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하(黃河) 상류의 산서성(山西省)과 섬서성(陝西省)의 경계에 있는 협곡 이름을 용문(龍門)이라고 한다. 그곳의 여울은 흐름이 어찌나 세차고 빠른지 큰 물고기도 여간해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오르기만 하면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등용문(登龍門)에 관한 고사였으며, 이 말은 '입신출세의 관문'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해마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용문을 오르려고 숱한 나날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피를 토하듯 글을 써서 신춘문예에 투고하는 예비문사들이 있다. 그리고 새해 벽두가 되면 신문사마다 어김없이 신춘문예 당선자들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지면을 장식한다.
최초의 신춘문예는 1925년 '동아일보'에서 시도되었으며, 소설 입선 작품은 최자영의 '옵바의 이혼사건'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신춘문예는 서울과 지역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신문들에 의해 실시되고 있으며, 한국 문필육성에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이런 신춘문예는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신인작가의 등용문이며 그 권위를 자랑하기도 한다(여기서 신춘문예 역기능에 관한 이야기는 차제로 미루기로 한다).
바야흐로 신춘문예 계절이 절정에 이르렀다. 이맘때면 작품 공모를 끝낸 사람들이 가슴을 조리며 그 결과에 촉각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당선 통지를 받고 엉엉 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감격적이고 어려운 관문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수많은 난관을 돌파하고 당선이라는 영예를 쟁취한 사람들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동시에 그들은 전문작가라는 '기능인'으로, 그들의 작품은 '기능적 지식'으로 대접받게 된다.
여기서 용문을 오르려고 하는 사람들이 필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등단이 축복 받는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 문학 현실을 감안할 때 문학의 등용문이 곧 입신출세의 관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용문을 거슬러 오르기까지 숱한 고생을 겪었겠지만, 등단 순간부터 홀로 서야하는 운명에 놓이며, 또 다른 고난의 대장정이 앞에 놓였다는 것도 알아야한다.
또 한 가지 해둘 이야기가 있다. '후한서(後漢書)' 속의 등용문에 관한 고사를 보면, 정의를 위해 자신의 주관을 꺾지 않았던 이응(李膺)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가 얼마나 정직하고 모범적이었으면, 당시의 젊은 관리들은 "이응을 만나면 용문에 오른 것 같다"며 자랑했을 것인가. 등용문을 입신출세로 여기며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자들이 있다면 불의에 맞서 정의를 실천했던 이응의 고사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등용문이 출세지향의 동경으로 변질되어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을 통해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름 아니다. 점액(點額)이라는 말이 있다. 등용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무슨 뚱딴지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잘 들어보기 바란다. 등용문에 반대되는 말이 점액이다. '점(點)'은 '상처를 입는다'는 뜻이고 '액(額)'은 이마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용문에 오르려고 도전했다가 바위에 이마를 부딪쳐 상처를 입은 물고기가 곧 '용문점액'이다.
아직 2003년 신춘문예 결과가 발표되기 이전이라서 시기상조에 해당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가 낙방한 사람이 당선자보다 오히려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한다.
'꼴찌에게 갈채'라는 말도 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단순히 상처를 어루만져주려는 수작이 아니다. 단 한 사람을 뽑는 신춘문예에 낙선되었다고 해서 피를 토하듯 썼던 글들이 문학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비록 오늘은 선택받지 못했을망정 최선을 다했던 그 과정과 결과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학임에 틀림없다. 좌절이나 비관은 버렸으면 좋겠다. 믿음을 갖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은 끝내 용문에 오를 것이다. 다만 그 때가 언제냐 하는 것일 뿐.
이런 이야기는 문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오늘도 수많은 시험과 관문 앞에 서 있다. 힘든 세상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중단하지 말자. 중단이란 곧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무등일보. 2002.12.27.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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