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보물, 백 년 묵은 바가지
성병조
요즘은 플라스틱 바가지가 사용되지만 내가 어릴 때는 박 바가지뿐이었다. 지붕 위에 보름달처럼 열리는 박을 따다 톱으로 썰어 만들었다. 바가지를 만드는 광경을 볼 때마다 지금의 가난을 떨치고 일어설 수 있도록 흥부전에 나오는 얘기처럼 금은보화가 마구 쏟아지기를 바라는 상상을 해 본 적도 있다.
바가지는 얼마간 사용하면 낡아 쪼개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견고한 바가지라 하더라도 요즘의 플라스틱에 비길 바는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귀한 생활용품이어서 어른들은 애지중지 아끼면서 사용하였다. 행여 금이 가면 옷을 기워 입듯이 실로 꿰어 사용하는 모습도 종종 보았다. 요즘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바가지도 곡식 푸는데 사용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쌀독을 지키는 쌀 바가지도 있다. 용도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붙여지곤 하였다. 허드렛일에 사용되는 못난이 바가지가 있는가 하면 쌀독을 지키는 고귀한 몸도 있다. 어릴 적부터 본 우리 집 쌀 바가지는 두껍고 견고하여 평생 쌀독 지킴이로 살아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쌀 바가지가 아직도 우리 집에서 제 본분을 다하고 있다면 믿어질까. 요즘도 시골서 가져온 쌀을 보관하는 쌀독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할머니 때부터 보아온 절약의 상징을 대대손손 체험하며 살고 싶은 마음에서다. 조상의 체취가 고스란히 배인 바가지를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고귀한 보물처럼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증조모, 조모, 어머니 손을 거쳐 내게 왔으니 4대가 100년 넘게 사용한 것 같다. 굵은 실로 기운 누더기 바가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제는 꿰맨 굵은 실까지 낡아 너덜너덜하다. 하지만 이것도 절약의 증표가 아니겠는가. 대대로 이어받은 절약 정신이 오늘의 풍요를 안겨준 것 같아 나는 도무지 버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