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중국군이 베이징에서 수천 명은 아니더라도 최소 수백 명의 시위대를 사살한 다음 날, 천안문 광장 근처에서 흰색 셔츠를 입은 한 남성이 이동하는 탱크 행렬 앞에 섰고 20세기 가장 유명한 시위대 중 한 명으로 떠올랐습니다.
이 남자는 탱크가 엔진에 포를 쏘는 동안에도 탱크의 길을 막았습니다.
그는 첫 번째 탱크에 올라 손도끼를 두드리며 탱크 안에 있는 병사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가 탱크 앞에서 뒤로 물러나자 두 명의 남자가 길거리로 뛰어나와 그를 끌어냈습니다.
이 대결은 그해 봄과 여름 중국을 휩쓴 민주화, 반부패 시위의 가장 오래 지속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항의하는 탱크맨의 운명에 대한 추측이 계속되고 있습니다(실제 신원은 알려지지 않음).
수천 명의 중국인이 시위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구금되어 수감되었고, 그중 일부는 거의 평생을 감옥에 갇혀 지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처형당했습니다.
탱크맨이 그중 포함되었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탱크맨은 학생, 노동자, 어린이, 의사, 행인 등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총에 맞아 죽는 잔인한 정부 탄압을 보거나 들은 베이징의 평범한 시민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영상과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는 쇼핑백을 들고 6차선 도로를 따라 혼자 걷다가 탱크를 보고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첫댓글 문득 광주가떠오르네요...국가권력으로 시민들을ㅜㅜ 참 무섭습니다.
불과 34년전이라는게
어머님이 전라도 분이신데
친척분들 중 아드님이 광주... 그때 돌아가신 분들 계시더라구요.
시체 찾느라 거기 울며 돌아다니셨답니다...
@샌반야마 그쪽출신 부대원이 있어 물어보니 광주출신 인 사람들은 항상 여분옷을가지고 휴가나갔다고합니다.
사단마크만봐도 기겁을하고 욕한다고하네요ㅜㅜ 아픈상처딛고 변한 나라가있지만 아직 중국이란 나란 ....
중국의 마지막 기회가 저시기였을텐데요
현재상황도 남일이 아니라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