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 Chagall Part 1.(before 1944) Marc and Bella Chagall with their daughter Ida, Paris, 1924 샤갈의 그림은 보는 이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샤갈의 그림은 수련기라 할수 있는 1887년부터 1910년까지의 러시아 제작 시기와 1910년부터 시작 14년까지 이어지는 파리 시기에서 그의 평생의 작업의 기반이 다져지고 1915년 그의 평생의 반려자인 벨라를 만나면서 화려하게 꽃 피기 시작 합니다. 1917년 그의 조국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모국에서 활동을 시작하지만 1922년에는 베를린으로 다음해인 23년에는 다시 파리로 복귀합니다. 1941년에는 나치스의 박해로 도미하여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7년 파리로 되돌아온후 1950년 부터는 프랑스 남부 방스에 영주하게 됩니다. 이번 글은 먼저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상징성에 대해 먼저 알아본후 그의 작품세계를 초기 부터 살펴보며 연대순으로 작품들을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총 2개의 파트로 나누어지는 이글에서 분기점을 1944년으로 잡은 이유는 샤갈의 부인 벨라의 사망 시점이 바로 1944년 이기 때문 입니다. 샤갈의 부인에 대한 사랑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 식상할 정도이지만 그녀의 부재로 인해 샤갈의 그림이 어떤방식으로 변하는지를 알아보는 특별한 관점으로 이글을 써 내려 가려 합니다. 샤갈의 상징에 대하여. 저명한 사진 작가 유서프 카쉬(Yousuf Karsh)가 1965년 촬영한 샤갈의 사진입니다. 자신의 작품앞에서 편안하게 의자에 기대어 카메라 렌즈에 눈을 맞추지 않고 약간 위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 흥미롭습니다. 카쉬를 거장이라고 느낄수 있는 대목입니다. 1887년생인 샤갈이 1965년이면 이미 나이가 79세. 99세까지 장수한 샤갈에겐 이 사진을 찍을 당시에 이미 전성기를 넘어 어떤 경지에 이른 시기였을 겁니다. 자신의 작품 앞에서 이웃집 편한 할아버지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샤갈은 그의 그림속 이야기들 처럼 행복해 보입니다. 샤갈의 그림을 보면 남자와 여자는 대부분 편안하게 누워있거나 완만하게 기울어진 자세를 하고있죠. 그림에서도 하늘을 나는 닭과 염소와 당나귀 그리고 물고기들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샤갈을 공중에 시선을 두고 그림의 등장인물처럼 편안하게 기울인 자세로 사진을 찍어낸 카쉬는 촬영전 이미 샤갈의 작품에 대한 많은 이해를 하였던듯 싶습니다. 카쉬는 대가 입니다. 샤갈[Marc Chagall, 1887.7.7~1985.3.28] 은 프랑스의 화가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지지만 그것은 단순한 국적의 의미일 뿐이지 프랑스라는 국적과 문명이라는 국지적인 테두리 안에서 그를 설명하는것은 적합치 않습니다. 그의 그림중 많은 부분은 그가 태어난 러시아의 비테프스크와 24세까지 그림공부를 하였던 러시아 북서부의 페테르부르크 지역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후 약 7년 정도의 파리생활중 큐비즘의 기법을 익힌후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 고향에 미술 학교를 여는등 활동을하다 이념적인 문제(사회주의 리얼리즘)로 6년후(1923년) 다시 파리로 되돌아 오게 됩니다. 이후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가 본격화되자 2차 세계대전중에는 6년간 미국에 머물게 되었고 1950년 부터는 남프랑스의 방스에 영주하게되는 곡절많은 인생여정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많은 이주와 원하지 않은 방황은 그가 태생적으로 유대인이었다는것에서 원인을 찿을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의 가장 큰 원동력은 고향 러시아와 유대인의 피였다고도 할수 있을 겁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나오는 러시아 고향의 통나무집과 어린시절 보았던 서커스의 행복한 추억과 그의 작품의 원천이 되는 유대인의 신비성과 신앙에 대한 깊이있는 애정은 그의 그림을 만들었고 샤갈 자신을 만들어낸 중요한 재료들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을 미술사적인 분류로는 간단하게 표현주의의 대표화가라고 칭하고 있지만 감히 저는 그에 대한 이러한 사전적 정의를 단호히 부정합니다. 그는 상징주의적 작가이며 큐비즘과 초현실주의의 벽을 간단하게 허물며 자유롭게 넘나들던 이 시대의 진정한 휴머니스트이자 낭만주의이자 시인이었습니다. 어떠한 하나의 예술쟝르나 사조에 국한되어 설명이 되어질수 없는 작가. 그는 샤갈입니다. <도시 위에서 - 샤갈, 1914~1918년 작> 도시 위에서 사랑내음에 흠뻑 취해 하늘로 오릅니다. 비테브스크의 시간이 멈추고, 촉촉히 젖어든 사랑의 빛깔들이 녹녹히 우리를 축복 합니다. 그대여! 놀라지 마세요. 따가운 태양은 그댈 위해 부셨습니다. 거센 바람도 한켠으로 몰았습니다. 꼭 껴안은 두 손은 영원히 그대를 놓지 않습니다. 함께 짋어진 인생이라는 캔버스 위에, 설레임이라는 붓으로 행복이라는 팔레트에 갠 후 사랑이라는 물감으로 그려갑니다. 그대의 이름만으로도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나의 사랑 벨라여 ...
이 한편의 시안에도 그의 그림들이 녹아있는 것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특히 유럽인들에게 있어 (시계나 종이없던 시절의) 닭은 날마다 아침을 전하는 하느님의 전령사로 여겨졌습니다. 닭은 하루의 시작이자 해가 떠오르는 것을 알리며 아침의 시작은 그리스도가 부활한 시간이자 하루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닭은 태양을 상징하기도 하며 탄생을 알리는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샤갈의 그림에 닭이 많은 사용되는것은 여러의미로 해석될수 있습니다. 닭 뿐만 아니라 염소, 당나귀, 물고기, 비둘기, 꽃다발, 통나무집등은 그의 그림에서 어떠한것들을 상징하고 있다고도 볼수 있습니다. | | | WORK DATE: | 1964 |
| | CATEGORY: | Prints |
| | MATERIALS: | Lithograp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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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잇싸갈의 부족) 그의 여러가지 상징들을 볼때 주의해야 할것은 너무 이러한 상징성에만 몰두하다보면 감상의 흥겨움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징들이 그림의 정서에 따라 복합적이고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당나귀의 경우 어떤 그림에서는 샤갈 자신으로 대변되기도 하지만 다른 그림에서는 남성의 성욕 또는 욕구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고 서커스의 그림에서는 그저 단순하고 멍청한 서커스용 당나귀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 | TITLE: | Le village jaune |
| | | WORK DATE: | 1968 |
| | CATEGORY: | Paintin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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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상징성에서 굳이 공통적인 특성을 찿아낸다면 닭은 주로 여성을 상징하는 곳에 사용이 되었고 당나귀는 남성을 상징 하는곳에, 비둘기와 꽃다발은 평화와 행복함의 감정 표현에 주로 사용 되었다는 겁니다. 그의 그림에는 바이올린 또한 많이 그려져있습니다. 위와같은 그림에서의 바이올린은 단지 서커스의 흥을 고조시키는 악사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겠죠. 하지만 아래 그림의 삐에로 복장을 하고있는 광대가 들고 있는 바이얼린에서 우리는 서커스의 흥이 아닌 즐거운 리듬을 그림 전체에서 느낄수 있습니다. 광대옆의 약간 심술궂게 생긴 붉은 염소는 이러한 즐거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훌륭한 주인공중 하나입니다. | | TITLE: | Le clown violoniste et l믠ne rouge |
| | | WORK DATE: | 1971 |
| | MATERIALS: | Huile sur toile Oil on canv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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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TLE: | Paris Opera- Romeo and Juliet |
| | | WORK DATE: | 1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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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로미오와 쥴리엣의 포스터 입니다. 샤갈은 유화작품외에 상당한 양의 판화(주로 석판화 Lithograph)작업을 하였고 이러한 판화작업은 작품자체 외에도 포스터나 책의 표지등으로 많이 사용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유명 레스토랑의 매뉴판에도 샤갈의 작품이 사용된 적이 있죠. -작가의 작품이 이러한 상업적 용도로 이용되는 것은 유럽이나 서구지역에서는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특히 와인의 레이블에는 많은 대가들이 디자인을 맡아하는경우가 많이있죠 특히 프랑스 와인인 '샤토 무통 로쉴드'는 많은 세계적인 화가들이 레이블을 만든것으로 유명합니다. 샤갈을 비롯해서 1975년에는 앤디 워홀이, 1974년에는 칸딘스키가 1969년에는 후안 미로, 1964년에는 헨리 무어, 1958년에는 살바도르 달리가 1973년에는 피카소가 에티켓을 제작하였습니다. 재미있는건 이들 대가들이 이 회사의 에티켓을 작업해주고 받는 보수는 '0'원 이라는것입니다. 대신 자신의 레이블이 붙여진 해의 와인을 박스채로 받는다고 합니다. 와인은 빈티지에따라(생산연도) 같은 이름의 와인이라도 가치와 가격이 많은 격차가 생기게 됩니다. 다들 훌륭한 대가들이 작업한 레이블을 붙이고 있는 샤토 무통 로쉴드 이지만 빈티지에 따라 실제 거래되는 와인의 가격은 차이가 있습니다. 좋지 않은 빈티지에 작업을 했던 작가들은 보수대신 받은 와인이 정이가지 않겠지만 훌륭한 빈티지에 작업한 작가들은 자신의 그림이 담긴 와인이 참 소중하고 사랑스러울 겁니다. Lάe De Poros (The Island of Poros) 1980 풍요의 섬이라는 그림입니다. 샤갈의 초현실적이고 시적인 표현법이 완벽하게 구사되어 있습니다. 샤갈 작품의 큰 특징중의 하나가 부유성입니다. 떠다니는 물고기(왠일인지 이그림에선 바다속에 있군요, 제자리에) 염소와 사람들은 마치 무중력 상태의 우주인이 유영을 하듯 자유롭고 평화롭게 날아다니고 떠있습니다. 얼핏보면 마티스의 그림이 연상되기도 하는것은 화면의 테두리를 장식하고있는 사람들과 이야기 내용 때문일겁니다. 샤갈의 작품중에 드물게 색채가 크게 사용되지 않고 절제한듯한 느낌이 드는것도 재미있습니다. 여성과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날아가는 닭의 모습에서 달과 천사같은 여성은 동일시 되기도 합니다. 샤갈에게 풍요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혹시 태고의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이야기를 찿은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건 그의 신앙과 사람과 사랑이었기 때문 입니다. 이 세가지는 샤갈에겐 세상의 모든것이고 이 세가지가 충족되었다면 이미 이세계는 더이상 바랄것이 없는 풍요의 낙원이었을 겁니다. Nu Blanc Au Bouc Orange (White Nude with Orange Goat)1964 예민한 분은 느끼셨겠지만 샤갈의 그림중 남여의 표현이 같이 들어갈경우 대부분 두사람중 한사람은 잠을 자는듯 아니면 죽은듯 고요하고 수동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혹시 그가 열렬히 사랑했던 먼저 떠난 부인의 모습을 애타하며 그린것은 아닐까요? 다르게 생각하면 그는 항상 사람을 그리워하며 내가 다른이에게 다가가기를 아니면 잠든 나에게 꿈결같이 누군가 다가와주기를 기다렸던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는 그러기에 충분할만큼 다정다감하고 사랑이 넘치며 그만큼 사랑이 필요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La ferme 1954-1962 염소와 닭이있는 농장의 풍경. 지금까지 소개된 작품중 판화작품들이 있어 가벼운 느낌들이 들긴했지만 이작업은 유화작업이라 해도 샤갈이 상당히 공을 들여 작업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작품에서도 굳이 상징성을 찿아 내려 한다면(물론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면 나올수도 있겠지만) 그런분은 아마 미술관 가실때 현미경이나 백과 사전을 들고 다니셔야 할겁니다. 염소와 닭이 평화롭게 같이 물을 마시고 있고 러시아 농부풍의 성격 좋아 보이는 푸짐한 아주머니는 빨래거리인 듯한 것을 한아름 안고 맨발로 걸어오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리면서 샤갈은 어릴적 러시아 통나무집앞과 푸른 앞마당 위의 평화롭던 시간안에 있었을 겁니다. | | TITLE: | La joie familaile |
| | | WORK DATE: | 1976 |
| | CATEGORY: | Paintings |
| | MATERIALS: | Oil on canv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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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에선 아기를 안은 여인의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아기를 안은 여인은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결실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가족은 화병속에 가득히 담긴 꽃다발 처럼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이 세상 모든것을 가진듯 하늘을 날아다닐 정도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사랑스러운 가족에게 멋진 시집을 펴서 황홀한 시를 낭송해줍니다. 샤갈은 의외로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유난히 컸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화면 우측 상단에 -당나귀인듯한 동물위에 작은 닭을 그려 넣은것- 마치 씻씩한 수컷이 작고 사랑스러운 암컷을 태우고 늠름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그려넣은 것은 샤갈 자신의 아내와 가족에대한 의무와 책임감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TITLE: | Russian Village with Donkey & Flowers |
| | | WORK DATE: | circa 1956 |
| | CATEGORY: | Works on Paper (Drawings, Watercolors et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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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위에서 당나귀나 염소를 남성 또는 샤갈의 상징에 비유한것은 바로 위의 그림때문입니다. 다른 그림들도 자세히 보시면 샤갈이나 남성적인 비유와 상징부분에는 대부분 이러한 동물들이 병치되어 나타나곤 합니다. 그의 꽃다발 그림은 보는것만으로도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집니다. 아이를 안고있는 여인의 모습과 꽃다발을 향해 날아드는 파랑새의 모습은 정말이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기에 그려진 염소의 눈망울과 가장 위의 카쉬의 사진에 나타난 샤갈의 눈빛을 한번 비교해 보시죠. 어딘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은 저 혼자만의 착갈일지도 모릅니다. | | TITLE: | Les Deux Bouquets aux Fruits |
| | | WORK DATE: | 1980 |
| | CATEGORY: | Paintings |
| | MATERIALS: | Oil on Canv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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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작업하면서 말년의 노화가 샤갈은 이미 자신의 노쇄함과 얼마후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보통 그의 그림에 꽃다발(화병)이 그려질 경우 한개이거나 여러개일 경우 거의 붙여져 있거나 모아져있는 구도를 택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가운데 과일 그릇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두개의 화병들을 그리고있지요. 마치 우리가 조상의 부모님 제사를 지낼때 한분 한분께 젯밥을 올리듯 비숫한 상차림입니다. 혹시 하나는 사랑했던, 먼저 저 세상으로 간 부인 것으로 하나는 자신을 위한 화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생각을 더 굳게 해주는건 하늘을 나는 두사람의 모습입니다. 비둘기와 함께 흐릿한 모습으로 굳은 여인을 안고 함께 유영하는 남자의 모습에서 생기라고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장수한 대가들의 작업들을 보면 대부분 말년에 작업의 성격이 약해지곤 합니다. 이는 신체의 약화(근력, 시력, 지구력등 그리고 노환과 질병등)에 가장 큰 원인이 있지만 더 큰 원인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준비과정 등의 심리적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항상 행복하고 신비스럽고 다정하던 그의 작품들만 접하다 이런 그림을 보게 되니 갑자기 숙연해 지는건 저 혼자만의 감정은 아닐겁니다. 닭을 여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작품입니다. 푸른 요정이라는 이 작품속에 닭과 여인은 하나입니다. 닭의 머리 쪽에는 또다른 여인의 모습이 입체주의적인 표현으로 절묘하게 나타나있는게 보입니다.
나무아래의 연인이라는 이작품은 판화입니다. 연인위의 주책맞은 당나귀는 아마 샤갈(남자)의 욕구를 표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 | | WORK DATE: | 1964 |
| | CATEGORY: | Paintings |
| | MATERIALS: | oil on canv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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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은 혹시 자신을 어릿광대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즐겁고 속없고 항상 행복한 샤갈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행복한 꽃다발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아니 어쩌면 서커스의 마술에서 보여주듯 사랑스런 여인과 행복이 작은 꽃다발속에서 '펑'하고 튀어나왔는지도 모르죠. 흰 베일을 쓴 나신의 예쁜신부는 붉은 닭으로 행복한 삐에로는 하얀색 당나귀로 나타납니다. 그림을 보는데 너무 해석적 이어도 또는 너무 감성의 눈에만 이끌려도 좋지 않다는건 누구가 알고 있는 거지요. 이글을 마치면서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건 샤갈의 닭이나 당나귀에대한 상징성도 중요 하지만 더욱 중요한건 샤갈처럼 맑고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눈과 마음으로 그의 그림을 보아야겠다는 겁니다. 다른 작가들과는 다르게 아주 예외적으로 그의 작품만은 시종일관 이러한 시점으로 감상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Russia: The Early Years 1887-1910 Russian Wedding 1909 샤갈이 파리로 가기 1년전에 작업한 이 그림은 표현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상당히 자연주의적 입니다. 몇년후 샤갈의 파리시기에서 볼수 있는 자유로운 드로잉이나 환상적인 색채는 아직 보이지 않으며 전체적인 구도와 원근법에서 고전주의적인 영향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색채도 또한 러시아 작가다운 중후하고 무거운 색상을 사용하는것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샤갈 특유의 긍정적이고 명랑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Birth 1910
새생명이 태어나는 경건하면서도 즐거운 순간을 해학적으로 다룬 이그림은 위의 작품 1909 러시안 웨딩보다는 좀더 유연하고 즐겁기도 하거니와 우리가 알고 있는 샤갈의 이미지에 아주 많이 부합되는 작품입니다. 지쳐서 누워있는 산모의 모습은 우리가 이후 계속 보게되는 웨딩드레스 차림의 신부모습과 많이 닮아있으며 입구를 가득 메운 한무리의 축하객들과 흰수염의 랍비인듯한 인물 앞에 등장하는 송아지의 모습도 눈에 익숙 합니다. 아기를 안고있는 경직돤 산파의 모습이나 전형적인 구도등은 아직 그의 작업이 러시아 작품시기의 기본적인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한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The Paris Years 1910-1914
Guillaume Apollinaire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그리고 20세기초 파리 화단의 수많은 아방가르드적인 화가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아폴리네르는 피카소등 많은 작가들과 교류하며 그들 화파의 작명가이자 이론적으로 부실할수 밖에 없었던 신예 작가들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 주었던 것으로 유명 합니다, 1912년 아폴리네르는 샤갈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1908년부터 12년까지의 샤갈의 작업을 감상한후 Surnaturalisme(굳이 해석 한다면 초자연주의정도)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명석한 아폴리네르는 샤갈의 그림에서 십여년후에 발생하는 초현실주(Surrealism) 그림의 모태를 샤갈의 그림에서 발견했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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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 II 1911
파리에서의 작업은 이전의 러시아 시기의 작품과 많이 틀린 양상을 나타냅니다. 고전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요소들이 대거 빠져버리고 그곳에 표현주의적인 자유분방함을 채웁니다, 당시의 파리는 과거 고전주의의 미약한 세력앞에 야수파(이미 야수파들도 한물 지난 그림 취급을 받았었습니다,)와 1900년대 초반 활발하던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력이 파리등에 활발히 펼쳐져 있어서 기존의 화풍의 질서를 무너뜨리던 시기였었고 이미 피카소와 브라크가 입체주의적 작품을 발표했었던 시기 였으며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가 이미 1907년에 완성 되었습니다,) 또한 1910년부터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미래파 운동이 불붙기 시작할때였습니다. Reclining Nude 1911 (기대앉은 누드) 이 시기의 샤갈의 그림에서 위에서 말한 여러 유형의 유파들의 흔적이 보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고도 할수 있을겁니다. 위의 그림에서만 보더라도 좌측 붉은 커텐과 화분 받침과 침대의 시점등에서 보이는 세쟌의 향기 침대 문양과 중앙 화분에서 보이는 마티스풍의 야수적 이미지 여인의 형태에서 볼수있는 입체주의적 표현법 좌측 침대의 나이프 워크에서 보이는 표현주의적 방법 이시기는 그가 새로운 회화양식의 집결지였던 파리에서 스펀지 처럼 여러 가지 양식을 자신의 화폭안에서 적용하고 실험 하던 시기임을 알수 있습니다. To Russia, with Asses and Others 1911
위의 그림은 마치 페르낭 레제나 말레비치의(아래 그림 참조)1910년대 작품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지만 샤갈 특유의 감수성과 개성이 뚜렷하게 남아있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아폴리네르가 초자연주의같다고 표현했던 샤갈의 작품들이 10년이 흘러 나타난 초현주의작품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쳤을지는 이 작품 하나만 보아도 미루어 짐작할수 있을 것입니다. Kazimir Malevich Description | Taking in the Rye Kazimir Malevich 1911.jpeg English: "Taking in the Rye" (also known as "Taking in the Harvest"), oil on canvas. Courtesy of the Stedelijk Museum, Netherlan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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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11(1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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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http://www.the-athenaeum.org/art/full.php?ID=10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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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Kazimir Malevi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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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and Eve 1912
위의 작품은 당시 파리를 휩쓸던 입체주의의 광풍에 샤갈 역시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반증일 것입니다. 이후 그는 이러한 과도한 입체주의적 표현법에서 훨씬 자유롭게 되지만 이러한 면의 분할과 구성법은 오랜기간 그의 작업에서 그 흔적을 찿아 볼수 있습니다. Picasso Portrait of Daniel-Henry Kahnweiler, 1910,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Picasso wrote of Kahnweiler What would have become of us if Kahnweiler hadn't had a business sense? The Soldier drinks 1912
아래 그림은 말레비치의 종합적 입체주의 양식으로 그린 모스코바의 영국인이란 작품 입니다. 비논리적 특성인 말레비치의 기념비적 작품과 샤갈의 위의 그림을 비교해 볼때 양식적인 면에서 두 그림은 많은 부분이 닮아있을 알수 있습니다. 양식적인 면에서 입체주의적 양식의 많은 부분을 차용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두 그림은 거의 닮은 부분이 없다는것도 알수 있습니다. 말레비치는 기호와 의미없는 상징으로 일관된 작업을 하지만 샤갈은 어른이 그린 동화같은 모습입니다. 전장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적군의 목을 베고 총을 쏘는 병사이지만 술잔을 앞에 둔 병사의 테이블 위에서 그는 전장의 참혹함도 살육의 공포도 느끼지 않는듯 합니다. 병사는 따뜻한 벽난로와 아름다운 아내가 있는 그의 집을 떠올리며 그는 아내와 추던 춤과 그때의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 입니다. Kazimir Malevich
Feast Day (Rabbi with Lemon) 1914 (축제일, 레몬을 든 랍비) 그는 1915년 평생의 반려자인 벨와 결혼 합니다. 한참 연애시기이던 1914년 그의 그림은 양식적인 면에서 그리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갑자기 상승하는듯한 느낌입니다. 물론 가정환경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나던 벨라와의 사랑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두사람은 결혼으로 맺어지고 두사람의 핑크빛 사랑의 영향 때문인지 그의 그림은 더욱 밝게 빛나고 탄탄해지기 시작 합니다. 위의 축제일 이라는 작품을 보며 갑자기 베이컨의 그림이 떠오르는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듯 합니다. 물론 작품의 의도와 내용적인 면에서는 전혀 상이한 작품 이지만 형식적인 면에서 베이컨은 샤갈을 많이 닮아 있습니다. Francis Bacon 1825 Dominique Ingres, Oedipe et le Sphinx, 1808-25
On 25th July, 1915, Chagall married Bella(1895-1944) The Birthday 1915
사랑하는 여인의 생일날 샤갈은 그녀에게 예쁜 꽃다발과 기습적인 키스를 날립니다. 그는 벨라 주변의 공기이며 햇살이자 또다른 하지만 똑 같은 영혼 입니다. The Poet Reclining 1915 (누워있는 시인)
결혼한 해인 1915년의 작품중에는 유난히 그의 그림에서 분홍빛이 많이 감도는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화면 하단에 무엇인가 갈망하는듯 갈증에 목메어 메마른채 누워있는 시인은 샤갈 자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왠지 불쌍해 보여야할 시인이 그다지 가여워 보이진 않습니다. Peasant Life (The Stable; Night; Man with Whip) 1917 1917년 그의 모국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그의 그림에서도 혁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 합니다. 위의 샤갈답지 않은 경직된 구조의 그림은 그가 핍박받는 노동자의 삶을 그려낸 것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채찍을 든 남자와 위축되 보이는 여인의 모습등이 대비를 이루는 가운데 직선과 원의 구도가 단순하면서 강렬 합니다. 그는 모국에서 교직에서 후배를 양성하는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지만 애초부터 그의 작업과 혁명의 이상과 논리는 맞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1922년 그는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게 되고 이듬해인 1923년 파리로 옮기게 됩니다. Peasant Life 1925
몇년간의 러시아 생활에서 그의 작업은 잠시 방향성을 돌리는듯 보이지만 파리 정착후 다시 예전의 그의 작품 세계를 구축 하게 됩니다. 꿈과 사랑과 자유가 충만한 어른의 동화세계속으로 다시 몰입합니다. 이제는 그의 작업속에서 초기의 큐비즘적인 요소는 대부분 사라지게 되고 외면의 형태 재현이나 일부 남아있던 구도의 관습에서도 해방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외형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흡수 되기도 하는등 자유로워 지고 화면 구석 구석에 그의 특유의 은유와 상징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색상은 더욱 환상적으로 빛나기 시작 합니다. The Rooster 1929 (수탉) 샤갈은 늠름한 수닭이 되어 그의 사랑하는 부인 벨라를 업고 힘차게 걸어갑니다. 벨라는 온몸을 그에게 의지하며 마치 꿈을 꾸는듯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뒷편의 배를 탄 두 연인은 또다른 샤갈과 벨라일 것입니다. 어느 안개낀 아침 호수가를 노저어가며 느낀 감상을 샤갈은 이렇게 표현한듯 합니다. 수닭의 얼굴을 자꾸 보니까 샤갈과 조금 닮은듯도 합니다,
The Acrobats 1930 붉은 옷을 입고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 여인은 샤갈이 어렸을때부터 보아오던 동네 서커스단의 어느 소녀였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그림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것은 어쩌면 어릴때 부터 보아왔던 떠돌이 서커스단의 곡예공연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 소녀의 볼에 키스하려는 사람은 바로 어린 샤갈의 모습이기도 할 겁니다. Lovers in the Lilacs 1930
라일락 꽃향기에 취해 길게 누운 두 연인은 지금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입니다. 강위에서 비추는 보름달은 역시 똑같은 자신을 강위에 품고있습니다. 샤갈의 그림에서 연인은 항상 혼자가 아니듯 달 또한 혼자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사랑스러운 그림입니다.
White Crucifixion 1938 (흰 십자가형) 예수의 십자가에 못박힘을 그린 이그림은 많은 화가들이 평생에 한번 정도는 그리고 싶어하는 소재 입니다. 르네상스의 대가들부터 시작해서 중세 시대의 대부분의 거장 그리고 근대를 거쳐 20세기에 이르기 까지 심지어 고갱도 바로 Crucifixion를 소재로 작품을 남겼습니다.
샤갈 역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중심으로 인간들의 소소한 일상과 잔인함등을 화면 곳곳에 배치하여 그의 죽음을 애도 합니다,. 이전의 Crucifixion화와 조금 다른것이 있다면 샤갈은 유대인이었다는것, 그래서 예수의 표현이 이전의 카톨릭신자들이 그려낸 예수의 모습과 복식등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난다는 점 입니다. Emil Nolde The Three Candles 1940
세개의 촛불에 대한 의미를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카톨릭 문화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에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에서 부합되지가 않았고 제가 유대교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면 확실한 해석이 가능했을테지만 그렇지 못한점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그림은 1940년에 완성은 했지만 발표는 샤갈의 아내 벨라가 사망한 후에 되었습니다. 떨어지려는듯 위태로워 보이는 천사의 모습과 무엇인지 안타까워 보이는 지상의 사람들의 모습들 무엇보다 벨라로 보이는 흰색옷의 여인을 간절하게 안고있는 남자(샤갈)의 모습을 볼때 이그림은 죽은 벨라를 위해 다시 재작업이 된 그림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제 개인적인 생각 입니다,) 카톨릭에서 세개의 촛불은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만약 샤갈도 이러한 관점에서 촛불을 그렸다면 그는 죽은 벨라에 대한 한없는 아쉬움과 슬픔을 그리고 다시 살아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 신에게 향한 바램과 기도를 이그림을 통해 표현했다고 볼수 있을 겁니다. L'Obsession 1943 2부에서는 벨라가 사망한 1944년부터 그의 말년의 작업들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Mozart / Piano Concerto No.24 in C minor K.491 3 악장 Allegre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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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샤갈 전시회 과제때문에 보러간적있었어요 몽환적인 그림들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그림 감상 잘 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