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7년 정묘년 1월 30일
한강가 삼전도 모래벌판엔 강한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삼전도 모래벌판에 조선 왕 인조으로부터 항복을 받기 위한 수항단(受降壇)이 마련되었다.
진흙을 짓이겨 조성한 16미터의 9층탑 수항단이다. 수항단 앞에는 황색의 장막이 펼쳐졌다.
용상 좌우에는 완전무장한 호위대가 둘러서 있었고 풍악이 울려나왔다.
수항단 아래서는 조선 왕 인조가 항복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청나라의 왕 홍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화도에서 포로로 잡혀온 세자를 비롯한 중전과 세자빈등도 인조와 함께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통곡을 하고 있었다. 도성을 출발하였다는 홍타시는 한나절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부복하라! 황제 폐하 드신다."
이윽고 청나라 홍타시가 나타났다. 인조는 길라잡의 외침에 따라 차가운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대신들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이곳저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홍람백황의 깃발이 나부끼며 대오를 맞춘 청나라 기병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일정한 소리를 내어 진군해오는 그들의 표정 속에는 점령군의 오만함이 배어있었다.
"각군은 각자의 위치를 지켜라!"
홍타시를 호위하며 앞장 서 들어오던 마부태가 명령을 하자 홍람백황의 기병들은 대오를 벌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홍기군은 남쪽으로 남기군은 동쪽 백기군은 서쪽 그리고 황기군은 홍타시를 호위하며 북쪽에 마련된 수항단을 향해 진군했다.
수항단의 맨 위층에는 황금장막과 우산이 쳐 있었고 홍보석으로 꾸민 화려한 보좌가 남면(南面)을 한 채 한 가운데 놓여있었다.
마부태를 호위를 받은 홍타시가 홍보석의 의자에 앉자 대기하고 있던 용골대는 항복의식이 시작됨을 알렸다.
"원래 항복 예식을 행할 때는 항자(降者)는 상복을 입고 삼껍질을 머리에 두르며 팔은 뒤로 얽어맨 채 입에는 구술을 물고
수레에 상여를 실어 죽은 형세를 하여야 한다. 하지만 황제께서는 조선의 왕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3배9고두의 간단한 예로
의식을 거행한 다음 소를 잡아 피를 내어 이를 같이 마심으로써 군신간에 맹세를 하게 하셨다."
순간 무릎을 꿇고 부복했던 백관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왔지만 이들의 소리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이제부터 3배9고두의 의식을 거행하겠소. 조선 왕은 앞으로 나서서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고두의 예를 행하시고
중간층에 오른 다음에는 삼 배를 올리시요."
인조는 명령을 따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순간 수항단 꼭대기에서 벼락같은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왔다.
"조선 왕은 다시 자리에 앉으시요. 항복한 사람이 감히 불손하게 황제 앞에서 어떻게 고개를 든다 말이요."
홍타시 곁에서 그를 호위하고 있던 마부태가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인조는 그 소리에 움찔하고는 다시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조선 왕은 고개를 숙이고 수항단의 첫 계단 앞에 서시오."
다시한번 용골대가 명령하자 곤룡포를 벗고 여진식의 푸른색 옷으로 갈아입은 인조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수항단의 첫 계단 앞에 섰다.
"고두라 함은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두 손을 땅에 대고 엉덩이를 발꿈치에 붙이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굽히는 인사법이오.
조선 왕은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고두를 하고 오르시오."
수항단은 세층으로 마련되었다. 그 한 층은 아홉 개의 계단 위에 마련되었다.
1월 30일 인조는 세자 등 호행(扈行) 500명을 거느리 인조가 중간에 오르기 위해서는 아홉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인조는 결국 아홉번의 고두를 해야하는 것이다. 인조는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였고 뒤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땅에 대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백관들 속에서는 울음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나왔다.
"어서 행하지 않고 무얼 하시오."
다시한번 맨 위층에서 마부태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인조는 드디어 결심한 듯 첫 계단을 오른 다음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땅에 대고 머리를 조아린 다음 일어섰다.
"다시 하시오. 고두라 함은 머리가 땅에 완전히 닿아야 하는 것이오."
역시 마부태였다. 인조는 온갖 수치를 감내하듯 잠시 머뭇거리다 차가운 돌계단에 무릎을 뚫은 다음 두 손을 땅에 대고
이마가 땅에 닫도록 머리를 숙였다. 순간 '쿵'하는 소리가 나며 인조의 머리가 차가운 돌계단에 부딪쳤다.
한 칸을 올랐다.다시 한번 인조는 무릎을 꿇고 고두을 올렸다.
'쿵'
내린 눈이 얼어 붙어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고 단단하여 인조의 머리가 부딪치자 이마에서는 한 줄기 피가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이 광경을 목도하고 있던 태자와 대군 신하들은 통곡을 하며 몸을 떨며 슬퍼했다.
한칸 또 한칸 올라설 때마다 돌계단에 부딪친 인조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려 이제 그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다.
흘러 내리던 핏줄기는 눈물과 어울어져 차가운 날씨에 곧장 얼어 붙어 인조의 얼굴에 고드럼처럼 맺혔다.
마침내 아홉칸에 올라선 인조는 자신의 비참해진 몰골을 보이기 싫어 땅에 고개를 숙였다.
"조선 왕은 이제 황제 폐하께 삼배를 올리시오."
조선 왕 인조는 삼배를 끝내고 엎드린 채 그동안 대국에 항거했던 죄를 용서해달라고 청했다.
청의 왕 홍타시는 조선 임금의 죄를 모두 용서한다는 조서를 내리게 했다.
조서의 낭독이 끝나고 조선의 왕 인조는 단상으로 인도되었다.
이번에는 세자가 앞으로 나갔다.세자 역시 부왕이 했던 그대로 큰 절을 올리고 이마를 땅바닥에 부딪쳤다.
세자의 의식이 끝나자 삼정승과 김상현이 빠진 오판서가 차례대로 나아가 삼배구고두를 했다.
세자빈과 대군의 두 군부인이 나타났다. 그들도 항복의식을 위해 끌려 나온 것이다.
"그 자리에 엎드려 황제 폐하께 절을 올리도록 하라!"
조선 왕 인조의 세 며느리들은 자리에 엎드려 오랑캐 청의 왕 홍타시에게 절을 올렸다.
세자는 자신이 절할 때보다 더 큰 모욕을 느꼈다. 인조도 마찬가지였다. 청의 왕 홍타시는 만족하며 웃었다.
"오늘 우리는 이로써 한가족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예의를 다하였으니 짐은 심히 만족하노라."
굴욕의 항복을 치르고서야 인조는 궁궐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세자와 빈궁 그리고 두 대군과 군부인들은 장막에 머물렀다가 심양으로 인질로 끌려가게 내버려둔채 말이다.
"우리 임금님, 우리 임금님."
인조 일행이 뚝섬나루에 도착하였을 때이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임금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포로로 청나라에 끌려가는 조선 백성들이었다. 수만명의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청나라로 끌려가며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인조일행은 이 비명에 가까운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뒤로하고 화양리를 거쳐 살곶이다리,
그리고 불에 타버린 가옥들이 즐비한 왕십리를 지나 창경궁으로 힘겨운 환궁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