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물 장마 틈새
내가 청년기부터 수십 년 구독해온 중앙 일간지를 5년 전 끊었다. 그새 한두 번 바꿔 읽을 만도 했다만 칼럼 필진과 사설 논조가 마음에 들어 이사로 집을 옮겨도 신문은 바꾸지 않았다. 새벽 2시 무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현관 앞 신문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나의 하루도 시작했다. 이런 장기 독자인데 교직 말년 근무지가 거제로 정해져 그곳 원룸에 지내게 되어 멈췄다.
연전 거제에서 보낸 3년은 면 단위 마을에 좁은 방을 정해 주중 머물렀다. 마을이 연사리라 ‘연사와실’이라 이름을 붙였다. 금요일 저녁 창원으로 돌아와 일요일 오후 거가대교를 건너갔다. 방학에 들면 원룸을 한두 달씩 비웠다. 그럼에도 월세는 꼬박꼬박 나가고 KBS 수신료도 2천 5백 원을 납부했다. 단독 세대라도 전기세에 수신료가 붙어 나오는 줄은 거제로 가서 알게 되었다.
나는 활자 매체는 익숙해도 영상 미디어는 관심이 적다. 특히 텔레비전하고는 친하지 못하다. 학교에서 퇴근해 와실로 들어 곧장 저녁밥을 지어먹고 일찍 잠들면 한밤중 깨었다. 노트북을 켜 뉴스를 검색하고 워드로 글을 쓰기에 텔레비전을 켜는 일이 드물었다. 손에 꼽을 횟수로 재방송 ‘자연인’은 봤지만 KBS는 한 번도 켜질 않았는데 시청료를 뜯기고 와도 어디 하소연 못했다.
올해 장마가 정점을 지나면서 전날 폭우로 간밤까지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뜬금없이 지난날 신문 구독 상황과 KBS 시청료 얘기를 언급함은 나의 하루가 남보다 이른 새벽에 시작됨을 환기하기 위함이다. 요즘은 뉴스 접근성은 인터넷이 좋아 노트북이나 휴대폰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잦다. 집에서 텔레비전과는 담을 쌓고 지내고 종이 신문 열람은 도서관에서 펼쳐보는 정도다.
칠월 셋째 월요일은 평소 교류가 있는 지기들과 함안으로 나들이를 나가 그곳 작은 영화관에서 개봉작 영화를 관람하기로 한 날이다. 일찍 잠들어 한밤중 잠을 깨니 밝아올 이튿날 일정에 변경이 생겼다. 간밤 내가 잠에 들었던 사이 와닿은 문자는 강수 상황 피해가 우려되어 나들이를 후일로 미룬다는 내용이었다. 밤새 여러 곳에 산사태가 나고 물이 넘치고 잠겨 피해가 생겼다.
장맛비가 염려되어 지기들과 바깥나들이는 취소되었는데 새날이 오니 비가 그쳤다. 나는 아침밥을 일찍 먹고 여명에 산책 차림으로 현관을 나섰다. 외동반림로의 반송 소하천을 따라 걸어 원이대로로 나가 창원스포츠파크 동문 앞을 지났다. 민간개발로 이루어진다는 대상공원 건설 현장에서 폴리텍대학 캠퍼스를 지났다. 교육단지 거리는 등교 시각 이전이라 인적이 아무도 없었다.
날이 밝아오는 동녘 하늘에는 먹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빼꼼 드러나 반가웠다. 올림픽공원 보도에는 지렁이가 기어가다 두꺼비에 잡혀 먹히는 먹이사슬 현장을 목격했다. 피부로 호흡하는 지렁이는 비가 잠시 그친 틈새 숨을 쉬러 나왔는데 상위 포식자가 놓치지 않았다. 두꺼비는 자동차 바퀴가 무섭겠으나 나는 녀석을 피해 갈 수 있기에 로드 킬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올림픽공원 체육 단지에서 소공원 국화공원을 지나다가 기린초처럼 생긴 금봉초가 피운 노란꽃을 봤고 엷은 보라색 벌개미취도 철을 잊지 않고 피어났다. 내가 예전 근무했던 여학교 앞을 지난 충혼탑 사거리에서 창원수목원으로 올라섰다. 음지식물원의 비비추꽃은 저물어가고 옥잠화는 아직 피질 않았더랬다. 그늘진 곳에 심겨 자란 수국은 아직 꽃잎이 시들지 않아 봐줄 만했다.
대원 레포츠공원에서 내친김에 창원대로를 건너 현대로템 창원공장 곁의 공단 배후 도로를 따라 걸었다. 냇물이 불어난 창원천은 봉암갯벌을 앞두고 숨을 고르면서 흐르고 있었다. 덕정교를 지나 바라보인 봉암갯벌은 남천에서 흘러온 물과 합해져 합포만으로 빠져갔다. 남천을 거슬려 천변을 따라 걸어 덕정교를 지나니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올 듯해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23.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