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고레 사단은 현재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서 저항하고 있다."
- 11월 11일, 런던 라디오가 영국군의 공식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폴고레 공수 사단은 이탈리아군에서 정예병으로 구성된 부대로, 10군에 배치되어 아프리카 전선에서 싸웠다. 최초의 편성 목적은 몰타섬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롬멜에 의하여 그 작전은 취소가 되었다. 그리하여 아프리카로 이동하여 롬멜의 작전에 참가하였고, 보병으로서 작전을 수행하였다. 그리하여 토부룩 탈환부터 엘알라마인 전투 직전까지 큰 문제없이 독일군과 동행하였다.
하지만 아프리카 전선의 추축군에게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1942년 10월 23일 오전 9시, 몽고메리의 '라이트 풋 (빠른 발)' 작전이 시작되었다. 롬멜이 공을 들여 준비한 지뢰지대인 '악마의 밭'을 돌파하여 추축군의 전선에 막대한 물량의 연합군이 쇄도한 것이다. 공세의 주력은 북쪽이었으나, 남쪽의 진지에도 견제를 위하여 공세를 가했다.

폴고레 사단의 대전차포
이 때 폴고레 사단의 배치는 남쪽 진지의 중앙부였다. 이들은 이 전투에서 이탈리아인들도 놀라운 투혼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유감없이 증명하였다. 영국군은 엄청난 포격 뒤에 7 기갑 사단과 44 보병 사단을 투입하여 폴고레 사단의 진지에 공격하였다. 당시 폴고레 사단은 실제 병력이 3천에서 3천 5백명 사이로, 사단이라기 보다는 '여단'에 가까운 병력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단'에 해당되는 면적의 진지를 사수해야만 했고, 그들은 해냈다.
10월 25일 오후 10시 반, 영국군은 남쪽에서의 교착을 타개하기 위해 대병력을 동원하여 폴고레 사단을 공격하였다. 영국군 44, 50 보병사단, 7 기갑사단, 자유 프랑스 1, 2 사단, 로얄 헬레닉 여단이었다. 이들은 막대한 포격지원까지 등에 업고 폴고레 사단을 세방향에서 공격하였다.

기갑부대를 선두로 한 영국군의 공격에 폴고레 사단은 기민하게 대처하였다. 우선 선두의 전차부대가 지나가는 것을 허용한 뒤에 여러 방향의 매복지점에서 47미리 대전차포와 화염병을 이용하여 영국군 전차를 공격하였다. 그들은 롬멜을 애먹게 했던 마틸다와 그랜트 전차도 놀라운 투혼을 발휘하여 다수 격파하였다. 최소 31대의 영국군 전차를 격파하였고, 영국군이 회수한 것까지 합치면 110대에 달한다고 한다. 몇번이나 영국군에게 전선이 돌파되었지만, 그 때마다 착검돌격까지 감행하며 버텨냈다.

폴고레 사단이 격파한 영국군 전차
3일 동안 폴고레 사단에 도전했던 영국군은 더 이상 남쪽 지역에 주력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에 북쪽에 주력을 집중하였고, 11월 2일 롬멜은 전면적인 퇴각을 명했다. 당시 전선은 북쪽의 영국군이 상당히 진격한 상태였으며, 남쪽의 추축군은 고립되었고, 버려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3일 밤낮으로 압도적인 공세를 버텨냈던 폴고레 사단은 물도, 탄약도, 차량도 없이 염천의 사막을 걸어서 후퇴해야 했다. 그들은 독일군이 차량을 이동하여 후퇴하는 길에 버려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 그리하여 대부분의 폴고레 사단병들은 퇴각길에 영국군의 포로가 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살아서 리비아를 건너 튀니지에서 재편성 할 수 있게 된 병사들은 불과 285명이었다. 3천이 넘었던 폴고레 부대의 90프로가 엘알라마인 전투와 후퇴 중에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항복할 때 백기를 들지 않았으며, 심지어 손도 들지 않았다고 전한다.
영국군은 이 위대했던 적군을 위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44사단장인 허기스 장군은 폴고레 사단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남은 생애에 두번 다시 폴고레 사단과 같은 적을 만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엘 알라마인의 모든 전투가 종료되고 몇 주뒤인 11월 21일, 처칠은 폴고레 사단의 감투정신을 이렇게 칭찬하였다.

"우리는 사자와 같던 폴고레 사단의 생존자들을 위하여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Second_Battle_of_El_Alamein
http://www.avalanchepress.com/FolgoreAtAlamein.php
http://dabble.com/node/41129584
http://www.ww2f.com/north-africa-mediterranean/18297-folgore.html
첫댓글 이딸리아의 모든 군대가 당나라군대는 아니였군요
인터넷에 떠도는 이탈리아 군대에 대한 자료를 보면 오합지졸, 당나라 군대, 100플로린짤 농부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던데... 의외인데요?
ㅋㅋㅋ비유가 아주~
정말 의외이긴 합니다. 하지만 어디에나 용감한 자는 있는 법이니까요.
훗.. 어디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니까효.. 이탈리아군=오사카 5사단의 공식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죠.
또 졌느냐 8연대 말씀하십니까? ㅋㅋ
오사카 4사단 아닌가요 ;;
그냥 오사카 사단이라고 해도 됩니다....
폴고레여단...정말 2차대전에서 전설적으로 아직까지 회자되는 드문 이탈리아의 최정예부대죠...북아프리카전투의 꽃을 보통 몽고메리의 대공세로 꼽습니다만 저는 쾨니히장군휘하의 자유프랑스군 1여단(외인부대가 소속되있었죠)의 비르하케임전투와 폴고레사단의 분전 그외 이탈리아군의 넴보사단의 분전을 높이평가합니다...
결론은 하나.....이 세상 모든 공수부대는 정예 중의 정예들.....ㄷㄷㄷ;;;;;
이탈리아군이라고 모두 당나라 군대는 아니죠.
강장 밑에 약졸 없다...롬멜 휘하에 들면 이태리 당나라 부대는 평범한 부대로 이태리 정예 부대는 최정예로 바뀌는 것 같군요.
롬멜도 자신의 직속부대보다 자신에 속해있는 이탈리아 보병들이 훨씬 인내력 있고 끈기있게 잘싸웠다고 평했죠.
한떄 제국이라 불리던 로마의 자랑인 불굴의 정신이 여기서 발휘되다니 역시 이탈리아!
정예는 어디에나 있는 법.
폴고레사단은 이탈리아 최강부대중 하나로 위에서는 엘 알라메인전투에 대해서만 나왔지만 1941년 2월 콤파스작전때도 붕괴되는 이탈리아군의 후미를 맡아 영국군을 저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실전에서 공수로 투입된 적은 단 한번도 없다는 비운이 있죠.(몰타에 투입될 수도 있었지만 작전 취소) 이탈리아군은 그 대부분이 어느 면에서 보나 형편없었으나 포병은 우수했으며(정작 포는 75mm, 100mm등 구식이었지만) 특히 공병이 뛰어나 진지 구축, 도로 건설등에서 큰 활약을 했습니다. 해군에서는 규모는 작지만 잠수함전대, 수중특공대, 해병대가 매우 뛰어나 영국군을 몹시 괴롭혔습니다.
미디블에도 나오는 이탈리아 보병대.ㅋ 당나라 군대도 초반에는 닁기라한 군대는 아니였죠.ㅋ 그리고 고선지 장군의 당나라군대도 강했고 말이죠.ㅋ
흔히들 당나라 군대 라고 말하는 허접군대는 고구려랑 싸웠던 그 당나라의 군대를 말하는게 아니지 말입니다;;
오 감동 ㅠㅠ
그래도 실미도 군인들이 최고인거다
저도 이탈리아군이 형편없을거라 생각했지만.... 롬멜의 평가와 함께 폴고레 사단의 투지에 정말 놀랐습니다...
제 글에 너무도 많은 리플을 달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혹시 다른 커뮤니티에서 뵌 적이 있나요?
어느 역사던 어느 나라이던간에 최고의 군대는 있기 마련이죠.