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사진: 아산 현충사 충무공 영정을 모셔둔 사당)
▷ 할아버지의 도움
왜놈들이 자물질을 해서 조선의 군함밑을 뚫고 있었다. 이순신이 바다에서 놀고 있는 배를 보면서 문득 할아버지가 명심하라던 글귀를
생각해 냈다.
"伐木丁丁 山更幽요 毒龍潛處水偏淸이라"는 글귀였다. 이순신이 부하들을 시켜 "저 건너 앞산에 나무 비는 소리가 나는구나 창을 갖고 배밑을 더듬어 봐라"라고 시켰다. 과연 배밑 양쪽을 찔러대니까 피가 나왔다. 이순신 할아버지가 일러준 글귀 덕분에 왜놈들을 없앨 수 있었다.
산에서 나무베는 소리가 쩡쩡 나는데 군함에 구멍을 뚫는 소리와 박자를 맞춰 소리를 냈다. 보통사람이 볼 때는 '초부가 나무벤다' 그랬을
것인데, 충무대감은 선견지명이 있어서 "伐木丁丁 山更幽"란 고시가를 생각해 내서, 산에서 나무 베는 놈도 잡고 배밑을 조사해서 위기를
모면했다. 어디를 가서 배를 정박해 놓고 있는데 물이 매우 잠잠했다.
"毒龍潛處水偏淸"이란 한시를 생각하고 배를 옮기게 하여 몰살을 면했다. 우리 같으면 '물이 좋으니까 쉬어가자' 그랬을 것인데 "독륭이
잠긴 곳은 물이 평범하지 못하다'고 하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만큼 선견지명이 있는 양반이다.
▷ 처녀원혼과 장군
이순신이 열여덟살 때 활공부를 하고 산에서 내려오다 목이 말라 처녀에게 물을 얻어 마셨다. 처녀가 그릇에다 나뭇잎을 따서 주었는데
이순신이 괘씸하게 여겨 처녀의 가슴에 활을 대었더니 물에 체할까
봐 그랬다고 했다. 후에 패랭이 쓴 영감이 와서 그 처녀가 상사병이 걸려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순신이 이말을 듣고 초상을 치루는 곳에 갔다. 밤이면 처녀가 앞동을 서서 성공하고 안하는 것을 다 알게 되었다. 남해에서는 '실패하니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나가서 이내기에서 이순신이 죽었다.
이순신이 죽으면서 '죽었다고 말고 적을 쫓아라'해서 노량서 왜놈들도 못살고 말았다.
이웃집 처녀가 이순신을 사모했는데 신분이 달라 혼사를 꺼내지 못하고 상사병이 들어 죽었다. 뒤에 이순신이 그 소식을 듣고 그 시체를 하루저녁 부둥켜 안고 잤다. 나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전투가 치열할
적에 꿈에 영혼이 나타나 울둘목에 진을 치라고 현몽했다. 충무공이
울돌목에 가서 보고 정말 진을 칠 요새지라고 느꼈다. 거기서 배 열두척을 가지고 적함 삼백척을 무찔렀다.
▷ 이순신과 송구봉
이순신이 십이삼세 때 친구들과 돌을 모아놓고 진법연습을 했다. 송구봉이 그걸 보고 있다가 집에 다녀가라고 했다. 이순신이 밤에 송구봉의 집에 갔는데 방에 누워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순신이 송구봉의 방에서 구선도(龜船圖)를 보고 집에 왔다. 송구봉이 묵언으로 교지한 것이다.
여수 수사로 와서 여수 둔덕재의 솔을 가지고 거북선을 만들었다. 배를 만들었는데 여덟 개의 구멍 중 한 개의 용도를 몰라 송구봉에게 다시 가서 물었더니 그 구멍이 사청목(巳聽目) 이라 했다. 뱀은 눈으로
소리를 듣기 때문에 바깥의 말을 듣기 위해 한 구멍을 놔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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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군의 계책1
* 왜군이 다시 쳐들어 와 조선조정에서는 야단이 났다. 막을 사람이
누구냐고 원균에게 물으니 원균이 안된다고 하여 이순신장군이 나갔는데 거북선을 타고 큰 기(旗)를 달고 나갔다. "일본군이 조선으로 나와서 일본이 비었으니 우리는 일본을 점령하자"라고 크게 쓴 깃발을
높이 들고 나갔다. 그렇게 거제 바다로 나갔더니 일본군이 그것을 보고 일본을 지키기 위해 절반이 돌아가버렸다.
그 때부터 이순신이 성공을 해서 한산도 싸움을 승리했다. 일본이 서울까지 함락하고 임금은 평양까지 달아나고 난리가 났는데 이순신 때문에 전라도는 무사했다.
* 무슬목의 지형이 쏙 들어가 있는데 여기에 이장군이 꾀를 썼다. 거짓 지도의 정보를 흘리기를 '육지가 없고 탁 트인 곳'으로 해서 일본군
수중에 들어가게 하였다. 이것을 믿은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뒤를 추격해 포위를 하고 들어오니까, 일본군이 도망을 하다가 앞이 막혀 땅을 파고 뱃길을 뚫어 뒤쪽으로 도망가려 했는데, 그렇게 땅을 파다가
일본군이 많이 죽었다. 거기서 이장군의 계략에 걸려들어서 일본군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 이장군의 계책2
* 옛날에는 역의암(易衣岩)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는데 거기서 이순신
장군이 묘계로 군인들에게 옷을 서너가지를 입혔다. 흰 옷을 입고 한
바퀴 돌고 제자리로 와서 노랑 옷을 입고 한바퀴를 돌고 해서 왜적들이 그걸 보게 했다. 그렇게 '의복을 갈아 입혀서 전쟁을 한 곳이다'해서 역의암이다.
그 역의(易衣) 바위가 산꼭대기에 서있다. 우리가 호칭하기로는 매돌바구란 곳이다. 그 산을 처음에는 검은 옷을 입고 나중엔 붉은 옷, 푸른 옷을 입고 돌았다. 옷을 바꿔입고 그 바위를 돌았다해서 역의바위다.
덕양에 뒷산이 있는데 묘도 앞 바다에서 보면 잘 보인다. 여의암 동쪽으로는 전부 바다다. 왜적들이 쳐들어 올 때 우리 군의 숫자가 작으니까 부인들에게 군복을 입혀 가지고 우리도 이만큼의 군사가 있다고
자랑하기 위해서 산꼭대기를 순회하게 했다. 그래서 여의암이라 한다.
* 이순신장군이 망마산에서 망도 보고 훈련도 시켰다. 훈련을 시킬 때
한 번은 빨간 옷을 입혀 한 바퀴 돌리고, 또 한번은 흰 옷을 입혀 돌렸다. 군대가 많이 집결한 것처럼 해서 왜적들이 두려이 생각하게 하였다.
상화도, 하화도를 위꽃섬, 아래꽃섬이라 한다. 임진왜란때 병사들에게 여자옷을 입혀 가지고 일본군을 유인하면은 둔병도, 조발도에서
기습해서 잡았다.
조선성에서 왜놈들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데 거기서 빨간 옷, 파란 옷,
색깔을 입혀 바꿔가며 성을 돌았다. 색색으로 군사들이 나오니까 수천 명같이 보여 왜놈들이 당황해하였다.
* 이순신장군이 군량이 없으니까 뽈록산의 나무를 전부 베어 버리고
날개를 이었다. 왜놈들이 그것을 보고 "저렇게 군량이 많이 있는가 보다"고 놀래서 도망을 갔다. 노적산이라고 한다.
▷ 신성포와 야죽불
* 신성포 야트막한 산 위에 있는 성은 조선에서 쌓아 놓은 것이었는데, 우리 수군은 왜놈들에게 밀려서 거기를 빼았겼다. 그래서 왜놈들이 거기서 진을 친 것이었다. 그 때 이순신 장군은 하동땅의 대나무를
베어다가 짚을 펴놓고 짚둥치안에 대나무를 다발다발 넣어서 둥그렇게 묶어 야죽불울 만들었다.
조선수군이 노량 바다쪽에서 일본군이 점령한 신성포로 들어오면서
야죽불에 불을 붙이니 대나무 매듭 튀는 소리가 총소리보다도 무섭거든, 하나도 아니고 수십개가 불이 붙어서 튀니까 "조선도 이렇게 무기가 많구나 우리 여기 있다가는 죽겠다"하고서 그것에 놀래서 왜놈들이 다 달아나 버렸다.
* 이순신 장군이 남해 이내기에서 죽었는데 남해에서 진을 치고 있으면서 그 곳의 지명을 물었더니 이내기라고 했다. 이순신이 이내기에
들어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기서 죽을 거다"고 했다.
망마산 가면 나무가 하나 서 있다. 이순신이 훈련하면서 쓰던 지휘봉이 그 때 그 나무다. 그 때 그 나무를 꼽으면서 "이 나무가 살면은 내가
살 것이고, 만약에 이 나무가 죽으면 내가 죽을 것이다"고 했다.(망마산 건팽나무)
* 왜놈이 쳐들어 오는 길목에 철모를 놔두고 조선군인은 그것과 똑같이 생긴 가짜 바가지 철모를 쓰고 다녔다. 왜놈들이 와서 보니까 조선
사람들이 전부 철모를 쓰고 다녔다. 길가에 철모를 흘려놓으니 왜놈
다섯, 여섯명이 들어도 들 수 없었다. 왜놈들의 눈에는 조선 사람들은
한 사람씩 철모를 쓰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조선 군대가 장사(壯士)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 처럼 보일려고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짚으로 사람의 모습을 만들어 놓고 왜놈들이 거기에다 활을 쏘면 그 화살을 빼어 가지고 되쏘고 했다. 의병들이 그런
전술을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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