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고삼인데…. 딸 이름이 김고삼이라…. 흥미로운 이름이군. 하지만 내 딸은 고삼이가 아니라 고3이다. 아이가 고3이라고 하면 모두들 “힘드시겠군요!” 하고 위로하려 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 난감해진다. 하나도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내 딸이 다니는 학교는 서울에 있는 정신여고다. 역사가 오래 되었다고 꽤나 뻐기는 학교다.
집에서 5분이면 걸어가는 거리라, 내 딸은 정말 쉽게 학교 다닌다. 20분 동안 만원 버스에서 책가방과 분리되었다가 겨우 다시 합체하고 내려서 합이 30분을 10kg(?) 가방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아니면 손을 호호 불어가며 낑낑대고 걸어가야 했던 내 고3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이가 갈린다. 얇은 일본 군국주의 홑교복에 외투도 없었고, 입게 허락하지도 않았다. 우리 김고삼이는 지금 천국에서 살고 있다.
고3이 오후 3시면 귀가를? 고3이라는 게 오후 3시가 조금 넘으면 집으로 돌아온다. 독서실에 가거나 학교에 남아 공부하라고 해도 집에서 하는 게 더 좋다고 집에만 있다. 물론 과외도 한 과목하고 학원도 다니긴 한다. 하지만, 엊그제도 텔레비전에서 밤 10시 넘어까지 불 켜놓고 수능 준비하던 학생들을 안쓰럽다는 듯이 비춰 주고, 인터뷰하는 학생은 잠 좀 실컷 자 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던데, 도대체 정신여고와 김고삼이는 어떻게 된 노릇일까? 스트레스 안 받느냐고 물으면 별로 안 받는단다.
다른 애들은 어떠냐고 물으면 많이 받는 애도 있기는 있단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고3의 지옥 생활과는 많이 다르다. 얼마 전까지도 영화 보러도 가고 건방지게 동무들과 외식한다고 나가기도 했다. 내 고3 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시절이 달라 그런지 사람이 달라 그런지…. 우리 애가 알아서 잘 공부하는 애라 그럴 거라고 지레짐작 안 하시면 좋겠다. 걔는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하는 애다. 그러니 우리도 사람인데 왜 안달이 안 나겠는가.
당연하게 아내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해대고, 아이는 "알았어!"하고 받아 넘긴다. 일류 대학 간 조카들하고 비교하면 은근히 약이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정도다. 온 식구가 긴장하고 숨소리도 죽이며 100일 기도하는 따위의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는다.
그래 봤자 스트레스만 더 쌓이고 성적이 꼭 오르는 것도 아니라는 걸 잘 아는 현명한 사람들이니, 또는 무정한 사람들이니. 학교가 문제 많다고 텔레비전에서 보도하는 걸 볼 때마다 우리 고삼이는 고개를 내젓는다. 도대체 누가 그렇고 어디가 그렇다는 말이냐며. 그러면서 하는 말, "저건 오버야!"
진짜 문제는 가진 자들의 극성 우리 나라 공교육이 문제 많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나는 무엇이 문제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고3이 오후 3시에 들어오다가 얼마 전부터는 아예 오전 수업만 하고 들어온다. 왜 공부 안 하냐고 했더니 진도는 다 나갔고 학생들이 자습을 원해서 그러는데, 자습 시간에 공부 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고 그냥 쉰단다. 수업일수 안에 수업을 안 하는 직무유기가 문제라면 문제다. 하지만, 옛날의 그 '입시 지옥'은 이제 덜해진 게 사실 아닐까?
한국 중등교육의 진정한 문제는 부실한 공교육이 아니라 한 점이라도 더 높은 대학으로 밀어올리기 위해 극성을 떨며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가진 자들의 짓거리가 아닐까? 우리가 정말 '이상한 가족'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