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경험한 구체적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2,13절을 보면,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왜 다윗은 이러한 촉구를 하였을까요?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세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신앙은 관념이나 어떤 추상적 사실에 근거한 막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세속종교는 관념이나 인간의 상상에 의한 추상적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서 막연하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은 그러한 세속 신앙과는 구분됩니다.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체적인 기사와 이적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잘것없는 그들을 택하셨고, 애굽의 압제에서 놀라운 능력으로 구원하여 주셨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셨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셔서 그곳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하신 모든 것이 그들의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그들 공동의 체험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구체적인 하나님 체험이 이스라엘을 이루는 핵심이 되었고, 그들 신앙을 구체적으로 형성케 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이스라엘의 찬양에는 그러한 그들의 체험적 고백이 빠지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 그러한 이적과 기사의 내용들을 통하여 자신을 소개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으며, 그들의 신앙은 매우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직적ㅂ적이고 구체적으로 개인하셔서 그들을 도우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도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경험한 구체적 사실을 통해 형성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책에서 읽은 지식이나 교육으로 구체화되지 않습니다. 물론 책이나 교육, 또는 다른 사람이 전하는 말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이 우리에게 온전한 믿음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 중심의 신앙은 관념적이고 학문적인 수준에 머물게 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산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사사기를 보십시오.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섬겼지만,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삿2:7,10)고 말합니다.
여기서 '알지 못했다'라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 자체나 그분이 하신 일 자체를 알지 못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자손들에게 그 모든 사실을 확실히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 이후의 세대가 하나님을 몰랐을리 만무합니다. 여기서 여호수아 이후 세대가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체험적 경험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이렇게 하나님에 대하여 체험적 신앙을 갖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있었으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여 타락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주듯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물론 하나님께 대한 구체적인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매일 하나님을 경험함으로써 구체화되어지고, 실제적인 신앙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며, 이삭의 하나님이셨듯이, 오늘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을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구하는 자와 함께하시며 자신의 말에 순종하는 자를 도우셔서 자신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