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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 여름에게 고하는 안녕安寧.
審問之 愼思之 明辯之 篤行之
심문지 신사지 명변지 독행지
사랑채의 자그마한 격자창으로 중용을 읊는 선비의 음성이 나즈막히 흘러나왔다. 선비의 배려로 비스듬히 열어놓은 문틈사이로 보이는 중용의 사상을 득하고자 마주 앉은 작은 생도는 병판대감의 하나뿐인 여식 은아였다. 근래들어 한참 살이 올랐던 것이 지난달 앓았던 장염으로인해 언제그랬냐는 듯 갸름해져 막 영글은 과실처럼 보기좋게 발그스레한 빛을 띠었다. 가냘프지만 고운 어깨선이며 예년과는 달리 동여멘 저고리 아래로 봉긋하게 자리잡은 것은 천덕꾸러기에 불과하던 계집이었던 아이가 여인의 행색을 갖추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 덕에 작게 주억이는 고갯짓에서마저도 소녀의 것이라하기엔 이미 차고넘치는 기색이 흘렀다. 이는 뭍 사내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 사내만을 제외하고.
[물음할 것이 있느냐.]
앞서가던 휘도가 멈추어섰다. 은아가 바라다 눈길한것이게 의문을 가진이의 눈길이라 그리 착각한 것이었다. 원하기만 한다면 이쯤이야 능히 애둘러 답할만한 물음임에도 은아는 조금전 휘도의 등에 얼굴을 들이받았을때마냥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흔들리는 구슬 갓끈에 한 번, 사내의 얼굴 한번.그리 몰래,아주 조심스레 번갈아가며 시선을 둔것이 휘도에게는 더 신경이 쓰였던 모양인가 보다.
[아.그,그것이-]
결국 휘도의 궁금어린 질문이 은아를 옴짝달싹 못하게 족쇄를 채웠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휘도의 시선에 입만 벙긋벙긋대던 은아가 결국 고개를 푸욱 떨구었다.
이는 꼭 스승의 물음에 답하지 못 하는 것에 대한 당혹스러움만은 아니었다. 그저 마주한 사내의 눈길을 받는 것.아니, 그 마주한 사내가 휘도라는 것이 영글지 않은 작은 심장에서 피를 거세게 뿜어내게 만들었다. 무심한 듯 지켜만보던 휘도의 눈길이 붉어진 코끝을 매만지는 은아의 손길을 따라 삽식간에 찌푸러졌다.
[혹,아까 부딪힌 것 때문에 그런 것이냐?]
[예? 아,아니옵니다.]
[의원을 부르지 않아도 되겠느냐.]
[예! 소녀 정녕 아무렇지 않사옵니다.]
[조심하여 나쁠 것 없다. 나중에 의원에 보이거라. 알겠느냐?]
[스승님.소녀 정말 괜찮습니다.]
[내가 지금 의원을 불러야만 말을 들을 것이냐.]
스승의 협박아닌 협박에 더이상 반기를 들지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하였다. 이는 그동안의 그를 지켜본 바. 제 스승이 예는 예를 의미하게 하는 이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행여 그렇지 않다 한들 그저 자신을 걱정해주는 듯한 그의 다정함이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좋았다. 그 마음이, 그 다정함이 스승이란 위치에서 파생된 것이라한들 구지 그 원인을 따져 이 흡족한 마음을 애써 파하고 싶진 않았다.
은아의 대답이 만족스러운것이었는지 휘도의 낭영[朗詠]이 다시금 울려퍼졌다.
[학-문-사-변 널리 배우고,심도 있게 물음하고, 신중히 생각하고 명확하게 판단하는 일.이 네가지를 선을 기반으로 행하는 것, 중용에선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는 덕목이라 일컸는다. 이 다섯가지는 그 중 하나만 멀리하하여도 쓸모가 없으며,이를 멀리하는 것은 배우는 이의 자세가 아니라, 정자께서 그리 말씀하셨다.허나, 쓸모 없는 질문이라 할지라도 아무 물음 하지 않는 것 그것보다 어리 석은 것.허니 은아 넌 어리석은 이가 됨을 자처말고 무엇이든 물음 하여 보거라.그 물음이 응당 학문사변의 과정을 거치고 선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면 내 그의 맞는 답을 내어 줄것이다.]
[중용으로 정의 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스승님께선 그리 생각하십니까?]
소녀 누구보다 스승님 대해 널리 알았습니다. 여기 가슴을 가득 메운 그 생각으로 울적하여 그 마음을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으나 그 물음에 어느 것 하나 맺지 못하였습니다. 어리석기 그지없게도 소녀 답하지 못하겠습니다. 비님이 달음할까 두려워 그리하지 못합니다. 곧 여름날을 나리던 비님도 그랬듯 감추시겠지요. 여름이 지나면 어리석은 여인의 물음도 끝이 나겠지요. 이 마음이 무엇입니까. 소녀 도무지 그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진정 답이 있긴 한 것 입니까?
휘도가 들고 있던 서책을 책상위에 가만히 내려 놓았다. 이는 이제 심도 있는 질문을 하겠다는 익숙한 신호이기도 했다. 휘도의 반응에 은아는 마른침을 억지로 삼켰다.
[허면,그 물음이 선을 기반으로 한 것임을 증명할 수 있겠느냐.그렇다면 너에게 답을 내어주마.]
[스승님께서 방금 소녀에게 어리석은 물음을 하는 것보다 아예 물음하지 않는 것이 더 어리석다 그리 말씀하셨습니다.허니 어떤 물음이라 한 들, 배우는 자가 물음하는 것을 어찌 악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오니 선이라 불리움이 마땅하옵니다.]
휘도의 물음에 마알간 눈을 동그랗게 밝히며 생도의 혀로 대차게 되물음하였다.
은아는 언제나 자신을 놀래키는 재주가 있었다. 혹 자신이 이랬을 수 있을까 싶은 순간이 아주 여러번있었다. 여인이라하기엔 비범하여 넘쳐흐르는 것이요, 또 단순히 학도라고 불리우기만은 너무도 아까운 열이었다. 특히 양반가 높은자재들한테서는 눈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저 불타는 듯 새까만 눈. 휘도는 일전에도 저 눈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여인이 무슨 서책이냐, 제 어미에게 따가운 회초리를 맞으면서도 [소학]을 품에 안고 빼앗기지 않으려 울먹이던 어린 계집아이였던 은아에게서였다.그 맹랑한 눈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는 까만 눈. 여인이 된 지금에서도 그 눈은 놀라우리만큼 여전하다.
자신의 나이 열 일곱, 스승에게서의 마지막강의를 통보받은 날, 또한 한 가지 청을 받았더랬다. 여식의 스승이 되어달란 청...아비의 욕심으로 제 여식의 스승이 되어 달라 부탁한 말도안되는 청을 받아들였던 것은 비단 그가 스승을 존경하기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하여 스승에 대한 동정때문도 아니었고 거절을 쉬이하지못하는 본인의 성격 때문 역시 더더욱 아니었다.
모든 것은 저 눈,사람의 속내를 투영하여 보는 듯한 저 새카만 눈 때문이었다. 스승이 되어달라는 청을 거절하고 돌아서 나온 자신을 뒤쫓아 맨발로 뛰어나온 계집아이가 옷자락을 붙들고 소매에 매달려 외마디 없이 굵은 눈물을 쏟아내기 전까지 분명 자신의 마음이 완강했거늘. 어찌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알았다 그리 쉬이도 대답한것인지, 왜 그날 자신이 선비의 도(道)의 끈을 놓아버렸는지는 도무지 납득 불가능 한 일이었다. 그 지난 일을 잊고 지내다가도 저 검디검은 눈을 보면 불현 듯 그날이 떠오르곤 했다. 그렇게 여우비가 내려 처마를 적실때면 그는 모두 어미와 오라비를 잃은 것에 대한 동정때문이었다 그리 스스로를 자위했다.
허나 그도 오늘까지다.
일치감치 끝내려하였던 일이었다.그것을 실행할 계기가 장원급제때문이란 게 그리 내키진 않았지만 크게 중요치도 않은 것이니 그리 신경쓰지 않으려 하는 것이 잘못은 아닐터. 무엇보다도 자신을 억압하던 시원치 않은 나날들이 길면 길다할만한 삼년이란 세월이 지났왔고 그 종지부가 오늘이란것에 의의를 두고싶은 휘도였다.
이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눈을 들여다보며 그 깊이를 애써 가늠하려 하지않아도 되고 남정네가 아니라 여인임을 통탄하며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한 가지,좀전 제 스승의 마지막 청 오롯이 그것이 마음한켠에 걸렸지만 아직 벌어지지않은 일은 미리 걱정할것도 사대부가 할일은 아니지 않는 가. 일단 채증이 내렸으니 그것으로 됐다.
[어떠한 학문이라 한들, 모든 인(因)과 과(果)를 정의할 수 없다. 그것이 중용이라 한들 마찬가지라 난 그리 여기고있다.]
[허면 소녀가 인(因)을 청하면 과(果)를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인因)을 통하여 과(果)가 나온다면, 그것이야 말로 학문 중 학문이요. 그것이 배우고자 하는 학자의 선에 기초하여 있다면 이는 중용을 능가하는 정의(情意)이지 않겠습니까?]
휘도의 시선이 창틀을 통해 부서지며 들어오는 햇살에 닿았다. 의도적인 피함이라기 보단 검은 눈을 마주하지 않기 위한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렇게 휘도는 햇살보다 가벼이 운을 떼었다.
[여름이 지나가는 것은 본디 가을의 정의(情意)일 것이다.]
[…]
[점점 해가 짧아지는 구나.]
[…무엇을 말하고자 하심입니까?]
[나는 이제 궐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니 오늘이 내가 너의 스승으로 머무르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
[그것이야 말로 예기치 않은 인(因)이니, 사람의 스치는 연이야 말로 중용으로 답할 수 없는 것이다.]
스치는 연, 당장의 헤어짐을 말하듯,실타래에 메어진 연마냥 그리 쉽게 이름함에 은아의 얼굴에 여름을 보내는 것보다 더한 두려움이 내려앉았다. 지금 이 상황을 납득할 만한 학식은 누구도 가르친 적도 가르침 받은 적도 없었다. 어떠한 표정을 지어야하는지 은아는 알 도리가 없었다.
결국 그 총명하던 눈빛이 무지로인해 그 빛을 잃었다.
[지금 궈,궐이라고 하셨습니까?]
[곧 주상전하께서 부름이 있을 것 이다.]
[진정 궐로 들으시려하십니까?]
[허면 내가 너에게 거짓을 말하겠느냐.]
[이리도 빨리 말입니까?]
[스치는 연이 태반 그렇지 않느냐.쏜살같은 연의 인(因)이 그러하니 과(果)는 인지상정 우리의 연이 여기까지인게지.]
휘도는 자신의 인과 과에서 '은아'를 철저히 배제시켰다. 그 덕에 가을이란 정의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없이 벌거 벗겨진 은아의 속내는 초라하게 곤두박질 쳤다. 단 한번도 상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혹여 있을 그러한 일들을 대비해 상상하고 또 상상하며 제 마음을 단련시키곤 하였던 은아였다.
헌데 궐이라니, 하필이면 궐이라니. 남녀의 신분차 보다 넘기힘들다 던 것이 궐이라 하던 소문이, 그 형체 없이 발만달린 것이 스치는 연을 어느때보다도 빨리도 앗아감에 은아의 눈가가 붉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단 한번도 생각해본적도,본 적도 없는 스승의 낯설은 눈빛이었다. 함께 지나온 날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삼년인데, 마주한 스승은 마치 세식경을 본 것 마냥 낯선 이처럼 자신을 그리 보고 있었다.
어찌 그리 매정하십니까?
소리 없는 물음이 휘도에게 들릴 리 만무하였다.그저 선비의 시선은 야속히도 저물어가는 붉은 빛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게 흘러가는 여름을 그리 듯 한참을 노을을 바라다 보던 휘도가 입을 열었다.
[여름을 보내두면 겨울이 오겠지.]
[….]
[허나 봄 바람 불어와 지천에 꽃이 만개할즈음이면 길었던 겨울이 한 없이 짧게 느껴질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는 여름은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하오나 또 여름이 올 것입니다.]
[필시 올 것이다. 여름을 잊게 할 봄이. 이 정의야말로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선(善)이다.]
휘도는 마지막 말을 마치곤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여인의 눈길이 선비를 마주하지 못한 채 그림자께로 떨어졌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얼굴. 마음껏 마음에 품고 싶으나 그리하면 그 얼굴을 마주하기라도 한다면 제 마음이 제멋대로 튀어나와 버릴 것 같아서, 그때의 그날처럼 소맷자락을 붙들어 버릴 것같아 은아는 그저 그림자를 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대신했다. 쏟아낸 마음만큼은 찬 냉골에 뒹굴도록 두고 싶지 않은 스스로를 위한 배려였다.
소녀 여름만 있는 곳이 있다 뱃상인들에게 그리 들은 적 있습니다. 허면 가을이 오는 것이 꼭 자연이치의 정의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휘도는 잘있으란 마지막 고함 한마디 없이 그렇게 문을 나섰다. 걸음을 옮긴 이의 등 뒤로 지독히도 시린 겨울 바람이 들어왔다.
[내 너의 글선생은 새로이 찾아 보마.]
그와 함께 문틈사이로 스며들 듯 드는 마지막 말이 선비의 선(善) 함께 남아 여인을 슬피 울렸다.
* * *
[전하, 소신 감히 청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말하라. 침묵하던 남자가 어렵사리 운을 떼었다. 진홍색 곤룡포를 걸친 이는 조선의 뿌리라 불리우는 이 본(本)이었다. 조선국의 주인(主人)이라 불리우는 이. 허나 어쩐일인지 그 모습이 여느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가 어렵사리 낸 말 역시 천하를 호령하는 자에게서 나온 것 이라 하기엔 그저 작은 탄식에 불과한 것 이었다.
외솔은 그런 본을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구지 그의 얼굴을 마주해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려하지 않았다.그저 그의 발치에 몸을 굽히는 것으로 괴로움을 대신했다. 일배가 끝날즈음 다시 몸을 일으켜 또 다시 몸을 조아렸다. 정확히 네 번. 네 번 그렇게 하였다. 첫째는 군에 대한 신의 예요, 둘째는 신(臣)되는 자의 불충의 사죄요, 셋째는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는 그런 신의 안타까움이요, 그리고 마지막은 절친했던 벗에게 고하는 안녕(安寧)이었다. 네 번의 배가 끝났지만 일어날 기미 없이 그리 한참을 차가운 바닥에서 부동(不動)하였다.
우리의 끝이 정녕 정녕 이리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까,
본은 눈 앞에 조아린 자의 어느새 희어져 버린 머리칼에 가슴께에 일렁이던 말을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역함과 함께 삼켰다. 본은 속을 들끓이는 그 수 없는 원망들을 곤룡포속에 그대로 머무르게 두기로 하였다. 충신에 대한 나약한 군의 도(道)이자 그 한마디에 무너져버릴 충보단 나약한 자신을 너무도 잘 아는 주인의 이기심이었다.
[모든 일이 그저 엊그제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스승님.]
[스승이라니 당치도 않사옵니다.전하 부디 거두어 주시옵소서.]
[내 그대의 깐깐함은 익히 아나, 오늘은 그대를 그리 부르고 싶습니다]
[전하...]
[내 그리 하고 싶습니다.]
군신[君臣], 특히 한 나라의 국본이 엮일래야 엮일 수 없는 것이 사제지간 일진데 왕은 망설임 없이 외솔을 그리 이름하였다. 외솔과의 연은 정확히 이십육년 전 지독한 풍파와 함께 꼭 이맘 때 궐을 건너왔었다. 성종 제위 10년, 왕세자 책봉이 있기 불과 나흘 전 본의 아버지였던 성종이 갑작스레 비소에 의해 시해당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 국민장을 채 마치기도 전인 12월 어느 날, 대왕대비의 명을 받은 이가 중전의 방에서 비소를 찾아내었고 중전은 왕을 시해하였단 이유로 사약을 받았다. 어미와 아비를 모두 잃은 그 때, 그 때가 본의 나이 여덟이었다 .
모진 풍파도 잠시 권세에 눈이 먼 대비로 인해 꼭두각시 세자를 앞세운 수렴청정이 무려 7년동안이나 이루어졌다. 당연지사 그런 본의 곁엔 누구도 머무르지 않았다. 행여 대비의 눈에 나 엄한 일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였고 철저한 서열에 따라 살아가는 궁내의 위계질서이기도 하였다. 그 위계질서는 비단 남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사촌들 역시 대비의 눈에 들어 새로운 세자 간택되지나 않을 까, 대비전을 들락거리기 일쑤였고 그의 눈 밖에 나는 일을 구지 하려고 들지 않았다. 어차피 왕의 친척이 됨에 있어 가족애는 자동적인 소멸이었으니 이를 슬피여기진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자신의 밥에도 비소가 들어있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이었다. 본은 여덟살 어린 나이에 매일의 두려움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사랑받던 세자에서 철저히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 본이 처절한 나날을 보낸 지 꼭 이년 째 되는 해 장원으로 입궐하였던 그를 처음 대면했다. 이후 외솔은 과감히 출세의 길을 버리고 세자의 글선생을 자처하여 들어왔을 때. 본은 그가 대비가 보낸 첩자이어도 괜찮다, 그리 생각했다. 아니 그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보내어진 살수라 한들 죽는 순간에 자신을 품어줄 누군가가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리여겼다. 대왕대비의 압박과 생면부지 혼자 남겨진 궁안에서 아비가 되어주고 어미가 되어주고 스승이 되어주고 벗이 되어 준 외솔, 훗날 그는 충성켔다 다짐한 신(臣)이 되고 그런 충신의 군주(君主)가 되었을 때, 본은 외솔의 품에 안겨 엉엉 목놓아 끊이지 않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십육년,그 세월을 함께 보내는 외솔을 보며 본은 가끔 도포를 걸친 어깨가, 기억저편으로 희미해져가는 아버지와 닮았다 그리 느낀 적 있었다. 또 그의 야윔이 시리도록 가슴을 후벼판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본은 몇 번이고 후회했다. 그리고 그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그를 두고자 하였던 스스로를 질책했다. 아내를 잃고 그저 딸과 더불어 살아가겠다 그리 간청하던 재혁을,뒤로한 것이,욕심이라곤 털끝만치도 없는 사람을 어명이란 이기심아래 두려함이, 기어코 이렇게 화를 불러오고야 말았다. 이리도 야속하게.
[전하를 모시게 되어, 소신 크나큰 영광이었습니다 부디 만백성의 아비가 되시어 태평성대 하시옵소서.]
[이리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옵니다.그러니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내 이일을 꾸민자들을 모두 발곤색출 한 것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도 있는 법이지요. 그저 조금 일찍일 뿐이옵니다. 전하께선 이 나라의 국본이십니다.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옵소서.]
[……차라리]
[….]
[살려달라, 내게 그리 청하세요. 청으로 보내 달라 내게 청하세요, 그럼 그대와 그대 여식을 청으로 보내리다. 내 그러리다.]
외솔은 지그시 마디마디가 갈라져 부르튼 양손에 나약한조선을 품었다.그리곤 가슴에 품었다.
[이리 장성하셨습니다. 선왕전하께서 보셨어야 했습니다. 이리 장성하신 모습을요.]
[어찌, 어찌 이리 마르셨습니까]
[전하. 마음을 굳건히 하세요. 지키고자 하시면 다른 것을 수 없이 잃을 것이옵니다. 그러기엔 전하께선 잃을 것이 너무 많으신 분이십니다.]
[저,저를 용서하시겠습니까?]
[어찌 소신에게 불충하라 하십니까?]
지난날의 기억과 함께 아스라져오는 헤아릴 수 없는 부정에 기어코 역한 숨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처음 군과 신이 되었던 그때처럼 조선은 무너졌고, 아비의 품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이에 지켜보던 신하들은 저마다 병풍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를 적어내려가던 필사마져 놀리던 붓을 멈췄다.
* * *
둘째 달 보름, 꽉 찬 달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정전으로 기울어버린다. 보름이라는 기다림의 무게가 고스란히 곤룡포위로 내려 앉았다. 벌써 닷새 째 지속되고 있는 싸움에 어느누구 하나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영의정의 깊게 패인 표정과 실료들을 보아하니 분명 오늘을 넘기지 않을 심산이었다.
[물러가라 하질 않느냐! 어명이다!]
[전하! 병판의 죄가 이리도 낯낯이 밝혀졌음에도 어찌하여 역적을 품으시려 하십니까! 사병을 모아 반란을 도모하였던 자이옵니다! 그의 가산을 적몰하고 삼족을 멸하심이 마땅하옵니다. 동촉하여 주시옵소서!]
[어명이라 하지 않느냐! 내 그 목을 쳐야 멈출것이야!]
[전하, 동촉하여 주시옵소서!]
[동촉하여 주시옵소서!]
외솔에게 반란이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헌데도 이 밑도 끝도 없는 일은 본의 자리를 위협하려 벌였던 군란을 도모했던 자들의 명부에서 외솔의 낙관과 필서가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는 영의정이 사람을 고용해 조선팔도에 제일이라 하는 유명 필사쟁이들을 모아 벌인 일이라는 것은 이미 날 대로 난 파다한 소문이었다. 허나 언제든 자신의 낙관이 그 명부에 찍힐 지 모를 일. 설령 외솔의 편에설 이가 있다한들 영의정에게 반기를 들어 미움을 살만한 포부를 가진 이는 조정에 없었다. 모두 몸을 사리며 그렇게들 영의정의 뒤로 줄을 섰다. 그것이 결국 밀고들어와 조정에 선 것이다.
시간이 더 남았을꺼라 여긴 것은 본의 크나큰 실수였다.
<스승님, 제가 스승님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소신 하나 남은 피붙이 여식이 있습니다. 그 아이를 남기고 갈 수 있도록 ,부디 소신에게 조금의 나흘의 시간을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본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최대한 오래 시간을 끄는 것.씁쓸하게도 현재로썬 그것 만이 자신이 충신에게 줄 수있는 군주로써의 최상의 도(道)였다.
부디 빨리 도망하라.
[전하! 동촉하여 주시옵소서!.]
[동촉하여 주시옵소서!.]
신하들의 소리가 늦 여름날의 매미처럼 소란스레 사정전을 가득 메웠다. 궁에도 여름이 지나가려 하고 있었다.
* * *
[참으로 아버지가 그러셨느냐?]
[어찌 쇤네가 거짓부렁을 하겠습니까.]
[이리 늦은 시각에.너도 알다시피 아버지께선 단 한번도 윤허하지 않으신 일이 아니더냐.]
[소신도 연유는 모르겠습니다. 아가씨께 이도령님에게 직접 이 서찰을 전하라, 제게 똑똑히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번을 되물어도 여간 의심스러웠다. 향단이에게 할만한 물음은 아니었기에 그러셨느냐 하곤 고개를 끄덕이곤 말았다. 야속하리만큼 언제나 휘도와의 거리를 유지시켰던 분이 아니었는가. 행여 이판대감집 앞을 지나지도 못하게 당부하고 또 당부하여 조심 또 조심 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래서 지난 삼년을 단한번도 이판대감댁 문을 밟은 적이 없던 은아였다.
시체도 썩기 시작하려면 사흘이 걸린다 하였거늘 사람마음이라고 다를까. 휘도가 마지막을 고하고 간 것이 고작 사흘이었다.벌써 이리 마음이 아픈데 가까스로 추스렸다 여긴 마음에 새살이 돋기라도 하면 그리 되어버린다면 도무지 견딜 자신이 없는 은아였다.
대체 얼마나 중한 서찰이기에-.
한숨을 크게 몰아쉬며 전해받은 서찰 봉투엔 희안하리만큼 진한 낙관이 찍혀져 있었다. 향단이 물끄러미 서찰을 들여만 보는 은아가 답답했는지 슬쩍 어깨를 대문쪽으로 밀었다.
[급히, 전해야 한다 하셨습니다. 얼른 갈 채비를 하셔요.]
[내 잠시 아버지를 뵙고 갈 것이야.]
[대감마님 지금 궐에 출타중이십니다.]
[전하의 부름이 있으셨느냐?]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요,]
[알았다, 알았어, 지금 가, 내 두루마기를 챙겨갈 것이…]
[여기.]
향단의 팔에 걸린 것은 은아가 즐겨 쓰는 연분홍빛 두루마기였다. 향단의 채근에 두루마기를 걸친 은아가 옷매무새를 다잡았다.정말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저 연모하는 이의 얼굴을 마음에 품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생각만으로도 아득해져오는 정신을 다잡기위해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래,앞장서거라.]
기필코 눈물짓지않고 그 모습을 마음 껏 품으리라.
불지기 하나 없이 그리 대문을 나섰지만 급한듯 서두르는 향단에 은아는 구지 그 연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가슴폭에 담은 은장도의 여부를 확인코자 가슴께를 쓸며 그 뒤를 따랐다. 이미 한참을 앞서가는 향단의 보폭을 맞추고자 발걸음을 급히 옮겼다.
송골터쪽으로 칠십보, 고렷적부터 있었다는 명물교인 여선교를 지나 예순다섯보.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그저 옛적부터 있었던 이 마을의 대들보 느티나무를 돌아 아흔일곱보. 이판대감댁까지 한시도 잊어본적 없던 길이었다. 비록 성장되어감에 따라 거릴 거니는 보폭이 줄었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대감댁 앞을 거닐면 혹여 마주칠까 싶었지만 모질게도 그랬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이리도 가까울진데-.그 먼길을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는 다신 오지 말아야할 곳이 되어버렸다.잔인하게도
어두운 밤의 정적을 깬건 향단의 대찬 문고릴 흔드는 소리였다.
[안에 계십니까! 계십니까!]
술시(戌時,19시~21시), 늦은시간은 아니었으나 누구의 집을 방문할만한 시각은 더더욱아니었다. 행여 불호령이 내려지진 않을까 마을 조리며 향단이 다시금 문고리를 잡으려던 순간이었다.
[뉘시오.]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안에서 희미하게 세어나왔다.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하얗게 머리가 센 노파가 나왔다. 깐깐하기로는 둘째가 서러운 소문난 장수였다. 이판대감집의 모든 허드렛일부터 곡간관리까지 모두 통틀어 맡고있는이라 그리 들었었다. 어린날 몇번 마주친적은 있으나 언제보아도 낯선듯한 얼굴이었다.그도 은아가 누구인지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병판마님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이밤에 여인이 어인일로 납시었습니까 .허나 밤이 늦었으니 날이 밝거든 다시오십시오.]
[자잠시!그러지 마시지요.꼭 이서찰을 전해야합니다 아씨, 뭐라 말씀 좀 해보셔요!]
문을 붙잡고있는 향단의 손을 빤히 바라보는것을 보니 곧 손을 내치고 문을 닫을 기세였다. 언뜻 비친 호롱불에 장수의 턱께에 난 긴흉터가 비쳤다. 그가 대감댁에 오기전에 무인이라던 소문은 그저 들리던 비단 소문이 아님이 자명했다. 흠칫 놀란 향단은 애써마음을 가다듬었다. 제 뒤에 바짝달라붙어있는 아씨때문에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했다. 그 모습에 결국 은아가 한발짝 앞에 나섰다.
[정녕 안되겠는가? 대감마님이 곤란하다면.휘도도련님을 뵐 수 있겠는가? 분명 답을 주실걸세.]
향단을 막아선 은아의 말에 장수의 눈썹이 씰룩였다. 어디선가 본듯 낯설지 않은 모습때문이었다.
[함자가 어찌되십니까.]
[병판대감 송재자 혁자 되시는 분이 내 부친이시네.난 송은아라고하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밖에 누가 왔느냐.]
노인의 의심의 눈초리가 그 꼬리를 내리던 찰나, 안간문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고도 익숙한, 미세하다못해 희미했지만 분명 매일밤 낮을 그리던, 탓하던 목소리 휘도였다.
[병판대감댁 아씨가 들르셨습니다,마님께 급히드릴 서찰이있다 그리 전하라 하십니다.]
[지금 누가왔다 하였느냐?]
[명자가 은아라고 하였습니다.]
[문을 열어라.]
마치 엄포처럼 들리는 음성에 굳게 닫혀 작은빛이 세던 문이 열리고 어두워서 안이 잘보이지는 않았지만 장씨는 객에게 들어오라 손짓하는 듯 했다.이에 은아가 다소곳이 몸을 낮추며 들어왔고 향단 역시 그 뒤를 따랐다. 가벼운 목례의 끝엔 여느때처럼 한치에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서있는 휘도가 서 있었다. 갓을 벗었음에도 게의치 않은 듯 물었다.
[이 밤에 어인일로 여인이 발걸음 하였느냐.]
[서찰을 대감마님께 전하라는 아버님의 명이있어 소녀 이리 실례를 무릅쓰고 발걸음하였습니다.]
은아에게서 서찰을 받아드는 휘도의 눈길이 낮게 가라앉았다.
[별 다른 말씀은 없으셨느냐?]
[예.저도 그저 이아이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두어날전부터 들리지않더라니 설마.아니다. 아닐 것이야.
은아는 한참을 부동하는 휘도를 마주하곤,한 없이 깊은 마음에 그를 채우고 또 채웠다. 허나 이대로라면 결국 흘르고 넘쳐 눈물이 되어버리리라. 허니 흘러넘치기전에 이제 이별을 고해야만한다. 은아가 옷단을 세게 움켜쥐었다.
[소녀,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잠시,사랑채에 가있겠느냐.]
[예?]
[내 아버님을 뵙고 마중을 할터이니.]
지난날 스승이 말한 바람이 기어코 휘도의 마음을 묶고 은아를 엮었다.
[아닙니다,저는..]
[말대로 하거라.]
[허나...]
[스승은 하늘이라 그 말에 백번이고 천번이고 수긍한다던 학도는 지난 날에 머무른 것이냐?]
휘도의 짙은 눈동자가 은아를 채근했다. 원하는 대답을 듣겠다는 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가 병판댁을 제 집 드나들 듯 다닌 일이 자신때문이기에 은아가 이 집에 머무른다 한들크게 궤념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누군가 은아가 들은 것을 보아 도성바닥에 소문이 날 시간이 아니었을 뿐더러, 무엇보다 지난날 스승의 청을 고려할 때 조심하더라도 나쁠 것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구지 스승을 운운하며 은아를 묶어두었다. 이유야 어떻든 무엇이든 이미 휘도에겐 차고 넘치는 연유가 되었다. 늘 그랬듯 결국 은아는 작게 고갤 끄덕였다.
[장도수 사랑채에 잠시 안내해드리거라.]
[예, 따르시지요.]
은아는 휘도에게 다시금작게목례하며 채근하는 장도수의 뒤를 따르며 안채로가는 휘도의 뒷모습을 몇 번이고 돌아다 보았다.
* * *
<은아를 부탁하네. 내 부인얼굴은 봐야하지 않겠는가. 너무 슬피 여기진 말게나.>
서찰을 읽어 내려가던 휘도가 구기 듯 서찰을 움켜쥐었다.그리고 지난날의 부탁이 다시금 머릿속에서 아스라졌다. 결국 불러도 답 없는 지난 기억이 고민도 갈등도 아닌 황망함이 그 자리를 채웠다. 어찌해서 이리도 이르게.끓는 속에 불을 지펴보지만 남는 건 결국 장작일 뿐. 결국 다시 그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의 이 치밀어오름이 누군가는 생사의 기로위에선 억울함일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아버지.군주의 곁에 있는이의 끝이 모두 이러합니까?]
[휘도야.]
[어찌하여 매번 그래야 하는 것입니까?]
[세상지사 살다보면 다들 자신의 삶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것이 짧다하여 통탄할 수 없고 길다하여 버릴 수도 없는 것이지. 허나 살아가며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있다. 그중에 첫째는 어명이고 그 둘째가 천명이다. 허니 이 두가지에 묶인 자는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빠르지 않겠느냐.]
재황의 선비와도 같은 차가운 말에 휘도가 잠시 할 말을 멈추었다.
[소자.아무것도 버리지도 잃지도 않을 것입니다.]
[휘도야.]
[스승님의 누명을 벗길 것입니다.]
잔뜩 구겨진 서찰을 상위에 내려놓는 휘도의 음성에 이판의 얼굴이 괴로움으로 변했다. 그 끝을 너무도 잘 알기에 자신마저도 피한 일이었다. 제 자식을 지키기 위해 집안을 지키기 위해 결국 마다하여 벗을 잃는 것으로 무마하고 말았던 자신이었다. 외솔에게 온 서찰을 받는 그 짧은 순간에 은아를 청국으로 보내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일이었다. 행여 제 자식이 그 길을 택한다면 돌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 볼 요령이었다. 허나 이를 휘도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러니, 그때까지 제 곁에 두어야 겠습니다.]
구지 누구라 말하지 않았지만 재황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세어나왔다.
[훗날 아무것도 소유할수 없게 될 것이다.그래도 괜찮겠느냐?]
[...]
[어리석은 일이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
[피우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말이다. 이는 피운다한들 다시 지게 할 수 없고 열매를 맺는다 한들 거둘 수 없을 것이다.그리하지 않겠다,그리 약조하거라.]
[소자.심지..않을 것이옵니다.]
[휘도야...]
언제나 작정한 일은 이루고야 마는 이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였기에, 아들의 굳게 다문 입술이 무엇을 말하는 지 너무도 잘 알았기에 군장에 선 듯한 제 아들과 그 앞에 깔린 돌밭을 내다보며 그저 통탄스러울따름이었다.
[소자,그 아이와 함께 입궐하겠습니다.]
바라만 보던 재황은 휘도의 손에서 서찰을 받아 들어 조심스레 초심지에 가져가 데었다. 불이 옮겨 붙어 서찰을 모두 태우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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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시작될 도은커플의 쉽지만은 않은 사랑이야기!
많이 사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