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탄생지는 인도가 아니고 네팔 룸비니입니다.
여태 알고 있던 상식으로는 석가모니의 탄생지는 인도라고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 네팔에 가서야 인도 국경 근처의 네팔땅 룸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여행은 배움입니다. 늘 히말라야 설원을 동경하던 차에 봄에 한번, 가울에 한번 2번에 걸쳐 갔다 왔지요. 첫 여행은 비행기 표만 달랑 들고 떠난 정말로 무식한 여행이었습니다. 네팔은 히말라야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은 중국, 남쪽은 인도와 접경을 이루고 있지요.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모양의 네팔국기!
삼각형은 히말라야의 산을 상징하고, 테두리 파랑은 평화를,
빨강은 네팔인의 용맹을,
달과 태양은 힌두교를 의미하며, 달과 태양과 같이 국가가 영원히 번영하기를 염원한다는....
히말라야는 고대 산스크리트에서 유래된 말로 눈을 뜻하는 히마와 거처를 뜻하는 알라야의 합성어로 눈의 거처, 세계의 지붕을 의미합니다.
인천에서 일주일에 두번 운행하는 국적기를 타고 7시간여 지나면 우측 창밖으로 히말라야 설원이 펼쳐집니다. 돌아 올때는 좌측 좌석에서만 볼 수 있지요. 국내선을 타고 이동할 때도 볼 수 있는데 좌석방향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국내선 소형비행기는 지정좌석이 없으니 비행하는 방향을 고려하여 재빨리 앉으면 됩니다. 그리고 작은 비행기로 1시간 정도 히말라야 일주투어를 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비용은 15만원 정도 했나요.
네팔 입국은 비자가 필요하지요. 사전에 비자를 받아도 되고 공항에서 도착비자를 받아도 되긴 한데 도착비자를 받을려면 재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비자를 받는 큰 이유는 비자비용 때문인데 이것이 네팔정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은 공항을 나서면 달라붙는 호객꾼들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주로 택시 또는 자가용 이용안내, 숙소안내, 짐꾼 등이 일당을 벌기 위함이지요. 낯선 환경과 사람들의 모습으로 잠시 가는 길을 멈추고 지나치도록 친절을 베푸는 한 사내의 말을 들어 봅니다. 여행자 거리의 게스트하우스 시설과 비용을 확인하고 그와 함께 시내로 접어드니 쾌쾌한 냄새가 먼지와 함께 진동합니다. 이 나라의 택시는 에어컨도 없는 작은 인도산 중고차가 대부분 이지요. 크기는 예전의 대우티코와 비슷합니다.
30여분을 달려 여행자거리인 타멜에 도착하여 배낭을 내려놓고 길거리 구경을 나섭니다. 인도보다는 깨끗하다고 하는 카트만두 시내는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고 썩는 고약스런 냄새는 속을 뒤집어 놓으니 구경이고 말고 가능한 빨리 이곳을 탈출하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속소로 돌아와 제2의 도시 포카라행 국내선을 예약하고 카트만두에서의 첫 밤을 맞는데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방안에 퍼지는 진하고 강한 역겨운 냄새로 머리가 지근거립니다. 새벽에 길을 나서 공항으로 향하여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하니 트레킹 떠나는 서양 젊은이들로 가득합니다.
포카라는 휴양도시로 아름다운 호수와 함께 주변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이곳은 안나푸르나 트레킹 여행자들이 출발하는 거점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산행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뒷산을 올라가면 멀리 안나푸르나 설산을 볼 수가 있지요. 호수에서는 한가로이 보트를 타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갖기도 하구요. 허나 즐거운 시간도 며칠 지나지 않아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예상도 하지 않은 마오이스트 공산주의자들이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일으켜 모든 활동을 마비시키고 말았습니다. 처음 경험한 이들의 스트라이크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국가운영 시스템이 완전히 마비되는 상태로서 모든 활동이 정지됨을 말합니다. 지상교통은 자전거, 인력거외는 완전 통행금지, 상업활동, 관공서업무 완전정지 등으로 오직 레스토랑만은 여행자들을 위해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두 시간만 오픈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다이어트 심하게 했지요. 마오이스들은 몽둥이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며, 대규모 집회도 열고 영업활동을 감시합니다. 운행하는 차량, 오픈한 가게 유리를 깨도 아무말 못합니다. 최빈국중의 하나인 이 나라는 상대적으로 힘들게 살고 있는 노동자, 농민, 무직자 들이 주동이 되어 마오이스트당을 창설했다고 하네요. 200여개가 넘는 당이 존재하는 나라가 네팔이라고 하니 정치적으로 얼마나 불안정한지 알 수 있겠지요. 십여일 동안 차량 운행이 되질 않아 멀리 가지도 못하고 발품팔아 시내 이곳저곳 뒤져 봅니다.
카트만두의 더르바르 광장은 16세기부터 19세까지 카트만두 일대를 통치하던 왕궁으로 대부분 목조건물로 세워졌습니다. 1934년에 대지진으로 많이 파괴되고 방치된 것을 유네스코가 개입하여 그나마 지금의 상태로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예산부족 및 고질적인 부정부패로 완전한 복구가 되지 못한 상태로 있지요. 외국인에게는 비싼 입장료를 받고 있지만 그 돈이 어디로 가는 지는 신 만이 알고 있을테니..... 왕궁 건축물에서 기념품, 생필품, 음식물, 생고기를 판매하고, 심지어 살림을 하고 있는 광경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지요.
이곳에는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인 꾸마리를 모시고 있는 꾸마리사원이 있으며, 사원 출입은 가능하지만 꾸마리는 볼 수가 없습니다. 힌두신인 꾸마리는 4~5세 여아중에서 선별하며, 꾸마리에게는 국왕도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고 하지요. 그러나 추앙받던 꾸마리도 초경이 오면 사원을 떠나야 하는데 꾸마리와 결혼한 남자는 일찍 죽는다는 속설로 인해 평생을 어렵게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숭배할 때는 언제고 쪽박채우는 것은 무슨 짓인지.....
여기부터는 19금입니다. 왕궁사원 건축물에는 에로틱한 조각들이 가득하네요. 그중 일부만...
다음은 가을에 떠난 두번째 카트만두 여행입니다.
첫댓글 네팔에 대한 생생정보를 알게되어 더욱 흥미있게 보았어요. 여행을 통한 성장과 인간미를 더욱 크게 느끼는 군요.
Thank you Mr. Big Father.
나는 웬일인지 설산을 보면 성스런 느낌을 받습니다. 설산을 제대로 본 일이 없어서
스위스나 히말라야는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네바를 갔으나 설산은 안보이고
오스트리아도 갔으나 늦봄이어서 제대로 보질 못했습니다. 뱅쿠버의 스키장 구경(말그대로 구경)갔다가
멀리서 보이는 눈덮인 로키산맥,쥑여줬지요. 눈덮인 산 실컷 보고 싶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