부딪히는 여러 사건들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입니까?
요셉의 호의까지 부정적으로 보고 염려하는 형들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의 호의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잘해줘도 이거 나쁜 의도로 잘해주는 척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까? 누가 설교를 해도, 누가 대표 기도를 해도 저거 나들으라고 하는 소리 아닌가? 나를 치는 기도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 영혼이 손해를 봅니다. 한번 침체에 빠진 사람들은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정탐꾼으로 몰린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일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었는데도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호의를 안 받으니 자기 손해지요. 그렇지만 내가 과거에 이 사람에게 부정적 인상을 준 적이 있나보구나 생각하고 널리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 요셉의 형들이 이렇게 자루 속에 돈이 있는 줄을 알고 걱정을 하면서도 29절에서 보면 그냥 가나안 땅으로 갑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보니 각자의 곡식자루마다 다 돈이 들어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야곱만 놀란 게 아니라 형제들도 또다시 놀랐어요. 한 자루인줄 알았더니 모든 자루마다 돈이 다 있구나. 그렇다면 곡식 값 중 일부만 안 준게 아니라, 하나도 돈을 안 준 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일이 단순한 게 아닙니다. 문제가 심각해 진거예요.
이러한 문제를 놓고 벧엘과 브니엘과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던 야곱도, 그의 체험과는 너무도 다른 비 신앙적인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잃었던 요셉과의 극적인 상봉으로 인도해 가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현재의 상황을 믿음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전혀 인간적인 방법으로 접근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당시에 야곱은 이런 일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앞길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 더 좋은 길로 항상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지 못하고, 공연히 탄식하고, 불평하고,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에게 의미 없는 고난을 결코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요즈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어떤 일들입니까? 여러분의 인생이 요즘 어려움을 만나고 있습니까? 뭔가 일이 꼬여가고 있는 중이 아닙니까? 그런 가운데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뭔가 일이 꼬여갈 때, 하나님이 내 인생을 꼬고 계시다고 느껴질 때,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를 놓고 계시는 중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게 닥친 답답한 일들이 전화위복이 될 것을 믿으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안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슬럼프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인생을 내 눈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해석하고, 내 인생의 조각을 짜 맞추어 가시는 주님의 놀라운 섭리를 체험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