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폴란드를 폴란드어로 폴스까 라고 한다.폴란드어를 쓴다
자연환경 : 폴란드는 위치상으로 동서 유럽의 중간에 있고 대부분 제 4 빙하기의 영향 아래 있다.
폴란드의 인구는 3862만 3000명
폴란드의주민은 슬라브인의 서부계열의 속하는 폴란드인이 98.7%를 차지 하며
소수의 백러시아인 우크라이나 인 , 유대인 독일인 등이있다.
역사 기원전 천년간의 발굴품의 현재의 폴란드 땅에 슬라브인이 거주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문헌에는 뒤에 폴란드 인을 형성한 여러 부족의 이름이 나타나는데 계급 사회의 발생은 6새가아고 9세기에는 비슬라인의 부종공국이 대모라비아 왕국과 접촉을 가졌다.
10세기에는 그니에즈노 . 포즈난을 중심으로 폴란드인의 땅이 형성되어 폴란드 통일의 모체가 되었으며 , 거기서 민족과 국토의 명칭이 생겨났다.
특징 폴란드는 우리와 같은 OECD국가중하나이며 수도는 바르샤바 민족은 슬라브 계열이며 퀴리부인이나 쇼팽 , 바웬사 , 로만 폴란스키 그리고 현교황인 바오로2세가 폴란드 출신입니다.
독일
독일의 역사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이후 서(西)게르만계의 제부족, 즉 독일 제부족이 하나의 국가 밑에 통합된 것은 프랑크족이 세운 프랑크왕국에 의해서였다. 라인강 중류를 점거했던 프랑크족은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중엽까지 플랑드르 지방 및 마스·모젤 두 하천 유역을 점령하고, 메로빙거왕조 때에 남서 프랑스로 진출하는 한편 남동쪽으로 나아가서 슈바벤·튀링겐·바이에른 등의 부족을 정복하였으며, 카롤링거왕조의 샤를마뉴 대제(재위 768∼814) 때에는 최후까지 버티던 작센족을 굴복시켰다.
독일 제부족이 그리스도교화하고, 또 독일 고래의 정치체제인 렌(Lehn:封建) 제도의 기초를 굳히게 된 것도 그와 같은 부족통합의 과정을 통해서였다. 그리하여 독일의 제부족은 그들 공통의 국가적 지배를 받게 되었으나, 그들은 단지 프랑크 대제국의 한 부분에 불과하였다. 그것은 샤를마뉴 대제 때의 프랑크왕국의 판도가 동쪽은 엘베강·도나우강 상류 유역, 서쪽은 피레네산맥에 미치고, 또 샤를마뉴 대제는 로마 황제의 제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 지배가 많은 민족에 미쳤기 때문이다.
샤를마뉴 대제가 사망하자 왕국 분치(分治)의 문제와 더불어 내란이 계속되었으며, 843년 베르조약에 의해 동프랑크와 서프랑크의 분열이 시작 되었다. 갈리아를 중심으로 한 라틴적 전통이 강한 서프랑크(프랑스)와 게르만적 전통이 강한 동프랑크(독일)가 제각기 독립의 길을 걷게 되었다. 911년 루트비히 유동왕(幼童王)이 죽자 카롤링거왕조의 혈통이 끊어지고, 그해에 동프랑크 제후들의 추대에 의해 프랑켄공(公) 콘라트가 왕위에 올랐다. 독일국가는 독일인이 스스로 그들의 왕으로 선립(選立)한 콘라트 1세의 즉위로 탄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자연환경
우선 독일은 바다가 한면밖에 없습니다
북쪽에 바다가 있죠(북해[Nordsee]와 동해[Ostsee])
나머지는 유럽 대륙입니다
독일은 산지가 매우 적구요, 평지가 많은 편이예요
평지가 많구요
중앙은 산이 조금 있는데요, 산이라기 보다는 언덕-구릉입니다
반면 남쪽은 스위스에 있는 알프스 산맥의 영향으로 산이 조금 있는 편입니다.
프랑스
국기
트리컬러(Tricolor)로 불리는 프랑스의 국기는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삼색기는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바스티유를 습격한 다음날인 7월 15일 국민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라파예트가 시민에게 나누어준 모자의 표지 빛깔에서 유래하였다. 나폴레옹 1세가 워털루전투에서 패한 후 한때 사라졌다가 1830년 다시 라파예트에 의해 등장하였다.
원래는 깃대 쪽에 빨강이 있었는데, 1794년 국기로 공식 제정하면서 현재의 배열로 바뀌었다. 원래는 3색을 시각적으로 같은 크기로 보이게 하기 위하여 3객의 비율을 30:33:37로 불균등하게 나누었는데, 1946년 3등분으로 고쳤다.
절대왕조(絶對王朝)에 대항하여 일어난 시민혁명을 표상한 이 삼색기는 국민주권(國民主權)의 상징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널리 알려졌다. 그 후 유럽에서는 절대왕조가 붕괴되고 속속 시민국가가 탄생하였는데, 이렇게 탄생된 시민국가의 국기 중 대부분은 프랑스 3색기의 영향을 받아서 제정된 것인데, 아일랜드의 국기가 그 좋은 예이다.
일찍이 영국에 대항하는 독립투쟁을 계속해 오던 아일랜드에서는 1848년 젊은 혁명지도자 T.F.메가가 프랑스로부터 녹색 ·흰색 ·오렌지색의 3가지 빛깔로 된 3색기를 가지고 돌아와서 국기로 하자고 주장한 일이 있으며, 그 해 프랑스의 2월혁명을 축하하면서 프랑스의 3색기와 함께 이 기를 전국에 게양하였다. 그 후 계속해서 이 기는 독립운동의 상징으로서 사용되어 오다가 1937년 독립선언과 함께 정식으로 국기가 되었다. 녹색은 가톨릭, 오렌지색은 프로테스탄트, 흰색은 양자의 결합과 우애를 표시한다고 한다.
아일랜드
1.국기
2 .정식명칭은 아일랜드공화국(Republic of Ireland)이다.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아일랜드섬은 대서양과 아이리시해 사이에 있으며, 영국 본토 그레이트브리튼섬과는 얕은 대륙붕으로 연결되어 있다. 8세기말 침입한 노르웨이족을 1014년에 격퇴한 후, 12세기부터 700년간 이어져온 영국민의 지배에 저항한 결과 1921년 12월 26일 독립하였다. 영국-아일랜드 전쟁에서 당시 아일랜드섬의 32개 중 중에서 6개 군은 영국령 북아일랜드로, 26개 군은 아일랜드자유국으로 분할되었다. 북아일랜드는 카톨릭교도가 많아 한동안 종교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전설 속 여신인 ''Ériu(현대어로 에이레 Éire)''에 ''land''가 합친 것이다. 행정구역은 26개 카운티(county)로 되어 있다.
3.개관
위치 : 북대서양 북동부
경위도 : 서경 8° 00", 북위 53° 00"
면적 : 70,280㎢
해안선 : 1,488Km
영해 : 12해리
수도 : 더블린
종족구성 : 켈트족, 영국인
공용어 : 아일랜드어, 영어
종교 : 가톨릭 (88.4%), 아일랜드 교회 (3%)
독립일 : 1921-12-06
국가원수 : 매컬리스(Mary McAleese) 대통령(2004.11 재선, 임기 7년)
정체 : 공화제
통화 : 유로화(Euro)
인구 : 4,062,235명(2006)
평균수명 : 77.73세(2006)
출산률 : 1.86명(2006)
1인당GDP : 41,000$(2005)
실업률 : 4.3%(2005)
4.기후
아일랜드는 북위 51~55도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나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받아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하며 여름과 겨울간의 기온차가 적다. 이러한 기후로 인해 토지는 항상 녹색을 띄고있어 아일랜드를 '녹색의 나라'라고도 부른다.
거의 1년 내내 비가 내려 습한 공기가 느껴지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바뀐다
5.공용어는 아일랜드어와 영어이다. 영국의 식민 통치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영어를 사용한다.
발음은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의 중간정도의 억양이며 아일랜드 특유의 억양도 섞여있다.
6.종교 2006년 아일랜드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아일랜드인의 약 88.4%가 로마 가톨릭신자이다. 그 다음으로는 아일랜드 성공회신자가 많다. 나머지 종교들은 타국에서 아일랜드로 이주해온 사람들로 인한 것으로 신자 수는 매우 적다.
7.교육 이나라는 세계적인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그리고 문맹률은 낮은 편이다.
아일랜드의 대학들은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대학의 서열화가 없다. 아일랜드의 대학들은 모두 평균적이고 균등한 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번영한 대학은 더블린에 위치한 트리니티 칼리지이다.
8.경제 1980년 대 후반까지만 해도 경제 성장률이 매우 저조했으나 1997년 현 대통령인 메리 맥컬리스는 외자 유치 등의 적극적인 개방 정책을 펼쳐 평균 1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여 급성장했다. 현재 아일랜드의 1인당 GDP는 자국을 식민통치하였던 영국보다 높으며 유럽에서 손에 꼽히는 부국이다. 아일랜드는 외국기업의 자국내 유치를 위해 법인세를 감면하는 등의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자국기업의 약세로 부작용이 일어나자 2001년 이후부터 자국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물가가 매우 비싼 편이다.
8. 대한관계
아일랜드는 1955년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에 가입한 이래 UN에서 영국과 공동보조를 취하여 한국을 지지하여 왔으며, 한국은 1961년 8월 유럽 친선사절단이 아일랜드를 방문함으로써 아일랜드와 첫 외교 접촉을 가졌다. 이어 한국은 1967년 11월 1일 아일랜드 정부가 재한 아일랜드 국민에 대한 영사보호업무를 영국대사관에서 대행하도록 하여달라는 요청을 수락한 바 있으며, 양국의 국교는 뒤늦게 1983년 10월 7일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그후 1987년 7월 10일에는 주아일랜드 한국대사관을, 1989년 9월 2일에는 주한국 아일랜드대사관을 설치하였다.
양국의 주요 인사교류를 보면 아일란드에서 1997년 4월 하원의장 신 트레시, 2000년 총리 버티 아헌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한국에서는 1990년 국무총리 강영훈, 1991년 국회의장 박준규, 상공장관 이봉서, 2001년 국회부의장 김종호, 서울시장 고건, 2003년 성경륭 귝가균형발전위원장 등이 아일랜드를 방문하였다. 양국은 1989년 비자면제협정, 1990년 이중과세방지협정, 1994년 경제·산업·과학·기술협력협정, 1999년 운전면허상호인정 서신 교환 등을 체결하였다.
2003년 대한수입은 6억 4600만 달러, 대한수출은 6억 64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반도체 등 전자부품, 제약원료 및 의약, 통신기기 등이며, 수입품은 컴퓨터부품 등 전자부품, 자동차, 기계류, 화학공업제품 등이다. 2006년 11월 기준 아일랜드 거주 재외국민수는 약 1,000여명이며, 현지 교민은 많지 않고, 단기간의 어학 연수생 및 유학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은 금융업, 항공기 리스업, 비디오테이프생산 등의 업종이 진출해 있다.
9.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는 2개소가 있읍니다.
1)'보인 굴곡부 고고학 유적'은 주요내용 이 세개의 고대 유적지 집결군으로 보인강 근교에 위치해 있다. 당시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장례 양식이 나타나 있다.
2)'스켈리그 마이클'은 바닷가에 피라미드식 거대한 바위를 쌓아 만든 유적으로 초기 종교적 정착 생활을 나타내주는 독특한 사례이다.
10. 관광지로는
1)더블린--세인트 스테판 그린공원,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더불린성,아일랜드문,기네스맥주양조장,템플바,그랜드운하,아일랜드 현대 미술관,아일랜드 국립식물원등이 있으며,
2)골웨이--스페인아치,골웨이대성당,린치스성,던귀에어성등이 있으며,
3)호우쓰에는 호우쓰성, 등대, 호우스대수도원 등이 있으며,
4)워터포드,위클로등 도시마다 특색있는 성과 유적이 남아 있읍니다.
첫댓글 폴란드,프랑스,아일랜드/..... 엥? 3게국 밭에 없는데?
이제보니 독일도 있었구나...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