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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이후로 내가 간절히 꿈꾼 것은 절대 어딘가 낯선 곳에 몸을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정처없이 떠다니는 여행자를 갈망해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자나깨나 그리워 한 것은 완벽하게 나를 품어줄 따스하고 안정적인 공간과
한결같이 나를 기다려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정갈하고 완벽한 곳이었지 단 한번도 낯선 거리와 불편한 잠자리,
새로운 사람과의 왁자한 관계를 꿈꾼 적이 없다.
열여섯 살. 말 그대로 산골짜기에서 태어나 시내버스만 타도 차멀미를 울컥 울컥해대던 산골 소녀로서의 생활을 접은 나이.
그 어린 나이에(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린 나이 같다) 엄마와 아버지를 떠나와 남의 집 곁방에 살면서 마음과 몸은 참으로 불편했다. 거기엔 어떤 낭만도 향수도 들어있지 않았으니까.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왁자한 주인집 식구들의 이야깃소리, 밥 짓는 냄새, 늦은 밤 웅웅거리는 텔레비전 소리들이 먼 곳에서처럼 들려왔다. 흘깃 쳐다보는 그들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그러나 적당히 아는 체를 하는 인사를 꾸벅 하면서
아, 저들이 내가 들고 나는 것을 보지 않았으면. 내가 방에 들어가 무얼 하는지, 밥을 무얼 먹는지 보지도 듣지도 말았으면 좋겠다고 수백번을 생각했다.
세 값이 오르거나 때가 다가오면 수시로 이사하는 것.
낯선 방에 단촐한 살림들을 다시 정리하는 것.
겁에 질려 혼자 잠들지 않는 것.
따스한 밥상이 차려진 방 한 켠.
때론 다툼이, 때론 눈물이, 때론 잔소리가 일어나는 집.
그런 것들을 간절히 그리워했다.
제주도 바람스테이 큰 방 위의 다락방. 정갈하고 다정하고 아늑하다.
겨울이면 큰 꽃무늬가 그려진 밍크 담요가 늘 펴져 있던 곳.
그 아랫목에는 늘 소박한 먹을 거리들(강정이나 강냉이, 고구마나 떡들)이 이불 속에 담겨 있던 곳.
저녁 때쯤 피운 아궁이가 뜨거워 엉덩이를 대기도 힘들다가, 새벽녁이면 코끝만 추워지고, 그러나 새벽녘 세숫물을 끓이는 장작불에 다시 뜨끈해지던 어린 시절의 안방과 내 작은 사랑방.
메주가 뜨고, 땡감을 소금물에 담가 익히고, 발들을 모두 넣어두고 코바늘 뜨기나 털실 바지를 짜던 이불 속의 그 곳.
열여섯 살 까지의 계속되던 아름다운 풍경을 떠나와 결혼하기까지 온전히 바란 것은 그런 작은 생활의 온기와 나눔과 냄새였었다. 아마, 또래의 친구들보다 유난히 빠른 결혼은 그 안정과 따스함, 내 공간과 사람에 대한 갈망이 작용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나는 타고난 여행자도 아니고, 타고난 여행자 스타일도 아닌 것이다.
심지어 내가 이토록 여행을 자주 떠나는 사람이 될 지, 전혀, 짐작도 안해봤었고, 게다가 사람들까지 데리고 함께 여행을 다니는 여행기획자라거나 여행 인솔자라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다.
항상 낯선 곳을 그리워 하고, 후딱 짐을 싸고, 거리에 나서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
처음인 땅에 발을 딛어도 몇 달은 산 것처럼 몸과 마음에 딱 맞게 방을 꾸미고 분위기에 적응하는 사람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사람들.
그들이 여행자 체질이라면 나는 체질조차도 그다지 여행자에 적합하지 않다.
물론 건강체인데다, 힘도 세고, 손발도 튼튼한 사람이긴 하지만, 제 발에 스스로 걸려 넘어지는 습벽이 여럿이다.
우선 언제부터 그렇게 잘 씻고 다녔다고 여행을 떠나서 제대로 씻지 못하면 꿉꿉해서 안절부절 한다.
속옷을 잘 갈아입지 못하거나 정리를 못하게되면 마음조차 불안하다.
옆에 사람이 있으면 내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초조함 때문에 화장실 사용도 원활하지 않다.
자리가 바뀌고 이부자리가 바뀌면 도대체 이 삼일 동안은 전전반측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취해서라도 자보려고 굳이굳이 더 술을 마실라치면 잠잘 목적으로 마신 걸 잊고 주사를 부리느라 또 못잔다.
한국에서야 그런 일이 없지만 외국어에 능통하지 못하니 졸지에 초등학생 수준도 안되는 토막말을 하느라 가끔은 바보짓을 거듭 하게 되기도 한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길치에 방향치라는 것이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잠시 눈을 감기고 한바퀴만 돌려놓으면 있던 곳이 어딘지를 거의 모르겠는 편이고,
독도법은 깨우치지도 못했으며 나침반도 읽을 줄 모른다. 우회전 좌회전 같은 것도 잘 모르니 약간 길눈이 어두운 것에서 조금 더 나간 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운전면허를 따놓았고 한때 운전대를 잡기도 했으나 속도가 90킬로만 넘어도 그 아찔한 속도감에 넋이 빠지게 무서워서 운전도 능숙하지 못한 편이다.
겁은 또 얼마나 많은지. 나잇값도 못하고 덩치값도 못한다.
여행에 걸맞은 영혼도, 몸도 아닌 내가 가장 편안하고 독립적이면서 그야말로 '신독(愼獨)' 할 수 있는 곳은 사실 안락하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이 손 닿는 곳에 있는 '집'이었던 것이다.
제주도 바람스테이. 박범준 장길연 부부의 집이자 손님집이다. 내가 꿈꾸는 공간.
마당은 넓고 우악스럽지 않으며, 나무들은 평온하게 자란다. 개들은 사람처럼 같이 놀고, 먹고, 해바라기한다.
찾아온 손님들은 이방 저방에 나누어 쉬다가 마당에서 쉬이 만난다. 그 집 마당, 평화로운 군것질 시간.
그렇게 간절히 나만의 공간과 집을 그리워하고 안온해 하던 나는 언제부터 왜? 몸에 잘 맞지도 않는 여행을 그토록 갈망하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그렇게 잘 못 먹고, 잘 못 자고, 수없이 길을 잃으면서 수만가지 불편을 감수하는, 어쩌면 그 불편을 즐기면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여행자가 되었을까.
왜 여행이 아니라 고행 또는 수행이라고 되뇌이면서 물집이 생기도록 걸어다니게 되었을까. 뭔 대단한 감성을 가졌다고, 뭔 대단한 깨달음을 얻겠다고...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몇 박 몇 일을 트레킹을 하면서, 죽음처럼 검은 물에 빠질까 두려워하면서도 수영을 해보면서, 밤 숲길을 걸으면서.... 길을 잃고 헤매다 눈물을 쏙 빼면서....
여하튼 몇 년 동안 부지런하게 떠돌아다니면서도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그 궁금증이 작년 말쯤 떠올랐었다.
난 집이 좋은데.... 집이 해방구인데.... 왜지? 너 왜 그러는 거니? 왜 자꾸 여행을 떠나는 거니?
두 가지 이유가 어렴풋이 잡힌다.
미친 듯이 바깥으로만 돌아치려던 그 순간엔 집의 안온함 속에 각자 가족 구성원이 아우성치는 소리들이 들렸다고나 할까.
간혹 사랑의 넘침이었던 적도, 관계가 어그러지고 빠개지는 순간이었던 적도, 각자 서로 성장하느라 물어뜯는 순간이었던 적도 있었지만 아무튼 집 안엔 소리 없는 아우성들이 가득차 있었던 것만 같다.
겉으론 아무 변화도 없이, 조짐도 없이, 별 일 없어 보이는 집의 모양과 공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내가 여행을 훌쩍 떠날 즈음에는 가지 가지 소리들로 나도 그들도 몸이 다 아플 지경이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즈음 여행을 떠날 때쯤은 좀 허세를 부리며 지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집으로부터의 탈주'를 감행한 것이다.
바람 많은 섬 제주 거기서 조금 더 간 우도의 돌담. 저 돌 틈 속에 구멍이 있어,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다른 한 가지는 그런 이유로, 한번의 탈주를 해봄으로써, 환경과 관계를 잠시나마 떠나 작은 숨구멍을 뚫어보면서 깨닫게 된 틈새의 여유다. 들리는 소리가 다르고 마주치는 공기와 사람이 다른 곳에서 있다보면 아주 명징하고 훌륭한 깨달음의 순간까지 가서 득도하지는 못하더라도, 두고온 사람들과 어떻게 조금은 다르게 관계를 맺을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같은 것이 돋아나는 순간이 있다.
그래, 다시 만나면 이렇게 말해 줘야지, 다시 만나면 눈빛은 이렇게 보내줘야지. 하는 다짐 같은 것이 솟아나기도 한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장엄하거나 거대하거나 아름다운(정반대여도 괜찮다) 풍경을 접하고 있노라면, 두고온 문제들의 지지부진한 아귀다툼과 진흙탕 구덩이가 너무나도 하잘 것 없게 여겨지는 바로 그 때다.
그런 좋은 장소, 그런 행복한 곳, 그런 다른 풍경에 내 맘과 몸을 힘들게 해서라도 가져다 놓는 것.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쌓아온 마음의 무거움과 어둠과 욕망을 덜어내게 되는 것.
그것을 알기에 나는 자꾸 이토록 편안하고 따스한 침대와 내 컴퓨터와 책상과 주전부리할 것이 널려 있는 부엌을 떠나 여행을 떠나는 것만 같다.
그렇다 해도 요즘은 좀 기운이 달려, 조금 더, 오래 쉬어야겠다고, 집순이로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기는 하다.
첫댓글 16살 그 시절 얘기는 정말 가슴 아파요. 나에게도 10대에 겪은 뭔가가 있는지 사무치는 느낌입니다.
열여섯, 그 즈음, 스무살 그 즈음... 누구라도 모두 사무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때 뭔 일을 겪었을까요? 근데요. 사실 스물 너머 서른 즈음에도, 마흔 즈음에도 늘 사무치는 것 같지 않은가요? 이거 원... 사무치는 것은 그만하고 싶은데요. 하하.
16살 그 즈음, 바다 끝트머리 날선 벼랑 위에 앉아 바다 너머 세상에는 나를 구원해 줄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까를 꿈꾸었었지요. 내게도 그런 숨막히는 16살 시절이 있었네요. 그곳이 제주도, 나의 고향에서였지요. 그 시절에는 그저 고향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나가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 바다를 끼고 살고 싶은 게 꿈이 되어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