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hler- Symphony No.5 in C sharp minor
CLAUDIO ABBADO & Lucerne Festival Orchestra 2004
제1악장 : Trauermarsch 죽음의 행진, 침착한 걸음으로'. 어린시절 들은 군대 나팔 소리의 추억에서 끌어낸 트럼펫의 팡파레로 시작한다. 처절한 장송곡의 리듬과 격렬하고 사나운 절망과 슬픔의 기나긴 패시지가 교차한다.
제2악장 : SturmIsch bewegt '폭풍처럼 움직여서, 가장 격렬하게'.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1악장과 비슷한 분위기의 고뇌가 더욱 사납게 물결친다. 종반에서는 금관의 찬란한 코랄이 잠시 펼쳐진다. 얼어붙은 하늘을 뚫고 한 순간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 말러의 모든 작품 중 가장 찬란한 대목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대목 역시 유령같은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다시 눌려 버리고 만다.
제3악장 : Scherzo. Kraftig, nicht zu schnelll(스케르쪼 "활기 있게, 너무 빠르지 않게")
오스트리아 민속춤인 랜틀러 풍의 선율과 비인 왈츠가 어우러지는 밝은 분위기로, 곡 전체의 '2부'에 해당된다.
제4악장 : Adagietto. Sehr langsam (아다지에토, 아주 느리게) "알마에 대한 사랑의 고백" 인 이 곡은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나와서 유명해진 부분이다. 관악기들은 쉬고 현악파트와 하프만 연주하는 매우 아름답고 고요한 악장 이다.
제5악장 : Rondo-Finale (Allegro) 거대한 론도형식의 5악장은 작곡가가 대위법적 기교를 마음껏 뽐내는 악장으로 마련된다. 명랑한 주제와 역동적인 푸가 그리고 4악장의 중간부를 빨리 돌린듯한 부주제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간다. 결국 2악장에서 유래한 승리의 코랄이 찬가처럼 울려퍼지고 광란의 가속을 밟으며 흥겨운 분위기 속에 종결한다.
-- 해설 : 김문경 (음악 칼럼리스트, "구스타프 말러" 3부작 저자)
말러는 그의 5번째 교향곡에서 위대한 전환점을 이루었다. 베토벤이 3번째 교향곡 `영웅` 에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했듯이 말러는 5번에서 그전까지 쌓아놓았던 기법들과 작별을 고한 셈이다. 각 악장마다 붙었던 표제적인 요소가 사라지고 성악이 일절 들어가지 않는 순수 기악곡으로 돌아선 데에다가 음악기법적으로는 여러 성부가 동시다발적으로 출몰하는 대위법적 다성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교향곡 2-4번의 중요한 모토였던 형이상학은 이제 그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작곡가가 불현듯 작곡 스타일을 바꾸는 일이 아주 드물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토록 많은 변화가 한 순간에 일어났다는 점은 분명 놀라운 것이다. 교향곡 5번을 작곡할 당시인 1901-1902년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1901년 말러가 꿈의 무대인 빈 궁정 오페라극장의 지휘자로 진출한지도 어언 4년차. 그 해 2월 17일, 청년시절의 야심작 `탄식의 노래` 를 무대에 올렸지만 그에게 적대적인 비평가들의 혹평은 끝도 없었다. 게다가 무리한 지휘 스케줄로 몸을 혹사한 탓인지 2월 24일에는 `마술피리` 를 지휘하던 중 장출혈로 쓰러져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야말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것이다. 응급처치로 위급사태를 간신히 벗어나게 된 말러는 요양으로 점차 기운을 회복했으나 당시 경험한 어두운 그림자는 이후의 작품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해 여름에는 작곡에 있어 많은 수확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암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단두대로 향하는 소년 병사의 무거운 발걸음을 노래한 `소년 고수`, 사망한 자식을 슬퍼하는 부정이 담긴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그리고 고통의 절규가 담긴 교향곡 5번 1,2악장이 이때 작곡되었다. 한편 말러는 동시에 바흐의 다성음악에 깊이 경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친구 나탈리에게 "요즘 점점 더 많은 것을 바흐에게 배우고 있는데 마치 그가 나를 무릎위에 올려놓고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1901년은 말러에게 있어 가장 큰 위기의 해였지만 동시에 극적인 전환점을 이룬 해이기도 했다. 11월초 파티장에서 반려자가 될 여인 알마 신들러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젊은 나이에 니체와 바그너를 줄줄 꿰고 있었다는 전설적인 지성과 빈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라는 호칭을 받을 정도의 빼어난 미모를 지닌 재색겸비의 표본. 예술가의 집안에서 자랐으며 이미 화가 클림트와 작곡가 쳄린스키와 교제한 바 있는 알마는 당시 23세로 말러보다 무려 18살 연하였다. 나이 사십이 넘도록 독신을 유지한 말러와 한 떨기 피어나는 꽃과도 같은 알마. 둘의 사랑이 그토록 빨리 진행될 줄은 아무도 몰랐으리라! 그들은 만난지 한달 후 벌써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비밀리에 약혼하는 사이가 되었다. 12월 27일 둘의 약혼이 급기야 빈의 신문을 뒤덮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말러와 알마는 이듬해 3월 9일 빈에 위치한 카를 교회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다. 둘은 곧바로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신혼여행을 떠났으며 말러는 그 해 여름에 교향곡 5번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교향곡 5번에 있어서 처절한 전반악장과 축제적인 피날레의 극단적인 대조도 당시 말러의 삶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죽음의 문턱에 발을 디딜뻔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결혼의 핑크빛 무드로 전환하는 말러의 숨가쁜 여정, 그 희로애락의 결정체가 고스란히 이 곡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교향곡 5번은 총 다섯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과 2악장은 한데 묶여 제1부를 형성하고 3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으로 단독으로 제2부를 형성하며 4악장과 5악장은 역시 묶여 제3부를 형성한다. 1악장은 독립적인 악장이라기 보다는 2악장의 거대한 도입부 역할을 하며 4악장의 중간부 주제는 5악장의 삽입주제로 사용되어 각 악장이 서로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1악장은 한편의 거대한 악몽이라 할만하다. `장송행진곡. 장중한 걸음걸이로. 엄격하게. 장례 행렬처럼` 이라 기재된 악상기호가 이미 곡의 분위기를 설명하고 있다. 1악장은 트럼펫 독주로 취주되는 팡파르로 시작하는데 기술적 난이도가 크게 높지는 않지만 한음이라도 실수가 생기면 나머지 모든 단원들에게 죄를 짓게 되는 위험천만한 솔로이다. 압도적인 굉음과 함께 팡파르가 서서히 사라질 무렵 현악에 동유럽풍의 구슬픈 가락이 실리며 장송행렬이 시작된다. 이부분은 분위기상 앞서 언급한 가곡 `소년 고수` 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제 큰 소리로 울면서 떠납니다. 잘 계시오" 라고 말하며 단두대로 향하는 가엾은 북치기 소년에 작곡가가 깊은 공감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트럼펫의 상승 아르페지오를 플루트가 약하게 화답하여 장례행렬이 멀리 사라지는 듯한 효과를 나타낸다. `격렬히 움직이며, 가장 거세게` 라고 기재된 2악장은 한바탕 폭풍처럼 시작한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지축을 흔드는 듯 세차게 요동치고 목관악기는 비명을 지르면서 돌진하며 타악기는 여기에 굉음을 보탠다. 이후 템포가 느려지면서 1악장에서 유래한 주제가 속속 등장한다. 소나타 형식의 원리가 다소 남아있기는 하지만 2악장 전체는 자유롭고 즉흥적으로구성되는 랩소디 형식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후반부에는 분위기가 급전환되어 `태양의 코랄` 혹은 `천국의 환영` 이라 불리는 장엄한 코랄 주제가 금관으로 펼쳐진다. 종국에는 격렬한 분위기로 되돌아가며 말러 학자 아도르노가 언급한 바대로 "지난날의 폭풍우는 울려 퍼지는 흐느낌 속에서 사라져간다." 3악장 `스케르초` 는 819마디에 연주시간만 해도 17-18분에 달하는 거대한 악장이다. 본래 교향곡 속에서 무곡악장의 역할은 여흥적인 요소를 부가하는 것이나 말러는 교향곡 5번을 통해 오히려 무곡악장에서 가장 복잡한 악상전개를 펼쳤다. 오스트리아의 3박자 민속무곡인 렌틀러와 도회적인 3박자 무곡 왈츠가 동시에 펼쳐지고 중간에는 푸가형식까지 삽입되는 등 고도의 작곡 테크닉이 발휘된다. 1악장이 일종의 `트럼펫 협주곡` 이라면 3악장은 `호른 협주곡` 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말러는 3악장에서 솔로 파트를 담당하는 호른을 따로 설정하였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작곡가 당대에 호른 주자가 걸어나와 콘서트마스터 옆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중간에는 말러 특유의 작법대로 몽환적인 에피소드가 위치하며 주부로 회귀하는 부분에는 나무를 서로 부딪히게 하는 홀츠클라퍼 라는 악기가 등장하여 해골의 뼈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불현듯 중세인들의 생활신조가 떠오른다. "생의 한가운데에 우리는 죽음에 사로잡혀 있다." 4악장 `아다지에토` 는 말러 교향곡 속 단일악장 중 가장 대중적인 곡이다. 말러의 지인 멩겔베르크는 `알마를 향한 말러의 러브레터` 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관악기와 타악기가 모두 침묵한 채 현악기와 하프로만 연주되는 한 편의 무언가라 할 수 있다. 과연 후기 낭만음악 특유의 부유하는 듯한 탐미적인 사운드가 끝없이 이어지는 듯하다.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에서 아다지에토는 무한히 반복되며 미소년 타지오를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주인공 아센바흐의 관능과 황홀, 환희와 절망을 대변해 준다. 한편 이 곡은 때때로 추모음악이 된다. 로버트 케네디 장례식 때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로 울려퍼진 곡도 5번 4악장이었고, 피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시 고(故) 박성용 회장의 추모음악으로 선택된 곡도 바로 아다지에토였다. 그 누구도 이곡 속에 사랑의 신 에로스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가 공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거대한 론도형식의 5악장은 작곡가가 대위법적 기교를 마음껏 뽐내는 악장으로 마련된다. 명랑한 주제와 역동적인 푸가 그리고 4악장의 중간부를 빨리 돌린듯한 부주제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간다. 결국 2악장에서 유래한 승리의 코랄이 찬가처럼 울려퍼지고 광란의 가속을 밟으며 흥겨운 분위기 속에 종결한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이 시대 최고의 말러 지휘자인 것은 어느정도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교향곡 5번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극한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다. 1980년 시카고 심포니와의 녹음과 1993년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녹음도 말러 레코딩계에 한 획을 그은 유명한 아이템이지만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2004년 공연의 화려함은 이전의 녹음을 가히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콘서트마스터 자리에는 2003년 루체른 `부활` 공연 때와 마찬가지로 콜리야 블라허가 앉아있고 제2바이올린 수석에는 알반베르크 콰르텟의 멤버인 게르하르트 슐츠의 모습이 새롭게 보인다. 그외 볼프람 크리스트, 디무트 포펜, 프란츠 바르톨로메이, 나탈리아 구트만, 알로이스 포쉬, 하겐 콰르텟의 멤버 등 현악계의 슈퍼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광경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목관에는 목재 플루트의 달인 자크 존을 비롯하여 알브레히트 마이어, 자비네 마이어, 슈테판 슈바이게르트 등 우리 시대의 명인이 총집합하고 있다. 금관진 또한 믿음직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도 1악장의 문을 여는 수석 트럼펫 라인홀트 프리드리히와 3악장에서 기립하여 눈부신 솔로를 펼치는 슈테판 도어를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연주는 가히 절품이라 하겠다. 아바도 특유의 유연한 템포감각이 마법을 발산하고 단원들은 말러가 지시한 까다로운 다이내믹을 모두 꼼꼼히 지키는 애정을 보인다. 모든 성부에 혈류가 통하는 듯한 진정한 다성음악이 여기에 있다! 현악파트의 파워풀한 활시위는 5번에 담긴 감정의 가파른 등고선을 수월하게 넘나든다. 2004년은 말러 교향곡 5번이 초연된 지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의미있는 해이기도 하다. 첫 리허설 후 상심하여 "나의 죽음 후 50년 뒤에나 초연될 수만 있다면" 이라며 절규했던 말러의 괴로움은 아바도의 위대한 연주를 통해 진정으로 보상 받았으리라.
웅대한 자연의 詩에서 질풍노도의 피날레로 이어지는 1번, 죽음과 부활의 고통스런 변증법인 2번, 무한한 시간과 공간이 주는 공포에서 시작하여 자연과 인간과 절대자의 교감을 발견하는 3번, 어린이가 보는 천국의 행복을 노래한 4번, 이 네 곡은 분명 젊은 사람의 음악이다. 극단적인 고뇌와 환희를 오가며 삶의 의미를 캐묻는 모습은 젊은이의 전형적 모습이 아닌가... 그러나 이 5번에서 말러는 더 이상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고뇌는 이미 확인된 고뇌고, 환희 또한 이미 확인된 환희이다. 이것은 성숙한 인간의 음악이다. 모든 정서는 더욱 단단히 압축된, 정제된 형태로 표현된다. 앞의 1 ~ 4번 작품들에서는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해 성악을 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5번은 순수한 기악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다. 말러의 5번은 앞의 네 곡에서 보여준 방황의 결산이다. 그의 삶을 특징짓는 방황과 고뇌는 아직 끝나기에는 멀었으니, 훗날 9, 10번에서 말러는 다시 삶에의 집착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교향곡 5번은 그가 걸어간 길의 한복판에 가장 견고하게 서있는, 그의 인생의 표적과 같은 곡이다. 말러는 이 곡에 대해 음악 외적인 표제를 붙인 일이 없다. 말러는 "이 교향곡은 열정적이고 거칠고 비극적이고 엄숙하며 인간이 모든 감정으로 가득하지만, 단지 음악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질문의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는 말을 남겼다. 말러가 이 곡을 작곡한 1901년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빈 국립 가극장의 감독으로 4년째 일하며 지휘자로 확고한 명성을 얻었고, "괴짜", "이방인" 이라는 편견을 벗고 작곡가로서도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스무 살의 아름답고 총명한 알마 쉰틀러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 해 여름에 작곡하기 시작한 이 곡은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적나라한 얼굴을 그리고 있다. 20세의 젊은 알마에게 결코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게 할 수 없었던 말러의 거대한 내면, 그 고독한 세계이다. 교향곡 5번은 여러모로 앞의 교향곡과 다른점을 많이 보이지만, 특히 론도 피날레의 마지막 악장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푸가 패시지와 복잡한 대위성부 들이 가장 두드러진다. 1901년의 봄과 여름에 말러가 바흐의 다성음악 연구에 몰두한 것이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말러는 "바흐의 음악이 모든 음악의 씨앗이며 그보다 더 위대한 성음악은 없다" 고 여겼으며, "바흐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모른다" 고 친구들에게 고백했다. 브루노 발터가 지적했듯이 말러의 교향곡 5번은 그 어떤 곡보다도 절대음악에 가깝다. 그러나 역시 말러가 말러이니 만큼 음악 외에 그 어떤 것도 이 곡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며, 베토벤 이후 독일 교향곡이 가지고 있었던 "고난에서 광명으로" 라는 모토를 제외한다 하더라도 각 악장들의 의미를 굳이 찾으려고 한다면 어렵지만은 않다. 스케르쪼에 관해서라면 말러는 바우러-레히너에게 "삶의 정점, 낮의 밝은 빛 속에 있는 인류" 라고 말한 적이 있고, "삶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죽음 속에 있다" 는 의미를 가진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다지에토는 당연히 알라 말러를 염두에 두어도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