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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눈물-전상국
잔인하고 교활한 문제 학생 ‘최기표’, 성적 좋고 통솔력 있는 반장 ‘임형우’, 학생들을 장악하려는 담임 교사. 그들 사이의 갈등을 ‘나’(이유대)가 관찰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으로 합법적인 권력과 벌거벗은 폭력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 줄거리
새 학년이 시작된 고등학교 2학년 학급. 자율이란 말로 학생들을 묶으면서 군림하고 싶어하는 담임. ‘나’(이유대)는 임시 반장을 맡게 된다. 이것이 최기표에게 '메스껍게' 보여 린치를 당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량하지만 한쪽에는 이른바 재수파(再修派)가 있다. 한 학년씩 유급을 당한 아이들인데 그들의 중심에 최기표가 있다.
담임은 '나'에게 반장을 계속 맡아 달라고 했지만 '나'는 임형우를 추천한다. 담임이 학급을 위한 조언(고자질)을 부탁하나 '나'는 부당함을 인식하고 말하지 않는다. '형우'가 반장이 되고, 그와 담임의 노력으로 학급은 일사불란한 항해를 계속한다.
'기표'는 학생들을 폭력으로 장악한다. 그러나 의욕에 찬 담임 교사가 '기표'를 길들여 나가기 시작한다. 우선 '기표'를 재수파들로부터 고립시킬 계획을 세운다. 담임의 묵인 아래 모범생들이 '기표'의 시험을 돕기로 한다. 컨닝 쪽지가 그에게 전달된다. 이것이 '기표'의 비위를 상하게 하여 '형우'는 그에게 린치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하지만, 가해자를 끝내 숨겨 줌으로써 의리의 영웅이 된다. 매혈(買血)한 돈으로 '기표'의 생활비를 보태었던 재수파들이 '형우'에게 용서를 빈다.
'기표'의 어려운 가정 사정과 재수파들의 미담이 담임에 의해서 과장되고 미화되어 알려진다. '기표'는 효자(孝子)로, 재수파들은 희생적이고도 의리가 깊은 친구로 둔갑한다. 월요일 조회 때마다 사회 각계에서 보내온 성금과 위문편지가 '기표'에게 전달된다. '기표'의 이야기는 영화화될 단계에까지 이른다. 그럴수록 '기표'는 부끄러움을 잘 타는 아이로 변하고, 아이들은 그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
가출해 버린 '기표'가 여동생에게 남긴 편지에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라고 쓰여 있었고, 담임은 영화사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자신의 계획을 '기표'가 무산시켰다며 신경질을 부린다.
■ 핵심 정리
▶갈래 : 단편소설
▶배경 : 시간 - 1970년대 말, 공간 - 도회의 고등학교
▶어조 : 완곡한 비판과 풍자적 어조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나’는 냉철한 판단력으로 ‘기표’를 둘러싼 일을 관찰하고 평가를 내리면서도, 사건의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냉정한 개인주의적 태도로 반장과 담임의 합법적인 폭력, ‘기표’의 몰락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표현 : 극적 제시와 분석적 제시 방법에 의해 인물은 생동감을 획득함.
▶주제 : 합법을 가장한 권력의 위선과 그 폭력성
● 구성
▶발단 : '나'는 '기표'를 비롯한 재수파(再修派)에게 심한 린치를 당함.
▶전개 : '형우'가 반장으로 임명되고 반장과 담임은 '기표'의 비행이 없도록 노력함.
▶위기 : '기표'의 자존심을 잘못 건드린 '형우'는 폭행을 당하고 입원하지만 가해자를 끝내 밝히지 않음.
▶절정 : 담임과 '형우'의 주도 면밀한 계획에 의해 '기표'는 효자(孝子)요, 재수파(再修派)는 의리의 사나이로 미화(美化)되고, 이 미담(美談)이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기표'는 무기력한 아이로 변한다.
▶결말 : 가출한 '기표'는 그동안 자기를 위해 전개된 일련의 일들이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는 편지를 남긴다.
● 등장인물
▶나(이유대) : 자존심이 강하고 상대방의 심중을 잘 감지하는 학생. 관찰자.
▶최기표 : 불량 청소년의 전형. 갖은 비행(蜚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혹평을 별로 받지 않는 인물. 담임과 '형우'의 주도면밀한 술책에 무서움을 느끼며 학교를 떠난다.
▶임형우 : 학급을 헌신적으로 잘 이끄는 모범생이나 위선적인 면이 있음.
▶담임 : 치밀한 성격에 권위주의적인 인물. 학급 관리에 능숙함.
▶서술상의 특징 :
1. 합리적이고 날카로운 판단력을 가진 '나' 이유대가 폭력을 휘두르는 문제아 기표와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그를 제압하려는 담임과 실장(형우)을 관찰하는 이야기이다.
2. 풍자적 의미 - 악에 대항하는 자의 또 다른 악에 대한 풍자. 최기표의 초라한 몰락에서, '나'는 합법적 권력을 가진 담임과 형우의 교묘하고 위선적 술책이 기표의 물리적 폭력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3. 인물의 제시 방법-작가는 인물 유형에 대한 제시 방법으로, 행위에 의한 극적 제시 방법(보여주기)과 관찰자의 분석적 해설에 의한 말하기 방법을 적절히 사용하여 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한 학교의 교실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잔인하고 교활한 문제 학생 ‘최기표’, 성적 좋고 통솔력 있는 반장 ‘임형우’, 학생들을 장악하려는 담임 선생, 그들 사이의 갈등을 ‘나(이유대)’가 관찰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한 학생의 이야기를 다루는 일반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합법적인 폭력(권력)과 벌거벗은 폭력과의 관계를 폭넓게 다룸으로써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폭력의 모습인가에 대해 비판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 작품에서 기표는 순수한 악마로 다소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에, 그와 대립되는 형우와 담임은 신(神)처럼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의리와 진실과 호의를 가장한 위선자로 그려져 있다.
서술자 ‘나’는 합리적이며 날카로운 판단력의 소유자이다. 담임이 기표를 부반장으로 임명하려 할 때, "선생님, 기표 한 개인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기표의 힘을 빼어 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까?"와 같이 담임의 의도를 간파(看破)한다. 기표의 부정행위를 돕자고 반장이 제의했을 때,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하자는 거냐? 기표냐, 아니면 우리들 자신이냐?"고 물으면서, 기표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어 그의 권위를 손상시키려는 반장의 속셈을 들춰낸다.
사실 형우와 담임은 속 다르고 겉 다른 인물이다. 형우는 기표에 대한 적대감을 '씻은 듯이 감추고 오직 우의와 신뢰 가득한 말로써' 기표를 미화하는 일에 열을 올린다. 기표의 가출이 걱정되어 찾아온 그의 어머니를 '내쫓듯 교무실에서 밀고 나갔'던 담임은 흥분을 참지 못한 채 "내일 천일 영화서 사람들하고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잖냐? 그런데 이 망할 새끼가..... ."라며 욕설을 내뱉는다. 자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악을 이용하는 담임과 형우의 무서운 위선이 '나'의 관찰자 서술에 의해 폭로되고 있다. 그리고 기표는 무서움을 느낀다. 담임과 반장은 합법적인 권력 편에 있다. 최기표는 벌거벗은 폭력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담임과 반장은 최기표를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교묘한 술책으로 그를 굴복시킨다. 최기표의 초라한 몰락을 통하여 합법적 권력이 더 무서운 폭력일 수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 김태형 외 <현대소설의 이해와 감상> 중에서
▶ 지은이 전상국(1940~)
6․25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아픔과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권력과 모략으로 훼손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양상을 해부함으로써 진정한 화합의 길과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밝히려 했다. 대표작에 <껍데기 벗기>, <아베의 가족>, <싸이코 시대>등이 있다.
■ 핵심 문제
1. 여기에서 초점화되는 두 힘의 대결 양상을 말해 보자.
☞기표로 대표되는 원시적 악마성에 근원을 둔 야수적 힘과 그 외의 인물들에 의한 간교한 술책의 힘의 대립
2. 담임, 최기표, 임형우, 나의 성격을 정리해 보자.
☞
① 담임 : 학급의 순조로운 운영을 위해 야만적 힘의 소유자에게 적당히 아부하면서 결국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남의 장점과 약점을 철저히 이용하는 간교함을 보인다.
② 최기표 : 철저한 악의 화신이다. 본능 속에 내재한 야수성을 바탕으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악마이지만, 나중에 교활한 자들에 의해 참담한 패배를 맛본다.
③ 임형우: 가장 교활한 인물이다. 위선적인 자비를 통해 악의 세력들을 회유하려고 하는 치밀한 간교성을 보인다.
④ 나 : 기회를 포착할 줄 알고, 상대의 계략을 충분히 눈치챌 줄 아는 두뇌의 소유자이면서, 사건 상황에서는 방관자로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또 다른 위선자이다.
3. 최기표가 무섭다는 편지를 쓴 것에서 읽을 수 있는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서 야수성과 악마성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보다 간교한 술책이 더 무섭고, 사회를 지배하는 힘 또한 그런 간교성임을 읽게 된다.
4. 교실 공간의 정치학이란 의미에서 정치의 본질은 어떤 것인지 나름대로 말해 보자.
☞힘의 줄다리기가 정치라고 한다면, 그 힘의 대결 양상은 정의로운 것이 아니고 협잡과 부정과 비열함이 그 속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 교활성의 측면에서 볼 때, 가장 교활한 자는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이지 자신의 주장을 펼쳐보자.
☞담임은 간교하지만 그 저의(底意)가 남에게 쉽사리 간파된다. ‘나’는 간교하지만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세력을 불리려 하지는 않고 다만 냉소적일 뿐이다. 임형우는 우정과 사명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자신의 저의를 감출 줄 아는 치밀한 교활성을 보인다.
[수행 평가]
◎ 다음은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의 일부이다. 잘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1-3]
(가) 학교 강당 뒤편 으슥한 곳에 끌려가 머리에 털 나고 처음인 그런 무서운 린치를 당했다. 끽소리 한 번 못한 채 고스란히 당해야만 했다. 설사 소리를 내질렀다고 하더라도 누구 한 사람 쫓아와 그 공포로부터 나를 건져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토요일 늦은 오후였고 도서실에서 강당까지 끌려가는 동안 나는 교정에 단 한 사람도 얼씬거리는 걸 보지 못했다. 더우기 강당은 본관에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주 까마이득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재수파(再修派)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그들은 무언극을 하듯 말을 아꼈다. 그러나 민첩하고 분명하게 움직였다. 기표가 웃옷을 벗어 던진 다음 바른손에 거머쥐고 있던 사이다 병을 담벽에 깼다. 깨어져 나간 사이다 병의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그의 걷어올린 팔뚝에 사악사악 그어 갔다. 금간 살갗에서 검붉은 피가 꽃망울처럼 터져 올랐다. 기표가 그 팔뚝을 내 눈앞에 들이댔다. 핥아! 기표 아닌 다른 애가 말했다.
(나) ㉡형우는 반장이 될 만한 여건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무게가 있고 때로는 교만하고 생각한 것을 무슨 일이 있어도 해 내는 결단력도 대단했다. 학교 당국의 지시에는 일단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임하다가도 어떤 결점이 보일 때는 무섭게 반격을 가하는 용기도 갖추고 있었다. 한 마디로 그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어떤가, 우리 반에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애는 없겠지?”
첫 만남에서 담임이 말한 우리들의 항해에 방해가 될 만한 그런 역행가지를 귀띔해 달라는 것일 게다. 나는 불현듯 담뱃불에 지짐질당해 아직도 진물이 줄줄 흐르는 내 허벅지를 내보이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어쩌면 담임도 내 입에서 기표에 대한 얘기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을는지 모른다. 1학년 때의 기표 담임이 기표가 1학년 때 한 번 유급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길 전하지 않았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엄마 앞에서 반우를 매도하는 일 같은 건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 “그런 애가 어떻게 여태 퇴학을 안 당했나요. 교칙이 엄하기로 이름난 학교인데……”
엄마가 의아하다는 듯 얼굴에 그늘을 깔았다.
“바로 그겁니다. 이놈이 원래 교활하고 지능적이어서 도대체 제적을 당할 만한 큰 일에는 직접 앞에 나타나지 않고 뒤로 쑥 빠진다 그겁니다. 엉뚱한 놈이 당하곤 하지요. 정학을 몇 번 당하긴 했지만 어떤 결정적 꼬투릴 잡을 수 없으니까 제적을 못 시키는 거지요”
기표가 무서워서, 그의 안하무인한 앙갚음이 두려워서 제적을 못 시켰다는 그런 얘기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사이에 기표에 대해서 이처럼 깊이 파악하고 있다니---과연 기표는 이름난 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기표 얘기를 입에 올리는 담임은 얼굴까지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나는 문득 이제부터 1년간 담임선생과 최기표 사이에 치열하게 벌어질 싸움을 상상해 보았다. 이제까지의 결과로 미루어 보아 최기표에게 승산이 크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우리의 담임선생 또한 그렇게 만만치 않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그 싸움에 임형우도 한몫 끼어들지 모른다. 그가 어떤 편에 서느냐 하는 문제도 퍽 흥미있는 문제일 것이다. 아뭏든 이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그네들 싸움을 구경한다는 것은 진정 즐거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라) “그럴까? 네 말대로 임형우가 최기표를 잘 다스려 준다면 고맙겠지만…… 내 생각엔 최기표를 부반장에 임명하면……”
“선생님, 기표 한 개인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기표의 힘을 빼어 반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까?”
담임은 무슨 소리냐는 듯 내 얼굴을 뻔히 치어다보다가 음모의 한 귀퉁이를 드러내 보인 무안감을 감추기라도 하듯,
“여러 사람에게 해가 되는 그런 힘은 아예 빼어버리는 게 좋은 거다”
기표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바로 그런 것에 있는지도 모르는데요--이렇게 말하려다 나는 그만두었다. 그 대신,
“선생님, 기표는 유급생인데다 여러 번 정학을 당했잖아요. 그런 아이를 간부로 임명하면 아이들이 좋지 않게 생각할 겁니다”
기표가 학교의 지시 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교단 위에 서서 아이들한테 애원하는 광경은 생각만 해도 불쾌했다. ㉢누가 사자를 울 속에 넣어 길들이는 발상을 처음 했는가. 나는 내 허벅지의 상처를 결코 격하시키고 싶지 않았다.
1 . ㉠과 ㉡의 인물 제시 방법과 그 효과가 어떻게 다른지 100자(띄어쓰기 포함) 정도로 설명하라.
<모범답> ㉠은 간접 제시(극적 제시, 보여주기) 방법으로써 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리는 데 효과적이고,
㉡은 직접 제기(분석적 제시, 들려주기) 방법으로써 인물의 성격을 간단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갖는다.
2 . 이 글의 시점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아니라 1인칭 관찰자 시점임을 입증할 수 있는 문장 하나를 (다)에서 찾아 처음과 끝의 한 어절씩 쓰고, 그 이유를 80자(띄어쓰기 포함) 내외로 설명하라.
<모범답> 아무튼 ~ 없다.
이 글로 보아 앞으로 전개될 갈등은 기표, 담임, 형우 사이에서 발생된다는 점이 분명하고, 그것을 구경하겠다는 ‘나’는 관찰자적인 입장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3 . ㉢이 담임의 의도를 비유한 것이라면, ㉢에 원관념을 대입하여 평서형 문장으로 다시 작성하라.
<모범답> 담임은 기표를 부반장으로 임명하여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는(힘을 빼앗으려는) 의도를 지닌 게 분명했다.
[4-6]
아이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깊은 감동의 강물이 모두의 가슴 한 가운데를 출렁이며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담임선생이 교단으로 다가갔다. 그는 주머니에서 만원 짜리 한 장을 꺼내어 교탁 위에 놓았다. 반장도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이들이 조용한 술렁거림 속에서 모두 돈을 찾아 들었다.
“오늘 돈이 없는 사람은 내일 가져오는 게 어떻습니까?”
한 아이가 일어나서 큰 소리로 제안하자 모두, 그럽시다--소리쳤다.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중략>……
며칠 뒤에 신문 미담란에 우리 반 얘기가 크게 다뤄졌다. 박스 기사였다. 기표의 갸륵한 효성에서부터 재수파들의 우정어린 피뽑기와 급우들로부터 시작된 친구돕기 운동이 전교적으로 파급되어 이룩한 성과가 자세하게 났다. 기표의 여동생 얘기도 끼어 있어 그 기사를 읽은 우리들의 콧등이 새삼 찡 했다. 기사 멘 위에 담임선생과 반장, 그리고 기표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교장선생님 지시에 의해 그 기사는 각 교실 후편 게시판에 붙이게 돼 있었다.
그 신문 기사가 나가고부터 월요조회 때마다 교장선생님은 사회각계에서 보내오는 성금과 위문편지를 최기표에게 전달했다. 담임선생님도 종례 때면 기표에게 편지 여러 장을 건네며,
“거기 여학생 편지도 많이 있으니까 혼자 몰래 보라구”
아이들이 와하하 웃었다. 기표가 얼굴을 벌겋게 달구며 편지 다발을 책상 속에 넣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실로 화기애애한 반이 되었던 것이다.
“기표 얘기가 영화로 된다며?”
“그렇대. 재수파들을 중심으로 한 얘긴데 TV에 나오는 제3교실 같은 거겠지”
어디서 나온 얘긴지 기표의 얘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제 아이들은 아무도 기표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형이라고 호칭하는 아이도 드물었다. 아무나 곁에 가서 말을 걸 수가 있었고 때로는 어깨도 쳤다.
그것은 기표가 ( )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중략>……
기표가 내리 사흘이나 결석을 한 아침나절이었다. 수업중인데 담임이 형우와 나를 찾는 쪽지가 왔다.
우리가 교무실에 내려갔을 때 담임선생은 병색이 완연해 뵈는 어떤 여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네는 초가을인데도 낡고 두터운 오바를 걸치고 있었다.
“아이구, 우리 기표 친구들이구만, 시상에 이렇게 고마운 친구들이 어디 있겠누. 그런데 이눔에 자슥이……”
그네는 몸을 일으켜 우리에게 굽실거리며 때 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그네는 우리의 손을 더듬어 쥐고 싶어했다.
“자, 이제 고만 돌아가십시오. 애들하고 의논해서 찾아보겠읍니다”
담임선생은 기표 어머니를 내쫓듯 교무실에서 밀고 나갔다. 그네는 교무실을 나가며 자꾸 아쉬운 듯 우리들 얼굴을 돌아다보았다.
그네를 배웅하고 돌아온 담임이 의자에 소리나게 주저앉으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 망할 새끼가 끝까지 말썽이란 말이야”
그는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가 내뿜으며 투덜거렸다
“내일 천일영화사 사람들하고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잖냐? 그런데 이 망할 새끼가……”
그는 서랍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 우리들 앞에 내던졌다. 기표가 바로 밑의 여동생한테 보낸 편지였다. 팬지 맨 앞줄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4 . 이 글의 내용 전개에 맞도록 ( ) 안에 알맞은 표현을 채워 넣어라.
<모범답> 아주 부끄러움을 잘 타는 아이로
5 . 온갖 비행을 저지르며 학생들을 섬뜩하게 했던 ‘기표’가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지 50자(띄어쓰기 포함) 내외로 쓰라.
<모범답>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되게 미화시켜 자기를 무력하게 만들려는 주도면밀한 위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6 . 이 소설은 작품 후반부에서 폭로성과 풍자성을 완연히 드러내고 있다. 담임의 행동을 중심으로 하여 그 근거를 100-150자(띄어쓰기 포함) 정도로 상술하라.
<모범답> ‘더욱 깊은 이해’로 학생들을 돌보던 담임의 언행이 ‘기표 어머니를 내쫓듯 교무실에서 밀고’ 나간 행동과 기표에 대한 욕설과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돌변한다는 점이 담임의 위선을 폭로한 것이며, 그러한 언행에 대한 냉소적인 어조가 풍자성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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