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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벗이라는 이름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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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어찌 사내대장부가 한입가지고 두말을 하시여요.분명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어허,거 보래도 휘도. 끝까지 날 들 볶을 거라 하지 않았 나.]
계속되는 은아의 성화에 성준이 다과를 들고 있는 휘도에게 한탄하며 말했다. 휘도는 차를 마시며 그저 말 없이 웃었다.
[욘석아. 그리하였다가는 날에 아버지께서 내 다리몽둥이 부러뜨리실 것이다.네가 기여코 그 꼴을 보아야 하겠느냐?]
[그리되면 내가 오라버니를 엎고 다닐 터이니 걱정 붙들어 메셔요.어서,어서 나가요! 네? ]
[스승이란 자가 이리 두고만 볼 것 인가? 자네가 어떻게 좀 해보 게.]
[여기서 어찌 스승님을 부르십니까!]
[네 사정이 기이하고,내 사정이 이리 딱하니 그러지. 아니 그런가 휘도.]
차를 음미하던 휘도가 자신은 이 일에서 빼달라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지는 싸움에 괜한 힘을 빼지 말라 말하려다 그저 울금차로 목을 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스승님, 스승님께서 사내대장부의 말은 곧 일낙천금(一諾千金.한번 승낙하면 그것이 천금과 같다는 뜻)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내 그리 말하였다.]
[허면 약조를 지키지 않는 이는, 사내대장부가 아니란 말씀이지요?]
자신을 향해 묻는 은아의 맹람함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리고 앞으로 그려질 상황이 눈 앞에 뻔히 내다보였다. 휘도는 저 새카만 눈에 이는 총명한 빛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내어 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눈빛. 정작 본인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는 듯 했지만 그것은 은아만의 특별한 능력이었다. 그에 더해 사리를 분간하는 능력과 상황을 살피는 통찰력, 오목조목 제 할말을 하며 따지고 드는 말본새는 상대를 원하는 만큼 쥐락펴락할만큼 영특했다.
휘도는 확신했다.성준 역시 끝끝내 원하는 것을 내어 줄 것이라고.자신이 아는 성준은 제 동생을 위해서라면 쓸개라도 내어줄 위인일테니까.
[그래,내가졌다!가자,가!]
결국 성준은 은아에게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신이난 건 은아뿐이었다.
[정말이지요?소녀 차비를 하고 오겠습니다.어디 가시면 아니됩니다.]
[알겠다.]
[오늘은 도망하지 아니한다 그리 약조하셔요.]
[약조하마. 너야말로 아버지께는 절대 비밀이다.알겠느냐?.]
성준의 말에 걱정말라는 듯 빙그레 웃어보이는 은아.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한 성준에 살포시 안기었다가 떨어진다. 그리고는 늦어지기 전에 차비를 하고 오겠다며 안채로 바삐 뛰어갔다. 매번 누이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면서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은아의 뒷 모습을 보는 성준의 서글한 눈매에도 웃음기가 한가득 번져있다. 그리 정신없이 은아를 보내고 나서야 자신이 손님을 초대해 다과회를 갖고 있었음을 깨닫고는 넉살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다과상 앞에 앉았다.
[아이고 미안허이. 우리 남매가 늘 이렇게 정신이 없다네. 자네가 이해할 거라 믿네.워낙 고집이 센 녀석이 아닌 가.]
[좀 과한 약속을 한 것 아닌가.]
[무엇이…,아.]
[여인에게 말타기라니.]
휘도의 말에 성준이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자네는 내가 무슨 꼬득임에 꿰여 이리되었는 지 상상조차 하지 못할걸세.]
[상상하고 싶지 않네.]
[이리 무정하지 마시게.글쎄 은아가 내 책고에서 구운몽을 찾아낸 것 아니겠는 가. 그것을 가지고 저리 내 큰 비밀을 움켜쥔 냥 굴며 말타기를 가르쳐달라 하루 종일 떼를 썼다네.내 집안에 밀서를 숨기기에 그만한 곳은 없다 여겼거늘….]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하던 성준이 잔을 들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나는 말일세. 가끔 아버지보다 저 녀석이 더 무섭다네.]
[누이가진 오라비가 다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니 자네가 지켜주게.]
[큭. 콜록콜록.]
휘도가 당황하여 넘기던 울금차를 성준에 옷자락에 그대로 뿜었다. 그 끝에 사래가 들려 한참이나 입을 막고서 쇤소리나는 기침을 뱉어내야했다. 당황한 휘도와 달리 성준의 표정은 차분했다. 이에 휘도는 기가 찼다.
[자네….]
[그것이 그리 어려운 부탁이던가.]
[혹,남색에 관심이.]
[풉. 지금 무어라 말하였나?. 남색이라니! 말조차 입에 담지도 마시게.어찌 여인네들이나 즐길법한 소릴 입에 담는 가.자네와 내가…으으.소름이 다 끼치네.]
[흠. 아님 되었네. ]
질색팔색 시시각각 변하는 성준의 얼굴표정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허면 무엇을….]
[은아 말일세.]
[…]
[혹여 내가 곁에 있어주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
[그때 자네가 나를 대신해서 지켜주게.]
[…]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 아닌 가.할 수만 있다면 자네가 그리 해주게.]
휘도는 한참을 대답이 없었다. 그저 쉬이 웃으며 대답하려다 그 말을 하는 이의 모습이 하도 진지해 웃음기를 가신다.
[그럴 일이 올리 없지 않은 가.]
그렇겠지?.자신이 괜한 염려를 했다며 굳어진 얼굴을 풀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이리 진지한 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성준이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가 싶더니 푸르름이 만개한 산등성이를 따라 눈길을 옮기다 말고 지그시 휘도를 돌아다 봤다.
[그 소식 들었는 가. 목시골에 목단이 흐드러지게 폈다하더이. 청명한 하늘도 그렇고 어느하나 틀어짐이 없지 않은 가.]
울금차를 입에 머금던 휘도가 이에 단호히 답했다.
[괜히 날 공범으로 만들 생각일랑 말게.]
[어허,이 눈치 빠른 녀석. 됐네. 되었어.기대도 하지 않았어!.]
휘도가 작게 웃었다, 성준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 * *
[도련님,도련님!]
[이제 왔느냐.]
[쇤네 여러번 불렀습죠.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아주 옛날이야기를 생각하였다.아주 옛날이 되어버린 이야기. 마루중턱에서 내려선 휘도가 말없이 신을 고쳐신었다.
[준비는 다 되었느냐?]
[예.말씀대로 말 한필을 대령하라 일렀습니다.]
[입궐을 하면 지금처럼 자주 보진 못하겠구나.어머니를 잘보필해드리거라.]
[예.걱정마십시오.]
[어머니는..]
입궐을 하면 족히 스무날동안은 궐사정을 학습하고 적응하느라 집을 찾을 수 없을터이니 문안을 여쭙고 떠나는 것이 마땅히 자식되는 자의 도리였다. 도수가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이를 괄시하여 넘길뻔했다며 스스로를 자책하며 주위를 둘렀다. 희한하리만큼 조용했고 고요하게 느껴질만큼 적막했다. 그러고보니 이른 아침녘부터 수 없이 드나들던 몸종들의 걸음조차 눈에 띄지 않더라니.휘도는 그제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를 알아치린 눈치빠른 장도수가 휘도를 대신해 선수 쳤다.
[마님께선 관절에 좋다하는 온천이 있어 몸종과 해천으로 발걸음하셨습니다.]
아-.
도수의 말에 은아와 함께 입궁하는 걸 극도로 반대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며 괜히 혀끝이 씁쓸해져옴을 느꼈다.마음이 편치 않은 어머니가 마음이 편치않은 아들과 마주하길 거부한 것 이었다. 하지만 제 자식에 대한 열화와 같던 마음은 떨구셨을지언정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정만은 버리지 못 하실분이니 분명 도수가 말하는 몸종은 향단일 것이다. 그 아이를 데리고가며 스스로를 위안 하셨으리라.
차라리 잘 되었다-.
문밖으로 걸음하는 동안에도 휘도는 자세한 연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감싸고 돌던 많은 것들이 변하였음을 묵묵히 받아 들였다.
[안녕하시었습니까.스승님.]
비단 변한 것은 제 자신의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인사를 하는 은아의 모습 역시 일전과는 많이 변모되어있었다. 늘 곱게 물들였던 비단천은 오간데 없이 보부상들이 즐겨입는 복장을 하고 제 앞에 서 있는 이가 정말 은아가 맞나 싶었다. 그에 더해 상투를 틀어 올린 머리위엔 작은 짚으로 얼기설기 섥힌 갓이 얹혀져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변한건 그저 어린 소녀같기만 하던 은아의 모습이었다. 말라서 인지 차림새가 그래서 인지 정확히 무어라 콕찝어 말할 순 없었지만 휘도는 이유없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향단이와 인사는 나누었느냐?.]
[아니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래.잘하였다.]
...아버지 생각이 또 날 것 같아 그러지 않았습니다.은아는 뒷 말을 끝끝내 꺼내지 않았다.제자라는 연유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죄인이란 신분으로 근심에 더해 짐마져 되고 싶진 않았다. 의지할 곳이 없어 너무도 억울하고 분해서 휘도의 손을 잡긴 하였지만 여인이란 약함으로 내비쳐져 그 무게를 더하고 싶진 않았다. 하여 꽁꽁싸맨채 더 씩씩하게 웃으며 말고삐를 잡았다.
[갈 길이 멀지 않습니까? 어여 출발하시어요.]
[그래,그러자.]
[헌데,어찌 말이 한 필 입니까?]
혹 준비가 덜 된 것이 아니냐는 은아의 물음에 도수에게 짐을 받아매던 휘도가 단호하게 답했다.
[내 너에게 말을 맡길 성 싶었느냐? ]
[네에?허면 소녀에게 삼십리길을 걸으란 말씀이십니까?]
[네 눈엔 내가 그리 모진 놈처럼 보이더냐.]
[그것이 아니옵고.. ]
말을 오르는 휘도의 모습에 은아가 뒷말을 흐렸다. 이대로 자신을 버리고가는 농을 하려는가 싶어 말고삐를 더욱 세게 잡았다. 이를 위에서 물끄러미 보던 휘도가 소리 내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표정이 볼만하구나.]
성준이 말타는 것을 가르쳐주겠다하고는 곶장골에 은아를 버리고 온 일에 대해 무용담처럼 떠들어 대던 것이 기억이 나서였다. 겁을 먹은 은아의 표정이 제 오라비가 했던 무용담이 마냥 허황된 것 만은 아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은아는 아직도 파악이 잘 되지 않는지 눈알만 멀뚱히 굴리며 휘도를 올려다봤다. 아니 제 스승의 크게 웃는 모습이 하도 진기하여 하염없이 올려다 보았다. 큰 눈매가 예쁜 반달처럼 접혔다 펴지는 것이 마치 닫혔던 하늘이 열린냥 그리 넋을 놓고 올려다 보았다. 자신때문에 잃어버린 웃음이었기에 한 없이 반가웠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 한참을 웃던 휘도가 은아의 눈길에 어색하게 웃음을 삼키며 허리를 낮춰 손을 뻣었다.
[빨리,오르거라.]
이전보다 더 휘둥그레 눈을 뜨는 은아. 편안한 것은 다 거짓말이었다 그리 되뇌이며 주춤하듯 발걸음을 뒤로 한발짝 뗐다. 그리고 무어라 답도 전에 고개를 먼저 세차게 흔들었다. 누가 제 오라비 아니랄까 그 모습조차 정말 제 오라비를 꼭 닮아 있었다.성미까지 닮았다면 분명 한참 떼를 쓸 것이 뻔했다.
[예에?스승님,소녀도 말은 곧 잘 탑니다.]
[나는 네 오라비가 아니다.]
그것이-. 그것이 더 문제가 아닙니까!
은아는 귀중한 것인냥 쥐고 있던 고삐를 슬쩍 내려놓았다. 사안이 중한 사안이라한들 자신이 남정네의 옷을 입었다한들 여인임에는 여지가 없거늘 어찌 자신을 이리도 곤혹스럽게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또 자신의 오라비가 아니라니 너무도 당연한 말로 태연작약한 얼굴로 자신을 혼돈스럽게 하는 휘도가 얄미웠다.
[내게는 떼쓰는 것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
[스승님, 도저히 못하겠습니다!남녀가 유별한 데 어찌...]
[시끄럽다. 진정 타지 않을 것이냐?]
[예.소녀 차라리 걸어서 가겠습니다. 아니면 말을 한필 구해...엄마얏!]
[시끄럽다 하였다.]
휘도의 마지막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순식간에 몸이 들렸다.기어이 은아의 떼 아닌 떼를 뒤로한 채 팔을 뻣어 은아를 들어 올린 것이었다 .무거워 몸이 기울 법도 한데 말 위에 몸이 얹혀진건 순식간의 일이었으며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제 오라비와는 다른 사내의 힘에 그대로 망부석처럼 굳었다. 자신이 안긴 품에서 아니 자신을 감싸안은 그 품에서 나는 짙은 국화향에 심장이 덜컹 내려 앉았다. 어찌나 그 내음이 강한지 향이 들어오는 길목마다 따끔거리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리 심장이 떨리면 안 된다-.제발 멈춰라! 더 이상 스승님을 향해 이리 뛰면 안 된다. 상황이 변하였으니 너도 네 주인을 이해해다오-.
콩닥콩닥 뛰는 제 가슴을 조용히 몇 번 아니 여러번 두드렸다. 혹여 이 소리가 세어나오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제 스스로를 달랬다. 불쌍한 제 가슴을 위로했다. 허나 말을 듣는 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뒤에서 들리는 낮은 울림에 제 주인을 배신하고 다시금 가파르게 뛰어버린다. 하는 수 없이 은아는 성준과 말을 타던 시절을 억지로 끄집어 냈다. 제 오라비라 그리 스스로를 여기도록 되뇌이고 또 되뇌인다.
[앞으로 있을 모든 일을 선악개오사[善惡皆吾師]쯤으로 여기거라.]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나의 스승이라는 뜻
과분이라-.
그것은 더이상 휘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품에 가둔 여인에게서 이는 향기에 제 몸을 그대로 맡기고 싶었다.그 향을 맡고 있노라면 피곤하였던 지난 날을 그리 보상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진정 과분한 것이었다. 어쩌면 성준이 지난날 했던 부탁은 다른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이 아니었을까.
답 없는 자신을 기다리는 여인을 뒤로한 채 말고삐를 쥐었다. 폐부 깊숙히 들어오는 여인의 향기를 잠시라도 빨리 지우고자 휘도는 무거운 말고삐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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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2로 이사왔습니다 : )
제 글이 추천작이 되어 메인에 걸리다니
오랜만에 행복한 일로 정말 즐겁게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맨날 본격 로맨스 시작이라 하면서 또 이 얘기를 하게 될 줄이야.
본격 로맨스 시작입니다 : )ㅋㅋ
첫댓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