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인 엘레나는 '낙관적 인생관'과 '재치'로 남편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준 여성이었다. 10세 때 고아가 된 그녀는 20세에 결혼해 6남매를 두었다. 그런데 이 부부가 가장 사랑했던 한 자녀가 갑자기 사망했다. 비탄에 잠긴 남편에게 그녀는 "여보, 아직도 우리가 사랑할 아이들이 다섯이나 남았잖아요"라고 위로했다.
나중에 루스벨트는 관절염으로 걷지 못하게 됐다. 휠체어에 의지하는 불구의 몸이 됐다. 그때도 엘레나는 웃음을 잃지 않고 남편을 격려했다. 한번은 루스벨트가 엘레나에게 "지금도 나를 사랑하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엘레나가 재치 있게 대답했다. "내가 당신의 다리만 사랑했나요?" 밝고 긍정적인 언어는 주위를 밝고 아름답게 만든다. 밝은 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자산이다.
당신의 말은 항상 낙관적이십니까? 아니면 수시로 비관적입니까?
시 45:1 내 마음에서 좋은 말이 넘쳐 왕에 대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필객의 붓과 같도다
1. 이제 움추렸던 만물이 소생하고 봄의 향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로 부터 벗어나 맞이하게 되는 봄입니다. 새로운 비젼속에 봄을 맞아 힘찬 전진을 이루워 나갈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이 하나님의 은혜속에 잘 이루어지고 지경을 넓혀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진해 군항제 기간에 찬양하는 곳에 지방 토속 음식물 판매코너가 세워져서 2주간 동안 진해루에서의 찬양사역은 하지 못하고 마산 3.15해양공원에서 사역을 하게 됩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연단을 통해 축복하시는 하나님 본문 : 욥23:10,11
세계 제2차 대전의 영웅 원스턴 처칠 경이 영국 수상직을 사임한 후, 그의 모교인 해로우 대학에서 연설할 때 후배들에게 'Never give up!'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 속에는 어떠한 난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어 낼 때 승리와 영광의 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연단의 과정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극복해 낼 때, 그러한 연단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원하시는 뜻 안에서 축복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본문 말씀처럼 이러한 연단의 과정을 통해 정금같이 빛나는 신앙인이 되는 축복에 대해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성숙을 위한 연단(시119:71,72)
1)고통을 알게 하심 베르디 먼로는 말하기를 '어려움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명하는 기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평안할 때는 내 능력, 내 지혜로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어려움을 당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평생 노력해 쌓은 사업체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건강하던 육체가 불치병에 걸려 거동도 힘들게 되었을 대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욥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는 경건하였고 의로운 부자였으나 사단의 참소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고통중에 신음하는 비참한 신세가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잃지 않고 연단의 과정을 잘 극복하여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욥42:5)체험적 신앙인이 됩니다.
2)축복을 알게 하심 에드윈 루쪄는 '인간의 문제가 하나님 해결책보다 더 커본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욥이 당하였던 고통과 어려움이 참으로 큰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더 큰 해결책을 이미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욥이 성숙한 믿음으로 연단의 과정을 잘 극복하였을 때 잃었던 재물은 갑절로 불어 났으며, 건강한 몸으로 일곱 아들과 세 딸을 낳고 장수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같이 성숙한 성도는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은 신앙으로 어려움 뒤에 오는 '흔들리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연단없이 누리는 행보는 마치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아서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면 이내 무너지고 맙니다(마7:24-29). 어떠한 시험과 어려움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성숙한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축복을 누리는 욥과 같은 신앙인이 됩시다.
2. 사명을 위한 연단(사48:10,11)
1)사명자를 연단하심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공주의 양자로 자라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유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알고 믿음 속에서 성장합니다. 그런데 동족을 구해 주려다 오히려 미디안 광야로 쫓김 받은 그는 광야에서 40여년의 세월을 허송하는 연단을 받게 됩니다. 그러한 세월의 연단 과정을 통해 그는 마침내 가시떨기나무 불 속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뵙고 사명자로 부름받아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는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도 처음에는 과거의 실패를 기억한 듯 '나는 입이 둔한 자'라며 사명을 회피합니다. 왕궁에서 쫓겨나 광야에서 무명인으로서의 연단 과정을 겪은 모세의 이러한 겸손이 오히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같이 겸손한 모세를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은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그를 무명인으로 연단하셨던 것입니다.
2)사명을 위해 연단하심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홍해를 건너는데 성공하였지만 백성들은 목마름을 인하여 모세를 원망하고(출17:3), 금송아지를 만들어 번제를 드리는가 하면(출32:6),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러서는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로 망하게 하려 하는도다"(민14;3)라며 불평과 원망을 일삼습니다. 그 결과로 이들은 사십여 년을 광야에서 유랑하는 연단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 강가에 이르기까지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 감당키 어려운 일들을 잘 이겨내어 성경은 그후에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신34:10)고 평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위대한 사역은 한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의 인내와 연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성도들도 모세와 같이 어려운 연단의 과정을 극복하는 믿음과 인내로 맡은 바 소명을 잘 완수해야 하겠습니다.
3. 사역을 위한 연단(고후4:8-10)
1)사역을 위해 부르심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한 바울은 당대의 석학 가말리엘 수하에서 수학하였고, 로마 시민권을 가졌으며, 베냐민 지파로서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으로서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러 가던 중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아라비아에서 3년간 머물며 연단 받은 후(갈1:17)복음의 사역자로서 전도 활동에 전념하게 됩니다.
2)사역을 감당하는 어려움 바울은 '세 번 태장에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였으나'(고후11:2-5)개의치 아니하고 어떠한 핍박과 고난중에도 사역을 위해 자신을 불러주신 주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안질로 고생하면서도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간증하면서 이러한 육체의 고통으로 인한 연단을 인하여 오히려 '육체의 약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간증합니다(고후12:7-9). 베드로 사도의 말씀처럼 주의 사역을 위해 받는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 중에서도 오히려 찬양과 감사가 넘친 것입니다. 이같이 성돈가 겪는 연단의 과정이야말로 올바른 신앙의 기초 위에 믿음의 건물을 세우고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됩니다.
결론 대장간에서 대장장이가 풀무에서 시뻘겋게 달군 쇠를 꺼내 두드리고 또 거듭 두드려서 연장을 만듭니다. 쇠는 많이 두드릴수록 강해진다고 합니다. 성도도 이와 같습니다. 많은 시련과 연단을 겪은 성도는 넉넉히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강철같은 신앙을 소유하게 됩니다. 혹 어려운 연단으로 인해 어려움과 고통 중에 있습니까? 성숙을 위한 진통임을 믿고 욥의 인내를 배웁시다. 사명과 사역을 위한 연단임을 믿고 모세와 바울의 겸손과 순종을 배웁시다. 그리할 때 이 모든 연단의 과정이 극복되고,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은총이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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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샬롬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